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13화
생각해 보니 그럴 때가 되기는 했다.
정권이 바뀐 것도 벌써 반년이 훌쩍 넘은 마당에 국정원장 자리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지.
문제가 있다면 그 역시 김 부사장의 경우처럼 공기업 사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건데, 솔직히 그런 편한 곳을 두고 지옥이나 다름없는 KAI의 대표 자리를 그가 맡아 줄지가 걱정이다.
“일단 제가 접촉을 해볼까요?”
“그러시죠.”
난 흔쾌히 대답했다.
이내 고개를 돌린 순간 어느새 차량은 재우 상용차 공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기 중이던 도지환 대표는 즉시 문을 열며 우릴 맞이했다.
짧은 악수를 나눈 후 돌아본 정경은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는 상태.
최근 상용 트럭공장의 신설과 기존 공장의 라인 변경으로 인해서 그 넓던 부지가 이젠 좁아 보이기까지 한다.
“공정률이 얼마나 된 겁니까?”
“기존 상용차 라인을 폴라베어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은 설비투입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신설하고 있는 상용차 공장증설은 대략 50% 정도 진행된 상태입니다.”
대꾸하는 도지환 대표의 얼굴은 잔뜩 그늘져 있었다.
판매율도 저조한 트럭공장을 이렇게까지 신설하는 것이 옳은 건지 판단이 서지 않는 듯한 표정이랄까.
뭐 사실 나도 처음엔 그런 걱정을 하기는 했었으나 이젠 생각이 조금 다르다.
‘만약 내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향후 오히려 저 공장의 규모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상황이 올 수도 있지.’
“가시죠.”
생각을 접은 채 사무실을 향해 앞서갔다.
곧 들어선 사무실 내에선 이미 회의를 위한 준비로 분주한 상태.
애써 준비를 한 저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번지수를 다시 잡아야 할 상황이었다.
“미안하지만 회의 자료를 교체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는 길에 듣자 하니 대통령 전용 차량을 제작 의뢰받았다는데, 일단 그 문제부터 해결하죠.”
그 말에 다시 임원들이 분주해졌다.
온갖 자료들이 다시 책상에 올라오는 것은 물론 벽 한편엔 미리 준비해 둔 듯 대형 스크린에 올라온 자료 역시 전용 차량 제작과 관련된 것으로 교체.
그사이 난 재빨리 서류들을 살폈고, 내내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도지환 대표는 넌지시 말을 던진다.
“저…… 미리 말씀을 드리는 건데, 차량은 총 2대가 제작 될 예정입니다.”
“2대라니, 뭣 때문에요?”
“아 그게…….”
눈이 마주친 도지환 대표는 채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 있던 김영기 부사장이 나선다.
“제가 부탁했습니다. 기왕 만드는 것 한 대쯤 더 제작해달라고.”
“…….”
“이젠 회장님 전용 차량도 안전한 것이 필요한 상황이지 않습니까.”
차마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그걸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 듯 김 부사장이 서둘러 말을 잇는다.
“솔직히 이 나라에서 대통령을 제외하고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제일 큰 사람은 회장님입니다. 더군다나 북한에서도 이젠 회장님을 요주의 인물로 규정했다는데, 그 정도 준비는 해둬야죠.”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절로 눈이 치켜 떠졌다.
동시에 뇌리를 스친 것은 나타샤.
혹시나 하는 의미로 한껏 가늘어진 눈으로 쳐다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네, 며칠 전에 저도 나타샤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자기 딴에는 귀담아들으시기를 바라는 의미로 경고를 했는데, 회장님께서 영 흘려들으시는 것 같다면서요.”
“흘려들은 것이 아니라…… 아무튼, 그래서요. 제 차량도 제작할 생각이라고요?”
“기왕 손을 들이는 마당이면 그편도 괜찮지 않습니까. 솔직히 제 심정 같아선 회장님에게 방탄조끼도 입히고 싶습니다. 요즘 연구소 기술력이 전보다 더 좋아져서 양복 조끼처럼 입을 수 있는 조끼도 제작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저 말은 왠지 농담 같지 않아 보였다.
아니, 제법 설명이 구체적인 것으로 봐선 실제 그걸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있지.
뭐가 됐건 나를 저렇게까지 걱정해 주는 마당에 거부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이젠 내 몸을 챙겨야 할 때가 오기는 했지.
“알겠으니 진행하세요. 그런데 엔진은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복합소재를 사용하게 되면 차량의 무게가 꽤 증가할 텐데, 기존 엔진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 아닙니까.”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인해서 쌍웅 측에 의뢰는 해 둔 상태입니다. 다행히 우리가 방탄소재로 쓰는 복합재의 경우 경량화한 물건이라서 차량의 무게가 6톤은 넘지 않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면 V8 엔진을 개조하는 선에서 해결 가능할 겁니다.”
“엔진에 손댔다가 자칫 수명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텐데요?”
“엔진을 개조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선 성능향상을 가져올 수가 있죠.”
“......”
“그렇게 보실 것 없습니다. 실제 미국 대통령 차량도 엔진은 기존 제품을 쓰고 있고, 문제가 생기면 교체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경험이 없는 터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긴 오로지 대통령 하나만을 위해서 엔진을 다시 설계한다는 것도 사실상 말이 안 되기는 하지.
게다가 개조라고는 해도 안전상의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니 상관은 없을 거다.
“뭐 문제가 없다면 그렇게 진행하시죠.”
난 결국 김 부사장의 말에 수긍했다.
팔자에도 없는 방탄 차량을 타게 생긴 상황.
헛웃음을 뱉어내곤 서류철을 덮으려는데, 문득 책상 위에 있던 대유 트럭들의 카탈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운을 띄우는 순간 다시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슬쩍 카탈로그를 들어 보이며 임원들을 향해 물었다.
“이 차량의 엔진이 몇 마력이나 됩니까?”
“아! 8080의 경우 출력이 400마력 정도 됩니다.”
“벤츠나 MAN, 또는 스카니아. 여타 해외 유명 업체에 비하면 경쟁력이 있는 겁니까? 아니 하다못해 현우의 상용 차량 들과 비교를 해보죠.”
“…….”
그 질문에 임원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것으로 대답은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
난 즉시 카탈로그를 덮고 곁에 있던 폴라베어의 사진을 들었다.
“이건 아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인데, 만약 폴라베어의 엔진을 민간 트럭에 활용하면 어떨 것 같습니까.”
“…….”
임원들의 눈이 그 순간 커다래졌다.
놀란 것은 김영기 부사장도 마찬가지.
그때, 엔지니어출신으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무언가 질문이라도 있는 듯 번쩍 손을 든다.
“그 엔진을 이용하는 것은 활용하는 것은 괜찮은 생각 같습니다. 그런데 폴라베어도 어차피 변속기는 수입해서 장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 부분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당장 그만한 것을 만들어낼 기술력이 없다면 당분간은 수입해서 써야죠. 하지만 조만간 변속기만을 전문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연구집단을 구성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K9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 부분은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상황이니까.”
“변속기를…… 뭐 아무튼, 당장 독일의 것을 장착하는 상황이면야 상품화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아니 폴라베어의 엔진 정도면 솔직히 시장을 씹어먹고도 남죠.”
사내는 잔뜩 흥분한 태도로 말했다.
무리도 아닌 것이 폴라베어의 엔진은 온갖 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물건.
게다가 애초 군납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보니 정비의 편의성은 물론 전자제어장치 분야에 있어서도 혁신을 가져온 것이니까.
이미 이곳에서의 생산과정을 통해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그로서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 희망적이었을 거다.
“저…… 그런데 생산 단가를 맞출 수는 있을까요?”
한참 들떠 있던 사내는 다시 조심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그것 역시 반드시 따지고 넘어갔어야 할 사항 중 하나.
난 빠르게 셈을 해본 후 그다지 문제가 될 것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물론 기존 엔진에 비한다면 제작 단가가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굳이 필요 없는, 일부 자기진단 센서들을 제거한다면 단가가 크게 차이 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회의실은 그 말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환기하기 위해 손을 들자 다시 시선이 내게로 모인다.
“주지하셔야 할 것은, 이게 아직은 타당성 조사조차도 들어가지 않은 과제라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단지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세요.”
굳이 그런 말을 한 것은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려는 것이었다.
막말로 그건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셈법일 뿐.
실제 그것을 트럭에 적용 가능할지는 타당성을 보다 정확하게 따져봐야 할 문제니까.
‘흠…….’
하지만 막상 나조차도 기대감을 가라앉히기는 힘들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셈법이 그렇게까지 현실과 차이가 날 것 같지는 않거든.
단지 촉을 떠나서 지금껏 그 엔진을 실체화하면서 느낀 확신이랄까.
******
“건강은 좀 어떠세요, 아버지.”
“나야 매일 놀고먹는 것이 일인데, 건강에 문제가 생길 일이 뭐가 있어. 그나저나 요즘 네 얼굴 한 번 보기가 아주 대통령 만나는 것보다 힘들다더니, 그 말이 영 틀린 건 아닌 모양이구나.”
오랜만 들른 본가에선 진 회장의 타박이 날아들었다.
아버지.
언제부터 그 단어를 뱉어내고도 이렇듯 아무런 거부감이 없어진 걸까.
가끔은 지나치게 빨리 적응을 해버리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
“이젠 너도 나이가 있는데, 몸 좀 생각하면서 일해야지.”
“네, 어머니도 이젠 건강 좀 챙기십시오.”
그건 김 여사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친모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터라 내내 잊고 있었던 어머니라는 호칭이 이렇듯 자연스레 튀어나올 때는 내가 한 때는 김준이라는 존재였음을 망각해가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 회사 임원들의 인사이동을 단행한다고?”
비록 회사를 떠나 있기는 해도 알고는 계셔야 할 부분이었기에 그 부분은 미리 보고를 올린 터였다.
딱히 참견하실 생각은 없는 듯 이후 별다른 말씀은 없었지만, 유독 한 가지만큼은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그렇게까지 대규모로 인사이동을 단행하는 상황이면 행사 형식을 빌리는 것이 좋을 게다. 그룹 임직원들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도 될 테고.”
“그렇게 하죠. 그런데 행사엔 참석 안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그 자리에 참석해서 뭐하게. 괜히 임직원들이 내 눈치나 볼 텐데.”
그건 아무래도 나를 배려하려는 의미 일 거다.
그룹의 성장으로 인한 새로운 미래를 선포하는 자리에서 전임 회장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려는.
딱히 할 말이 없어 침묵으로 일관하자 넌지시 말이 날아든다.
“그나저나, 넌 대체 언제…….”
“참! 형님은 요즘 본가엔 자주 들르십니까?”
왠지 낌새가 이상해서 재빨리 말을 가로막았다.
눈빛이며 말투며, 저건 분명 또 결혼 이야기를 거론하려는 것이 분명해 보이거든.
내 태도가 못마땅했던 듯 눈이 한껏 가늘어지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끝내 그 주제를 거론하시지는 않는다.
“쯧쯧,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 같으니.”
“제가요?”
“그럼 돈만 잘 벌면 효자가 되는 줄 알아? 자식으로서는 좋은 배필 만나서 결혼하고 후대를 이어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 더한 효도가 없는 거야.
“그 부분이야 형님께서 이미 잘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말이나 못 하면…… 그나저나 소문을 듣자 하니 이번에 군용으로 만든 차량의 엔진을 이용하여 트럭을 출시할 생각을 하고 있다고?”
그냥 돌린 화두치고는 꽤 무게감이 있는 주제였다.
분위기 역시 지금까지 와는 달리 한껏 진중해진 터였고.
잠시 김 여사가 내어준 차를 홀짝이곤 내 계획을 밝혔다.
“사막은 물론 영하 30도의 혹한 환경에서도 지장 없이 운용이 가능한 전천후 트럭이 탄생할 겁니다.”
“그 엔진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문제는 만약 그게 정말로 시장을 장악하려면 변속기 문제만큼은 꼭 해소해야 한다는 거다.”
진 회장 역시 그 부분에 있어선 나와 생각이 같은 모양이었다.
물론 모든 것을 자력으로 개발할 필요는 없겠지만 변속기 같은 주요 부품의 경우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봤을 때는 자력 개발이 필수.
게다가 우리 제품이 시장을 장악하는 상황이 오면 자칫 그 부분이 변수가 될 텐데, 그걸 해결하지 않고서는 곤란하다.
“안 그래도 그 부분은 조만간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내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식사들 하세요.”
때마침 상차림을 끝낸 김 여사의 말이 날아들고, 오랜만에 대하는 집밥에 대한 기대감으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진 회장이 불쑥 당황스러운 말을 뱉어낸다.
“삼정 이용문 회장이 어제 쓰러졌다더구나.”
“......누가 쓰러졌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