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07화 (107/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07화

[조심히 가게, 친구.]

배웅하는 라이언의 표정은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약 일주일간을 거의 붙어있다시피 했던 터라 나 역시 서운하기는 마찬가지.

악수를 나누는 손아귀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인천행 848편을 이용하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지금 즉시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돌아선 순간 마침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무려 13시간에 걸친 긴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

긴 한숨을 내쉬고 탑승구로 향하려는데 불현듯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한다.

“이 시간에?”

발신자는 김영기 부사장이었다.

시차를 생각하면 한국은 늦은 밤이었을 터.

그럼에도 전화를 했다는 것은 뭔가 중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전 나름 좋은 소식인 것 같아서 급하게 알려드리려는 의도였는데…….

대뜸 이유부터 묻는 내 태도에 김영기 부사장은 헛웃음을 뱉어냈다.

그나마 안 좋은 일로 걸려온 전화는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이 나오려는 차, 그가 예상치 못했던 말을 전해온다.

-군에서 지금 개발을 진행 중인 복합소총개발의 사업자를 재선정한답니다. 그리고 기존에 진행 중이던 개발안도 전면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하는군요.

“그건 또 무슨…….”

[대한항공 848편에 탑승하실 승객들은…….]

막 대꾸를 하려는 순간 다시 탑승을 재촉하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결국, 통화는 거기까지.

전화기를 끄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선 전쟁이 시작됐다.

‘K11의 사업자를 재선정한다고?’

K11은 2000년에 개발에 착수한 복합소총의 제식 명이었다.

미국 OICW의 영향을 받아 개발을 시작했지만, 개인화기를 목표로 했던 미국과는 달리 우리는 분대를 지원하기 위해 개발을 결정했던 물건.

최종적인 목표는 40mm 유탄을 발사하는 K201을 대체하겠다는 거였는데, 역사적으로는 우리 군 최악의 삽질 중 하나로 기록되었을 정도로 실패한 물건이다.

‘하지만 아직 시제품도 안 나온 물건에서 결함을 발견했을 리는 없고…… 이거 뭔가 또 일이 터진 모양이군.’

*******

“곧장 사무실로 오신 겁니까?”

도착하자마자 곧장 출근해 버린 나를 향해 김영기 부사장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상관하지 않은 채 설명을 요구하자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고서 하나를 들이민다.

“통화로 말씀드렸던 것처럼 군에서 현재 개발이 진행 중인 K11 복합소총에 대한 사업자를 재선정하겠답니다.”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고요.”

“개발사가 S&U였는데, 지난번 군납 비리 사건으로 납품 권한을 박탈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의아한 것은 정부의 대책.

2000년 초부터 개발을 시작했으면 지금쯤 시제품까지 나왔을 가능성이 큰 물건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이유가 궁금한 거다.

“그게, 문제가 좀 많았었나 봅니다. 정작 개발이 시작된 것은 3년 전인데, 총기 부분을 담당하고 있던 S&U에선 여태 시제품도 내놓지 못하고 있었고, 사통장치를 개발하던 업체 역시 군이 발견한 설계상의 결함을 해결 못 하는 중이랍니다. 그 와중에 납품권 박탈 사건까지 터졌으니 사업이 온전하게 굴러갔을 리가 없죠.”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정부의 조치가 조금은 이해됐다.

어차피 개발 진척도가 바닥인 상황이라면 차라리 사업자를 재선정하는 편이 옳은 결정일 수도.

“저 그런데…….”

생각이 똬리를 틀고 있을 무렵 김 부사장이 머뭇거리며 또 다른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오후쯤 합참에서 그 문제로 새로운 업체선정을 위한 간담회를 한다는데, 이번엔 각 업체들의 최종 결정권자들이 직접 참석해 달라는 공문입니다.”

“뭣 때문에요?”

“아무래도 이번에 정부에서 진행 중인 군 개혁 방안으로 무기 획득 과정도 변화가 올 모양입니다. 하니 총수들에게 직접 사안을 알리겠다는 거죠.”

“…….”

느낌상으로는 군납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 같았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도 우리로서야 꿀릴 것은 없는 상황.

아니, 정말로 정부의 의지가 오로지 성능과 개발 능력을 중점으로 둔다면 오히려 대환영을 해야 할 만한 일이다.

적어도 우린 개발 능력에 있어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간담회 시간이 언제라고요?”

******

“이게 얼마 만입니까.”

도착한 합참 본부엔 이미 많은 방위산업체 대표들이 도착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뜨인 것은 LIC넥스원과 현우 로템 같은, 소총 분야와는 관계가 없는 업체들의 총수들.

그건 곧 김 부사장의 말처럼 이번 간담회가 단순히 K11 개발업체의 재선정만을 목적으로 두고 있지만은 않다는 것을 뜻했는데, 왠지 앞으로 일이 흥미진진하다.

“바쁜 와중에도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 듯 합참의장은 직접 회의를 주관했다.

표정이 무척이나 어두운 것으로 봐선 그 역시 육군의 개혁 방안으로 인해 무척이나 시달리고 있는 느낌.

하긴, 팔은 결국 안으로 굽는다는데 그도 후배들의 원성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거다.

“정부는 향후 소총을 비롯한 개인 및 지원 화기의 도입과정에서 그동안의 관행을 깨고 앞으로는 복수업체를 공급처로 삼을 예정입니다.”

그 말은 이제껏 대유 정밀. 아니, S&U만이 독점하던 소총 분야를 경쟁체제로 만들겠다는 의미였다.

그동안 단일업체의 선정으로 인해 발생한 비리를 생각하면 긍정적인 변화.

그게 개혁의 의지 표명이든 뭐든을 떠나서 상황이 이러면 앞으로는 능력은 있으나 그동안엔 기득권에 눌려 있던 업체들이 적극 개발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이번에 업체 재선정이 진행 중인 K11의 경우에도 다수의 개발업체를 대상으로 계획안을 제출받을 생각입니다. 참고로 S&U도 현재까지는 개념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었기에 굳이 그 안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즉, 모든 개발안을 다 수용할 방침이라는 소리죠.”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복수의 업체를 경쟁시킨다면 그 모든 개발 업체에게 정부가 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무리.

그럼 업체들로서도 개발비의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고, 결국엔 자본력을 어느 정도 갖춘 업체들이 아니라면 덤비기가 쉽지 않다는 건데, 그 부분을 어떻게 해결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경쟁체제라면 개발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같은 생각을 한 누군가가 즉시 손을 들며 물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합참의장을 향했지만, 그는 마치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그동안 개인화기 분야에 있어선 정부가 특정 업체를 선정하여 전액 지원했었던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2개 업체를 선정하여 개발비의 50%를 각 업체들에게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제법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의 업체라고는 하나 결국 선정업체가 2곳뿐이라면 정부로서도 부담은 없는 셈.

어차피 1곳에 몰빵 해주는 것이나 2곳에 나눠 주는 것이나 정부의 입장에선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

게다가 업체로서도 자비를 50%나 들여야 한다면 일정 부분 부담은 지고 가는 건데, 그 경우 지금까지의 경우처럼 먹튀가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 지금부터는…….”

이후 합참의장은 무기 도입 전 분야에 있어서 새로 도입할 제도를 설명했다.

듣고 있자면 비리 발생 요인의 차단을 위한 조치들이 대부분.

군 개혁을 향한 정부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로써 대충은 알 것 같았다.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

간담회를 모두 끝내고 나서는 길.

합참의장이 내게로 다가오며 손을 내밀었다.

역시나 시달림이 보통은 아니었던 듯 그새 10년은 늙어 보이는 느낌.

안쓰러운 마음에 눈살을 찌푸리자 그가 넌지시 대화의 시간을 권한다.

“바쁘지 않으면 차나 한잔하고 가시죠.”

차마 거절할 엄두가 나지 않아 그를 뒤따랐다.

도착한 곳은 그의 집무실.

자리를 권한 그는 대뜸 한숨부터 내쉰다.

“요즘 같으면 정말 죽을 것 같습니다.”

“이해합니다. 자리가 줄어드는 판국에 그걸 좋다고 할 장성들은 없죠. 하지만 결국 감수해야 할 문제일 겁니다.”

어차피 미래엔 인구절벽으로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병력의 수는 줄어들게 될 테니까.

“그래야죠. 난 사실 다른 건 몰라도 군 현대화에 대해선 불만 없습니다.”

그는 웃으며 대꾸하곤 나를 지그시 쳐다봤다.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듯한 눈빛이었던 터라 빤히 쳐다보자 그가 넌지시 말을 던진다.

“K11 개발에 참여하실 거죠?”

“그럴 생각입니다.”

“그럼 준비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이번엔 LIC넥스원에서도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거든요.”

좀 의외의 소식이었다.

나야 어차피 다산을 품고 있는 상황이기에 무리가 없는 상황이지만 개인화기 분야에선 근거가 전혀 없는 그들이 무슨 수로.

그때, 합참의장이 힌트가 될만한 말을 던진다.

“최근 LIC 측에서 명일 기공을 인수했답니다.”

“그래요?”

명일 기공은 다산의 경우처럼 총기 부품을 주로 제작, 납품하던 회사 중 하나였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술력은 제법 뛰어나다고 알려진.

아무래도 LIC도 이젠 문을 넓히려는 모양인데, 왠지 경계심보다는 호승심이 앞선다.

그동안엔 사실 변변한 경쟁상대가 없던 상태라 긴장감이 덜 했었거든.

더군다나 LIC의 경우는 기술력도 제법 갖춘 기업임은 물론 제법 깨끗한 이미지를 갖춘 곳.

정정당당한 경쟁은 언제든 환영이다.

“일이 재미있어지겠군요.”

웃으며 대꾸하곤 찻잔을 들어 올렸다.

의외의 반응이었던 걸까, 합참의장이 헛웃음을 내뱉는다.

“진 회장은 참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 같아요. 그나저나 갈수록 가시방석입니다. 이러다가 또 전처럼 군 비리 문제로 시끄러워지지는 않을까, 걱정이기도 하고.”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왠지 말에 뼈가 있다 싶어 되물었다.

뭣 때문인지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넌지시 입을 연다.

“만약 군에서 계속해서 반기를 들면 정부에서도 가만히 있겠습니까.”

“……장성들을 길들이기 위해 정부에서 비리를 들춰낼 수도 있다, 이 말씀입니까?”

순간 슬그머니 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스스로도 과한 생각이라고 느낀 듯 곧 손사래를 치며 웃는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설마 그렇기야 하겠습니까.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재우는 그런 면에선 별문제 없겠죠?”

“그거야 의장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뭐 그렇기야 하죠.”

합참의장은 다행이라는 듯 웃어 보였다.

하지만 곧 표정이 어두워지는 이유는 아마도 정부가 실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아주 배제하지는 못하는 것일 터.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선 이제 나도 장담을 못 하겠다.

역사에 없던 일이 발생하는 것이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

“어서 오십시오.”

간담회를 마친 후, 곧장 탈레스로 향했다.

기왕 우리가 K11의 개발에 참여를 결정한 상황이면 이번엔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래에도 문제가 많았던 개발안은 모두 백지화되었다는 점인데, 그 부분에 있어선 사실 희망적이다.

“내일부터 곧바로 사업 진행 팀을 꾸려 주세요. 예정된 1차 개발 계획안 제출 일시는 내년 초까지. 그리고 이번엔 사격통제장치까지 하나의 업체가 책임지는 형태라서 그 부분의 개발인력도 필요합니다.”

말을 뱉어낼수록 흥분감이 찾아왔다.

사실 복합소총의 경우는 나 역시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

어차피 그건 회귀 전에도 결함이 있었던 물건이었고, 그 탓에 특별히 도움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게다가 난 개념 자체를 아예 바꾸려는 상황.

어설픈 자료들은 오히려 방해만 된다.

“안 그래도 소식 듣자마자 명승은 박사에게 일러뒀습니다.”

김 부사장은 역시나 행동이 빨랐다.

이젠 내 급한 성격을 죄다 파악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웃으며 연구진들이 있는 사무실로 들어서려는데, 그가 갑자기 무언가를 내게 들이민다.

“죄송하지만 이것 좀 먼저 봐주시죠.”

그가 내민 것은 서류철이었다.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채 첫 장을 넘기려는 차, 뒤늦은 설명이 날아든다.

“다산출신 엔지니어들이 최근 K1을 대체할 만한 특전사용 소총 개발안을 제시했다는데, 제가 들은 스펙대로라면 꽤 쓸 만해 보이더군요. 다음 장에 이미지 컷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K1을 대체할 특전사용 소총이요?”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다산에서 K1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한 소총이라면 DSAR-15pc가 유일하거든.

한때 우리 정부가 지금처럼 소총 분야에 있어서 단독업체의 독점납품에 따른 폐해를 극복하고자 복수의 업체를 지정했고, 그 결과 탄생한 물건.

하지만 그것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그건 분명 2020년에나 등장해야 할 물건이고, 난 아직 그들에게 설계안을 내어준 적이 없으니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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