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17화
“괜찮으십니까, 회장님!”
김영기 대표와 김 비서. 그리고 그룹의 임원들은 뒤늦게 소식을 듣곤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나마 약간의 찰과상 외엔 별다른 이상은 없던 상태.
하지만 아직 남은 검사는 10여 가지에 이른 상태였고, 난 의사의 충고대로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는 중이었다.
“오는 길에 간호사를 만나서 물었더니 안 대표와 양 비서도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답니다.”
행여 내가 궁금해할까 싶었던 듯 김영기 대표가 두 사람의 소식을 알려왔다.
사실 그들이 멀쩡하다는 거야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경호 요원들이었기에 슬쩍 그들의 상태를 물었다.
“경호 요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김영기 대표는 짐짓 뜸을 들였다.
스치는 불길한 예감.
말없이 그를 쳐다보자 난처한 표정과 함께 말을 잇는다.
“8명 중 6명은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데, 1명은 갈비뼈가 여섯 개나 부러지는 중상. 그리고 1명은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흠.”
안타까운 마음에 입술을 깨물었다.
동시에 든 생각은 놈을 어떻게 해서든 잡아야만 한다는 의지.
즉시 김영기 대표를 향해 묻자 그가 힐끗 김 비서와 눈빛을 교환한다.
“왜요, 놓치기라도 한 겁니까? 올림픽 대로 같은 정체 구간으로 진입했다면 도주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네, 결국 잡히기는 잡혔습니다만…….”
김 대표는 어물쩍 대답하며 TV를 향해 다가갔다.
이내 전원을 켜고 채널을 돌리는가 싶더니 웬 뉴스 프로그램에 채널을 고정한다.
[오늘 오전 올림픽 대로에서 10중 추돌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기자의 멘트와 함께 화면에 등장한 것은 올림픽 대로였다.
이건 무슨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혼란스러운 현장.
난 즉시 휙 하고 김영기 대표를 쳐다봤고, 그제야 멈췄던 그의 대꾸가 이어졌다.
“놈이 경찰에게 쫓겨 도주하던 중에 일으킨 사고들입니다.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지만 1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회장님의 사고는 그룹 차원에서 뉴스가 나가는 것을 차단해둔 상태입니다. 그게 세간에
알려져 봐야 기자들 등쌀에 회장님만 피곤해지실 테니까요.”
사실 그 부분은 나도 원하던 것이었다.
이건 누가 봐도 테러에 가까운 상황인데, 그걸 기자들이 냄새라도 맡는 날엔 꽤 시끄러워질 테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범인은 어떻게 됐죠?”
“범인은 자신의 차량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죽다니, 왜요? 경찰이 총이라도 쐈답니까?”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마지막 차량을 들이받고 멈춘 놈의 차량을 덮쳤더니 이미 죽어 있었다고 하더군요.”
“죽어 있었다고요?”
“좀 의심스러운 것은 놈이 다량의 토사물을 뱉어낸 상태로 온몸은 마치 마른 북어처럼 굳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게 무슨 의미죠?”
“그건 음독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김영기 대표가 아닌 병실 문 쪽에서 들려왔다.
힐끗 시선을 주자 그곳엔 나처럼 환자복을 입은 안 대표가 서 있었다.
“구토 증상과 함께 몸이 마비가 오는 것은 테트로도톡신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하니 음독자살을 의심해봐야죠.”
사실이라면 문제가 심각했다.
고의로 내게 위해를 가한 것에 이어 음독자살까지.
이건 아무리 봐도 일반인의 소행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던가.
“혹시 북의 소행인 겁니까?”
“그거야 조사를 해 봐야 답이 나올 겁니다.”
“…….”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 중 회장님에게 그렇게까지 위해를 가할 정도로 원한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고 최근 나타샤가 회장님에게 했던 경고를 생각하면 확실히 가능성은 큽니다.”
“이것 참.”
머릿속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다른 걸 떠나서 북한이 이렇듯 내게 위해를 가한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거든.
아무리 그들이 막 나가는 집단이라고는 해도. 그리고 현재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이라지만, 이건 자칫 그들에게도 부담이 될 만한 일이 아니던가.
[조금 전 경찰은 사고를 일으킨 사내의 신원을 확인했음을 알려왔습니다. 이름은 김재욱. 신림동에 거주 중인 36세 남성으로 밝혀졌으며 그의 집에선 신변을 비관하는 다량의 유서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때 속보의 형식을 빌린 뉴스가 다시 TV를 통해서 전해졌다.
여태 우리가 했던 추측을 완전히 무너트려 버리는.
“남한 사람이라고?”
역시나 황당했던 듯 서로를 쳐다본 김 비서와 김영기 대표가 동시에 말을 뱉어냈고, 난 즉시 손을 내저어 그들을 침묵시켰다.
“이것 봐라?”
사람들은 짓씹은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내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혹여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걸까, 순간 안 대표가 한마디를 보탰다.
“이 새끼들, 영 발전이 없네.”
*********
“역시 우리 예상이 맞았습니다.”
이튿날 다시 내 병실을 찾은 안 대표의 손엔 수십여 장의 종이들이 들려 있었다.
흔들리는 종이 사이로 얼핏 눈에 들어온 것은 국정원의 로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그를 쳐다보자 씨익 하는 미소가 날아든다.
“네, 국정원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순순히 협조를 해주던가요?”
“어차피 경찰을 통해서 곧 언론에 발표될 내용이니 상관은 없습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예상대로 놈은 북에 포섭된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사진 몇 장을 내게 건넸다.
나로선 잊을 수가 없는 김재욱과 누군가가 무언가를 주고받는 모습이 담긴.
“이 사람은 누굽니까?”
즉시 안 대표를 쳐다보며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자 그가 곧바로 말을 잇는다.
“한중통상 대표 이익환. 국정원에서 고정간첩으로 확신하고 있던 자입니다. 그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파악한 국정원에서 뒤를 쫓다가 한 달 전쯤 찍은 사진이라더군요.”
“그럼 김재욱이 이자에게 포섭되었다?”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조사 결과 억대의 빚에 시달리고 있던데, 그 정도면 사실 악마와도 손을 잡고 싶은 것이 사람 심리니까요.”
“흠.”
그 말에 문득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테러를 가하는 주제에 빤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던 놈의 그 어설픈 행동.
확실히 그건 프로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지.
하지만 의문이 남아있는 것은 여전하다.
빚을 갚기 위해 이런 일 마저 할 수 있다는 건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는 의미.
그런 자가 자살을 선택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걸까?
“그나저나 국정원에서 회장님께 볼 낯이 없다고 전해달라더군요.”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안 대표가 뜬금없는 말을 뱉어냈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병실과 나, 그리고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다시 말한다.
“국정원에서 김재욱에게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번 사고를 미리 막을 수 있었을 것 아닙니까. 뭐 말로는 놈이 이익환 대표와의 만남 이후 한 달 가까이 수상쩍은 행동이 없어서 잠시 방심했었다는데, 결론적으로는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죠.”
어쩐지 순순히 정보협조에 응한다 싶더니 그게 이유지 싶었다.
아무리 곧 언론에 발표할 사안이라고는 해도 이 정부의 성향상 민간에 정보를 유출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울까.
결국, 자기들도 지은 죄가 있으니…….
‘가만, 그러고 보니 김재욱의 정체는 왜 언론에 공개한다는 거지?’
그걸 알렸다간 괜히 사회적인 혼란만 더 가중될 마당에.
“김재욱의 정체는 왜 공개한다는 겁니까?”
의아한 마음에 즉시 되물었다.
뒤늦게 그걸 따지는 내가 우스웠던 듯 그가 입매를 뒤틀며 말한다.
“이번 정부 들어서 정보의 투명성이 강조되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괜히 숨기고 있다가 냄새라도 맡은 기자들이 달려들어 사실을 파헤치면 더 곤란해질 거라고 생각한 거겠죠.”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는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사회.
당장 혼란을 피하겠다고 어설픈 대처를 했다가 차후 그걸 가래로 막아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
‘문제는 기자들이 분명 김재욱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근본적인 원인을 파헤칠 것이라는 점인데.’
그 경우 내가 다시 피곤해질 가능성이 크다.
“흠.”
“그나저나 정태우 요원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정태우는 아직 의식을 못 찾고 있다는 경호 요원의 이름이었다.
때마침 궁금했던 터라 휙 쳐다보자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다행히 의식은 차렸답니다.”
“그래요?”
“저 그런데…….아무래도 장애가 남을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습니다.”
잠시 올라왔던 기쁜 마음은 다시 가라앉았다.
건강했던 사내가 장애를 짊어지게 됐다는 것만큼 청천벽력이 또 어디 있을까.
그나마 가라앉았던 분노가 다시 들끓는다.
“일단 사고를 당한 경호 요원들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지급하세요. 주의하실 점은 절대로 섭섭하다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되는 수준이어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장애가 남는다는 분은 본사에서 따로 적성에 맞는
자리를 마련해 주시도록 하고요.”
“알겠습니다.”
안 대표는 당장이라도 내 요구사항을 실행할 듯 돌아섰다.
순간 떠오르는 또 하나의 사실.
다급히 그를 부르며 말했다.
“참, 탈레스와 쌍웅 자동차에 연락해서 방탄차량을 5대쯤 더 생산하라고 해주십시오.”
“그, 그걸 다 어디에 쓰시게요?”
“앞으로는 경호 인력들도 방탄차량을 사용하게 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또 언제 이런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마당에 불안에 떨며 나를 경호하게 만들 수는 없지 않습니까.”
“…….”
“그리고 또 한 가지. 무인기 사업은 내가 퇴원하는 즉시 시작할 테니 미리 사업부를 개설해 두세요. 참고로 고고도 무인 정찰기 개발과 동시에 공격용 드론 사업도 동시에 시작할 겁니다.”
“공격용 드론이요?”
“네, 일명 자폭 드론.”
안 대표는 부쩍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관하지 않은 채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북한을 상대로 당장 복수할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최소한 지금보다 더 불안에 떨게는 만들어줘야죠. 이젠 밖을 나돌아다니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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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며칠 전 있었던 올림픽 대로에서의 사고를 북의 소행에 의한 테러로 규정했습니다. 이로써 유엔을 통한 항의 및 제재안을 마련할 생각이며…….]
병실 생활도 어느덧 3일째였다.
첫날엔 멀쩡하던 몸이 이젠 안 쑤시는 곳이 없을 정도.
교통사고는 며칠 지나 봐야 그 영향이 온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끙!”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힘에 겨운 터라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곁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김 비서가 즉시 몸을 일으키더니 재빨리 팔을 붙잡는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습니다. 김 비서는 그냥 하던 일 하세요.”
그녀는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내가 무슨 중환자도 아니고.
고작 사고 후유증 정도로 남에게 몸을 맡기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진현철 부회장님께서 오후에 방문하시겠다는 연락을 주셨습니다.”
“아니, 웬만하면 아무도 오지 말라고 하세요.”
그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막상 조용한 병실에서 홀로 있다 보니 그 여유를 잃어버리기가 싫달까.
오죽했으면 안 대표도 어제 이후로는 방문을 사절하고 있는 중이다.
똑똑!
하지만 내 바람은 매번 무참히 무너진다.
하루에도 열두 번은 더 찾아오는 손님들.
이번엔 또 누군가 싶어 벌컥 문을 열자 문 앞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이 웃는 낯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서실장님께서 여긴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