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39화 (13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39화

일본 나가타초 인근.

끼익!

한동안 조용하던 ‘스케부로’에 고급 차량들이 몰려들었다.

애초 정치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일식집이었던 터라 차량 주인들의 정체를 짐작하기엔 그리 어렵지 않은 상태.

밖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식당 주인은 곧바로 뒷문을 통해 홀로 뛰어 들어갔고, 곧 입구에 서서 익숙한 얼굴들을 맞았다.

“환영합니다, 아베상.”

“오랜만이오, 다이스케. 곧 총리님도 오실 테니 미리 식사 준비를 좀 해주시오. 참, 그리고 한동안은 예약 룸 근처에 아무도 얼씬 거리지 못하게 해주시고.”

다이스케는 즉시 허리를 숙이곤 몸을 돌렸다.

스쳐 가는 아베의 얼굴은 잔뜩 굳어져 있던 상황.

이제까지의 경험상, 다이스케는 오늘 저들의 모임이 일반적인 사교 수준이 아님을 직감했고, 어쩌면 자신의 식당이 역사에 길이 남을 현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했다.

드륵!

한편, 룸에서 동료 장관들과 함께 총리를 기다리던 아베는 문이 열리자 즉시 몸을 일으켰다.

특유의 미소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총리는 즉시 손짓하며 자리에 착석했고, 곧바로 아베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비서를 통해 보고는 받았소만, 너무 성급한 것 아니오?”

“절대 성급한 것은 아닙니다. 만약 이대로 몇 년 더 시간이 흐른다면 일본 산업계 전체에 위기가 올 테니까요.”

총리도 그 주장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반도체에 이어 배터리 분야까지.

더군다나 일본의 주력산업인 자동차도 최근엔 슬슬 한국 기업들이 넘보고 있으니까.

언제부턴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도 위기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다.

“총리님도 아시다시피 재우그룹이 몇 년 전 인수한 쌍웅 자동차가 북미 시장에서 엄청난 속도로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이 미국에 설립한 전기자동차 회사 역시 조만간엔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예정이라고 하고요. 그 와중에 전고체 배터리라니. 당장 전기차는 둘째 치고, 그걸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차량이 출시된다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도요타의 운명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베는 굳어져 가는 총리의 표정을 보며 말을 보탰다.

슥 하고 총리의 시선이 그를 향해 돌아온다.

“하이브리드야 그렇다 쳐도 전기차는 아직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반쪽짜리 시스템 아닙니까. 그게 내연기관 시장과 경쟁이 되겠습니까?”

“그건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만약 그 전기자동차에 재우가 최근 개발한 전고체 전지가 탑재될 경우, 효율성 면에서 내연기관을 아득히 능가하게 되는데, 그럼 인프라 구축이야 시간문제죠.”

“그렇다고 무역 제재까지는 좀 무리 아닙니까?”

“제가 든 예는 단지 자동차 업계에 국한된 것이지만, 실제 산업계의 피해는 더 심각합니다.”

“…….”

총리는 말없이 그를 쳐다봤다.

마치 그 사례를 전부 대보라는 듯.

잠시 심호흡을 한 아베가 말을 잇는다.

“일단 미스비시를 예로 들면, 작년부터 재우에서 점차 발전용 터빈 시장을 야금야금 빼앗기고 있는 중입니다. 조선분야 역시 한국에게 완전히 주도권을 내줄 상황이고요. 게다가 반도체 분야와 가전은 말할 것도 없죠.”

“흠…….”

총리는 다시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쐐기를 박으려는 듯 아베가 다시 말을 잇는다.

“미스비시 경제연구소의 보고에 의하면 이대로 6년만 지나면 일본이 한국을 앞서는 분야는 기계와 일부 소재. 그리고 화학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소재부분은 역시나 재우라는 기업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고, 화학

분야 역시 상황이 이러면 장담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그러기에 진작 싹을 잘라야…….”

총리는 무심코 말을 뱉어내려다간 다시 입술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는 아베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터.

그는 머쓱한 얼굴로 변명을 늘어놨다.

“당시 내각조사처의 작전 실패는 우리 탓이 아닙니다. 러시아가 중간에 끼어든 탓이죠.”

“됐습니다. 그 사건을 다시 거론해봐야 속만 쓰리지. 그나저나 조치를 취하겠다면, 구체적인 계획은 있는 겁니까?”

그 말에 아베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하고, 그는 곧 진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국이 가진 최대 약점은 공업 분야에 필요한 설비와 일부 소재들입니다. 특히나 산업용 로봇 분야나 공장 설비 분야에선 거의 화낙을 비롯한 우리 일본 업체들에 의존하고 있는 형국이죠. 하니 그 부분을 이용하여

최대한 타격을 가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할수 있다면 금융제재도 가하면 좋을 테고요.”

“로봇과 기계 분야의 대 한국 수출을 막자?”

“그렇습니다.”

“하지만 뭘 근거로요.”

“근거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총리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꺼낸 말은 무력충돌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전처럼 독도를 핑계로 도발하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

“그야 물론이죠. 현재 한국 정권의 성향을 보면 또 도발이 있을 경우 정말로 스마트 포탄을 날려댈지도 모릅니다.”

“쯧. 그놈의 스마트 포탄인지 뭔지…….”

“굳이 그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한국의 군사력 수준자체가 전과는 다르다는 것이 문제죠. 특히나 최근 그들이 개발한 초음속 대함미사일은 우리 이지스함이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하는데, 저도 굳이 위험

부담을 자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베는 말을 뱉어내는 내내 속이 쓰렸다.

그나마 일본이 한국을 압도했던 것이 해군력과 공군력인데, 고작 포탄과 미사일로 인해서 이젠 해군력의 우위를 장담 받을 수 없게 되어버렸으니까.

어디 해군력뿐일까.

최근 한국이 개발에 성공한 KFX의 경우도 F-15J를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평가.

조만간 공군력도 그들에게 밀리는 것은 정설이 되어 버렸고, 더불어 그들의 대공방어망은 은하계를 통틀어 뚫을 존재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 마당에 군사 도발은 무슨.

그랬다가 자칫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날엔 탄도미사일 세례와 더불어 상륙한 한국 육군에게 맥없이 밀려버릴 처지에.

그는 답답함을 떨쳐내려 고개를 털었고, 그때 총리가 거듭 그의 다짐을 받아내려 했다.

“그래서 더더욱 무력도발은 안 된다는 겁니다. 미국이 있는 마당에 설마하니 진짜 전면전이야 벌어지겠냐만, 지금 한국 정부의 성향이……. 아시겠죠?”

“네, 명심하겠습니다.”

총리는 아베의 대답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내 와락 인상을 찌푸린 그가 넋두리처럼 말을 뱉어낸다.

“쯧, 그나저나 한국이 최근 군에 인도한 이지스함이 아예 해상 장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네, 그건 저도 주일미군 장성들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 이지스함 한척의 전력이 우리 3호위대군 절반을 커버하는 것이 가능할 정도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지금 장관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겁니다. 당장이야 한척뿐이지만 곧 9척까지 불어나버리면 그땐 정말 해상전력의 우위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게 되니까.”

아베는 그 말에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곧 쳐다본 총리의 눈은 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명분은 무엇을 내세울 생각입니까.”

“한국이 은밀히 북한에 제재 대상 물품을 지원했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건 또 무슨…….”

총리의 눈이 순간 동그랗게 떠졌다.

뭔가를 준비해 온 듯 가방을 뒤지던 아베는 웃으며 서류 몇 장을 그의 앞에 들이민다.

“이건 한국 무역회사에서 중국을 통해 북한에 제재대상 물품들을 수출한 근거 서류입니다. 특히나 미사일의 주요부품 가공에 필요한 정밀가공기계. 이건 HS85의 전면 위반이죠. 이걸 핑계로 삼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걸 어떻게 입수한 겁니까?”

“입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그 회사의 주인은 우리와 친분 관계가 깊은 인물이니까요.”

“…….”

총리는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히죽 웃어 보인 아베가 어깨를 잔뜩 펴며 말한다.

“한국에는 아직 우리 일본 정부와 친분을 유지하고자 하는 존재들이 꽤 많습니다. 이 회사의 대표 역시 그런 인물 중 하나고, 우린 그동안 은밀히 그에게 자금 지원을 해왔었습니다. 하니, 고작 서류하나 빼 오는 정도가

아니라 사건 자체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죠.”

“사건을 만들다니, 그럼 이자를 통해서 북한에 일부러 제재 물품을 수출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단순히 서류만 조작했다간 필시 한국에서 그걸 알아챌 테니 아예 실제로 수출을 해버리는 편이 낫죠.”

총리는 헛웃음을 뱉어냈다.

아무리 자신이 차기 총리감으로 점찍어 밀고 있는 인물이라지만 어떤 면에선 지나치게 앞뒤 없이 달려드는 측면이 있는 존재랄까.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표정을 짓던 총리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제안에 동의 했다.

“실행하세요. 단, 그 한국 무역업자의 입단속은 철저하게 해야 할 겁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죽으면 죽었지, 우릴 배신할 인물은 아니니까. 게다가 정작 이번 계획이 실행되면 우릴 도울 한국의 언론들도 꽤 많습니다.”

총리도 그 점만큼은 안심이 된다는 듯 호탕한 웃음을 내뱉었다.

언론이라기보다는 돈의 노예들인 존재들.

그들이 쏟아내는 지원사격이야말로 그가 믿을 수 있는 구석이었다.

“저…….”

그때, 내내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내무대신 카에데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곧 자신에게 꽂히는 시선에 잔뜩 주눅이 든 그는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고, 결국 회의가 끝나고 다들 자리를 뜰 때쯤에나 곁에 있던 휘하 각료에게 말을 뱉어냈다.

“자넨 저게 이해가 가나?”

“뭘 말입니까?”

각료는 내무대신이 갑작스레 던진 말에 의문을 표했다.

“경제 제재 말일세. 그건 보통 갑이 을에게 하는 것 아닌가.”

“그렇죠.”

“그런데 우린 표면상 명백히 을이라는 말일세. 그 마당에 우리가 경제 제재를 한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는 거야.”

“…….”

“막말로 화낙의 수출을 막는다면 한국이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인 상황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 우리 외에도 수입처가 존재하니까.”

“그, 그렇죠…….”

“그 마당에 과연 그 경제 제재가 실효성이 있겠냐는 거지.”

“하지만 이미 한국의 공업계는 우리 제품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습관이 무서운 법인데, 이제와서 그 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죠. 게다가 설비가 다원화 되면 공장의 가동 효율도 떨어지고요.”

“내가 말했잖아. 그건 단지 불편한 거지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굳이 감수하겠다고 나서면 불과 몇 년이면 극복할 문제 아닌가. 그럼 그게 제재로서 과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거야.”

“…….”

“더군다나 금융제재도 그래. 아니 우리 은행도 지금 돈을 빌려줄 신용도 높은 기업을 구하기가 힘들어서 난리인 마당에 내각의 말을 듣기나 하겠어?”

“…….”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각료의 인상이 슬슬 찌푸려졌다.

이내 힐끗 앞서가고 있는 총리와 아베 관방장관을 쳐다본 그는 속삭이듯 말한다.

“에이, 설마 아베상이 그걸 몰라서 주장하겠습니까? 설사 그렇다 해도 뭔가 생각이 있겠죠.”

“말 했잖아. 타격이라고 해봐야 저들에겐 돈이 조금 더 많이 들어가는 것 외에 없다고. 정작 타격은 우리가 더 크게 받을지도 모른다는 건 왜 생각을 안 하느냐는 말일세. 그러다 만약 저쪽에서도 맞불을 놓겠다고 나서면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 지금 우리 산업 구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기는 하냐는 말이야.”

“…….”

관료는 그 말에 눈을 끔뻑였다.

이내 와락 인상을 찌푸린 그는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한다.

“그러니까, 지금 아베 상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고요?”

“누가 펌프질을 했는지는 몰라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아니면 당장 제재라는 것에만 눈이 어두워져서 결과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그럼 막아야죠.”

“이 친구야 그랬다가 아베상에게 찍히기라도 하면 어쩌라고. 돌아가는 분위기상 그가 차기 총리가 되는 건 기정사실인 마당에.”

카에데는 그 말을 뱉어내곤 서둘러 아베가 가는 방향을 뒤좇았다.

황당한 듯 그 모습을 쳐다보던 각료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뱉어낸다.

“그럼 차라리 말을 하지 말던지. 젠장, 이거 나도 똥을 밟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

“무슨 말입니까? 화낙이 설비 선적을 거부하다니요.”

난 보고를 받는 즉시 그룹 내 대책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회의실로 향했다.

이미 그룹 내의 주요 인물들은 죄다 자리하고 있는 상태.

눈이 마주친 안 대표가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화낙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막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본 화낙에서 연락이 왔는데, 배터리 공장에 납품할 로봇과 설비들의 선적을 정부에서 전면금지 시켰다는군요.”

“…….”

화낙은 전 세계를 대표하는 가공기계와 자동화 분야. 그리고 산업용 로봇 제조회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우린 공장 증설 과정에서 많은 부분을 그들의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고.

그런데 난데없이 일본 정부에서 납품을 막는다?

왠지 익숙한 패턴이다 싶어 뇌리에서 불꽃이 팍 튀었다.

“이유가 뭐죠? 일본 정부에서 선적을 막는 이유 말입니다.”

그 말에 안 대표가 갑자기 TV를 향해 걸어갔다.

곧 전원을 켠 그는 뉴스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했다.

[오늘 아침, 일본 정부는 한국의 대 북한 반입금지 물품들의 불법수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일본 내각은 불법수출 품목들 대부분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출된 것을 빼돌린 것이라 주장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약속대로 의혹이 해소되기 전까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제재는 단순히 수출제한 으로 국한 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일본은행들의 저금리를 이용하고 있는 한국기업들의 차입금 조달도

막겠다는…….]

역시나 이건 회귀 전 있었던 일본의 경제 제재 건과 빼박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반도체 소재가 아닌 설비분야를 노렸다는 것.

하긴, 이 시대의 반도체 공정이야 그렇듯 고순도 애칭가스가 필요한 것은 아니기에 그 부분을 건드릴 이유는 없겠지.

난 즉시, 생각을 떨쳐낸 채 각 계열사의 대표들을 향해 지시했다.

“각 계열사별로 증설 중인 공장에 대한 설비 상황에 대해 보고하세요. 그리고 진현철 부회장님께선 지금 즉시 지멘스에 연락해서 대외 수출 담당자를 보내달라고 하시고요.”

“지멘스는 왜…….”

현철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건 쉽게 끝날 일이 아닙니다. 하니 돈이 더 들더라도 설비 확보부터 해야 할 겁니다. 앞으로 화낙에 의존하던 재우의 설비들은 전부 지멘스에서 공급을 받을 테니 업무협약 준비를 하고 들어오라고 하시면 회신이 빠를

겁니다.”

“…….”

그 말에 모든 대표들이 눈을 끔뻑였다.

내가 그 심정을 왜 모를까.

우리가 화낙의 제품을 쓰고 있는 것은 성능도 성능이지만 가격과 공급. 그리고 후속 조치들의 원활함 때문인데, 지금 내 말은 그걸 다 뒤집어엎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마당에.

하지만, 경험상 이 결정이 당분간 뒤집어질 일은 없다.

그럼 당연히 조치는 빠른 것이 좋고.

“새로 증설하거나 건설하는 곳은 그렇다 쳐도, 기존 설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어쩌려고?”

“기존 설비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 문제는 기존 설비들이 문제를 일으킬 때까지 지속 되지는 않게 만들 생각이니까.”

“…….”

현철은 그 말에 눈을 끔뻑였다.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만약 장기전이 된다면……. 그땐 어쩔 수 없죠. 문제가 발생하는 설비들은 전부 교체하는 수밖에.”

“그랬다간 돈이 대체…….”

“물론 당분간은 출혈이 크겠죠. 어쩌면 수조에 달할 정도로.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까지 되면 어차피 그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하니 그것에 얽매여 더 시간과 돈을 허비하기 보다는 빠른 체계 전환이 낫습니다.”

“…….”

중역들은 그 말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하긴, 나조차도 그런 일은 상상하기 싫은 마당에.

결국 그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으려면 이 일은 최단기간 내에 끝을 봐야 한다.

“아무튼, 당분간 비상 체제임을 명심하세요. 참, 지멘스로 공급처를 돌릴 경우엔 삼정에서 인수받은 배터리 공장 증설이 얼마나 지체될 것 같습니까?”

“대략 5개월 정도는 지체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그것도 지멘스가 워낙 생산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럼 재우 상용차는요?”

“거긴 상관없을 듯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배터리에 이어 자동차 공장까지 영향을 받았다면 그야말로 꼭지가 돌아 버렸을지도 모르니까.

그나저나 저들이 굳이 자충수를 두겠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이 회장님?”

난 즉시 회의장을 나와 이영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쪽도 비상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인 듯 수화기 너머에선 소란스러움이 전해져 온다.

-혹시 정부에서 별 말 못 들으셨습니까? 워낙 갑작스러운 소식이라서 지금 우리 전략 기획실에서도 당황한 상태입니다.

“역시나 그쪽도 문제는 있군요. 아무튼 우리 좀 만나죠.”

-지금요?

“네, 이번 일은 아무래도 우리가 힘을 좀 모아야 할 것 같거든요.”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