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32화
[대한민국이 최초로 자력 개발한 4.5세대 전투기가 드디어 하늘을 날았습니다.]
다음 날, 대부분의 뉴스가 시제기의 기동시험을 화두로 삼았다.
단지 TV만이 아니라 이젠 온라인상으로도 온갖 정보가 오가는 시대.
덕분에 대중들의 반응은 댓글을 통해 전보다 확실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F22 빼박인데?
↳아니, 꽁무니가 F22보다는 더 우주적임. 난 성능은 몰라도 디자인 면에선 우리 것이 더 낫다고 보는데?
-전투기가 디자인이 중요하냐? 성능이 중요하지. 그나저나 4.5세대가 뭔지 설명해주실 분.
↳스텔스기로 가기 직전의 단계를 뜻하는 것 아닐까?
↳그럼 우리가 개발한 것도 F22처럼 진화하는 것인가? 배치2에서는 그렇게 간다는 말이 있던데?
↳개발 계획상으로는 그렇다고 함. 그런데 우리가 개발한 전투기가 5세대가 되면 F22를 처발라 버린다는 소문도…….
↳미쳤냐? F22야말로 우주인을 고문한 결과물인데, 그걸 무슨 수로 처발라.
막상 댓글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기분이 새로웠다.
이제야 잃어버렸던 문물을 되찾은 기분?
한동안 그렇게 정신없이 댓글에만 몰두하고 있던 와중, 김 비서가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 노키드 마틴의 젝 커슨 CEO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잭과의 통화는 내가 먼저 요청했었던 것이었다.
어제 대통령으로부터 노키드와의 계약 사항에 대해 변경이 가능하다면 로우급 전투기 개발을 서두르는 것에 동의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상황.
그럼 굳이 일을 미룰 필요는 없지 않던가.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저도 이제 회의가 끝이 난 터라서 회신이 늦었군요.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드려서 제가 죄송할 따름이죠.]
잭의 목소리에선 그가 얼마나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절절하게 느껴졌다.
역시나 대표라는 직책은 거저먹는 것이 아니라니까.
난 절로 느껴지는 동질감을 억누르며 그에게 용건을 전했다.
[실은 T-50을 기반으로 한 경공격기 개발문제로 상의할 것이 좀 있어서 통화를 요청했습니다.]
-…….
수화기 너머에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하는지를 이미 눈치챘다는 의미.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투가 조금은 조심스러워졌다.
-벌써 그 문제가 대두된 겁니까?
[‘벌써’는 아니죠. 우리 공군 전력의 현 상황을 생각하면.]
-하긴, 애초 T-50의 개발 배경 자체를 생각하면 그도 그렇군요. 하면 조만간 저희도 실무진을 꾸려서 보내겠습니다.
잭은 은근슬쩍 대화를 회피하려 했다.
그 의도를 내가 모를까.
난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던졌다.
[이 문제는 실무진들보다는 우리끼리 해결을 해야 할 상황 같습니다만]
-…….
그는 다시 침묵했다.
퇴근을 포기한 걸까, 잠시 수화기 너머에서 그가 비서에게 물을 부탁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조금 후 다시 내 이름을 부른다.
-진 회장님. 솔직히 말하자면 회장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려는 건지는 익히 짐작하고 있습니다.
[…….]
-이미 F-16이 개량을 진행하고 있으니 계약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이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계약대로라면 F-16의 성능에만 못 미치면 문제가 없으니 굳이 이전에 합의했던 스펙을 따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건…….
그는 말을 뱉어내려다간 다시 집어삼켰다.
아무리 반박하려 해도 딱히 할 말이 없는 거지.
그렇다고 정작 FA-50의 스펙을 재조정했다간 차후 자칫 그게 F-16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아마 지금쯤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을 거다.
[뭘 걱정하시는지는 알겠는데, 제가 한 가지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드리죠.]
난 그 시점에 슬쩍 운을 띄웠다.
호기심이 돋은 듯 잭의 숨소리가 꽤 거칠어졌고, 난 다시 말을 이었다.
[T-50이 기존보다 나은 스펙으로 개발이 된다 해도 F-16의 시장을 잠식할 수는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하죠? 솔직히 가격 적인 측면에서 T-50의 경공격기 버전이 F-16보다 유리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역시나 그게 걱정거리였던 듯 재깍 반응이 왔다.
속으로 웃음을 뱉어내곤 다시 말했다.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확실히 유리하죠. 하지만 T-50의 경공격기 버전이 아무리 스펙을 높인다 해도 결국엔 F-16 개량형과 성능이 동등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태생 자체에서 오는 한계 때문에라도 그렇죠.]
-…….
잭은 침묵을 유지했다.
비록 현실이 그렇다 해도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는 거지.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도 틀린 생각은 아니다.
역사와는 달리 이제 개발될 FA-50-의 경우는 그 스펙이 로우급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니까.
하지만 앞서 말했듯 태생적인 것에서 오는 불리함은 극복할 수 없는 것.
예를 들면 부족한 항속거리라던가.
때문에, 결국 F-16과 대등한 싸움은 불가능할 것이고, 노키드로서도 그 점은 잘 알고 있을 거다.
-후우…….
잭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갈등하는 모양새.
하면 이쯤에서 쐐기를 박아줄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염두에 두셔야 할 점은 전 지금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통보를 하는 중이라는 겁니다. 계약서상의 조항대로라면 T-50 기반의 경공격기 기체수준이 F-16의 수준만 넘지 않으면 그뿐이니 그렇게 하겠다는.]
-…….
그는 다시 침묵했다.
하긴, 계약 내용을 근거로 하는 말에 딱히 반박할 말이 뭐가 있을까.
더군다나 이미 노키드와 재우는 한번 갈등을 봉합한 전례가 있는 터라서 무작정 억지를 부리기도 어려울 상황.
아마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해도 무리는 아닐 거다.
-딱히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설사 T-50 기반의 경공격기가 수출된다 해도 틈새시장에 불과할 텐데, 그것 때문에 재우와의 관계를 깰 수는 없죠. 좋습니다, 내일 아침 바로 회의에 안건을 올리겠습니다.
대답은 역시나 ‘예스’였다.
이후 조만간 실무진을 파견하는 것에 합의한 우린 잠시간 있었던 의견충돌을 해소하고자 화제를 가벼운 것으로 돌렸고, 그 탓에 통화는 예상 밖으로 길어졌다.
-참, 혹시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미국이 조만간 이란에 대해 제재를 시작할 수도 있답니다.
한참 이어지던 가벼운 주제와는 다른 말이었던 터라 난 잠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그걸 놀란 것이라 생각한 듯.
아니 놀란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잭은 마치 세상에 다시 없을 비밀을 전한다는 것처럼 흥분하며 말을 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제재가 시작될지는 아직 논의 중인 것 같은데, 결국 제재를 시작하는 것은 확정된 것 같습니다.
[혹시 핵 개발 때문입니까?]
난 즉시 되물었다.
-그렇다고 봐야죠. 들려온 말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최근 이란의 핵 개발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를 잡았답니다.
[구체적인 증거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그야 저도 모르죠.
순간 머릿속에서 온갖 상상을 떠올려봤다.
은밀히 숨겨 놓은 원심분리 시설들이 들통난 걸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아니 그렇다 해도 이건 역사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지 않던가.
그때, 잭이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당장 이라크 전쟁도 아직 채 수습을 못 하는 미국이 이란을 군사적으로 응징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입니다.
[그야 당연하겠죠. 지금 또 한 번의 전쟁을 벌였다간 미국 정부도 여론을 감당하기 힘들 테니까. 하면 경제 제재를 할 거란 소린데, 구체적으로 어떤 제재를 가한다는 겁니까?]
이제까지와는 달리 통화를 하는 자세가 절로 되잡아 졌다.
그만큼 쉽게 넘길 수가 없는 화제가 아니었기에.
속으로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하는 심정으로 뒤이어 나올 말을 기다리는데, 곧바로 내 바람을 무너트리는 말이 들려온다.
-아마 동맹국들을 상대로 이란의 원유 교역을 전면 금지시킬 것 같습니다.
[…….]
******
똑똑!
“회장님, 국정원장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며칠 후, 난 국정원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그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은 미국의 이란 제재에 관한 소식.
단순히 전화로는 할 말이 아니었던 터라 난 만남을 요구했고, 오늘 그가 시간을 내어 나를 찾아온 거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합니다.”
방으로 들어서는 그의 표정은 무척이나 굳어져 있었다.
사안이 워낙 중대했던 만큼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지.
그래도 잠시나마 여유를 좀 가지라는 의도로 차를 권했지만, 그는 정작 찻잔에는 입도 대지 않은 채 목적을 밝혔다.
“실은 오늘 아침 미 국무부에서 이란산 석유에 대한 전면금지조치를 전달해왔습니다.”
“…….”
올 것이 왔다 싶었다.
역사적으로도 이란에 대한 제재는 바로 그것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게 지나치게 빨리 시작되었다는 건데, 최근 하도 그런 일이 잦아서인지 이젠 역사의 뒤틀림이 별스럽지도 않은 느낌이다.
“그럼 석유대금 동결도 통보해왔겠군요.”
난 지나가듯 말하곤 찻잔을 들어 올렸다.
순간 국정원장이 눈을 끔뻑이며 되묻는다.
“그걸 어떻게…….”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미국은 당장 이란에게 경제적 타격을 주려는 것이 목적인데, 석유대금이 그대로 흘러 들어가도록 놔둘 이유가 없죠.”
“아…….”
국정원장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찻잔에 손을 가져갔다.
이제야 조금은 마음에 여유를 찾은 듯.
이내 후룩 하고 찻물을 들이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진 회장님께서 정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가요?”
“아시겠지만 그동안 우린 이란에서 제법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유를 수입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막힌 상황이면 당장 우리로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보고 구체적으로 뭘 도와달라는 거죠?”
“사우디와 UAE를 좀 설득해 주십시오. ”
“…….”
“우린 지금 안정적인 원유 공급도 공급이지만 가격의 안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는 외교부에서 협의할 문제 아닙니까?”
“그야 당연합니다만, 작금의 현실은 진 회장께서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세계적인 경제 활황으로 물량 확보와 가격 협상에서 정부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들 다는 것. 하니 도와주십시오. 그럼 차후 그
노력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겠습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갔다.
본격적인 고유가 시대가 시작된 분기점이 바로 2005년.
그건 세계 경기 호황으로부터 비롯됐는데, 2003년부터 꾸준히 오른 원유가격은 현재 베럴당 55달러를 찍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흐름은 계속해서 이어져 2008년엔 무려 100달러대를 돌파할 테고.
정부가 미래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경제 흐름과 유가는 연동되기 마련이니 지속적인 상승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거다.
쉽게 말해서 지금 그는 나를 통해서 미리 안정적인 물량과 가격을 확보하겠다는 심산인 거지.
“흠.”
사실 이 문제는 잭과의 통화 이후 어느 정도 짐작했었던 부분이었다.
사우디와 UAE가 투자한 펀드를 운용하는 주체가 바로 나.
때문에, 정부보다는 내가 협상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다.
원유 수입문제야 어찌어찌 해결한다고 해도, 석유대금 동결로 인해 발생할 이란과 우리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지가 문제지.
내가 회귀하기 직전까지도 내내 골칫거리였던, 그 복잡한 문제를.
“차후 석유대금 지불 거부로 인한 이란의 항의에 대한 대책은 있는 겁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역시나 대책이 있을 턱이 있나.
국정원장은 즉시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고, 난 속으로 혀를 찼다.
‘쯧.’
아무튼, 대책 없는 양키놈들 같으니.
우리 입장은 생각도 안 해주는 그 태도를 대체 언제나 바꾸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