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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28화 (128/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28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황스러운 마음에 들어 올리던 찻잔을 멈칫했다.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던 제프리는 즉시 자신의 앞에 있던 서류철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시온 컴퍼니’가 무얼 하는 곳인지부터 말씀을 드리려야 할 것 같군요.]

[…….]

[실은 우리 ‘시온 컴퍼니’는 미국 내 유대계 자본가들의 집합체입니다. 언론을 비롯하여 금융과 각 산업계에 걸쳐 영향력을 끼치는 유대인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곳이죠.]

순간 나도 몰래 마른 침이 넘어갔다.

사실 나 역시 지금 그가 말하는 종류의 집단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문제거든.

일루미나티나 프리메이슨 같은, 과장되고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집단이 아닌.

실제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끼치는 유대인 연합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가만!

그런데 제프리가 그런 집단에 속해 있다는 말은, 그럼 그 역시 유대인이라는 의미가 되는 건가?

[맞습니다. 저 역시 유대계 미국인이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렇다고 나와 우리 회사가 시오니스트 집단은 아닙니다. 우린 단지 유대인들과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에 불과하니까.]

나를 빤히 쳐다보던 제프리는 마치 속을 읽기라도 한 듯 대꾸했다.

차마 할 말이 없어 침묵하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어쨌건, 시온 컴퍼니의 배경은 그렇다고 보시면 되고, 이제부턴 아론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우리 소유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죠.]

[…….]

마침 나 역시 그걸 묻고 싶었던 상황이었던 터라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다시 서류철에서 종이 한 장을 뽑아낸 그는 내 눈앞에서 그걸 흔들어 보이며 말한다.

[사실 아론 테크놀로지는 애초부터 우리가 자본을 제공하여 설립된 회사입니다.]

[…….]

[또한, 선임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독일 랭크사 출신이죠.]

[엔지니어들이 어디 출신인지는 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정작 제가 궁금한 것은 유대계 출신들이 왜 독일인과 손을 잡았느냐는 점이죠.]

그게 뼈를 때리는 질문이었던 듯 순간 제프리의 얼굴이 꿈틀했다.

하지만 곧 미소를 되찾은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뱉어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이해합니다. 하긴, 이스라엘 본토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미국 내의 일부 유대인들은 아직도 옛 치욕을 잊지 못해서 독일 물건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경우가 있죠. 그 마당에 유대계 집단인

우리가 독일인들과 손을 잡았다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는 힘들 겁니다.]

[…….]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린 그런 부류의 유대인 집단이 아닙니다. 하니 독일인들과 손을 잡지 못할 이유는 없죠.]

[…….]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린 유대인이기도 하지만 미국인이기도 합니다. 하니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잠시 잊고 있었다.

저들의 뿌리가 비록 유대인이기는 해도 엄연히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재들이라는 것.

때문에, 저들 역시 미국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말은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독일 기술자들은 어떻게 설득을 한 겁니까?]

의문인 점은 그것이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독일 기술자들 역시 자신들의 행위가 독일에 피해를 주는 것이라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을 터.

더군다나 물주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흔쾌히 응했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던가.

[글쎄요, 생각하시는 것만큼 설득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뿌리가 독일이라고 해서 꼭 독일의 이익만을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게다가 그들 역시 미국 시민들이 된 것이 오래전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랭크 사에 불만을 가진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조금은 상황 파악이 쉬워졌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상황이 이런 식으로 돌아가면 나로선 문제가 심각한 것 아닌가?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미국인임을 앞세우고 있는 상황.

하면 미국의 이익을 위해 설립한 회사를 곱게 내어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흠.]

생각이 그에 미치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건 뭐 이야기를 꺼낼 엄두조차도 나지 않는달까.

하필 그 와중에 제프리가 다시 절망적인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아론 테크놀로지의 변속기 기술은 이제 곧 미 육군 전차에 이식될 겁니다. 애초 그게 목적이었고, 또 그만한 결과도 나온 상태니까.]

[그럼 나로선 볼 일 다 본 셈이군요.]

실망감을 억누르며 애써 웃어 보였다.

솔직히 상황이 그렇다는데야 더 할 말이 뭐가 있겠어.

그렇다고 미국에서 그 기술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 리도 없는 마당에.

아쉽지만 괜한 발걸음을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엔 없을 상황인 거다.

[아니요, 아직 진 회장께서 실망할 상황은 아닙니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웬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하나가 방으로 들어섰다.

혹여 저자가 그 회장이라는 존재인 건가.

제프리가 벌떡 일어서며 그를 맞이하는 것으로 봐선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리암 에리코요.]

사내는 내게 똑바로 걸어와선 불쑥 손을 내밀었다.

[진현승입니다.]

나 역시 재빨리 이름을 알리고 손을 맞잡자 그가 한껏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생각보다 젊어 보이시는구려.]

[젊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젊습니다.]

그는 농담조로 응수하는 나를 다시 빤히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표정만 봐선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일단 앉으시죠. 앞서 말했듯 진 회장께서 벌써 한국으로 되돌아가실 상황은 아니니까.]

난 그 말에 슬쩍 제프리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침묵한 채 웃고만 있는 모습.

그래도 분위기가 왠지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에 난 다시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솔직히 난 이번 이란 사태에 꽤 감명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도 놀랐지만, 그게 하필 정부에서 시작된 계획이 아닌, 일개 개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이 내겐 더 없이 충격이었죠.

솔직히 그래서 진 회장을 더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리암 회장은 한동안 내 ‘미친 짓’에 대한 찬사를 늘어놨다.

어색한 마음에 미 정부를 상대로 내 편을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우리로서야 당연히 재우의 편을 들어줄 수밖에요. 우리가 미국인이라고는 해도 뿌리만큼은 이스라엘 아니겠습니까. 특히나 내 경우는 미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민 세대이기에 뿌리에 대한 집착이 다른 유대인들보다는

강한 편입니다.]

그는 말끝에 다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마치 탐색하는 듯한 눈빛.

이내 눈이 마주치자 그가 불쑥 의외의 말을 던진다.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내가 지금 진 회장을 붙잡은 이유는 만약 재우가 원한다면 아론 테크놀로지의 변속기 기술을 제공할 의도가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

[더불어 그 기술로 생산되는 제품들에 대해 차후 어떠한 권리나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드리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단순히 기술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권리 주장을 하지 않겠다?

그건 쉽게 말해서 기술에 대한 일체의 간섭을 포기하겠다는 건데.

예를 들면 우리가 어느 곳에 수출하건 상관하지도 않는다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파격적인 제안을 하는 건지 의심스럽기가 그지없다.

[물론 반대급부가 존재하겠죠?]

난 즉시 그의 의도를 캐려 되물었다.

입매가 뒤틀린다 싶더니 그가 주머니에서 꺼낸, 고급스러운 시가 하나를 내게 건네며 대꾸한다.

[그야 물론.]

칙!

난 주저하지 않고 받아든 시가를 입에 문 채 불을 붙였다.

거의 4년 만에 다시 피워보는 담배인 탓일까, 잠시 머릿속에 피가 확, 몰리는 느낌이 든다.

[말씀하시죠. 그 조건이 뭔지.]

[글쎄요, 일단 돈이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솔직히 돈이라면 나도 제법 여유가 넘치는 편이라서.]

리암 회장은 후우 하고 연기를 뿜어내며 농담을 뱉어냈다.

곧 일체의 표정 변화가 없는 내 얼굴을 보곤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잇는다.

[좋습니다. 그럼 조건을 말하기 전에 잠시 현 상황에 대한 고찰을 좀 해보죠.]

[현 상황이라면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진 회장과 내가 고찰해 볼 것이 군수 분야밖에 더 있겠습니까. 난 그중 재우와 러시아가 협업으로 개발 중인 극초음속 미사일 문제를 좀 거론하고 싶군요.]

순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미국으로서는 오래도 참은 거지.

다만 의아한 것은 하필 왜 저 유대인과 그 문제에 대한 시비를 따져야 하느냐는 점인데, 역으로 생각하면 또 그만큼 저 노인의 위상을 방증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 삼겠다고 마음먹는다면야 당연히 큰 문젯거리죠. 그것 때문에 우리 미국도 지금 정신없이 바빠진 상태니까.]

툭 던져진 그의 말엔 뼈가 있었다.

묵묵히 그를 쳐다보자 그가 어색한 미소를 내비친다.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걸 따지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미국이 그동안 왜 침묵했는지 알려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꺼낸 말이니까.]

[…….]

[사실 우린 어차피 러시아가 재우와의 협력이 아니라도 그걸 성공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난 재빨리 대꾸했다.

힐끗 내 쪽을 쳐다본 리암 회장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해서 굳이 그걸 막느니…… 뭐 어차피 재우에게 압력을 행사해서 그걸 막아봐야 러시아는 결국 개발에 성공할 테니까. 그럼, 차라리 우리 역시 저들과 같은 창을 손에 쥐자는 쪽을 택한 거죠.]

[그 말은, 미국도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는 겁니까?]

[나선 정도가 아니라 이미 뚜렷한 성과를 보이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바빠졌다는 표현을 쓴 것이고.]

[…….]

[하지만 최근 우리 정부 입장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마지막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맥상 지금껏 나온 말들은 그저 사전 포석에 불과할 뿐, 이제부터 나올 말들이 갑작스레 극초음속 미사일을 거론한 진짜 이유 같았거든.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씨익 하고 웃으며 유리로 된 재떨이에 피우던 시가를 비빈다.

[진 회장도 아시다시피 극초음속 미사일을 방어할 방법은 없습니다.]

[…….]

[하지만 그거 압니까? 최근 재우가 상승단계 요격시스템을 개발하며 방어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것. 해서 우리 정부는 다시 방어개념을 되살리기로 결정했습니다.]

[…….]

순간 모든 것이 명료해졌다.

쉽게 말해서 저들은 지금 우리가 개발 중인 극초음속 기술을 욕심내고 있다는 것.

하긴, ‘요격체’ 자체가 극초음속인 마당이면 유도시스템의 정밀성 여하에 따라 극초음속 ‘발사체’의 요격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기에 당연히 가질 수 있는 희망이었을 거다.

그나저나 저 말의 의미는 결국 뭐지?

[그 말씀은, 우리가 개발 중인 상승단계 요격체계 기술을 내놓으라는 겁니까?]

[이런, 뭔가 오해하셨군요. 난 상승단계 요격체계에는 관심 없습니다. 그거야 어차피 우리 미국도 오래전부터 연구하고 있었던 부분이고, 또 극초음속 추진체 분야는 굳이 러시아의 것을 얻지 않아도 우리 역시 충분한

성과를 낸 상태니까.]

[그럼 대체 뭘…….]

[난 단지 재우와 미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공동구축하자는 겁니다. 즉, 극초음속 요격에 필요한 ‘초정밀’ 유도시스템과 소재개발에 있어서 재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죠. 이제껏 우릴 놀라게 했던 그 진보된

기술력이.]

상황이 좀 우습게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만약 저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러시아와는 창을, 그리고 미국과는 방패를 공동개발하게 되는, 그야말로 모순의 상황이지 않던가.

나야 솔직히 쌍수를 들어 환영할 상황이지만, 정작 걱정되는 것은 러시아의 반응이다.

[러시아는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때, 리암 회장이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본 듯 대꾸했다.

침묵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자 그가 입매를 뒤틀며 말한다.

[러시아도 이미 우리가 그동안 묵인했던 이유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

[솔직히 우리가 러시아와 재우의 극초음속 미사일 공동개발을 막기로 마음먹었다면 과연 그게 불가능했을 것 같습니까?]

[흠…….]

그건 나도 애초부터 의심하고 있던 일이었다.

막말로 미국이 어떤 나라인데.

자신들을 겨눌 신의 창이 개발되고 있는 것을 그냥 두고 볼 리가 있었을까,

아마 러시아로서도 미국의 묵인은 따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쯤은 짐작했을 것이고, 그게 바로 지금과 같은 결과임도 인지하고 있었을 거다.

하니 이제 미국이 그걸 내세운다면 러시아로선 비록 마음은 불편해도 티를 낼 수는 없는 것이 사실이지.

‘게다가 극초음속 미사일의 방어가 얼마나 힘든지는 러시아가 더 잘 알고 있지. 그 때문에 어쩌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는지도 모르고. 맞아, 그럴 수도 있겠군. 말이 쉽지 극초음속 방어시스템

개발이 어디 그리 쉬울까.’

한마디로 러시아는 지금 방어할 수 있으면 해봐라, 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는지도…….

[어때요, 그래도 러시아가 걱정입니까?]

[…….]

[그럼 한 가지만 더 생각하십시오. 만약 미국과 한국이 그걸 개발하게 되면 지구상에서 두 나라의 방공망을 뚫을 나라는 없다는 사실.]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전역 방어는 물론 극초음속 투사체에 대한 방어까지 가능하다면 그야말로 완벽한 신의 방패가 주어지는 셈이지.

끝내 걱정인 것은 러시아인데, 몇 번을 생각해도 그건 과한 걱정이 아닐까 싶다.

막말로 이게 개발에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장 나와 얼굴을 붉히려 하지는 않을 테고. 또 지금껏 미국이 침묵한 이유를 알고 있는 그들이 ‘내로남불’을 주장할 수는 없을 테니까.

더군다나 리암회장이 저렇게까지 자신하는 것으로 봐선 그들 사이에 사전교감이 있었다 느껴지는 상황.

결국 아무리 봐도 버릴 패는 아니다.

[그럼 변속기 기술은 일종의 협업기념 선물인 셈입니까?]

난 농담으로 긍정을 표했다.

의미를 이해한 듯 리암 회장이 씨익 웃어 보이더니 잠시 꺼두었던 시가에 다시 불을 붙인다.

[그렇다고 치죠, 하지만 방금 내가 건네준 시가 값은 받아야겠습니다.]

[…….]

[7천만 달러. 그 정도면 딱 적당할 것 같군요.]

뭐……. 예상보다는 그래도 싼 편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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