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30화
“우리 군의 차기 궤도형 보병 전투차량의 개발 사업자로 재우 디펜스를 선정합니다.”
2005년 6월.
역사대로 K21의 개발 사업자는 재우 디펜스로 결정됐다.
그에 더해 K2전차의 파워팩 사업 역시 재우 중공업과 탈레스가 맡게 된 상황.
한동안은 K2 개발문제로 현우 로템과는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가 됐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 회장님.”
현우 그룹의 정태민 회장은 마치 천군만마를 얻었다는 표정으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뭐 따지고 보면 천군만마가 맞기는 하지.
내가 관여한 이상 K2전차 개발과정에서의 오류를 최대한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안 그래도 그 문제로 며칠 전에는 현우에 각종 통제 장비를 비롯한 여타 부분에서의 협력을 제안해둔 상태인데, 그간 재우가 보여준 기술력 때문인지, 정 회장은 그때 이후부터 저렇듯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린 방위사업청.
아! 그러고 보니 이것도 역사보다는 1년 정도 설립일시가 빨랐네.
하긴, 군 개혁이 역사보다 몇 년이나 당겨진 상황에서 조달 분야의 개혁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아무튼, 그런 이유로 최근 설립된 방위사업청에서 정 회장과 난 계속해서 개발과정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가장 중점인 것은 역시나 파워팩 문제.
대화하는 내내 그가 화두로 삼은 것은 역시나 시간이었다.
“파워팩 개발 완료 시점을 3년 후로 잡으셨던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정 회장은 자신 있게 대답하는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엔진과 변속기에 대해서라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였으니 만큼 당연히 내 말이 쉬이 믿어지지 않았겠지.
하지만 엔진의 경우는 이미 시제품이 존재하는 상황.
게다가 변속기 역시 기술이전이 진행 중인 마당이기에 이제 그게 역사처럼 극복하기 힘든 난관은 아니니 굳이 시간이 걸릴 이유가 없다.
“대체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몰라도 재우에서 파워팩을 그렇듯 조기에 제공할 수 있다면 XK2의 전체적인 개발 일정도 많이 앞당겨질 겁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끝내 안 믿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입장.
난 단지 웃음으로 대꾸하곤 돌아섰다.
“정태민 회장의 태도가 생각보다는 의외인데요?”
이후 방사청에서 나오는 길.
디펜스의 강 대표가 나를 향해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무슨 뜻인가 싶어 쳐다보자 그가 힐끗 저편에 있던 정 회장 쪽을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솔직히 정태민 회장으로서는 최근 SUV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는 우리가 꺼려질 법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전혀 그런 티가 나지 않아서요.”
“그것과 이건 별개로 치겠다는 거죠. 뭐 사업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 말을 뱉어내고 나니 문득 진현필 회장, 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어제 얼굴을 붉히며 싸웠어도 오늘 당장 화해할 수 있는 어린아이 같은 태도가 바로 진정한 사업가의 기질을 갖춘 것이라던.
어쩌면 정태민 회장 역시 그 사고방식을 갖춘 인물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면 회장님도 참 대단하십니다.”
“제가 왜요?”
“노키드와 그렇듯 원수처럼 싸우셔놓고 이젠 친구로 만들어 버리신 것 말입니다. 저 같으면 도저히 그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거든요.”
그 말에 피식 웃어 보였다.
이내 차에 올라타려는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수첩을 꺼내 살폈다.
“그러고 보니 KAI에서 노키드와 협력사업을 진행 중인 T-50의 양산이 내일부터 시작되는군요.”
“벌써 그렇게 됐습니까?”
강 대표는 시간이 마치 화살 같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세월이 화살 같은 것은 사실 나도 마찬가지.
회귀 한지가 불과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고 보면 세월 참 빠르군요. 어느덧 KFX도 시험 비행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그 점을 생각하면 시간의 흐름이 총알 같다는 것은 더 실감 났다.
사업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제기가 하늘을 날 준비를 마쳤다니.
게다가 메인 임무 컴퓨터와 무장제어 시스템도 이식도 이미 진즉에 끝마친 상황.
이제 인티 될 무장만 완성된다면 그야말로 완전한 전투기가 탄생하는 거다.
“KFX 시험 비행은 언제로 예상하십니까?”
마침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라는 듯 강 대표가 되물었다.
다시 수첩을 살펴본 난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일정에 큰 문제가 없다면 보름 후쯤, 진행할 겁니다. 해서 안 대표님께서 지금 아주 피가 말라가고 있으시죠.”
“남 일 같지가 않군요. 이젠 저도 K21 개발이 본격화되었으니…….”
“그러게요. 한 몇 년 죽었다 생각하시고 넘기시죠.”
위로랍시고 한 말에 강 대표가 더 풀죽은 표정을 지었다.
뭐 고작 그거 하나 가지고.
난 차마 셀 수도 없는 사업들을 죄다 관여하고 있는 마당에.
남들은 회장이라고 해서 앉아서 보고만 받으며 띵가띵가 하는 자리인 줄 아는 모양인데, 그랬다가 회사 망하는 것이야말로 시간문제다.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결국 회장이 지는 법이고, 그걸 위해선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뛰어다녀야 하는 것이 바로 회장의 운명이라는 소리지.
“그럼 수고하시죠.”
“어? 어디로 가시게요? 오늘 일정은 이걸로 끝 아니었습니까?”
서둘러 차에 오르는 나를 향해 강 대표가 다시 물었다.
따르릉!
때마침 울려대는 휴대폰.
피식 헛웃음을 뱉어내며 그걸 흔들어 보였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찾는 곳이 워낙 많아서요.”
“…….”
******
“어떻게 됐어?”
얼마 후 도착한 곳은 미사일 개발 센터였다.
무장제어 능력을 시험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이 불과 1년 남짓이기에 마음이 조급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초음속 공대함 미사일의 개발은 진즉에 끝나서 테스트를 앞두고 있어.”
오랜만에 마주한 성호는 살이 쫙 빠져 있었다.
마치 그간의 고생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하지만 살이 빠짐으로써 오히려 건강만큼은 되찾았는지 눈빛이 초롱초롱 살아 있었다.
“추진체 한계속도는?”
“마하 4. 정확히 극초음속의 영역에 들어서기 직전 수준이지.”
그 정도면 사실상 성공적인 개발이라고 할 수 있었다.
현존하는 함정들의 대공 방어능력으로는 마하 2 정도의 속도로 날아오는 것을 방어하는 것도 힘에 부친 상태.
그 두 배가 넘는 속도로. 그것도 시스키밍 방식과 자율 회피능력까지 갖춘 대함 미사일이라면 사실상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맞을 거다.
“테스트할 바지선은 구했고?”
“그게 문제인데, 국방부에서 이번엔 실제 함정에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 대함 미사일 테스트는 바지선에 컨테이너들을 잔뜩 쌓아서 그걸 표적으로 삼는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건만.
뭐 실제 함정을 동원한다면야 우리로선 더없이 확실한 데이터를 얻어낼 수 있긴 하지만, 그럴만한 함정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국방부에서 노후된 초계함이라도 표적으로 제공해주겠대?”
“미쳤냐? 그게 아니라 최근에 러시아에서 고철로 들여온 함정이 한 척 있는데, 그걸 국방부에서 사들인 모양이야. 이번에 우리가 개발한 초음속 대함 미사일 표적으로 활용해 보겠다고.”
왠지 신선한 변화 같았다.
대공미사일 테스트에 사용하는 표적기 하나조차도 손을 벌벌 떨던 국방부가 무슨 바람이 들어서.
하긴, 회귀 전과는 확 달라진 경제 사정으로 인해서 증가한 국방비도 만만치 않으니 이해를 못 할 바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시기에 해마다 8%에 가까운 경제성장을 이룬 건 그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싶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 그냥 좀. 아무튼, 국방부에서 굳이 그런 제안을 했다면 거부할 이유는 없지. 그나저나 테스트 일정은 언제로 잡힌 건데?”
“일정은 석 달 후쯤으로 예상 중이야.”
“쯧, 이거 앞으로 몇 개월은 온갖 테스트들 진행하느라고 정신이 없겠네. KFX를 비롯하여 초음속 대함미사일. 그리고 1호 이지스 함정의 인도식까지. 참, 그러고 보니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 시험도 다음 달이잖아.”
마지막 말에 성호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뭔가 문제라도 생겼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그가 난데없는 말을 내뱉었다.
“너 그 말 잘했다. 어때, 그렇게 주룩 나열하고 보니 이젠 좀 실감이 나냐?”
“뭐가?”
“네놈이 그동안 희원이와 나를 얼마나 독하게 부려먹었는지. 마침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 희원이가 너에게 전해달라더라.”
“……뭐라고?”
“결혼한 지가 벌써 몇 년째인데 아직 애가 안 들어선다고. 네가 책임지라고.”
“그거야 놈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니야?”
“웃기고 있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이 자식아! 한 달에 고작 한번 집구석에 들어가는 놈이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애를 만드냐?”
흥분하는 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끝내 한마디를 더 뱉어냈다.
“난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친구 놈이 애까지 낳고 오순도순 사는 꼴은 못 보지.”
“워…… 이 악마 같은 새끼 보…….”
놈은 갑자기 하던 말을 멈추고 딴청을 피웠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점심시간을 맞은 연구원들이 우르르 문을 빠져나오고 있는 상태.
그래도 꼴에 예의는 지키겠답시고 재빨리 태도를 바꾼다.
“그래서 말인데요, 회장님. 이젠 좀 적당히 휴가도 좀 주고 그러시죠?”
“그러지 뭐. 내년쯤엔.”
“…….”
******
쉬이이이익!
놈을 따라 들어선 연구실에선 개발이 완료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최종 추진체 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그동안 내가 개발을 지시한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하나가 아닌 둘.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선 어마어마하게 말이 많았었다.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대체 왜 같은 목적을 가진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2종이나 개발해야 하는 건지.”
연소시험을 지켜보던 성호가 넌지시 말을 뱉어냈다.
이미 끝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의도는 아닐 테고, 아마 개발비의 압박을 걱정하는 것에서 나온 질문일 터다.
“말했잖아. 목적은 같지만 사용하는 기체가 다르다고. 특히나 저 다중펄스 방식의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경우는 차후 우리 전투기가 진정한 5세대로 거듭났을 때 꼭 필요한 물건이야. 하니 개발비가 좀 더 들어간다 해도
미리 개발을 선도해둬야지.”
정확히 따진다면 그건 내부무장 창 때문이었다.
사실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경우 지속적인 추진력을 고려하면 덕티트 램제트 방식이 우세한 것은 사실.
하지만 그건 미사일의 공기 흡입구의 구조가 내부 탑재에 지장을 주는 터라 스텔스기에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그럼 결국 기껏 만들어 두고 외부 무장을 선택해야 한다는 건데, 그럼 스텔스기의 의미가 없지 않던가.
“하긴, 다중펄스 방식이 외형은 매끈해서 내부무장 창에 탑재하기로는 안성맞춤이긴 하지. 발사 시 사고가 날 확률도 적고.”
사실 다중펄스 방식이 스텔스기에 유리한 것은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었다.
추진제를 격벽 형태로 다중구성하여 순차적으로 발화. 그 덕에 마치 덕티드 램제트처럼 종말 단계까지 추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로 인해서 NEZ. 즉, 회피 불가능 영역도 존재하지 않는 장점도 있거든.
때문에, 미국 역시 차후엔 암람을 다중연소방식으로 개량하게 되는 것이 바로 역사다.
“그나저나 이게 세상에 등장하면 암람의 시대는 간 것 아니야?”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암람의 경우 종말 단계에서 추진력을 잃어버리는 최악의 단점이 존재하기도 하고, 워낙 많은 국가들이 사용하는 터라 사용주파수가 심하게 노출되어 있으니까.
사실 그 부분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냐면, DRFM. 즉 디지털 무선주파수 메모리 기술이 있으면 아무리 복잡한 주파수 변조를 하더라도 그걸 복제해서 방출하는 것이 가능한데, 그 경우 미사일이 완전히 먹통이 되어 추락해
버릴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주파수가 심하게 노출된 암람의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밍이 가능해져 버린다는 거지.
‘실제 회귀 전,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우는 그게 가능했기도 하고. 하니, 암람의 시대는 그야말로 종말을 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다중펄스 방식은 그렇다 치고, 그럼 덕티드 램제트 방식은 정말로 수출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는 거야?”
성호는 저편에서 연소시험 중인 또 다른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잠시 힐끗 그를 쳐다보곤 설명을 이었다.
“맞아, 다중연소방식의 공대공 미사일의 경우는 사실상 우리만 사용할 가능성이 크거든. 막말로 그것 하나로 인해서 공중전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는 판국에 그걸 수출하는 것은 좀 그렇잖아. 하지만 우린 엄연히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니만큼 수출용도 필요하지. 더불어서 KF-16에 장착할 수도 있고.”
“KF-16에도 저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인티한다고? 미국에서 그걸 허락하겠어?”
“잊었어? 우린 이미 몇 년 전에 모든 F-16에 우리가 만든 무기들을 인티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는 것.”
“아!”
성호는 뒤늦은 깨달음에 머리를 긁적였다.
무슨 생각을 한 걸까. 내내 멍한 표정을 짓던 그가 갑자기 표정을 확 밝힌다.
“이야~그럼 장난 아니겠는데? F-16에도 인티가 가능하면 당연히 F-15에도 인티가 가능하다는 말이잖아. 그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저걸 도입하면…….”
“맞아, 그 수량이 가히 천문학적이 되겠지. 하지만 저 덕티드 방식의 미사일이 단지 F-15와 F-16에만 인티 되는 것은 아니야.”
“…….”
성호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에겐 앞으로 또 하나의 전투기가 탄생할 예정인데, 난 그 기체도 중거리 교전이 가능하게 만들 예정이 거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