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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15화 (11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15화

이용문 회장의 죽음으로 받은 한국 경제계의 충격은 예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언론의 관심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삼정 그룹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

하긴, 아직 상속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삼정으로서는 이 회장의 죽음이 자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 봐야 좋을 것은 없었을 거다.

<그럼 지금부터 비전 2004의 출범에 앞서 신임 그룹 대표들의 임명식을 거행하겠습니다.>

2004년 1월.

삼정의 혼란과는 달리 재우 그룹은 20여 계열사 전체에 대한 인사이동을 실시했다.

오늘은 그 주인공들을 위해 전 임원들이 강당으로 모인 상태.

평소와는 달리 임명장을 직접 수여하기로 했는데, 그건 그룹 역사상 최대폭의 인사이동을 기념하자는 진 회장의 뜻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다.

“임명장, 윤상현.”

예정대로 윤 대표와 현철은 부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임명장 김영기.”

김영기 부사장도 이젠 어엿한 탈레스의 대표가 되었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회가 새로웠던 듯 임명장을 받아드는 김영기 대표의 손은 남들보다 유독 떨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국정원장님. 아니, 이젠 대표님이라고 해야겠군요.”

한때 정부로부터 인천공항 대표직을 제안받았던 안시현 국정원장은 결국 KAI의 대표직을 수락했다.

이유는 오로지 일에 대한 열정을 또 한 번 불태우고 싫어서…… 라고 하는데, 사실 그 같은 성격의 인물이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아마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김영기 대표의 전언이다.

“축하는 회장님이 받으셔야죠. 이젠 어엿한 국내 3대 대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리셨는데.”

행사가 모두 끝나고 간단한 다과회가 이어지는 자리.

안시현 대표는 특유의 호탕한 말투로 말을 뱉어내다간 짐짓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스스로도 목소리 톤이 과했다는 것을 인식한 거지.

그렇다고 평소 말하던 습관이 있는 마당에 어디 그게 쉽게 고쳐질까.

그나마 주변을 의식하기 시작한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나저나 신임 국정원장 자리엔 의외의 인물이 오르셨더군요.”

그 점은 꽤 의외였던 터라 넌지시 물었다.

역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인물이기도 했거니와 하필이면 국정원장 자리를 학자 출신이 자치했다는 것도 예상 밖이었거든.

놀라운 것은 그가 취임 이후 실시한 첫 조치가 해외정보 파트를 대폭 확대한 것이었는데, 덕분에 앞으로 국정원의 정보력이 전보다 훨씬 탄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양태용 교수가 딱히 의외의 인물은 아닙니다. 교수가 되기 전에는 대령까지 달고 군을 예편한 친구니까요”

그건 또 의외의 소식이었던 터라 관심이 갔다.

대령까지 달았을 정도로 오랜 군 생활을 했던 자가, 그것도 사관학교나 국방대학도 아닌 일반 학과의 교수가 되는 것은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니까.

설명을 재촉하는 눈빛을 보이자 안 대표가 다시 말을 잇는다.

“예편 이후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으로 공부를 했다더군요. 이후 대학원을 거쳐 박사학위까지 받나 싶더니 결국은 교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그 정도면 대단한 수준을 넘어서 거의 독보적인 존재 아닙니까?”

“이 나라의 현실을 생각하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을 해낸 거죠.”

들으면 들을수록 호기심이 돋는 인물이었다.

뭐 조만간에는 만나볼 날이 있겠지.

어차피 나 역시 정부의 대북 자문단 중 하나인 만큼. 왠지 그날이 기대된다.

“참, 이번에 차량도 바꾸셨다면서요.”

안 대표는 새로 바뀐 내 차량에 부쩍 관심을 보였다.

하긴, 대통령을 제외하곤 유일하게 나만 소유한 것이니까.

우려와는 달리 제법 성능도 괜찮은 편이었는데, 6톤이 넘는 무게였음에도 기존 차량 들과 비교해서 전혀 주행능력이 뒤처지지 않는다.

“어디 차량뿐이겠습니까. 이 조끼를 좀 보십시오.”

슬쩍 수트 상의를 거두어 보이며 말했다.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빤히 그걸 살피던 안 대표는 내 입에서 그게 방탄조끼라는 말을 듣고서야 웃음을 뱉어낸다.

“누구 작품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겠군요. 그러고 보면 김장관. 아니 김 대표도 고집 하나만큼은 참 대단한 사람이에요.”

“뭐 매사에 조심성이 강한 성격이신 걸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불만은 없습니다. 덕분에 이렇듯 착용감 좋고 성능 좋은 방탄조끼를 다 얻어 입어 보는 상황이니까.”

아닌 게 아니라, 내게 제공된 방탄조끼의 성능은 꽤 괜찮은 편이었다.

기존보다 금속 해면체의 부피를 줄인 탓에 철갑탄에 대한 방호력은 사라졌지만 어지간한 소총탄을 방어하는 것은 가능한 수준.

사실 민간이 철갑탄을 맞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 그 부분을 포기하고 이렇듯 착용감 좋게 만들어내는 편이 현명한 거다.

“그 정도면 대량 생산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우린 몰라도 미국처럼 총 얻어맞기 좋은 나라에선 제법 인기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설명을 들은 안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곤 곧 고개를 갸웃하는 폼이 막상 농담처럼 던지긴 했어도 그게 아예 가능성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라도 한 모양이다.

“회장님.”

한참 안 대표와 대화를 잇던 와중, 김영기 대표가 다급히 달려왔다.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있는 것으로 봐선 어딘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던 듯한 모양새.

아니나 다를까, 코앞에까지 다가온 그가 불쑥 자신의 휴대폰을 내민다.

“방금 이스라엘 항공산업(IAI)의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었습니다.”

“……뭐라고 하던가요?”

“이틀 후 한국을 방문하고 싶은데 회장님 스케줄이 어떻게 되시냐고 묻더군요.”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굳이 이 먼 곳까지 오겠다는 것은 사업을 진행할 마음이 있음을 의미할 테니까.

그동안 하도 연락이 없어서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고 있었건만, 다행히 그건 아닌 모양이다.

‘직접 한국으로 날아온다는 말이지…….’

******

이틀 후, 나와 국정원장. 아니 안시현 대표는 인천 국제공항 입국장에서 대기 중이었다.

목적은 IAI사의 대표인 아담 마커스를 맞이하기 위해서.

안 대표는 굳이 나까지 공항에 올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디 그럴 수 있나.

어쩌면 향후 중요한 파트너사가 될 수도 있을 회사의 대표를 맞이하는 자리인 만큼 난 애써 자리를 고집했다.

“입국 수속이 지체되는 모양이군요.”

항공편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것이 벌써 30분째였다.

그럼에도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할 터.

결국, 기다림에 지친 안 대표가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나서려 했다.

“잠시만요.”

그때, 게이트가 열리며 우르르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행여 그냥 지나칠까 싶었던 듯 안시현 대표는 즉시 곁에 있던 그의 비서에게 눈짓했고, 곧 비서의 손에 들려 있던 피켓이 힘차게 들려 올라갔다.

“저 사람인 모양인데요?”

조금 후, 안 대표가 누군가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시선을 오로지 피켓에만 고정한 채 유유히 다가오고 있는 중년의 사내.

눈이 나쁜 건지 내내 찡그린 얼굴이던 그는 피켓에서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후에야 표정을 밝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담 마커스입니다.]

[환영합니다, 재우 그룹의 대표 진현승입니다.]

악수를 나누는 것과 동시에 사내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토종 유대인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어찌 보면 외려 아메리칸에 가까운 얼굴.

영어 발음도 거의 원어민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것으로 봐선 건국 이후 따로 이스라엘로 건너간 세대의 후손인 느낌이다.

[오시는 길이 꽤 지루하셨겠습니다.]

차량이 대기 중인 곳으로 향하는 동안 우린 짧은 대화로 분위기를 풀었다.

뭐 그래 봐야 대화의 주제는 거의 이라크의 현 시국에 대한 것들.

마침 후세인의 행적이 주제가 되어 갈 때쯤 다가온 내 차가 벌컥 문을 열었고, 저절로 열리는 차 문에 놀란 아담이 멍하니 나와 차를 번갈아 쳐다봤다.

[승용차에 자동문을 설치한 겁니까?]

[네, 어쩌다 보니…… 일단 타시죠.]

난 별스럽지 않다는 듯 대꾸하곤 차에 올랐다.

호기심을 자극한 걸까, 그는 차에 오르자마자 연신 내부를 살피기 시작한다.

[이거 혹시 방탄차량인 겁니까?]

난 웃음으로 무언의 긍정을 표했다.

일개 사업가가 방탄차량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듯 아담의 눈은 더 커다래졌고, 앞에 앉아 있던 안 대표는 자랑하듯 말을 뱉어냈다.

[폴라베어의 방호 시스템을 적용한 차량입니다. 모르긴 해도 미국 대통령의 차량과 맞먹는 수준의 방탄 성능을 지녔을 거라 자부하죠.]

그 말에 아담이 다시 나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이후 한참을 침묵하던 그는 목적지인 본사에 도착할 때쯤이 되어서야 넌지시 입을 열었다.

[민간인이 방탄차량을 써야 할 정도라니…… 우리 이스라엘만 늘 긴장감 속에 사는 것은 아니었군요.]

응?

[하긴 한국도 휴전 중인 국가니까…… 이런 면에선 참 동질감을 느낍니다.]

……뭐라는 거야, 이 인간.

******

[새로운 이라크 정부의 성향은 아직 파악 중입니다.]

우린 회의 앞서 한동안 중동의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놀라운 것은 그가 향후 이라크의 혼란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다는 것.

최근 이스라엘군이 편재를 바꾸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은 그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한 가지 알아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대화를 시작 한지 대략 30분쯤 지났을까, 아담이 갑자기 난색을 표하며 말을 머뭇거렸다.

마치 꺼내기 어려운 말이 있기라도 한 듯.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하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아시다시피 우린 국영기업입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만.]

[문제는 국영기업의 경우 한번 포기한 사업을 다시 살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거죠. 쉽게 말해서 공동개발은 불가능하다는 소립니다.]

[…….]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이 치켜 떠졌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경우.

그가 갑자기 대화의 주제와는 동떨어진, 자기 자랑질을 내뱉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이스라엘의 무인기 기술이야 미국을 능가하고 있기는 하죠. 고고도에서의 결빙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것은 물론, 각종 감지 센서의 수준도 미국이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입니다.]

[…….]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중고도도 아닌 고고도에서의 혹한 환경에서도 무장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들으면 들을수록 의도를 알 수 없는 태도였다.

그렇다고 ‘어차피 사업 진행도 불가능한 판국에 여기까지 와서 웬 헛소리를 뱉어내고 있느냐.’는 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속으로 연신 참을 인忍 자를 그려가며 끝까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무튼, 우리가 고고도 정찰기의 개발에 다시 뛰어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른 걸 떠나서 우리 의회가 승인할 가능성이 전혀 없거든요.]

그는 마치 쐐기를 박듯 마지막까지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말에 난 여태 속에서 그려가던 참을 인(忍)자에 찍 하고 획을 그어 버렸고, 역시나 인내심이 바닥난 안 대표도 버럭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럼 대체 이 먼 곳까지는 왜 온 겁니까?]

씨익.

그때, 아담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순간 뇌리를 스쳐 가는 무언가.

가늘어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자 역시나 그가 내 추측과 일치하는 말을 뱉어낸다.

[난 공동개발이 힘들다고 말했지 협력을 못 하겠다고는 안 했습니다.]

[…….]

[원하신다면 지금껏 내가 말했던 기술들을 재우에게 팔 의향이 있다는 소리죠.]

[…… 네?]

안 대표는 순간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건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전개.

절로 튀어나오는 침음성을 삼키며 넌지시 그에게 물었다.

[그게…… 가능합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지금껏 내가 열거한 기술 중에서 우리 정부가 수출제한을 건 것은 단 하나도 없으니까. 물론 일부 센서들이야 승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긴 해도 상대가 대한민국이고 또 재우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

[굳이 문제가 될 것이 있다면 레이더인데, 그거야 재우가 우리보다 앞선 상황에서 기술수입을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하니 정작 방해요소는 하나도 없는 셈이죠.]

레이더 기술이야 당연히 수입할 이유가 없다.

당장은 우리가 가진 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미국도 앞서는 마당에야.

그나저나 워낙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는 터라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IBIS를 포기한 근본적인 이유가 뭡니까?]

아담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듯 안색을 굳혔다.

뭐 미안한 일이기는 해도 이 상황에서 따질 것은 따져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기술판매에 대한 의욕을 보이는 것은 뭔가 수상하거든.

난 분명 저들이 공동개발을 거부하고 기술을 판매하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부터는 그걸 밝혀야 할 때다.

[이것 참…… 좋습니다.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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