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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40화 (140/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40화

“저 회장님…….”

전화를 끊기 무섭게 뒤편에서 김 비서가 나를 불렀다.

얼핏 본 그녀의 손엔 또 다른 휴대폰이 들려 있던 상태.

내 휴대폰이 통화 중이었던 탓에 그녀에게 전화를 건 모양인데, 보나마나 경제부처 인물일 거다.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가 받는 타격을 알아보기 위해서.

“국정원장님이십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이 상황에 국정원장이 왜?

의아한 마음을 뒤로하고 전화기를 건네받자 저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 회장님. 죄송하지만 지금 청와대로 들어와 주실 수 있습니까?

“…….”

******

끼익!

약 1시간 후, 도착한 청와대엔 이영훈 회장이 먼저 차량에서 내리고 있었다.

그도 나처럼 호출을 받은 모양새.

사전 약속이 무색해진 터라 우린 서로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역시 진 회장님께서도 호출을 받으셨군요.”

이영훈 회장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와는 달리 그는 청와대 출입이 그리 많지 않았던 사람.

왠지 예전 내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바쁘신데 굳이 걸음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막 회의장으로 향하려는 차에 비서실장이 우릴 향해 다가왔다.

아침부터 꽤나 시달렸는지 그의 얼굴에도 잔뜩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가시죠, 대통령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린 이후 회의장이 아닌 별관으로 안내되었다.

말과는 달리 대통령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상태.

잠시나마 여유를 찾자는 생각에 준비된 차를 들이켜자 이영훈 회장이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저와 상의할 것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건…… 조금 후에 알게 되실 겁니다. 우리가 청와대로 불려온 것을 보면 정부에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굳이 제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겠죠.”

“…….”

이영훈 회장은 그 말에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끝내 다시 입을 열지 않자 결국 그 역시 찻잔에 손을 가져간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기습적인 수출 제한에 대해 정식으로 항의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며 내세운 증거들의 신빙성 여부를 제기하였으며…….]

[일본의 1차 수출 제재 품목들은 가공 분야에 꼭 필요한 기계설비들 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는 표면상 그들이 주장하는 불법 밀반출 품목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들에 영향을 주는

것들입니다. 정부는 구체적인 품목들의 리스트를 분석 중에 있으며 한편으로는 저들의 저의가 의심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대기실 한편에 틀어 놓은 TV에서는 온종일 일본의 제재안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던 걸까, 이영훈 회장의 낯빛이 더더욱 거무튀튀 해져간다.

“오는 길에 총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던 이영훈 회장이 지나가듯 말을 뱉어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오는 길에 같은 전화를 받았던 상황이기에 대화 대용이 무엇인지쯤은 짐작이 가는 터.

굳이 묻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이자 그가 다시 말한다.

“일본에선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움직이고 있다더군요.”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회귀 전과는 달리 이번엔 저들이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

뭐 그렇다 해도 억지로 만들어낸 증거에 불과하겠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사안 자체는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기에 수세에 몰리는 것이 우리인 것은 확실하다.

“네, 저도 들었습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유령회사도 아니고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가공업체에 중고 기계를 수출하는 거야 문제 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정작 일본이 문제 삼을 곳은 우리가 아니라 중국이잖아요.”

따지고 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명목상으로 보면 수출업자는 잉여 물품들을 정당하게 되판 것에 불과한 상황.

그것도 정작 필요한 업체에게 합리적인 수준의 금액을 받고서.

이후 그게 북한으로 넘어간 것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면 그의 말처럼 중국에게 따지고 들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래서 억지라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왜요?”

“왜긴 왜겠습니까. 결국 우리를 곤란하게 해서 잠식당하고 있는 자기네 산업 분야를 살려보겠다는 거죠.”

이영훈 회장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설마 하고 있었던 의심이 확신이 된 순간 오는 허탈함에서 비롯된 표정.

상황을 좀 더 확실하게 인식시켜주기 위해 난 기어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저들의 태도가 황당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 사태로 우리가 타격을 입는 것도 현실이지 않습니까. 무기분야를 필두로 배터리와 반도체. 그리고 자동차까지. 아! 그러고 보니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일부 설비들도 문제가

생겼을 텐데요?”

“네, 현재 증설 중인 공장에 필요한 일부 설비들이 대대로 일본에서 수입해온 것들이니까요.”

이영훈 회장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제야 이 문제가 쉽게 정리될 것이 아님을 깨달은 거지.

다른 걸 떠나서 그동안 일본을 상대로 유달리 갑의 위치에 있던 그로서는 더더욱 어이가 없었을 거다.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양태용 국정원장이 방으로 들어섰다.

얼핏 그의 뒤편에서 얼굴을 드러낸 이는 현우그룹의 정태민 회장.

“두 분께서 여긴 어떻게…….”

의외의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란 이영훈 회장이 먼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 역시 곧장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그들을 쳐다봤다.

“일찍 도착하셨군요. 정태민 회장님께는 제가 연락을 드렸습니다. 아무래도 이 문제에 있어선 함께 머리를 맞대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양태용 원장은 짧은 해명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이로써 재계서열 1, 2, 3위의 그룹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황.

평소였다면 제법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을 것이나 닥친 문제 때문인지 다들 표정이 어둡다.

“현재 현우 자동차는 내년 출시될 신차 생산라인의 구축이 전면 중지된 상황입니다.”

제일 처음 말문을 연 것은 현우그룹의 정태민 회장이었다.

그러고 보니 현우 역시 이번 사안의 최대 피해자 중 하나.

그는 말을 하는 내내 일본 정부의 태도가 괘씸하다는 듯 연신 혀를 찼다.

‘쯧, 정작 잘잘못을 따진다면 우리 기업들도 책임을 벗어나기는 어렵지. 단지 편하고 싸다는 이유로 우리 업체들을 키우기 보다는 일본 제품만을 선호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걸 따지면 나도 책임소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그렇다 해도 나로선 좀 억울한 측면이 있다.

난 애초 이런 상황을 예견하여 그나마 소재 부분을 키워왔고, 또 앞으로는 기계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릴 생각이었거든.

하지만 일본은 무려 14년이나 이 사건을 앞당긴 상태.

차마 준비할 겨를도 없이 당해 버린 터라 기분이 더 더럽다.

“일단 우리 재우는 독일 지멘스를 설비공급업체로 지정할 예정입니다. 가능하다면 여러분들도 그 선택을 하시기를 권해드리는 바고요.”

난 즉시 대안을 제시했다.

의외였던 듯 정태용 회장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되묻는다.

“사안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는 마당에 벌써요?”

“어떻게 흘러갈지는 뻔합니다. 그냥 내지르는 것에 불과할 거라면 이렇듯 전격적으로 저들이 조치를 취하겠습니까? 단언하는데, 이 문제는 꽤 오래 지속 될 겁니다.”

그 말에 정태용 회장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하긴, 지멘스의 물건은 화낙에 비해 대략 20~30% 정도 가격이 더 비싼 것이 현실.

게다가 물류비용과 후속 지원을 고려하면 영업이익에 막대한 타격을 받을 상황이니 주저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정말로 쉽게 끝날 문제가 아닌 걸까요?”

정 회장은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양태용 국정원장을 쳐다봤다.

그 역시 확신은 가지지 못하는 표정.

난 그를 대신하여 다시 말했다.

“지금 일본 내각은 우리 산업계 전체를 흔들어 놓으려는 중입니다. 그 원인이 자신들의 생존문제 때문인 마당에 쉽게 물러서겠습니까?”

“…….”

순간 정태용 회장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내 휴대폰을 꺼내 든 그는 어딘가로 문자를 보냈고, 곧 후우 하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상황이 그렇다면 진 회장님의 말처럼 앉아서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죠. 그나저나 그 무역업자는 어떻게 됐습니까?”

마지막 질문은 양태용 원장에게 한 것이었다.

불쑥 자신을 향해 돌아온 화살에 양 원장이 잠시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안타깝다는 표정과 함께 말을 뱉어냈다.

“그자는 현재 국정원에서 심문 중입니다만, 뭐 대답이야 뻔하죠.”

“…….”

“자신은 그저 중국 거래처 공장에서 중고 설비들의 판매를 요구해 와서 팔았을 뿐이다. 뭐 이런…… 거래 주체가 실존하는 금속 가공 공장이었던 터라서 당시 우리 측 관련 부처도 문제를 삼을 이유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유령 업체도 아니고 실제 존재하고 영업 중인 업체를 상대로 수출을 한 건데 그걸 가지고 시시비비를 따지기가 힘들기는 하죠.”

이영훈 회장은 이해한다는 표정과 함께 말을 뱉어냈다.

곧 일그러지는 표정.

또 뭔가 싶은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설비도 설비지만 금융제재도 문제군요.”

“뭐 아무래도…… 그동안 일본은행들의 저금리를 이용하던 삼정으로서는 그 부분도 문제가 되기는 하겠군요. 하지만 삼정의 신용도 정도면 돈 빌려주겠다는 서구권 은행들도 꽤 많을 텐데요?”

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야 엄살 좀 그만 떨라고 하고 싶다만, 그건 무리니까.

단 0.1퍼센트의 금리라도 삼정 같이 금액대가 큰 차입금을 조달하는 곳에게는 이자 부담을 무시하지 못하거든.

게다가 일본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금리를 인상하기가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국가.

안정적인 자금 수급 측면에선 유리했던 것이 사실이니 그로선 더더욱 아쉬웠을 거다.

“최악의 경우엔 결국 다른 은행들과 협의를 해야겠죠. 쯧,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당장 우리와 일본 은행들과의 거래를 막아 버리면 자신들도 엄청난 손해를 입을 텐데,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원.”

“그건 고사하고 이번 제재 자체가 어이가 없는 거죠. 대체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막말로 대처할 방법이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도 않은 분야를 건드리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나 할 짓 아닙니까.

내각에 그만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 리는 없고, 그럼에도 이런 결과라면 일본의 미래야 뻔하지 않습니까.”

듣고 있던 정태민 회장이 불평을 거들었다.

묵묵히 저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차.

갑자기 양태용 원장이 휙 하고 나를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러십니까?”

“이쯤에서 진 회장님의 의견을 좀 듣고 싶어서요.”

“……글쎄요, 저는 둘째 치고 청와대에선 어떻게 할 생각인지 들으신 것은 없습니까?”

난 질문을 질문으로 되받았다.

아직 정부로부터 뚜렷한 의중을 듣기도 전에 내 생각을 밝힐 필요는 없으니까.

의도를 이해한 듯 양 원장이 다시 말한다.

“청와대야 일단은 일본에게 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리고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산 설비들과 소재들을 대체할 곳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재우나 현우, 그리고 삼정도 골머리를 앓을 정도면 중소 업체들은

더 할 테니까요.”

“하지만 누누이 말했듯 저들은 어지간한 일로는 절대로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겁니다.”

난 그 부분에서 다시 의견을 피력했다.

행여 청와대가 이 사안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까 싶어서.

그런데 그때, 벌컥 문이 열리며 대통령이 방으로 들어섰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더 골치를 썩고 있는 거죠.”

우린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여전한 미소로 한사람 한 사람과 악수를 나눈 그는 이내 자리를 권하며 툭 말을 던졌다.

“해서 내 생각엔 차라리 우리도 맞불을 좀 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양태용 원장.

그는 갑자기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턱을 떨어트린 채 대통령을 향해 물었다.

“우리도 제재를 한다고요?”

“이에는 이. 모르십니까? 한방 얻어맞았으니 우리도 때려는 줘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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