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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33화 (133/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33화

[아메리카 에어라인 708기에 탑승하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즉시…….]

며칠 후, 나와 안시현 대표는 공항에 도착했다.

1차 목적지는 사우디.

워낙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는 터라 실무단의 숫자는 무려 30명에 육박했고, 그 탓에 정부는 전세기를 동원한 상황이었다.

“자자, 다들 모이셨습니까?”

이번 방문단을 총지휘하는 인물은 외교부 장관 이훈재였다.

최근 있었던 개각을 통해 장관 자리를 차지한 인물이었는데, 사실 역사적으로는 이훈재라는 존재가 외교부 장관에 오른 적은 없기에 당시 나로선 그의 입각이 꽤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었다.

다른 걸 떠나서 이제는 역사의 변화를 예측하기가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니까.

“설마 이제 도착하신 겁니까?”

뒤늦게 나를 발견한 이훈재 장관의 말투에선 왠지 가시가 돋쳐 있는 느낌이었다.

뭐랄까, 감히 장관을 기다리게 만든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

그 탓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시계를 쳐다봤지만 늦기는커녕 우린 약속보다 무려 30분이나 앞서 도착한 상태였다.

“저 인간이 지금…….”

안 대표는 돌아서 멀어져 가는 장관을 향해 불만을 표하며 나섰다.

그 역시 한때는 장관급 공무원이었던 마당에 이유도 없이 타박을 들었으니 분할 수밖에.

하지만 난 즉시 손을 들어 그를 만류했고, 결국 안 대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울분을 토했다.

“저 인간 지금 꼴에 장관이라고 대접받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냥 상관하지 마세요. 어딜 가나 저런 부류들은 꼭 하나씩 있는 법이니까. 더군다나 지금은 잔뜩 자존심이 상해 있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막말로 민간인인 우리가 이번 협상을 주도하게 된 상황이니까.”

“그럼 더더욱 회장님에게 미안해해야죠. 자신들이 능력이 안 돼서 우릴 끌고 가는 주제에 저건 아니지 않습니까.”

안 대표의 마지막 말은 한껏 톤이 올라가 있었다.

마치 그 말을 듣기라도 하라는 듯.

아니나 다를까, 앞서가던 이훈재 장관의 걸음이 잠시 멈칫 하나 싶더니 힐끗 우리 쪽을 쳐다본다.

“자자, 일단 VIP 라운지에서 목이나 축이시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외교부 직원 하나가 서둘러 장관을 이끈다.

잔뜩 얼굴은 붉어져 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말은 뱉어내지 못하는 이훈재 장관.

그건 폐부를 찌른 상대가 하필 국정원장 출신이라는 것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이었을 거다.

“안 대표님도 이젠 흥분 좀 가라앉히시죠.”

난 여전히 흥분해 있는 안 대표를 다독이곤 앞서갔다.

솔직히 나라고 장관의 의도를 모를까.

단지 그의 철없는 행동에 장단을 맞춰주다 보면 내가 피곤해지기에 가만히 있는 것뿐이지.

그나저나 한 나라의 외교부를 책임지는 장관이라는 자가 고작 저렇듯 사리 분별을 못 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이러니 해외주제 외교관들의 기강이 해이해지는 거고, 매번 같은 외교적 참사가 발생해도 대처를 못 하는 거지.

자국민 보호는 고사하고 현지인들을 성희롱이나 해서 국가적인 망신을 사는 지경.

막상 그 생각을 하면 이 시대의 외교부는 정말 총체적 난국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꼭 우리가 나서야 하는 겁니까?”

나와 발걸음을 맞추던 안 대표는 다시 불만을 토로했다.

잠시 걸음을 멈춘 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게 안 대표님이 하실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

“…….”

“그래도 안 대표님은 한때 이 나라 정보부의 수장이셨잖습니까.”

“그야 그랬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지금 참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이훈재 장관의 독단적인 태도에서 발생한 것이지 정부 입장은 아니니까. 그리고 난 기왕 빚을 지어줄 거면 확실하게 지어주자는 주의입니다. 그래야 차후

우리가 정부에게 내세울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기왕이면 제대로 대접 좀 받아 가면서 일해도 되지 않습니까.”

“아니요, 난 이훈재 장관 같은 사람에게 받는 허울만 좋은 대접은 필요 없습니다. 정말 대접이 어떤 건지는 곧 알게 되실 테니 너무 실망하실 것도 없고요.”

“…….”

안 대표는 그게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는 듯 나를 쳐다봤다.

웃으며 그의 등을 툭 건드린 순간, 앞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라는 거야? VIP 라운지에 들어갈 수가 없다니.”

소리의 주인공은 이훈재 장관이었다.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자 장관이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듯한 사내에게 뭔가를 항의하고 있었고, 그의 앞에서 있던 직원은 마치 고양이 앞의 쥐 마냥 서 있었다.

“죄송합니다, 장관님. 지금 VIP 대기실이 공사 중인 관계로 이용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잖아. 어제까지 멀쩡하던 VIP 라운지가 왜 갑자기 공사한다는 거냐고.”

장관의 고성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생각이라는 것이 전혀 없는 인물 같달까.

난 즉시 그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만하시죠. 보는 눈이 많습니다.”

“…….”

장관은 그 말에 힐끗 나를 쳐다봤다.

뚜렷한 경계의 눈빛.

뭣 때문에 나를 그렇게까지 경계하는 건지는 몰라도 굳이 상관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면 제가 발길을 돌려서 회사로 되돌아갈까요?”

“…….”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장관님의 행동에 동조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함께 신문에 얼굴이 나오는 것은 피하고 싶습니다. 특히나 재우의 이미지에 먹칠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 말에 장관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몹시도 자존심이 상한 듯한데, 미안하게도 난 기왕 자존심을 무너트릴 거면 확실하게 무너트려 버리자는 주의다.

“뭐 하는 겁니까?”

장관은 전화기를 꺼내는 나를 보며 되물었다.

뭘 하긴 뭘 하겠어.

당신의 그 꼰대 같은 짓거리를 더는 못 보겠으니 돌아가겠다는 거지.

“아무래도 전 발길을 돌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 마당에 최소한 청와대엔 사정 설명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와락!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다고 만류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표정.

나 역시 그냥 뱉어낸 말은 아니었기에 즉시 통화버튼을 눌렀고, 그 순간 장관의 표정이 확 바뀌며 덥석 내 손을 붙잡았다.

“됐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어서 전세기에나 오릅시다.”

비록 물러서긴 했지만, 여전히 불만이 서린 태도였다.

돌아서 게이트로 향하는 걸음걸이 역시 여전히 당당하기만 하고.

좀처럼 종잡을 수 없는 그의 태도가 의아하여 한참이나 쳐다보던 순간, 안 대표가 슬쩍 다가와 말한다.

“저 인간 지금 청와대가 무서워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장관이 청와대가 무섭지 않다니요.”

“현 정권에서 대통령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장관에 오른 자가 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저 이훈재 장관입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여당의 차기 대권 주자이자 당 대표와 밀접한 인물이라더군요. 그래선지 대통령님도

어지간한 일로는 터치하지 않는 상황이랍니다. 솔직히 현 정권이 불안 불안하지 않습니까. 그 마당에 여당까지 등을 돌리면 더 골치가 아프니까 청와대로서도 어쩔 수가 없는 거죠.”

어쩐지 믿는 구석이 있는 태도다 싶더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뭐 한마디로 저무는 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지.

한데 여당의 차기 대권 주자라면 이필용 당 대표를 말하는 건가?

역시 역사와는 달리 최근 여당의 대권 주자로 급부상한,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인물.

사실이라면 정부도 참 걱정이 많지 않을까 싶다.

유력 대권 주자의 주변 인물이 고작 저 정도면 정권을 이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힘들 테니까.

“쯧쯧…….”

******

빰빠빠밤!

도착한 사우디 공항에는 하사드 왕 세제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마치 국빈이라도 방문한 듯 군악대마저 동원한 상태.

그 모습에 놀란 이훈재 장관은 계단을 내리는 내내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고, 하사드를 발견한 순간엔 거의 넋을 내려놨다 싶을 정도로 주춤했다.

[환영합니다.]

장관에게 다가간 하사드는 불쑥 손을 내밀었다.

마치 왕을 알현한 내시처럼 한껏 저자세로 그 손을 맞잡은 이훈재 장관은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막상 하사드는 곧바로 그를 뒤로한 채 나를 향해 걸어왔다.

덥썩!

격하게 나를 끌어안는 하사드의 모습에 이훈재 장관이 다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속으로 한껏 비웃음을 뱉어낸 난 곧바로 하사드의 등을 두드렸고, 이훈재 장관의 얼굴엔 곧바로 뜨악하는 표정이 지어졌다.

마치 한 나라의 국왕이 될 인물을 어떻게 그런 태도로 대할 수가 있느냐는 듯.

[이게 얼마 만입니까, 형제여!]

하지만 정작 하사드는 내 행동을 상관하지 않은 채 여전히 과한 환영인사를 내뱉었다.

그 덕에 외교부 직원들의 눈도 한껏 치켜떠진 상태.

이제야 재우의 위상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는 중일 거다.

[직접 마중을 나와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당연할 일을 가지고 감사는요. 진 회장과 안 대표님은 굳이 외교부와 함께 가실 것 없이 그냥 제 차로 가시죠.]

[그럼 외교부는…….]

[외교부는 외교부가 맞아야죠. 난 엄연히 내 형제를 맞이하러 나온 겁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힐끗 이훈재 장관을 쳐다봤다.

꽤 복잡 미묘한 표정이 스쳐 간다 싶은 그를 향해 사우디 외교부 장관이 다가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피식.

“대접이 장난 아닌데요?”

안 대표는 앞서가던 나에게 바짝 달라붙으며 속삭였다.

슬쩍 그를 향해 시선을 주곤 조용히 말했다.

“내가 말했지 않습니까. 난 허울 좋은 대접 따위는 사양한다고. 이런 것이 진짜 대접이죠.”

“…….”

*******

[하하하!]

하사드는 이번에도 왕궁이 아닌 자신의 거처에서 연회를 열었다.

무려 30여 명이나 되는 외교부 직원들이 먹고 마셔도 끝이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음식들.

난생처음 거한 대접을 받아보는 외교부 직원들의 시선은 내내 나와 하사드에게만 꽂혀 있었다.

[그거 압니까? 지금까지 진 회장이 운용한 펀드의 수익률이 무려 600%를 넘기고 있다는 것.]

내게 음료가 담긴 잔을 건네던 하사드는 불현듯 미래 펀드의 수익률을 거론했다.

숫자가 주는 압박감 때문일까, 그 말을 들은 외교부 직원들이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 정도쯤 되었죠. 하지만 아직 수익을 실현하기엔 이르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그야 물론입니다. 지금껏 진 회장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본 적은 없으니 당연히 따라야죠.]

[잘 생각하셨습니다. 만약 그대로 둔다면 3년 안에 최소한 1000% 이상의 수익률은 보장이 될 테니 당분간은 저를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순간, 저편에 앉아 있던 이훈재 장관이 눈을 부릅떴다.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놓은 것은 이미 오래전.

속으로 헛웃음을 뱉어내고 있는 차에 하사드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우리 국부펀드가 추가 투자를 좀 하려고 하는데, 의견을 듣고 싶군요. 아마 금액은 대략 500억 달러쯤 될 겁니다]

그 말에 이훈재 장관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하지만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걸까,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재빨리 시선을 피한다.

[추가 투자는 상관없지만, 오늘은 그 문제로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아! 그렇죠. 말이 나왔으니 하는 건데, 안 그래도 한국의 원유 수급 문제로 UAE와 상의를 좀 해둔 터였습니다.]

나와 이훈재 장관의 시선이 동시에 하사드를 향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 듯 빙긋이 미소를 지어 보인 하사드는 이내 곁에 서 있던 사내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곧 사내가 그의 손에 봉투 하나를 쥐여 줬다.

[이건 최근 10년간 한국과 이란이 거래해왔던 원유 물량과 가격을 산출한 겁니다. 분석 결과 확실히 가격변동이 심하지는 않았더군요.]

[그동안은 이란과의 관계가 꽤 좋았으니까요.]

하사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가만히 서류들을 들여다보던 그는 탁하고 다시 그걸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글쎄요, 그 문제는 저기 계신 장관님과 협의를 하시는 편이 옳지 않을까 싶은데요.]

난 슬쩍 대화의 주체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아무리 꼴 보기가 싫어도 타국의 왕 세제 앞에서 한 국가의 장관이 무시되는 것은 피해야 하니까.

의미를 이해한 듯 하사드는 곧장 이훈재 장관을 쳐다봤고, 이 장관은 눈을 끔뻑이며 말을 버벅거렸다.

[그, 그 부분은 두 분이 대화를 나누시는 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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