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26화
탁!
순간 들고 있던 펜을 거세게 책상에 내려놨다.
이건 꼭 운명의 장난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뭐랄까, 마치 내가 그 사업에 꼭 뛰어들 수밖에 없게끔 누군가 의도적으로 상황을 틀어 놓은 느낌?
물론 그게 과한 생각일 수는 있어도 내 회귀 자체가 설명할 수 없는 일임을 감안하면 또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다.
“그래서요?”
김 대표는 뜨뜨미지근한 내 대꾸에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나로선 정말 피하고만 싶은 것이 바로 K2전차의 파워팩 개발 사업.
솔직히 미션을 완벽하게 해결할 방법이 당장 내게 존재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닌 상황에선 나 역시 S&U와 같은 테크트리를 탈 가능성이 큰데, 내가 굳이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라니요. 우리가 중공업이 없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수천억 대의 사업이면 당연히 참여해야죠.”
“그거야 우리가 미션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 때의 이야기죠.”
“성공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우린 선진국들도 하지 못한 일들을 수 없이 해내온 업체 아닙니까.”
난 그 말에 속으로 헛웃음을 뱉어냈다.
사정을 모르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동안 이루어 온 것은 전적으로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인데, 아쉽게도 미션에 관해서 만큼은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쯧.’
물론 이제라도 개발을 시작하면 성공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겐 이미 일부 부분에선 독일을 능가하는 금속 가공능력이 존재하니까.
하지만 2025년도에도 개발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이 시대에. 그것도 고작 몇 년 사이에 독일의 노하우와 수준을 따라잡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전쟁을 통한 경험과 100년이 넘는 개발역사. 그리고 오랜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과물을?
“그 부분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죠.”
난 결국 사업참여 결정을 미뤘다.
그러자 김 대표가 갑자기 뼈를 때리는 소리를 뱉어낸다.
“어차피 K9의 엔진과 미션도 결국엔 자체 개발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
“제 말이 틀린 것은 아닐 텐데요.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K9의 수출은 전 세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성능이 뛰어난 마당에 최근엔 조준 시스템의 개선은 물론, 완전 자동화까지 이루어지고 있으니 수출 가능한
국가는 점점 더 늘어나겠죠. 하지만 정작 K9도 파워팩을 국산화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수출이 불가능할 수도 있음은 회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난 순간 그의 선견지명에 탄복했다.
향후 국제정세가 어찌 변할지 알고 있는 나로서야 그걸 염려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현 시국에서 그걸 따진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거든.
‘흠.’
그런데 이렇게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역시나 나도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가만, 차라리 전기추진 시스템을 제안해봐?’
답답한 마음에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애초 그 문제는 내가 늘 염두에 두고 있었던 부분이었기도 하고, 어차피 곧 전고체 전지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테니.
‘쯧.’
하지만 그 생각은 곧 접어야만 했다.
아직 우리에겐 무려 1500마력의 출력을 내줄 수 있는 모터기술이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막상 그걸 전차에 도입할 경우 발생할 수많은 변수에 대한 대처를 감당할 시간적 여유 또한 없기에.
아마 내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것은 족히 5년은 더 지나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5년…… 뭐 이미 대출력 모터의 개발은 테슬라를 통해서 진행하고 있으니 그때쯤이면 정말 전기추진시스템 구축도 가능하기는 하겠네. 그럼 K9도 그때 가선 전기추진 방식을 고려해볼 만도 하고.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불현듯 날아든 김 대표의 말에 상념이 깨졌다.
쳐다본 그의 눈빛은 대답을 재촉하는 의미의 것.
남 잠시간 뜸을 들인 후 그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쨌건, K2 파워팩 개발 사업 참여 문제는 일단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죠. 어차피 개발업체 선정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
******
끼익!
이튿날, K21 보병 전투차량 개발 사업 참여 준비를 위해 디펜스를 찾았다.
“오랜만에 발걸음을 하셨네요.”
최근 디펜스를 책임지고 있는 인물은 무려 20년 이상 디펜스에서 뼈가 굵은 강호연 대표.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전무까지 올라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의 능력은 이미 검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나 역시 그를 대표에 앉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었다.
“강 대표님은 어떻게 연세가 드실수록 더 젊어지시는 것 같습니다.”
그와 나와의 인연은 조금 특별했다.
아니, 정확히는 현승이와의 인연이라고 해야겠지.
아무튼, 기억에 의하면. 강호연 대표 역시 현승이가 방황할 당시 윤상민 부회장과 더불어 진현승을 유이하게 믿어주었던 인물 중 하나였었는데, 그 때문인지 지금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여느 대표들과는 달리 사근사근한
편이었다.
“아이고, 그렇게 봐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그나저나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군에서 이번에 K200을 대체할 새로운 보병 전투차량을 발주한다면서요.”
“네,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찾아온 겁니다. 기왕이면 군의 ROC를 훌쩍 뛰어넘는 물건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ROC를 뛰어넘어요?”
강 대표는 그게 무슨 뜬금없는 말이냐는 투로 나를 쳐다봤다.
무리도 아닌 것이, 보통의 경우엔 오히려 ROC 기준을 어떻게든 낮추어 개발업체 선정에 유리한 고지를 밟으려는 것이 업체들의 행태거든.
그 마당에 굳이 자본과 에너지를 더 투자하여 요구성능 이상의 물건을 만들어 내겠다는 내 태도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네, 그래야만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출 테니까요.”
하지만 내 목표는 단순히 국내 시장만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차후 호주를 비롯한 여러 국가로 수출되는 것이 K21 차체의 운명.
수출과정에서 그걸 다시 개량하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으려면.
그리고 차후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될 미국의 보병 전투차량 전면교체 사업기준에도 별다른 개량 없이 참여하기 위해선 지금 그 기반을 미리 다져 놓겠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난 지금 K21을 아예 레드백 수준의 물건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거지.
“세계시장이요? 그 말씀은, 아직 우리 군도 채택을 안 한 것을. 아니, 아예 태어나지도 않은 것을 수출부터 염두에 두신다는 겁니까?”
“안 될 것도 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제 사업 스타일이 그동안 그래왔기도 하고.”
“…….”
강 대표는 마지막 말만큼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여태 우리가 개발한 무기 중 우리 군이 채택하기 전에 수출부터 이루어진 것이 어디 한두 개였던가.
아마 그도 그 점만큼은 반박할 말이 없었을 거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더 손대시겠다는 건지 모르겠군요. 솔직히 제가 입수한 군의 ROC도 당장은 충분히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는 상황인 터라 전 영, 감이 안 옵니다만.”
군의 ROC가 충분한 것은 사실이었다.
40밀리 APFSDS(날개안정분리철갑탄)운용이 가능한 포탑은 물론 장갑의 방호능력 또한 그동안의 기준을 훌쩍 뛰어넘는 요구수준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그 기준이 현재에 맞춰진 것이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내가 이 시대에 끼치고 있는 영향력으로 인해 변화하는 무기들의 페러다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거지.
“현재 기준에선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 전투차량이 보급되는 시점인 5, 6년 후쯤엔, 아니 5, 6년은 고사하고 3년 만 더 지나도 군은 분명 ROC를 변경할 겁니다. 하니, 우리로서는 그때 가서 개발을 전면 재검토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한발 앞서가버리는 편이 낫죠.”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ROC가 변경되다니요.”
설명을 들은 강 대표는 즉시 의문을 표했다.
잠시 그의 사무실 곳곳을 둘러보던 난 마침 책상 한편에 올려져 있던 보병 전투차량의 모형 중 하나를 손에 쥔 채 말을 이었다.
“다른 건 다 재껴두고 드론을 예로 들죠. 앞으로 몇 개월 후면 재우가 개발한 공격용 드론이 무기시장에 진출할 겁니다. 그리고 그건 순식간에 퍼져나가겠죠. 그 경우 지금 군이 요구하는 수준의 ROC에 맞춘 보병
전투차량이 그 드론의 공격을 버틸 수 있겠습니까?”
“…….”
그 말에 강 대표가 재빨리 자신의 책상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왔다.
얼핏 눈에 보인 글자들로 봐선 그도 이미 군의 ROC 항목들을 카피해 두었던 모양새.
난 즉시 그에게 다시 말했다.
“이미 내가 검토한 결과로는 어디에도 드론 방어에 대한 개념은 없었습니다. 즉, 이대로 사업이 진행되면 내 예언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그럼 차라리 지금 군에 드론 방어가 가능하도록 ROC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거야 이미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시도했죠.”
“…….”
강 대표는 그 말에 눈을 빛내며 쳐다봤다.
부정의 의미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그가 눈매를 찌푸리며 묻는다.
“거절했다고요?”
“우리 군의 제일 큰 문제점이 드러난 거죠. 눈에 보이지 않고 직접 체감하지 않으면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는.”
“하지만 이란 사태를 통해서 드론의 위험성에 대해선 이미 충분히 체감했을 텐데요?”
“소용없었습니다. 합참 관계자는 오히려 우리가 만든 물건에 우리가 당할 가능성이 몇 %나 되냐고 되묻더군요.”
“바보 아닙니까? 우리만 그걸 만들어 낸다는 법도 없는 마당에…… 아니, 당장 중국이나 일본도 비슷한 물건을 만들어 낼 가능성은 왜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제 말이 그겁니다. 하지만 당장 드론 방어시스템까지 도입하면 단가가 확~ 무슨 말인지 아시죠?‘
강 대표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역시나 그도 오랜 방위산업체 관계자로 근무해 왔던 터라 군의 생리를 이해하고 있는 거지.
긴 한숨을 내뱉은 그는 다시 내게 질문했다.
“그럼 이제 어쩌시려고요? 어차피 군이 단가인상을 경계하는 상황이면 우리가 임의로 성능을 높여 개발한 물건이 채택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장은 군의 요구사항을 최대한 맞춰 개발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단 차후 큰 무리 없이 추가 개량이 가능한 수준에서.”
“애초 설계 자체는 생각하시는 방향으로 하시겠다고요?”
“그편이 차후 전면 개량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이익일 테니까요. 한가지 염려되는 점은 도하능력 부여를 군이 끝까지 주장할 수도 있다는 건데, 그 부분은 상의를 해봐야 할 겁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전체적인 비용 증가는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어느 정도 증가분에 대해선 걱정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우린 러시아와 진행 중인 자원개발 사업을 통해 복합소재의 핵심 원료들의 단가를 확 낮춰둔 상태니까. 그 부분에서 엇비슷하게 세이브가 될 겁니다.”
강 대표는 그 말에 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시점에 난 슬그머니 메모리 하나를 꺼내 들었고, 그걸 강 대표가 보는 앞에서 디펜스의 서버에 접속하여 업로드 했다.
“뭐 하시는 겁니까?”
“우리가 개발할 신형 보병 전투차량의 차체 설계도입니다. 보안을 위해서 제가 직접 서버에 업로드 중인 거죠.”
“설계도가 벌써 나왔다고요?”
“놀라실 것 없습니다. 어차피 예정하고 있었던 사업이라서 미리 연구소 인력들을 통해 구축해 두었던 것이니까.”
난 태연히 말하곤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역시 거짓말을 해도 당당하게 해야 의심을 덜 받는달까.
힐끗 쳐다본 강 대표는 딱히 사실관계를 따지려는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매번 접속할 때마다 이 양자 암호생성기를 통하셔야 할 겁니다. 주의하실 점은 모든 작업이 끝나고 다시 자료를 업로드 할 때마다 대표님께서 직접 관여하셔야 한다는 점이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암호생성기를 받아들였다.
다른 회사들에는 없는 독특한 보안 시스템.
대표로서 그런 일에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을 법도 하건만, 벌써 몇 년째 이어져 오던 관행이었던 터라 이젠 그도 그러려니 하는 눈치다.
“그나저나 김 대표님 말씀을 듣자 하니 XK2 파워팩 자체개발 사업 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시라면서요.”
애써 머릿속에서 밀어내고 있던 문제가 다시 들춰졌다.
그 탓에 나도 몰래 인상이 찌푸려지던 차, 강 대표가 호기심 돋는 말을 툭 던진다.
“혹시 자력 개발에 자신이 없으셔서 그렇다면 제가 제안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