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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22화 (12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22화

“조기경보기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도착한 집무실에는 이미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김영기 대표를 비롯하여 안시현 대표와 윤 부회장까지.

아무래도 내 생각보다는 사안이 심각한 것인 모양이었다.

“방금 미 국무부에서 우리의 조기경보기 개발 사업에 대해 딴지를 걸어왔습니다.”

“뭘 근거로요?”

털썩 소파에 앉으며 되물었다.

그 짧은 순간 스친 것은 대체 이 나라는 언제까지 이렇게 매번 참견을 당해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

하지만 막상 김 대표의 입에서 뱉어진 말은 내가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이유였다.

“저 그게, 지난 미국 정권과 모터시치 인수문제로 협상할 당시 회장님께서 하신 약속을 지키라고 하더군요.”

“내가 한 약속?”

“모터시치의 엔진을 이용한 대형항공기 시장진출을 향후 10년 동안 자제한다는 약속 말입니다.”

문득 생각해 보니 그런 약속을 하기는 했었다.

우리의 모터시치 인수에 합의를 해주는 대신 향후 10년간 대형항공기 시장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겠다는.

하지만 그거야 민항기 시장의 이야기고, 이건 사안의 본질 자체가 다르지 않던가.

“우린 지금 민항기 시장개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님은 밝혔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되물었다.

잔뜩 분에 겨운 표정을 짓고 있던 김 대표가 입술을 짓씹으며 말한다.

“당연히 저도 그 주장을 펼쳤습니다만, 영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보고 뭘 어쩌라고요. 설마 또 자신들의 것을 사가기라도 하라는 겁니까?”

갑갑한 마음에 언성이 올라갔다.

순간 힐끗 내 눈치를 살핀 김 대표가 슬그머니 종이 한 장을 들이민다.

“이건 또 뭡니까?”

“미 국무부에서 우리 국방부에 전달한 공문입니다. 내용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현재 미국이 개발 중인 E737AEW&C의 사전판매 허가를 의회에 승인받았다는 소식이죠. 한마디로 방금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신들의

것을 사가라는 겁니다.”

절로 코웃음이 쳐졌다.

이미 이런 경우는 회귀 전에도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었거든.

뭔가를 자체 개발이라도 하려고 하면 자신들의 것을 사가라고 우기고 훼방을 놓는.

뭐 따지고 보면 정찰기 같은 대량제작 품목이 아닌 경우에야 자력 개발보다는 그편이 나을 수도 있기는 한데, 정작 문제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과 성능은 또 그에 못 미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미친, 아직 자신들도 정식 배치도 안 한 것을."

"사실 딱히 문제는 아닙니다. 어차피 호주도 개발을 진행 중인 97년도에 이미 계약을 채결 했으니까요."

"호주의 경우야. 아무튼 이게 지금 4대의 판매 가격으로 제시한 금액이라는 말입니까?”

“네, 게다가 일부 레이더의 성능은 아예 다운그레이드 형임을 공식적으로 명기한 상태입니다.”

“우리 국방부에서는 뭐라고 합니까?”

“거기도 이미 난리가 난 상태죠. 막말로 자력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보다도 훨씬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와중에 성능도 미군 용보다 못한 것을 들이밀고 있으니까요.”

김 대표의 말이 끝맺어짐과 동시에 생각난 것은 마이클이었다.

그라면 혹시 이 사안에 대해서 알고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그에 미치자 즉시 수화기를 들었고, 곧 몇 번의 신호 끝에 마이클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진.

[늦은 밤에 전화를 드려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미국에서 한국을 상대로 아직 개발완료도 안 된 조기경보기 판매를 시도한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하아…….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내 태도에 마이클이 긴 한숨을 뱉어냈다.

굳이 되물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사실 확인을 해 준 느낌이랄까.

난 다시 직설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혹시 보잉의 압력입니까?]

-글쎄요, 국무부가 나선 일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만, 그것 외엔 이유가 있을 턱이 없겠죠.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의견이라곤 해도 그가 저렇듯 확신에 찬 말을 한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큼을 의미하는 것.

이제 이 문제는 단지 전화상으로 해결할 만한 것이 아닌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귀찮게 해드려서 미안하지만 좀 만나 뵀으면 싶군요. 모레 워싱턴으로 제가 직접 가겠습니다.]

마이클은 내 면담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내내 곁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김 대표가 그 순간 대뜸 끼어들며 말한다.

“정말로 미국에 가시려고요?”

“이대로 있다간 사업이 날아가게 생긴 마당인데, 당연히 그래야죠.”

“하지만 아직 우리 정부에서는 이렇다 할 대답을 안 한 상태 아닙니까. 혹시라도 미국을 설득할 가능성도 있고요.”

“그걸 기다렸다간 한세월을 보내야 할 겁니다. 그사이 이게 공론화가 되어 버리면 불리한 것은 우리고. 막말로 보잉의 돈을 받아 처먹은 자들이 전문가랍시고 방송에서 떠들어대기 시작하면 여론이 들끓을 텐데, 그걸

감당하면서 사업이 쉽게 진행되겠습니까?”

김 대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다시 빤히 서류를 쳐다보던 그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혹시 우리 군을 상대로 한 F-15 판매가 무산된 것이 원인일까요?”

솔직히 그럴 가능성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 군의 F-15K 도입이 차후 F-15의 파생형 개발에 큰 역할을 해준 셈인데, 그 역사가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마 저들로서는 재우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느낌이었을 것이고, 그 영향이 이런 형태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죠.”

“그럼 어쩌실 생각입니까?”

“글쎄요.”

어물쩍 대답하는 나를 사람들이 당황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하긴, 지금까지 내가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대꾸를 한 적은 별로 없었으니까.

혹시나 그들이 불안해할까 싶은 마음에 즉시 말을 고쳤다.

“일단 해결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나로선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아서 그렇지.”

“…….”

******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군요.]

이틀 후, 나와 마이클은 워싱턴의 한 호텔에서 대화의 장을 열었다.

그도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꽤 불만이 많았던 듯 만나자마자 거의 한 시간은 보잉을 향한 성토가 이어졌다.

[저들이 제시한 대당 단가가 우리 군 도입예정 가격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죠?]

[그렇습니다.]

[미친! 그동안 로비에 퍼부은 돈을 아주 한국을 상대로 제대로 뜯어낼 모양이네요. 내가 듣기로는 정부 관계자들과 의회에 들인 로비 금액만 수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난 그 말에 피식 웃어 보였다.

의외로 차분한 내 태도가 의아했던 걸까, 마이클이 순간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향해 묻는다.

[그나저나 혹시 뭔가 대책이라도 가지고 온 겁니까?]

[대책이랄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미 정부에서 저에게 약속을 지키라면 지키는 수밖에요.]

[…….]

그는 순간 뚫어져라 나를 쳐다봤다.

의외였던 거지.

내가 순순히 미 정부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말이.

하지만 난 정말로 그럴 생각이다.

단, 약속한 선에서만.

[국무장관께 전해주시죠. 재우는 대형항공기 시장을 10년 동안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해서 우리 군 조기경보기의 기체로 보잉의 것을 사갈 생각이라고.]

[그 말은 자체 개발을 포기하겠다는 말입니까?]

마이클은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럴 리가 있나.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자 그가 눈매를 일그러트리며 나를 쳐다본다.

[전 분명 보잉의 기체를 사가겠다고 했지 조기경보기를 사겠다고는 안 했습니다.]

[그게 무슨…….]

[보잉은 민항기도 판매를 하지 않습니까. 어차피 보잉이 우리에게 제시한 E737 역시 민항기인 737-700을 기반으로 개발중인 물건이고. 하니 우리도 그 기체만 사서 조기경보기로 개조하겠다는 겁니다.]

순간 마이클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입매를 뒤틀어 보이곤 다시 말을 이었다.

[나와 미 정부의 약속은 분명 내가 대형항공기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 것뿐이었지 조기경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니 나로선 대형항공기를 내 손으로만 안 만들면 그만인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보잉에서 과연 기체만 판매를 하겠습니까?]

[보잉이 안 팔면 에어버스의 것이라도 사면 되죠. 미 정부에서 그것까지 막을 명분은 없죠.]

마이클은 연신 헛웃음을 뱉어냈다.

따지고 보면 내 말 어느 한구석 틀린 것은 없으니까.

기가 찼는지 한참을 더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던 그는 장탄식과 함께 말을 뱉어냈다.

[하긴, 미 정부에서도 재우가 그렇게 나온다 해도 할 말은 없죠. 그나저나 일이 그런 식으로 돌아가면 보잉의 처지가 좀 골 때리게 된 것 아닙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죠.]

자신들이 개발하지 않은 장비들까지 가격을 올려서 덤탱이를 씌우려다가 정작 기체만 달랑 팔게 생겼으니까.

설사 기체 가격을 올려받고 싶어도 그럼 내가 에어버스사의 것을 구매하면 그만이니 안 팔기도 또 뭣하고.

[이것 참.]

내 짧은 대답에 마이클이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비록 속으로 한 말들이었지만 마치 그걸 다 듣기라도 한 듯.

이내 내가 준비한 구매요구서를 한참이나 쳐다보던 그는 결국 그걸 가만히 갈무리하며 말한다.

[그런데 나를 앞세우는 이유는 뭡니까. 그런 의사 정도야 직접 전달하면 그만인 것을.]

그 질문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내린 결정을 국무부에 직접 전달하면 끝인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걸로 과연 일이 깔끔하게 끝맺어질까?

내가 아는 미국이라면 그럼에도 온갖 수단을 동원한 압력을 계속할 것이고, 난 지금 그걸 막고자 하는 거다.

[전 말에도 그걸 전달하는 자에 따라 무게감이 달라진다는 것을 믿는 편이거든요. 즉, 단장님처럼 미군 최고 실세 중 한 분이 재우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 상황이면 부담감 자체가 달라진다는 소리죠.]

[…….]

뒷말은 사실 협박성 발언이나 다름없었다.

의미를 정확히 해석한다면 그건 조기경보기 하나로 인해서 재우와 미 국방부와의 관계가 손상될 수도 있음을 전하라는 것이었으니까.

그 탓에 잠시 그의 안색을 살폈지만, 천만다행히도 불쾌한 빛을 내비치지는 않았다.

[하긴, 단지 보잉의 고집으로 우리 국방부가 최고의 파트너 중 하나와 불편해지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겠죠. 좋습니다, 이 사안은 내가 직접 국무부에 전달해 드리죠.]

난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연줄이 중요하다는 것이며 적은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거겠지.

‘쯧.’

그렇고 보면 보잉 이 자식들은 영 바보들 아닌가 싶네.

고작 조기경보기 몇 대 팔아서 얼마나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듯 나를 적으로 돌리려는 것인지 원.

하긴, 그랬으니 결국 미래엔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거겠지만.

[그나저나 몸은 좀 어떻습니까.]

생각이 깊어지던 순간 마이클이 넌지시 물어왔다.

아마도 테러 사건에 대해 묻는 것일 터.

왠지 내색하기가 껄끄러워 옅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자 그가 의외의 말을 던진다.

[범인 중 하나가 중국으로 도주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한데 우리 측 정보에 의하면 북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왜죠?]

당황스러운 마음에 되물었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인 듯 어깨를 들썩여 보인다.

[둘 중 하나겠죠. 돌아가면 닥쳐올 북 수뇌부들의 추궁이 무서워서 아예 못 돌아가고 있거나, 아니면 또 뭔가 일을 꾸미고 있거나.]

[흠…….]

난 마치 풀기 어려운 퍼즐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둘 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명제니까.

문제는 후자 쪽이 답일 경우 나로선 골치가 아픈 일이 또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건데, 그렇다고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아예 정체를 모른다면 또 모를까, 이젠 얼굴마저 알고 있는 놈에게 또 당할 이유는 없거든.

‘쯧, 두렵기는커녕 오히려 놈의 목이 날아가지나 않을까가 걱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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