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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34화 (13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34화

스윽.

하사드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줬다.

쯧, 정작 판을 깔아줘도 주워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난 속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장관님을 대신해서 정부의 입장을 전달해 드리죠. 일단 우리 정부는 안정적인 원유수급을 위해 사우디에서 좀 도와주었으면 합니다.]

[형제가 어려움에 처한 것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것은 말이 안 되죠.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하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만, 문제는 수급 가격입니다.]

[아! 확실히 그 문제는 좀 난제군요. 그동안 이란이 한국에 공급하던 가격이 우리가 푸는 가격대와는 차이가 커서.]

하사드는 잠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얼핏 쳐다본 이훈재 장관은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상태.

하긴, 따지고 보면 나보다 똥줄이 타는 것은 그였을 테니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다.

[가능하다면 이란에서 수급하던 수준으로 공급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시 시선을 하사드에게 주곤 넌지시 말했다.

시선이 일제히 그를 향해 쏟아지고, 하사드는 너털웃음을 내뱉으며 대답한다.

[그렇게 합시다. 우리와 재우. 아니 한국이 그동안 쌓아온 것이 얼만데, 청을 외면할 수는 없죠.]

“오오!”

순간 외교부 직원들의 입에선 나지막한 탄성이 뱉어졌다.

하지만 아직 협상이 끝난 것은 아닌 상황.

난 즉시 두 번째 핵심을 내뱉었다.

[그럼 향후 가격인상폭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하사드는 마치 그 말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테이블에 올려두었던 서류를 집어 들었다.

곧 한참을 그걸 검토하던 그는 옅은 미소와 함께 운을 띄운다.

[앞으로 원유가격 상승폭이 커질 거라는 점은 진 회장도 잘 알고 계시겠죠?]

향후 원유가격의 상승이 기하급수적일 거라는 사실이야 사실 그보다는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듯 애를 쓰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협상을 하는 상황에서 그걸 티낼 수는 없을 터.

난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고, 정작 하사드 역시 딱히 답을 듣기 위해 한 질문은 아니었다는 듯 다시 서류에 시선을 줬다.

[좋습니다, 앞으로 10년간은 이란이 판매한 수준의 금액으로 공급해 드리도록 하죠. 혹시라도 원유가가 상승한다 해도 한국에 공급하는 물량은 한해 10% 이상은 가격을 조정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난 그 말에 깜짝 놀랐다.

내년부터 대략 평균 30% 이상씩 원유가가 인상되는 것이 역사.

그 와중에 인상분을 10%로 고정한다면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엄청난 원유가격 안정을 보장받는 것이 아닌가.

[진심입니까? 그렇다가 국제 원유가격의 상승 추이가 가팔라지면 어쩌시려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그러자 툭 하고 내 어깨를 건드린 하사드는 이번에도 형제를 운운하며 긍정을 표했다.

[말했잖습니까. 어려움에 처할 때 돕는 것이 진정한 형제라고. 단,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점은 우린 한국이 중동에서 수급하는 물량의 70%만 감당할 거라는 사실입니다.]

아마 그건 하사드도 리스크를 최소화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거다.

아무리 형제를 운운해도 장사는 장사.

손해 폭이 커지면 그로서도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실망할 일도 아니다.

우리에겐 아직 UAE라는 또 다른 공급가능한 원유생산국이 있고, 나머지 30%의 중동수급분이야 충분히 그곳에서 조달하는 것이 가능하니까.

아니, 수급의 다변화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그 편이 나은 편이기에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나머지 30%는 아마 UAE가 해결을 해 줄 겁니다. 사전에 모하메드 왕자와 협의 한 것이 있으니 조건 역시 우리와 비슷할 테고. 쉽게 말해서 한국의 원유수급문제는 이제 걱정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하사드는 마치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이보다 고마울 때가 있을까.

난 즉시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내 손을 굳게 맞잡은 채 호탕한 웃음을 뱉어냈다.

[하하, 자, 그럼 이제 골치 아픈 대화는 이것으로 끝내고 우리의 사업 이야기나 좀 더 해볼까요?]

그 말에 웃으며 이훈재 장관을 쳐다봤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이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또 있을까.

스스로도 그걸 느낀 듯 이훈재 장관은 한껏 자괴감에 빠진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응?’

한데 그때 익숙한 인물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빈 할만 왕자.

세월이 어느덧 이렇게나 많이 흐른 걸까, 전엔 소년에 불과했던 빈 할만은 어느새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

******

똑똑!

늦은 밤, 누군가 내 방의 방문을 두드렸다.

지키고 있을 경호원들이 침묵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내가 안심해도 괜찮은 존재라는 의미일 터.

혹시 이훈재 장관이 아닐까 싶은 마음에 슬쩍 문에 난 구멍을 통해 외부를 살폈지만 정작 문 앞에 서 있는 인물은 빈 할만 왕자였다.

[왕자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난 즉시 문을 열고 그를 맞았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던 그는 불쑥 그걸 내게 들이밀며 웃어 보인다.

[혹시 생각나실까봐 가져왔습니다.]

그가 내민 것은 캔 맥주였다.

아랍 국가들에게는 금기시 되어 있는 것.

당황한 눈초리로 쳐다보자 할만 왕자가 다시 웃어 보인다.

[손님들에게 이 나라의 율법을 따르라고 하는 건 가혹한 처사지요. 그리고 어차피 외국인들을 상대로 맥주 정도는 판매하고 있으니 문제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확실히 예사롭지 않았다.

차후 제 사촌을 몰아내고 이 나라의 왕세제가 될 운명을 가진 청년.

왠지 묘한 기분이 들어 절로 표정이 어색해졌다.

[제가 애써 준비해 온 건데, 안 드실 겁니까?]

[그럴 리가요. 한데 저를 갑자기 찾아오신 이유가…….]

[그냥 대화를 좀 나누고 싶었습니다.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비롯해서 아랍 국가들의 운명에 대해서. 제가 아는 사람들 중 진현승 회장님이야말로 가장 미래에 정통한 분이 아닌가 싶어서요.]

난 그 말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작 스무 살에 불과한 존재가 하는 말 치고는 왠지 깊이가 있어보였거든.

마침 나 역시 잠도 오지 않는 터라 그를 상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갔고, 어느새 우리의 대화는 새벽 2시가 다 되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역시 진 회장님은 남들과는 많은 부분에서 다른 분이시군요. 청하건데, 앞으로 저를, 아니 사우디를 좀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뱉어낸 그의 말은 왠지 의미심장했다.

마치 자신이 향후 뭘 할지를 예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순간 등줄기에 쫙 소름이 돋았지만 난 애써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탁!

그가 방을 나서고 난 이후 한동안은 머릿속이 멍했다.

어차피 그가 왕세제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운명이라도 설마 그 시간마저 단축 되는 것은 아니겠지? 싶은 마음에서.

하긴, 그건 괜한 걱정일 거다.

막말로 이제 스무 살에 불과한 자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렇다 해도, 이 나라의 왕세제가 뒤바뀌는 역사적 사건의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은 아무리 봐도 크다는 말이지…….’

******

며칠 후, 2차 목적지인 UAE에서의 일정도 수월하게 끝이 났다.

이미 하사드와 모하메드 사이에서 사전 협의가 끝나 있었던 덕분.

우리가 한 일이라고는 미리 준비된 서류에 사인을 남기는 것뿐이었고, 이후 꼬박 하루 동안은 펀드 운용 확대에 대한 조율과 여타 UAE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토론이 전부였다.

식량 자급과 해수 담수화 프로젝트 같은.

[그럼 조만간 다시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하겠습니다. 아시겠지만 담수화 프로젝트는 우리로선 꽤 중요한 일임을 기억해 주십시오.]

모하메드는 우리가 UAE에 있는 내내 온전히 나와의 대화에만 집중했다.

그곳에서도 끝내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어버린 이훈재 장관의 얼굴에선 이제 자존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형국.

다시 한국행 전세기에 오를 무렵엔 결국 내게 다가와 사죄의 인사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 진 회장님. 공항에서의 일은 조금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워낙 중차대한 문제였던 터라 제가 지나치게 민감했었나 봅니다.”

그는 차마 내 대꾸를 듣기도 전에 다시 몸을 돌렸다.

자존심을 챙기겠다는 의도보다는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몰랐던 거지.

굳이 말을 섞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나 역시 어색한 웃음으로 넘기고 말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후 도착한 인천 공항엔 수많은 환영인파가 몰려들어 있었다.

소식을 들은 기자들부터 시작해서 정부 관료들까지.

특히나 눈에 뜨인 인물은 대통령비서실장이었는데, 늘 대통령의 곁에 있어야 할 인물이 우릴 맞는 다는 것은 좀 의외였던 터라 즉시 그를 향해 다가갔다.

“비서실장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 대통령님께서 직접 마중 나오시지 못하는 상황이니 저라도 나와야죠. 그나저나 소식은 들었습니다.”

비서실장은 한껏 낮은 목소리로 말을 내뱉으며 힐끗 저편을 향해 시선을 줬다.

함께 마중 나온 외교부 직원들과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이훈재 장관이 있는 방향.

뭣 때문에 이훈재가 저렇듯 심각한지는 몰라도 비서실장이 들었다는 소식이 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공항에서의 일이 벌써 실장님 귀에까지 들어간 겁니까?”

“저야 듣는 귀가 항상 열려있으니까요. 아무튼 그 문제는 정부를 대신해서 제가 사과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조만간 외교부에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있을 예정인데, 그게 위로가 되실 지도 모르겠군요.”

“위로라니요?”

“이번 인사 개편엔 장관 자리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진 회장님에게는 위로나 마찬가지죠.”

“장관이 또 갈린다는 말입니까? 아니 개각이 이루어진지 얼마나 됐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불과 6개월 만의 장관교체라니.

단순히 나와의 충돌 때문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뭔가 따로 이유가 있는 느낌이다.

예를 들면 현 정권이 여당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될 만한 사고가 터졌다거나.

아니나 다를까, 비서실장이 곧바로 말을 잇는다.

“국가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인물들을 그냥 둘 수는 없죠. 실은 진 회장님이 사우디에 계시는 동안 국내에서 제법 큰 소란이 있었습니다.”

“…….”

“이탈리아 공관에서 또 성추문 사고가 났습니다. 그 탓에 지금 국가 이미지가 엉망이 되어 버렸죠. 마침 해당 공관 직원의 경우 이훈재 장관이 직접 꽂은 인물인 터라 함께 경질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 정도 사고라면 당연히 장관도 위태롭기는 했다.

특히나 그가 직접 꽂은 인물이 낸 사고라면 더더욱.

정부로서도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으니 이번 기회에 날려버리자는 의도 같은데, 현실을 생각하면 그편이 나을 거다.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나저나 직접 마중 나오신 것을 보면 혹시 제가 청와대에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능력 없는 장관이 날아가게 생긴 것은 다행이지만, 왠지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오랜 비행으로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상황.

이 컨디션으로 청와대까지 들어가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다.

“아니요,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 청와대엔 다른 손님이 와 계시기도 하고요.”

“손님이요?”

“아! 지금 미국 대사를 만나고 계십니다.”

무얼 이유로 한 만남인지는 굳이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갔다.

미국의 조치로 인해 동결된 석유대금의 지불 문제.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 된 마당이면 당연히 이란은 그걸 요구했을 것이고, 난감해진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을 설득할 수밖엔 없었을 거다.

하지만 과연 그게 그리 쉬울까.

내가 회귀하기 전까지도 해결하지 못했었던 문제였던 마당에.

아마 그 문제는 두고두고 정부의 골칫거리가 될 거다.

“정부도 꽤 골치가 아프겠군요.”

생각 끝에 무심코 말을 뱉어냈다.

순간 눈이 반짝인 비서실장은 나를 빤히 쳐다봤고, 난 별것 아니었다는 투로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이 시점에 미국 대사와 할 이야기라는 것이 동결된 이란의 석유대금 문제밖에는 더 있겠습니까. 하지만 미국이 그걸 허락할 리가 없으니 당연히 골치가 아플 수밖에요.”

“허허, 마치 현장에 계셨던 분 같이 말하시는군요.”

비서실장은 여전히 반짝이는 눈으로 대꾸했다.

계속 대화를 이어가다간 자칫 내게 해법이라도 제시해 달라 그럴 표정.

즉시 피로감을 핑계 대며 귀가를 서두르려는데, 예상처럼 그가 툭 말을 던진다.

“진 회장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자금 동결을 해결할 뾰족한 수가 있을 까요?”

“아니요, 없습니다. 미국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은.”

듣는 입장에서야 아쉽겠지만, 그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역사와는 달리 첫 제재부터 강경 일변도로 나오는 미국.

그 탓에 우리와 일본이 누렸던 쿼터 제도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 허용되었던 외환 거래도 전면 금지된 상황에서 뾰족한 방법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말 그대로 미국의 마음을 돌리는 수밖엔.

‘하지만 그건 내 선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적어도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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