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11화
[무슨 말씀이신지…….]
나타샤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런 반응쯤은 예상했던 상태.
난 상관하지 않은 채 연구실로 들어섰고, 그녀는 굳은 얼굴로 나를 뒤따랐다.
[어! 연락도 없이 웬일이십니까?]
나를 발견한 러시아 측 수석 연구원은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문득 시선을 준 것은 그들이 아닌, 여전히 풍동 속에서 연소실험이 진행 중인 추진체의 모습.
힐끗 쳐다본 계측기에 찍힌 구현 속도는 마하 4를 달성하고 있었다.
[초기 가속력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 같군요.]
[그건 이중연소 램제트 엔진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입니다. 그나마 저 엔진이나 되니 안정적인 구동이 가능한 것이지 일반 스크램제트였다면 저속에서의…….]
[그 정도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난 억울하다는 듯 따지고 드는 연구원의 말을 끊어내곤 다시 나타샤를 쳐다봤다.
한참을 인상만 찌푸리고 있던 그녀가 툭 하고 말을 뱉어낸다.
[아까 하신 말씀은 대체 무슨 뜻이죠?]
난 그녀의 물음에 헛웃음을 뱉어냈다.
이내 시선을 다시 연소 시험 중인 추진체에 고정하곤 지나가듯 말을 뱉어냈다.
[펄스 데토네이션 엔진. 즉, 초기 극 가속이 가능한 기술. 난 당장 그게 필요하니 이젠 줄다리기는 그만하자는 겁니다.]
순간 힐끗 쳐다본 나타샤의 동공이 강하게 흔들렸다.
단지 감시역에 불과한 존재가 알아듣기는 힘들었을 말이었음에도 저런 반응이라는 것은 의심스러운 상황.
난 슬그머니 그녀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러시아는 이중 모드 엔진의 저조한 초기 가속력을 극복하고자 펄스 데토네이션 엔진을 따로 연구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공동개발안의 핵심이기도 하고. 하지만 연구진들은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선 시작도 하지 않고 있는데, 난 지금 그걸 지적하는 겁니다.]
[그런 기술적인 부분이야 연구진들이 알아서 할 일이겠죠. 그걸 느닷없이 푸틴 각하에게 전화해서 재촉하라는 것은 좀…….]
나타샤는 의뭉을 떨었다.
하지만 곧 내가 주머니에서 메모리 카드 하나를 꺼내 들자 눈빛이 돌변한다.
[그게 뭐죠?]
[당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초내열 복합소재 기술. 그리고 초정밀 유도제어시스템과 구동장치의 핵심이 담긴 거죠.]
순간 나타샤와 수석 연구원이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이내 다시 나를 쳐다본 나타샤가 전과는 다른 표정으로 되묻는다.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거죠? 전 최소한 2년 정도는 더 시간을 끄실 줄 알았는데.]
사실 그럴 예정이기는 했다.
그 정도 시간이면 러시아의 미사일 추진체 기초분야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상황은 예상 밖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고, 이젠 저들과 줄다리기를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느니 서로 숨겨두었던 패를 까 버리는 편이 나은 선택이 되어 버렸다.
[뭐 필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해두죠.]
스윽.
그녀는 내 대답과 동시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괘나 투박하고 단단해 보이는 물건.
이후 어딘가로 전화를 건 그녀는 내내 러시아어로 누군가와 통화를 계속했고, 그걸 듣고 있던 러시아 측 연구원들의 눈은 점점 커다랗게 떠졌다.
탁!
한참 동안 이어진 통화 끝에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슥.
이내 느닷없이 브래지어 속으로 손이 들어가더니 그 속에서 불쑥 메모리 하나를 꺼내어 흔들어 보인다.
“흠…….”
당황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녀가 제 손에 쥐고 있던 메모리를 내게 건넸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에 있던 메모리를 회수했다.
힐끗.
그녀의 눈짓에 곁에 서 있던 러시아 측 수석 연구원이 재빨리 그걸 자신의 노트북에 꽂았다.
나 역시 확인을 위해 가져온 노트북을 펼치는 순간, 그녀가 툭 말을 던진다.
[이해하세요. 회장님과 확실한 거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목숨을 걸고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던 터라서…….]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보자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웃어 보였다.
아! 그걸 말하는 거였구나.
하필 자료를 그곳에 보관한 이유.
뭐 나로서는 따끈따끈한 그녀의 체온이…….
“스탑! 거기까지.”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나저나 당신이 한국으로 파견된 진짜 이유는 결국 따로 있었군요.]
슬쩍 말을 돌리곤 메모리 속의 내용을 살폈다.
눈을 어지럽히는 설계도와 부품 소재의 구성도.
다른 건 몰라도 연소재의 화학적 구성으로 봐선 내가 원하던 물건이 틀림없어 보인다.
[네, 그게 아니면 솔직히 제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는 셈이었죠. 그나저나 자료의 진위여부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우리의 공동 연구가 끝난 것도 아닌 마당에 회장님을 속일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녀는 자료에 집중하는 나를 향해 지나가듯 말했다.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친 그녀는 의외의 말을 던진다.
[그거 아십니까? 회장님이 여기 도착하시기 직전 푸틴 각하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것.]
[…….]
[통화내용은 바로 이 상황을 예견하신 거였습니다.]
[내가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런 중대한 거래가 고작 전화 한 통화로 가능했을 리가 없죠.]
그 부분이 사실 의심스럽기는 했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갔던 이유는 푸틴이나 나나 서로의 성향을 지나치게 잘 알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고.
즉, 거래에 있어서 일절 주저함을 보이지 않는다는.
그나저나 이 상황을 예견했다는 것은 내가 펄스 데토네이션 엔진기술이 필요한 이유를 알고 있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그런 결론을 얻기 위해선 경험이라는 조건이 필요하다는 거다.
쉽게 말해서 저들 역시 그 엔진을 이용한 극초음속 지상 발사 요격체계를 구상하고 있었다는 것이지.
‘하긴, 그 정도 급가속이 가능한 엔진기술이 있다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명제니까.’
[흠…….]
잠시 들었던 생각을 떨쳐내곤 다시 자료들에 집중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넌지시 말을 잇는다.
[참, 조금 전 통화 중에 푸틴 각하께서 회장님께 꼭 이 말을 전하라고 하시더군요.]
[…….]
[부족한 초기 가속력을 극복하기엔 펄스 데토네이션 엔진이 답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하 12 이상의 극초음속 구현은 힘들 거라고.]
[…….]
[사실 그건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 엔진은 탄화수소와 같은 가연성 혼합기체가 점화될 때 발생하는 연소파와 강력한 폭발 충격파를 이용하여 초기부터 극강의 가속력 구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반대로 지속력에 문제가 있거든요.]
그건 나도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해서 그 후속 대책도 이미 구상을 해둔 상태고.
그런데 왜지?
그건 자칫 지상 발사형 요격체계의 개발과정에서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피해갈 수 있는 조언인데, 그걸 저렇듯 쉽게 던져주는 이유가.
[그런 눈으로 보실 것 없어요. 저도 왜 그런 중대한 노하우를 그렇듯 쉽게 까 보이시는지는 이유를 모르니까. 그런데 혹시 알고 계신 문제였나요? 표정을 보니 왠지 그런 것도 같고…….]
[그렇습니다.]
난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한껏 진중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그럼 해결책은 있으시고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푸틴이 내게 조언을 한 근본적인 의도가 깨달아졌다.
저들은 비록 함정은 피했어도 그 이후의 대처만큼은 없다는 사실을.
즉, 초기 극 가속 이후 마하 12 이상의 속도를 구현할 방법.
그래서 혹시라도 내게 해결책이 있는지를 떠보려 그런 중대한 사실을 던져주었던 거다.
[안타깝지만 아직은 없습니다.]
난 의뭉을 떨며 말했다.
얼핏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선 의심의 빛이 스친다.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당신은 어떻게 로켓에 대해 그렇듯 잘 알고 있는 거죠?]
[아! 실은 저도 한때 미사일 연구소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
참 양파 같은 여자다 싶다.
까도 까도 진정한 정체를 알 수가 없으니 원.
허탈한 마음에 웃으며 돌아서려는데 그녀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최근 북한에서 재우에 대한 관심이 꽤 높아졌다고 하네요.]
[…….]
*****
끼익!
며칠 후, 난 성호가 책임자로 있는 미사일 개발센터로 향했다.
이미 방문에 대한 언질은 주었던 상태.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성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웬일로 또 마중까지 나온 거야?”
“웬일은 무슨. 내가 이런 쪽으로는 확실히 예의를 차리는 편이라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던 탓에 그의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자 그가 의아하다는 듯 묻는다.
“왜, 또 누가 오기로 했어?”
“김영기 부사장님은 아직 도착 전인가?”
그가 약속보다 늦는 것은 처음이었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전화를 걸려는 차, 저편에서 그의 차량이 다가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합참에서 서류들을 좀 받아 오느라고…….”
“합참이요?”
그 말에 성호가 되물었다.
그러자 김 부사장은 들고 있던 서류들을 그에게 건넸고, 놈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이제부터 우린 지상 발사형 극초음속 요격체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할 생각이다.”
그 말에 성호가 다시 서류를 향해 눈길을 줬다.
무려 1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의 양에 놀란 걸까, 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지기 시작한다.
“이걸 우리 독자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어차피 초기 가속에 필요한 엔진기술은 러시아 측에서 거의 완성형에 가깝게 개발을 해 두었던 상태니까.”
“그렇다 해도…… 공동 연구소 출신 지원 인력이 없으면 이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거야.”
“알아. 그래서 그쪽에 상주하고 있던 우리 측 연구원 일부를 다시 이쪽 센터로 돌렸으니 그 점은 염려하지 말고.”
놈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에도 좀처럼 표정이 풀리지 않는 이유는 필시 과도한 업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일 터.
하긴, 최근 안 그래도 사업이 확정된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초음속 대함 미사일만으로도 머리가 터져 나갈 것이 놈의 입장임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하아…….”
놈은 기어이 한숨을 뱉어내며 돌아섰다.
차마 욕은 할 수 없는 탓에 입술만 삐쭉거리는 놈의 모습이 우스웠던 듯 김영기 부사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솔직히 저 같아도 욕이 나왔을 겁니다. 듣자 하니 저 친구도 하루 꼬박 12시간을 연구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거기에 폭탄을 하나 더 던지셨으니…….”
“압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더 드는 것이고. 그런데 저도 하루에 16시간을 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거야…….”
김 부사장은 뱉어내려던 말을 삼켰다.
쯧, 이러면 내가 꼭 악덕 기업주 같잖아.
못마땅한 얼굴로 돌아서려는데, 그가 바짝 따라붙는다.
“그나저나 극초음속 요격체계의 개발 기간은 어느 정도나 예상하십니까?”
“글쎄요, 정부가 탄도탄 작전통제소를 언제 만드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아무래도 그렇겠군요. 그런데 그 점은 의외의 소득 아닙니까?”
“뭐가 말입니까?”
“탄도탄 작전통제소 구축 말입니다. 이번 사건이 아니었다면 사실 그걸 구축할 생각은 끝내 미뤄뒀을 것 아닙니까.”
그 점에 대해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역사에 의하면 우리 군이 그 체계를 갖추는 시기는 대략 2022년쯤.
필요성에 비하면 지나치게 늦었던 것이 사실이다.
“참, 합참에서 들은 소식인데, 한국형 복합소총의 폭발탄 구경 기준을 25밀리까지 허용한답니다.”
멈칫.
반가웠던 소식이었던 터라 즉시 걸음을 멈췄다.
챙겨온 서류가 있기라도 한 듯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던 김 부사장은 곧 파일 하나를 내게 건넨다.
“피카티니 레일 채택. 그리고 파편탄 발사 시스템과 사격통제장치를 모듈화한다는 우리 측 계획안도 받아들여졌군요.”
“네, 참고로 LIC 측에서도 25밀리로 개발 계획을 제출했답니다.”
“그래요?”
“왜 그렇게 좋아하십니까? 경쟁사가 우리와 같은 조건으로 시작을 한다는 마당에.”
“글쎄요, 왠지 난 걱정보다는 안심이 되는군요. 어느 업체가 선정되건 최소한 삽질을 다시 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
김 부사장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웃으며 돌아서려는 순간, 그가 또 전할 소식이 있기라도 한 듯 다급히 나를 붙잡는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 HVP 도입 문제로 의견 청취할 것이 있답니다. 해서 내일쯤 다시 전화를 준다는데, 아무래도 회장님께서 직접 통화를 하시는 것이 낫지 싶은데요.”
“그러죠.”
난 무심히 대꾸하곤 차 문을 열었다.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은 상대가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이라는 사실.
자연스레 생각의 끈이 무인 정찰기로 이어졌다.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