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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14화 (11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14화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그날 늦은 오후, 난 곧바로 일원동에 있는 삼정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냄새를 맡은 기자들로 인해서 병원 입구는 인산인해를 이룬 상태.

회사 차원에서 아무리 언론을 막고 있다곤 해도 이런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만큼은 그것도 한계가 있나 보다.

“어! 저기 재우 그룹 진현승 회장 아니야?”

제법 먼 거리에서 내렸음에도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곧 우르르 나를 향해 달려오는 기자들.

이후 쏟아지는 질문은 대부분 이용문 회장의 상태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걸 나한테 물어봐야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길 좀 비켜주시죠.”

난 한껏 진중한 표정으로 일갈했다.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던 걸까, 일순 기자들이 조용해지며 스르륵 길이 열린다.

“이 회장님의 상태에 대해선 삼정 측에서 따로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니. 여기서 이러시지들 말고 차라리 삼정에서 준비 중인 기자회견장으로 가시죠.”

한바탕 말을 쏟아내곤 즉시 병원으로 들어섰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열심히 기자들을 차단하고 있던 삼정 측 경호원들 일부가 나를 발견하곤 즉시 달려왔고, 곧 이용문 회장이 입원 중인 병동으로 길을 안내했다.

‘심장마비라…….’

그건 사실 회귀 전 이 회장이 죽음을 맞이한 원인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게 무려 10년 이상을 앞당겨 일어났다는 사실.

역시나 이것 또한 나비효과에 의한 결과일까.

그렇다 해도, 하필 이런 상황으로 나비효과가 펼쳐질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기에 당황스러움은 배가 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진 회장님.”

특실 로비에 있던 이영훈 회장. 아니 지금은 삼정전자 상무직을 담당하고 있는 그는 나를 보자 반색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따지고 보면 나와는 몇 번 얼굴을 마주했었던 것이 전부인 상태.

하지만 나와 이 회장과의 관계가 워낙 돈독했던 터라 그나 나나 왠지 남 같지 않은 느낌인 것은 사실이다.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

넌지시 묻는 말에 이영훈의 고개가 가만히 가로저어졌다.

역시나 힘든 상황인 건가.

만약 그렇다면 이영훈에겐 그야말로 청천벽력인 상황일 거다.

그나마 회귀 전에는 이영훈이 어느 정도 회사를 장악하고 난 후였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이것 참…… 앞으로 삼정의 미래가 짐작이 안 가는군.’

난 잠시 한숨을 내쉬곤 유리문 건너편에 누워 있는 이용문 회장을 쳐다봤다.

온갖 생명유지장치를 매단 채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

한 시대를 풍미한 거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모습이다.

“어제 오전에 운동 겸 산책을 나가셨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온 이영훈이 구체적인 정황설명을 잇는다.

여전히 이용문 회장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만 끄덕이자 그 역시 창 안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놀란 경호원들이 응급조치는 취했지만, 구급대가 도착하는 시간이 너무 지체된 것이 타격이 크다고 하더군요.”

산행 중이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119가 무슨 슈퍼맨은 아니니까.

문제는 심 정지상태가 길었다면 회생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건데.

나로선 다시 한번 삼정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의사는 뭐라고 합니까.”

“사실상의 코마 상태라서 더 손쓸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일단 한 줄기 빛이라도 생기길 기대해봐야죠.”

달리 할 말이 없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대뜸 상속문제를 거론할 수도 없고, 앞으로 한동안은 삼정을 중심으로 경제계에 엄청난 파고가 몰아칠 거라는 말을 해 줄 상황도 아니니까.

그나저나 그 어마어마한 상속세 문제를 비롯하여 후계구도의 확립까지.

대체 그걸 다 어떻게 처리할지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나저나, 최근 재우 반도체 연구소에서 45나노 공정 개발에 성공하셨다고요?”

난 간신히 상황에 걸맞지 않은 말을 억누르고 있는데, 대뜸 그가 스스로 암묵적인 룰을 깨버렸다.

냉정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어찌 보면 또 그만큼 절실함에서 오는 태도였을 터.

슬쩍 주변을 살피곤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럼 예정대로 저희가 최우선적으로…….”

“그렇게 되겠죠.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뭐 회장님과 따로 조건을 다시 협의하는 것으로 합의는 했었는데, 일단 그 문제는 차후 상황이 좀 정리가 된 후에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하죠.”

상황 탓인지 그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한동안의 침묵.

난 한참을 의식을 헤매고 있는 이용문 회장을 쳐다보며 안타까움의 한숨을 뱉어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군. 저 거물의 운명이 이대로 끝난다는 것이.’

******

[삼정 그룹의 이용문 회장이 심장마비로 쓰러져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삼정 그룹은 당분간은 그의 회복을 지켜볼 생각이며…….]

이용문 회장의 소식은 한동안 대한민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다.

처음에는 경제계 거목이 쓰러졌다는 사실에 의한 충격이 온 나라를 패닉에 빠지게 했고, 이후 현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쯤엔 차차 후계자 확정에 관한 문제로 관심의 방향이 이동.

그리고 대략 한 달쯤 시간이 흐른 후엔 상속과정에서 발생할 세금 문제가 온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었다.

[삼정그룹은 오늘 제한모직과 삼정물산과의 합병을 공표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삼정의 지배구조 개편은 원 역사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좋지 않은 방법으로.

이건 한마디로 개구리가 공룡을 집어삼키겠다는 건데, 당연히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문제를 제기할 만한 일이었다.

[삼정물산의 소액 주주들은 오늘 불공정한 합병 비율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예상대로 증권가의 술렁임은 시작됐다.

이후 사람들의 관심이 쏟아진 것은 막대한 지분을 틀어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하지만 그 역시 원 역사를 그대로 답습했고, 정치권에선 그 문제로 인해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오늘 오전 대한일보에선 이용문 회장의 사망설을 제기했습니다.]

이 회장의 상태에 대해 워낙 철저하게 함구하다 보니 아직은 생과 사의 기로에서 헤매고 있는 그의 사망설이 뉴스를 장식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 역시 역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상황.

사안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결과 역시 원 역사를 따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영훈의 삼정전자 장악.

그리고 한동안 이어질 불법 승계과정에 대한 논쟁.

그리고…… 지루한 법적 싸움.

그런데 만약 이영훈이 정말 법적 제재를 받게 되면 삼정은 어떻게 되는 거지?

“도착했습니다.”

라디오 뉴스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덧 차량이 미사일 개발센터로 진입한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비가 오고 있기 때문일까, 창밖은 오늘따라 유독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아이고! 오셨습니까, 회장님.”

“깜짝이야.”

막 차에서 내린 순간 뒤에서 성호 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던 터라 몸이 절로 흠칫했고, 곧 발견한 놈은 캔 커피 하나를 손에 쥔 채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해?”

“뭐하긴 뭐하겠어. 식후 휴식을 즐기는 중이지.”

그 말에 피식 웃어 보이곤 앞서갔다.

휴식을 방해받아서일까, 놈이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며 따라붙는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왜 여기까지 내려온 거야?”

“네게 전해줄 중요한 자료들이 있어서.”

놈의 질문에 지나가듯 대꾸하곤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예상과는 달리 깔끔하기 그지없는 모습.

하긴, 온갖 화학물질들을 다루는 곳이 너저분한 환경이었다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을 거다.

슥.

난 잠시 주변을 살피곤 놈에게 메모리 하나를 건넸다.

눈치가 빤한 놈은 내 행동의 의미를 이미 이해한 듯 재빨리 그걸 갈무리하곤 되묻는다.

“이건 또 뭔데?”

“상승단계 요격추진체의 핵심기술. 그게 있어야 진정한 극초음속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해.”

“…….”

“참고로 이건 절대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오픈하면 안 돼. 개발 단계에서도 철저하게 분야를 나눠서 실체 자체를 연구원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 필수고.”

놈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더. 보안을 위해서 이 메모리 안의 내용은 연구실로 들어가는 즉시 메인 서버에 업로드 해둬. 거긴 양자암호로 보호를 받고 있으니 누구도 접근이 불가능할 테니까.”

“그럼 이 메모리는?”

“바보냐? 당연히 폐기해야지. 실험실에 있는 소각로에 던져 버려.”

워낙 진중했던 내 표정 탓에 놈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왠지 믿음이 가지 않는 상황.

난 결국 놈을 끌고 직접 서버로 향했고, 데이터의 업로드는 물론 메모리의 폐기까지 직접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그런데 진정한 극초음속 기술이라면 대체 속도를 어느 정도나 구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거야?”

“이론대로라면 마하 13 정도.”

소각로 속에서 천천히 녹아들고 있는 메모리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순간 딸꾹질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놈이 황당한 얼굴로 내 소매 깃을 잡아당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러시아와 공동 연구 중인 극초음속 추진체도 마하 6이 한계라면서.”

“맞아, 하지만 그건 단독추진방식의 경우고, 그걸 또 다른 추진체가 마하 6 이상의 속도로 밀어줄 수 있는 경우는 관성에 따라 최고 12 이상까지 끌어 올릴 수 있어. 실은 그게 바로 이중연소방식의 특성이거든.”

“그럼 중간에 추진체를 하나 더 끼워 넣겠다는 거야?”

성호는 역시나 상황을 이해하는 속도가 남달랐다.

단지 그 말만을 듣고도 정확히 내 의도를 유추하고 있으니까.

보다 자세한 설명을 위해 근처에 있던 종이와 펜을 가져와선 로켓의 주요 구성도를 그려 보였다.

“우리가 개발할 미사일은 총 3단 추진 방식으로 갈 거야.”

“……3단?”

“그래, 1단은 펄스 데토네이션 엔진을 활용해서 극 가속을 시도한 후 떨어져 나갈 것이고, 이후엔 엄청난 폭발력의 추진제로 채워진 다중펄스 로켓이 마하 8까지 속도를 끌어 올리지.”

“허어…….”

“그렇게 되면 최종 단계인 이중연소 추진체에 충분한 공기 압축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마하 12 이상의 속도가 구현되는 거야.”

“그럼 이 3단을 최종 충돌체로 쓴다고?”

“맞아. 이 마지막 3단이 요격체이자 또 하나의 추진체인 셈이지.”

난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멍한 얼굴로 쳐다보던 성호는 부르르 하고 머리를 털어냈다.

“이거 미친놈 아니야?”

“…….”

******

“그럼 수고해라.”

센터를 빠져나온 우린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하늘은 잔뜩 구름이 끼어 있는 상태.

당장 비라도 다시 쏟아질 것만 같은 분위기라 재빨리 차에 오르려는데, 대뜸 성호 놈의 입에서 뜬금없는 말이 뱉어졌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네.”

순간 저절로 걸음이 멈칫했다.

이내 놈을 돌아보자 눈을 끔뻑이며 되묻는다.

“왜 그렇게 쳐다봐?”

“갑자기 그런 말은 왜 하는 거야?”

“그냥, 날씨가 그만큼 우중충하다는 거지.”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따르릉!

순간 들려오는 휴대폰 소리.

확인된 번호는 이영훈의 것이었다.

-아버님께서 방금 영면에 드셨습니다.

“…….”

난 그길로 곧장 삼정 병원으로 향했다.

이미 소식을 전해 들은 듯 병원 입구에서부터 화환들이 즐비한 상태.

개중엔 재우의 이름으로 된 것도 십여 개는 넘을 듯 보였다.

“오셨습니까.”

먼저 도착한 그룹의 간부들은 진 회장을 보필하고 있었다.

워낙 정 재계에서 영향력을 기치던 인물의 죽음 탓인지 장례식장에 몰려든 사람들만으로도 나라를 구성할 수 있을 정도.

지나치게 일찍 온 것은 아닐까 싶은 후회가 밀려든다.

“쯧, 가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더니…….”

진 회장은 유독 처진 모습이었다.

하긴, 그도 이젠 나이가 있으니 죽음에 대한 고민이 없을 수는 없겠지.

나름 위로랍시고 평소 안 하던 짓까지 하며 그의 등을 두드리자 그나 지금껏 보여준 적 없던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가는 건 순서가 없어…….”

“네, 그런 것 같네요.”

“그래서, 넌 뭐 느끼는 것은 없고?”

“…….”

“그러니까 장가는 대체 언제 갈 생각이냐고 묻고 있는 거잖아, 지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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