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27화
“제안이라니, 무슨 제안 말입니까?”
“변속기 자체 개발에 있어서 부담을 덜 느끼실 방법 말입니다.”
그 말에 가만히 그를 쳐다봤다.
웃으며 자신의 책상으로 향한 강 대표는 서랍에서 종이뭉치들을 꺼내어 왔고, 이내 그걸 내게 들이밀었다.
“현재 우리에겐 회장님께서 연구소를 통해 개발하신 1500마력짜리 디젤 엔진이 있습니다.”
그건 회귀 전, 우영 중공업이 K2전차 파워팩용으로 개발했었던 물건을 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걸 폴라베어의 엔진 개발과 동시에 추가개발을 진행했었던 상태였고, 최근엔 독일 MTU(마이바흐의 후신)사의 엔진에 근접한 수준까지 성능을 끌어 올려두었었던.
한데 막상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좀 상황이 우습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밀어내려 했으면서도 난 대체 왜 그걸 개발해 두었었던 것인지, 스스로도 영 이해가 안 가거든.
“그럼 문제는 변속기인데, 그건 독일 ‘랭크’사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죠.”
“그거야 저도 잘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만, 하시고 싶은 말이 구체적으로 뭡니까?”
강 대표는 되묻는 나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이내 내게 건넸던 서류 중 한 장을 다시 뽑아낸 그는 어느 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지목하며 말했다.
“그 ‘랭크’사 출신 연구원들이 최근 미국으로 건너가서 변속기 전문회사를 설립했답니다.”
“…….”
순간 수없이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갔다.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어떻게, 라는 의문.
즉시 그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독일 정부에서 그걸 두고만 보고 있었다고요? 기술 유출에 대해서 어느 나라보다 더 민감한 곳이 독일인 마당에?”
“당연히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죠. 해서 한동안 온갖 트집을 잡았던 모양인데, 결국엔 두 손을 들어 버렸답니다.”
“왜요?”
“일단 그 연구원들 대부분이 랭크 사를 퇴직한 것이 이미 20년을 훌쩍 넘은 인물들이라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한마디로 기술 유출을 문제 삼기엔 지나치게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거죠.”
“흠.”
“그리고 또 하나. 퇴직자들이 이번에 개발한 변속기가 기존과는 설계방식 자체가 다르답니다. 하니, 독일로서도 더는 간섭할 여지가 없는 거죠.”
설계 방식 자체가 다르다면 확실히 트집을 잡을 만한 건덕지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막말로 기술적으로 다른 접근을 했음을 뜻하는 건데, 그걸 자신들의 기술에서 비롯되었다고 우길 수는 없을 테니까.
단지 자신들의 회사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끝내 딴지를 거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하면 그들이 설립해서 만들어낸 변속기의 성능은요?”
난 곧바로 그게 궁금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랭크 사의 변속기 역시 아예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상태.
예를 들면 일부 내구성 부족한 부품의 이탈문제라던가.
그런데 만약 그 랭크사의 연구원 출신들이 개발했다는 변속기가 그 문제들을 해결한 상태라면 나로선 당연히 관심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던가.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기존 랭크사의 제품과 비교해서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 같더군요. 특히나 부품의 내구성 하나만큼은 오히려 랭크사를 뛰어넘는다고 합니다.”
사실이라면 나로선 어떻게든 그 업체와 접촉해야만 한다.
기술 수입이건 아니면 아예 업체를 인수해 버리건.
애초 그걸 노리고 내게 사실을 알려온 것인지 내 표정을 살피던 강 대표가 흐뭇한 표정으로 다시 말한다.
“어떻습니까? 흥미가 좀 돋으십니까?”
“흥미가 돋는 정도가 아니라 당장 내일이라도 날아가야 할 상황 같군요. 그 정도 기술력을 가진 업체면 인수하겠다고 덤벼들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테니까.”
강 대표는 그 말에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왜일까.
정작 서둘러 실무단을 구성하라는 내 말에 그가 갑자기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렇게까지 서두르실 필요 없습니다.”
“서두를 필요가 없다니요.”
“실은 그 회사. 아! 정확히는 이름이 ‘아론 테크놀로지’라고 하는데, 어쨌건 그 회사의 대표가 저와는 막역한 사이입니다. 하니, 너무 서두르지 않으셔도 우리에게 협상을 시도할 기회는 얼마든지 주어질 거라는 말이죠.”
“강 대표님께서 어떻게 그곳 대표를 알고 있는 거죠?”
그 질문에 강 대표의 눈이 잠시 몽롱한 빛을 보였다.
마치 옛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
이내 퍼뜩 다시 눈빛이 돌아온 그는 웃으며 말을 뱉어냈다.
“실은 그곳 대표가 제가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담당 교수님이셨습니다. 그때가 아마 그분이 랭크사를 퇴사하셨을 무렵이었을 텐데, 회사에 입사했을 당시 체결했던 계약조건으로 인해서 다른 곳엔 취직을 못 하시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죠.”
순간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난 정말 인복 하나는 타고났다는 거였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하필 강 대표가 이 시점에서 내게 꼭 필요한 인물과 연이 닿아 있을 줄을 누가 예측이나 했을 거냐는 말이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실무진을 구성해서 파견하세요.”
난 그럼에도 일을 서둘렀다.
순간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인 강 대표는 갑자기 뜬금없는 말을 던진다.
“굳이 서두르시겠다면 상관은 없지만,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무슨 문제요?”
“그곳 대표. 그러니까 제 은사께서 뭣 때문인지 회장님을 직접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왔습니다. 하니, 죄송하지만 직접 움직이시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
******
[아메리카 에어라인 278편을 탑승하실 고객께서는…….]
며칠 후, 난 아론 테크놀러지사가 있는 미니애폴리스에 도착했다.
이번에도 미리 연락을 해둔 덕에 라이언이 마중을 나온 상태.
전보다 부쩍 살이 불어 있는 그의 모습에 난 한동안은 눈을 의심했다.
“어떻게 된 거야? 못 알아볼 뻔했잖아.”
“어떻게 된 거긴, 인스턴트 식품의 함정에 빠진 거지. 요즘 그렇게 햄버거가 입에 당기더라고.”
“조심해, 그렇다가 인생 일찍 마감하는 수가 있으니까.”
“안 그래도 최근엔 다시 운동을 시작한 참이야. 그나저나 이번엔 또 웬 변속기 업체를 인수하겠다고 난리인 거야?”
사정을 모르는 라이언으로서는 의문이었을 거다.
그걸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는 어려운 상황.
대충 말을 얼버무린 채 그가 준비한 차량으로 향했다.
“왜 그래?”
차량 앞에서 잠시 멈칫 한 나를 보며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뒤늦게 내가 차량 테러를 당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 듯 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렇다고 자네 차를 여기까지 공수해 올 수는 없잖아. 그나마 제일 튼튼한 차량을 골라서 온 거니 이해하라고.”
그걸 이해 못 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사람 습관이 무섭다고, 평소 방탄 차량만 타고 다니다가 그저 평범한 리무진을 타려니 자연스레 드는 불안감이랄까.
“일단 타지.”
결국, 웃으며 차 문을 열자 라이언이 머리를 긁적이며 반대편 문을 향해 빙 돌아간다.
끼익!
그때, 갑자기 웬 검은색 캐딜락 두 대가 우리의 차량을 가로막으며 급정거했다.
놀란 내 경호원들은 즉시 앞을 가로막으며 나를 보호했고, 곧 급정거했던 차량에선 몇몇 사내들이 내리며 나를 향해 걸어왔다.
[혹시 진현승 회장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만.]
난 앞을 막고 있는 경호원들을 슬쩍 밀어내며 대답했다.
저편에선 라이언이 긴장한 얼굴로 덤벼들 태세를 갖추고 있던 상태.
즉시 그를 향해서도 손짓을 해 보이곤 다시 사내들을 쳐다보자 그들이 한껏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여 보인다.
[느닷없이 앞을 막아선 것을 사과드립니다. 실은 오는 길이 하도 막히다 보니 혹시라도 길이 어긋날까 싶어서 마음이 좀 다급했습니다.]
사내들의 행동에서 가식 따위는 엿보이지 않았다.
눈빛 또한 적대감은 없어 보이는 상태.
정체가 뭔지 알자는 생각에 다시 그를 쳐다보자 그가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어 내게 들이밀었고, 순간 내 경호원이 그걸 재빨리 낚아채어 확인하곤 다시 내게 건넸다.
[데린 코너라고 합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저희 회장님과 잠시 대화의 시간을 좀 가져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사내는 내 경호원의 행동에 딱히 불쾌한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 한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봐선 확실히 불순한 의도로 찾아온 인물들은 아닌 느낌이었다.
[시온 컴퍼니?]
나로선 처음 듣는 회사의 이름이었다.
그 탓에 주저함을 보이자 사내가 의미심장한 말을 툭 던진다.
[저희 회장님께선 이번 이란 사태로 미 정부가 의견이 분분했었을 당시 전적으로 진현승 회장님을 옹호하셨던 분이십니다.]
[…….]
순간 나를 찾는다는 회장이라는 자의 정체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뭐 그렇다고 얼굴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건 내가 은연중에 믿고 있었던 자들.
즉, 미 행정부의 권력자들을 뒤에서 푸시하는 유대계 세력들.
당황스러운 것은 그들이 어떻게 내가 미국 땅을 밟을 것을 알고 있느냐는 점이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별 의문점도 아닌 듯했다.
막말로 미국을 움직이는 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 사실 하나쯤 알아내는 것이 뭐가 어려울까.
[그래도 의심이 가신다면 회장님께서 믿을 만한 분과 통화 연결을 해드리죠.]
주저하는 내 모습에 사내가 다시 말을 뱉어내곤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이내 누군가와 짧은 인사를 나눈 그는 즉시 휴대폰을 내게 건넸고, 곧이어 수화기 저편에선 뜬금없이 제프리 미 해군 참모총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총장님께서 왜…….]
[하하, 미안하지만 난 이제 총장이 아닙니다. 전역 한지가 벌써 1년 전이에요. 지금은 시온 컴퍼니의 외부협상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탓에 침묵하자 저편에서 제프리의 다시 말이 날아든다.
[나를 믿고 그 사내를 따르셔도 괜찮습니다. 단지 진 회장님과 상의할 것이 좀 있어서 초대하는 것뿐이니까요.]
[하지만 전 지금 따로 용무가 있어서 가봐야 할 곳이 있습니다만.]
[알고 있습니다. 아론 테크놀로지를 찾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했다는 것. 해서 더더욱 저희를 먼저 만나야 한다는 겁니다.]
당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제프리가 지금 내 목적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과 그가 내 목적인 ‘아론 테크놀러지’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는 것.
한참을 고민한 끝에 난 결국 초청에 응했다.
[그럼 조금 후에 보죠.]
제프리는 여전히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이게 대체 다 무슨 일일까.
저들의 차량을 뒤따르는 내내 머릿속에선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
끼익!
도착한 곳은 미니애폴리스 시티에 있는 고층 빌딩이었다.
얼핏 눈에 뜨인 것은 건물 최상층부에 있는 ‘시온 컴퍼니’라는 간판.
대체 그 회사가 무얼 하는 곳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었다.
[가시죠.]
자신을 시온 컴퍼니의 전무라고 밝혔던 데린이라는 자는 차에서 내린 나를 곧장 건물 내부로 안내했다.
로비를 지나며 슬쩍 쳐다본 안내판엔 온통 시온이라는 이름을 앞세운 회사들의 명패가 달려 있던 상태.
그중 가장 흥미를 끈 것은 투자와 미디어 그룹이라는 단어였는데, 여전히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오! 이게 얼마 만입니까.]
데린의 의해 안내된 사무실엔 제프리가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 이 사무실 자체가 제프리의 것이었던 듯.
뭐가 됐건 일단은 반가운 마음에 환한 미소로 다가가자 그가 덥석 내 손을 잡으며 사과의 말부터 전해온다.
[공항에서는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진 회장님의 미국행을 알게 된 것이 불과 어제였던 터라서…… 게다가 하필 비행기 안에서는 전화 연결도 안 되는 상황이라서 연락을 하는 것이 영 힘들더군요.]
[그 점은 이해합니다. 저조차도 이번 일정은 예정에 없었던 것이었으니까요. 그나저나 여긴 뭐 하는 곳입니까? 아니, 아론 테크놀러지를 찾아가기 전에 총장님을 먼저 만나야 한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상했던 걸까, 제프리는 웃으며 내게 자리를 권했고, 이후 자신 또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며 말을 꺼냈다.
[아론 테크놀로지는 사실 우리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곳입니다.]
[…….]
[아! 물론 회장님께서 조사하신 장부상으로는 그런 점들이 드러나지는 않으니 그 표정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엄연히 그곳은 우리가 투자해서 만들어낸 곳이고, 하면 당연히 저를 먼저 만나시는 것이 순서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