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19화
“이쪽으로 오시죠.”
다음 날, 나와 안 대표는 고고도 무인정찰기와 공격용 드론 개발팀의 구성을 위해 에어로스페이스를 방문했다.
이젠 KAI와의 합병으로 에어로스페이스라는 이름은 사실상 옛 유물이 되었지만, 아직 공장 곳곳에 매달린 간판에선 그 흔적들이 지워지지 않은 상태.
불현듯 그 모습을 보자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안 대표님. 저 간판 말입니다.”
“네, 안 그래도 저 간판도 곧 철거를 앞두고 있으니 너무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안 대표는 내 의도를 오해한 듯 재빨리 변명에 나섰다.
슬쩍 웃음을 내비치곤 다시 간판을 향해 손짓해 보였다.
“그게 아니라, 에어로스페이스라는 이름을 굳이 버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려는 참이었습니다.”
“갑자기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에어로스페이스라는 이름이 사라져 버리면 제 아버님께서 무척이나 서운해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다른 걸 떠나서 그 이름을 지으신 것이 제 아버님이시거든요.”
“아!”
안 대표는 그제야 이해를 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내 한참을 간판을 쳐다보던 그는 난처하다는 기색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미 사명이 KAI로 통합이 된 마당이라 저 간판을 유지하는 것도 좀 우스운데요.”
“그래서 말인데, 저 이름을 일부 사업부서의 정식명칭으로 남겨두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예를 들면 무인기 분야 개발 부서를 굳이 고고도와 중고도. 그리고 드론 사업부로 나누는 것보다 저 에어로스페이스라는 이름 아래
통합 관리하자는 겁니다.”
“그거 괜찮네요. 안 그래도 무인기 분야의 규모가 예상외로 커질 것 같아서 부서 자체가 하나의 회사가 될 상황이었거든요.”
대꾸하는 안 대표는 꽤 후련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말은 안 했어도 그 부분에 있어선 고민이 많았던 모양새.
헛웃음을 지으며 건물로 들어서려는데, 한껏 내리깔린 안 대표의 말이 날아든다.
“그나저나, 전에 일어났던 사고에 대해서 알려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멈칫, 하곤 다시 그를 쳐다봤다.
주변의 귀를 의식하는 걸까, 잠시 경호원들과 수행 직원들을 뒤로 물린 그는 넌지시 다가와 말을 잇는다.
“오전에 국정원장에게서 연락을 받았는데, 국과수 감식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김재욱의 부검 결과 말입니까?”
“네, 그런데 아무래도 자살 같지가 않다는군요.”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당황스러운 마음에 언성이 올라갔다.
실수임을 깨닫곤 다시 묵묵히 안 대표를 쳐다보자 그가 한껏 톤을 줄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몸 곳곳에 저항의 흔적이 있었답니다.”
“…….”
“쉽게 말해서 누군가 강제로 독을 주입한 것 같다는 거죠. 스스로가 먹은 것이 아니라.”
“그 말은, 그 덤프트럭에 김재욱 혼자 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네, 그 탓에 국정원도 당시 올림픽 대로에서 일어난 사고의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탐문조사를 했는데, 그중 몇몇이 사고 당시 급하게 덤프트럭에서 내려 도주하는 사내 한 명을 봤다는 공통된 목격담을 전해왔답니다.”
어쩐지 뭔가 수상하다 싶었다.
정황에 의하면 김재욱은 빚에 쫓겨 사건에 가담한 존재.
그건 자신의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뜻하는데, 그런 자가 그토록 쉽게 자살을 선택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않던가.
“그래서요, 공범의 신원은 밝혀냈답니까?”
“일단 한중통상 이익환 대표를 체포하여 놈에 대한 신원은 파악했답니다. 뭐 역시나 북에서 내려온 공작원이었던 거죠.”
“흠.”
역시나 북한의 소행은 확실했던 모양이다.
다른 걸 떠나서 사건의 배후를 확실하게 파악하게 된 것만도 나로서는 큰 소득.
그런데 그때, 안 대표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저 그런데, 국정원장의 말에 의하면 아무래도 놈이 중국으로 밀항을 한 것 같다는군요.”
“확실합니까?”
“네, 거의 확실합니다. 이익환 대표의 증언도 그렇지만, 국정원이 따로 인천에서 주로 활동하는 밀항업자들을 추궁한 결과로도 놈의 밀항은 기정사실인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생뚱맞게도 안도감이 들었다.
막말로 놈이 아직도 남한에 남아 있는 상태라면 언제 또 나를 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않던가.
물론 잡았다면야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이런 결과가 나로서는 백배 나은 셈이다.
그런데 중국으로 밀항을 했다면 결국 북으로 다시 넘어가려는 의도인 건가.
그래 봐야 작전 실패로 인해 좋은 꼴은 보지 못할 텐데.
“뭐가 됐건 불안감에 떨며 지낼 필요는 없다는 말이군요.”
웃으며 다시 건물로 들어섰다.
애써 상황을 떨쳐내는 내가 안타까웠던 듯, 뒤따라오는 안 대표가 위로랍시고 조금은 뜬금없는 말을 뱉어낸다.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인데, 앞으로 신변의 위협은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어차피 이젠 국정원에서 적극적으로 회장님 주변을 감시 중이고, 당분간은 러시아에서도 손을 보탤 모양이니까요.”
순간 난 다시 멈칫, 했다.
이내 돌아본 안 대표의 얼굴엔 의미심장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러시아가 손을 보태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실은, 어제 나타샤에게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두목 불곰이 무척이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그 때문에 자신도 당분간은 회장님의 안전을 확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군요.”
“그녀가 내 경호에 합류한다는 말입니까?”
“정식으로 합류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일단 국정원에서 타국의 정보요원과 팀을 이루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뭐랄까, 단지 은밀히 회장님 주변을 감시하는 정도?”
그렇다 해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건 자칫하면 러시아와 북한이 서로 얼굴을 붉힐 수도 있는 문제니까.
물론 테러를 자행하는 것이 떳떳한 일은 아니기에 북한으로서도 딱히 드러내놓고 러시아를 향해 따지고 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들은 정치적으로 끈이 이어져 있는 사이가 아니던가.
“전 솔직히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막말로 러시아로서는 회장님과 벌려둔 사업이 한두 개가 아닌 상황인데, 자칫 했으면 그게 죄다 날아가 버릴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안 대표가 조금은 그럴듯한 말을 던졌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내 표정을 본 그는 슬쩍 주변을 다시 돌아본 후 말한다.
“게다가 지금 러시아 정치권 내에서도 북한을 두고 말이 많다고 합니다. 솔직히 그들의 입장에선 주는 것 하나 없이 매번 떼만 쓰는 것이 북한이라는 존재인데, 그 와중에 이젠 똥까지 뿌려 버렸으니 화가 안 나면 그게
더 이상하죠.”
정말로 푸틴의 생각이 그렇듯 변하고 있다면 우리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만약 그들을 역사보다 확실하게 우리 쪽으로 끌어 올 수만 있다면 북의 고립은 더 가속화될 테고, 그건 곧 저들 정권의 붕괴속도를 높일 테니까.
“조만간 자원개발 문제를 좀 더 확대해야 할 듯하군요.”
“안 그래도 몇 번이고 재촉 전화가 오는 중입니다. 대체 회장님께선 언제 다시 러시아에 방문하시냐고.”
“어차피 올해야 얼마 안 남았으니 내년에나 일정을 잡아봐야겠죠. 그거야 그렇다고 치고, 국정원에선 나타샤의 요구에 대해서 뭐라 언질은 없었습니까?”
난 여전히 그 부분이 궁금했다.
국정원도 자존심이 있는 집단인데, 행여 그걸 허락했을까 싶어서.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당연히 처음엔 반대했죠. 하지만 러시아에서 워낙 회장님과의 사업 관계를 강조하는 터라 조건부로 허락했다고 합니다.”
“조건이라면 어떤 조건 말입니까.”
“일단 국내법을 따라줄 것과 회장님의 출퇴근 외의 활동에선. 그러니까 지금처럼 회장님이 국가적으로 보호하는 산업시설을 방문하는 경우는 접근을 금지하는 것으로 합의했답니다.”
그 점은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였다.
아무리 우호적인 세력이라고는 해도. 그리고 나를 보호한다는 목적이라고는 해도, 타국 정보원이 우리의 기밀시설에 접근하는 것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지.
한데 그 조건에 합의했다는 건 러시아 역시 불순한 의도에서 내 경호를 제안한 것은 아님을 드러내는 건데, 나로선 여전히 걱정되는 부분이 남아 있다.
‘그녀가 과연 우리의 법을 지킬 수가 있을까?’
막말로 수틀리면 그냥 슥, 해버리는 여자가 과연 테러범이 등장했을 시 온전하게 그를 살려둘 것이냐는 거지.
‘쯧, 나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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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하신 것처럼 고고도 무인정찰기 개발팀의 경우는 모든 부서가 통합된 건물에서 상주할 겁니다. 해서 다른 분야보다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 그게 좀 문제군요.”
한동안 이어진 보고가 끝난 후.
사업부가 설치될 건물 곳곳을 들여다보던 안 대표가 문득 문제점 하나를 제기했다.
내가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선택한 보안의 핵심은 바로 철저한 분업화를 통한 정보 유출 방지.
하지만 고고도 무인정찰기의 경우는 워낙 부서 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필요한 터라 그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어쩔 수 없죠. 이번만은 정부의 도움을 받는 수밖에.”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방법이 없다.
다른 걸 떠나서 고고도에서의 결빙 문제는 단지 기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상황.
무장을 비롯하여 여타 시스템 개발자들 역시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선 협력개발을 진행해야 하는데, 분업화를 지향하며 그걸 성공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의 도움을 받는다면, 연구원들 모두를 감시조치 하신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해서 사전에 이번 사업에 투입되는 연구원들 전원에게 동의를 받을 생각입니다. 만약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사업에서 제외합니다.”
“하긴, 자력개발이라고는 해도 국가 전략사업이나 마찬가지인 마당이니 정부도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지는 않겠군요.”
안 대표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또 무슨 생각을 한 건지 힐끗 나를 쳐다보더니 불쑥 질문을 하나 던진다.
“그런데 고고도 무인정찰기에 굳이 무장을 탑재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
“그러니까 제 말은, 차라리 고도도 정찰기의 경우는 그냥 본연의 정찰 임무만 감당하고 정작 요격체는 중고도 정찰기에 탑재하여 운용하는 편이 기술적으로 덜 어렵지 않겠냐는 거죠.”
“기술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편이 손쉽기는 하죠. 어차피 두 기체 모두 개발을 하는 상황이면 동시 운용이 가능하기에 대응속도에서 그리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실은 미국도 무장은 중고도 정찰기에 주로 탑재하여
운용하기는 합니다.”
“그러니까요, 그 마당에 회장님은 왜 굳이 고고도 정찰기에 무장 탑재를 고집하시냐는 걸 묻고 있는 겁니다.”
“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중고도 무인기 정도의 규모로는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작전 반경과 탑재 가능한 탐지 수단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둘째, 우리가 현재 개발하고 있는 극초음속 요격체의
무게와 크기 역시 중고도 무인기가 감당할 수준은 아니라는 거죠.”
“그럼 기골을 보강하고 추진수단을 힘 좋은 제트 엔진으로 바꾸면 되지 않습니까. 아! 기왕이면 덩치도 좀 더 키우면 탐지수단도 충분히 확보되겠네요.”
“그럼 그게 고고도 무인정찰기와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안 대표는 순간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하하! 그러네요.”
이내 자신이 뱉어낸 말이었음에도 어이가 없었던 듯 머쓱한 웃음을 내비쳤고, 난 그 시점에 슬쩍 시계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튼, 보안 문제는 안 대표님께서 정부에 건의를 좀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죠. 한데 어딜 또 가시려고요?”
“병원에 좀 가보려고 합니다.”
“병원에는 왜요? 아직도 불편한 것이 있습니까?”
“아니요, 장애가 남았다는 정태우 경호 요원을 좀 찾아가려고 합니다.”
“거긴 이미 제가 다녀왔습니다만.”
“압니다. 하지만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냥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