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06화
[그래도 한때 식구는 식구였던 모양이군.]
한차례 폭풍우가 지나갔지만 결국 우린 마크가 있을 기숙사의 출입을 허가받았다.
문을 열자 드러난 것은 로비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공간.
최대한 학생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우릴 쳐다보는 시선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혹시 마크 엘리엇 주커버그의 방이 어딘지 압니까?]
급한 마음에 때마침 복도를 지나치는 남학생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SONY사의 CD플레이어를 손에 쥔 채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있던.
얼핏 대상을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려는 순간 예의 그 학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되묻는다.
[어디에서 오셨죠?]
확연한 경계심이었다.
마침 떠오른 것은 주머니에 있던 빳빳한 지폐들.
그중 한 장을 꺼내어 흔들어 보이자 그제야 학생의 표정이 밝아진다.
척!
[3층 두 번째 방이요.]
100달러짜리 지폐를 손에 쥔 청년은 그 길로 즉시 돌아섰다.
초롱초롱한 표정을 보면 꼭 백지수표라도 얻은 자 같달까.
웃으며 계단을 올라서려는데, 라이언의 말이 날아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는 건지 모르겠네.]
[이제 와서 왜 그래?]
[자네도 눈이 있으면 저 학생들 표정을 좀 보라고. 우리를 꼭 빚 받으러 온 양아치들 쳐다보듯 하잖아.]
그러고 보니 시선들이 좀 거슬리기는 하다.
어디 시선뿐일까.
몇몇은 슬그머니 전화기를 드는 폼이 어딘가에 신고라도 하려는 모양새다.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찾기나 하자고. 어쩌면 이미 늦었는지도 모르니까.]
나로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에 의하면 마크 주커버그는 분명 2004년쯤 학교를 중퇴해 버리거든.
그게 역사 그대로 흘러갔다면 상관이야 없겠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역사가 뒤틀린 마당에 그의 타임라인이 곧이곧대로 흘러갔으리라는 장담을 누가 할 수 있겠는가.
[그나마 다행이군.]
하지만 그건 괜한 우려였던 듯싶었다.
눈앞에 보인 명패에 적힌 이름은 분명 마크 엘리엇 주커버그.
아직 그가 이 학교에 남아 있다는 증거다.
똑똑!
[누구?]
주저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웬 여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의 동시에 서로를 쳐다본 우리는 이게 무슨 경우지,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이후 문이 열리며 생뚱맞게도 이제 스무 살쯤 되었을 법한 여학생이 얼굴을 드러냈다.
[여기가 마크의 방 아닙니까?]
[맞는데, 누구시죠?]
우릴 쳐다보는 여학생의 눈빛 역시 저 아래에서의 시선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만의 공간인 이곳에 웬 양복쟁이들이 찾아왔냐는 듯한.
솔직히 내 입장에선 남자들만의 공간에 여학생이 있다는 사실이 더 의외이건만, 미처 그걸 따질 겨를은 없다.
[여기가…….]
[죄송하지만 여긴 외부인 출입 금지구역입니다.]
그녀는 내가 채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문을 닫으려 했다.
탁!
하지만 재빨리 문틈 사이로 발을 들이밀어 버린 라이언.
이후 그는 놀란 눈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여학생을 향해 항의하듯 말을 뱉어냈다.
[거참,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듣는 버릇 좀 가집시다. 우리가 무슨 빚이라도 받으러 온 사람처럼 보입니까?]
[사무처에 신고하기 전에 발은 치우시죠.]
여학생은 전혀 기죽지 않은 태도로 반발했다.
뭔가 일이 꼬인다는 생각에 라이언을 만류하려는 차.
이번엔 안쪽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신데 그래?]
문틈 사이로 얼핏 드러난 얼굴은 분명 내가 기억하는 인물이었다.
마크 엘리엇 주커버그.
여학생과는 달리 대담하게 문을 열여 재친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다시 묻는다.
[어디서 오셨는지는 몰라도 여긴 외부인 출입금지입니다.]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려넘기며 슬쩍 안쪽을 쳐다봤다.
몇 대의 컴퓨터가 놓인 테이블과 연신 무언가를 코딩 중인 또래의 남학생들.
어쩌면 저것이 페이스북의 탄생장면이 아닐까 싶다.
[누구시냐고요.]
[아! 난 진현승이라고 합니다.]
그의 재촉과 동시에 명함을 건넸다.
하지만 그는 미처 그걸 쳐다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렸고, 우린 다시 멍하니 서로를 쳐다봤다.
[이 전개는 뭐지?]
난 황당함을 표하곤 다시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무슨 대화들이 오고 가는지 한참을 소란스러운 듯하더니 이내 당황스러운 말이 날아든다.
[당신 혹시 한국 사람입니까?]
[……그렇습니다만.]
[그럼 미안하지만 대화할 용의가 없습니다.]
[뭐야 지금. 너희들 인종차별 하는 거야?]
흥분한 라이언이 당장에라도 문을 걷어찰 듯 나섰다.
뭔가 오해가 있지 싶어 그를 만류하곤 다시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듯한 말이 들려온다.
[우린 절대 한국에서 개발한 플랫폼을 카피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플렛폼?
카피?
순간 두 단어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조합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싸이월드.
난 그제야 저 청년이 무얼 경계하고 있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아!”
하긴, 페이스북이 따지고 보면 싸이월드와 유사점이 많기는 하지.
기억에 의하면 회귀 전에도 그가 한국출신 유학생들을 통해서 그 유사성을 인지했다고 하더니.
아마도 내가 그걸 문제 삼고자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고 착각한 모양이다.
[저게 뭔 소리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라이언이 멀뚱히 나를 쳐다봤다.
한 차례 손사래를 친 후 다시 안쪽을 향해 말했다.
[뭔가 오해한 모양인데, 난 당신의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싶어서 온 사람입니다. 여기 명함부터 확인을 하고 대화하죠.]
문틈 사이로 건넨 명함은 JW. Investment의 회장 직함이 찍혀 있는 것이었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도 막대한 펀드 자금의 운용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으니, 그 역시 들어는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예상처럼 잠시 후 문이 다시 열렸고, 우릴 쳐다보는 그의 눈빛은 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당신이 JW. Investment.의 대표라고요?]
[대표는 여기 옆에 있는 이 친구고, 난 JW Investment의 모기업을 총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 이거 영광이네요. 안 그래도 여기 경영학과와 컴퓨터과학과 애들의 최근 관심사가 온통 JW. I였던 터라 저도 호기심이 돋았던 상황이거든요.]
[…….]
[모르세요? 요즘 JW가 투자의 귀재라고 불리는 것. 솔직히 단 한 번의 손실도 없이 매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마당이면 그런 찬사도 무리는 아니죠.]
순간 내 시선은 자연스레 라이언을 향했다.
어깨가 한껏 하늘로 치솟아 있던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찔끔하고 딴짓을 한다.
[아무튼,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주커버그는 뒤늦게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문을 활짝 열었다.
이거 대화 한번 이렇게 힘들어서 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들어서자 그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머리를 긁적인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요즘 하도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이 생겨서…… 게다가 최근엔 제 친구 중 하나와 프로젝트 문제로 트러블이 좀 있었거든요. ]
난 그의 말을 뒤로 한 채 방을 살폈다.
이미 컴퓨터들은 모두 스크린을 꺼둔 상태.
작업 중이던 학생들도 어디로 간 건지 그새 보이지 않는다.
[옆방과 연결된 구조라서 잠시 그쪽으로 갔습니다.]
내 표정의 의미를 읽은 듯 주커버그는 짧은 설명과 함께 우리에게 자리를 권했다.
저렇게 어린 친구였구나.
왠지 묘한 기분에 한참 그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가 머쓱한 표정으로 다시 말한다.
[그나저나 제 프로젝트는 어떻게 알고 찾아오신 거죠?]
그는 여전히 경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아무리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지만 단지 친목을 목적으로 시작한 그들의 프로젝트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말이 안 되지.
이럴 때는 나도 딱히 설명할 방법은 없다.
그저 거짓말을 하는 것 외에는.
[말했다시피 우린 투자사입니다. 그 탓에 각 학교의 경제 및 사회. 그리고 IT 관련 학과들 교수님들과는 꽤 친분이 있는 편이죠.]
[…….]
[전도가 유망한 학생들을 미리 선점하는 것도 우리의 전략 중 하나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그 가운데 하버드는 최우선시해야 할 학교 중 하나죠. 해서 얼마 전 몇몇 교수님들과의 식사자리를 갖던 와중 꽤 재미있는 소문을 하나 들었습니다.]
[…….]
[학생 중 몇몇이 프로필을 공유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딱 감이 왔습니다. 어쩌면 그게 엄청난 돈이 될 수도 있다는.]
[…….]
그는 눈매를 좁히며 나를 쳐다봤다.
마치 자신의 생각을 대변하는 듯한 말을 듣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는 듯.
난 쥐고 있던 상의를 의자에 걸쳐두곤 다시 그를 쳐다봤다.
[대화에 앞서 한 가지만 묻죠. 당신이 지금 개발하고 있는 저 플렛폼. 단지 친목만을 위한 것입니까?]
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상업화에 대한 기대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
나로서는 물꼬를 트기 좋은 조건이다.
[하버드 학생이니 엘빈토플러의 저서 정도는 읽어봤겠죠? 그가 말하길 향후 정보야말로 가장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이 만들고 있는…… 아! 미안하지만, 지금 만들고 있는 그 플랫폼의 이름이 뭐라고 했죠.]
[더 페이스북입니다.]
[그렇군요. 아무튼, 페이스북의 제작 목적이 프로필의 공유라고 알고 있는데, 난 지금 그게 엘빈 토플러가 말하는 정보가 된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
그는 꿀꺽 침을 삼켰다.
역시나 그 말 역시 그가 평소 가졌던 생각과 일치했던 거지.
이제부터의 대화는 조금 더 편해질 듯하다.
[아마 본인도 그 점은 상상해봤을 겁니다. 만약 페이스북이 단순히 친목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경우. 그래서 가입자가 수백 수천만을 넘어 수억에 달하게 되는 경우 어떻게 될지.]
[…….]
[아마 그렇게 되면 물건을 팔아야 하는 기업들은 어마어마한 유혹을 받게 될 겁니다. 자고로 광고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뿌려야 효과가 있는 법이니까.]
[…….]
[사실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좋은 것은 비단 광고주뿐만은 아닙니다. 페이스북 역시 엄청난 접속자들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단쯤은 얼마든지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내 말이 틀렸습니까?]
[…….]
그는 표정을 확 밝혔다.
마치 자신의 미래를 미리 엿보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뭣 때문인지 고개를 갸웃하더니 뜬금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당신은 한국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왜요? 한국인은 당신에게 투자하면 안 되는 겁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에는 이미 싸이월드라는 플렛폼이 있는 마당에 왜 제게 투자를 결심한 건지가 궁금해서 그럽니다. 솔직히 투자대상으로는 이미 완성된 플렛폼이 더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거죠.]
순간 멈칫, 하고 그를 쳐다봤다.
무언가 그럴듯한 대답을 기대하는 표정.
웃으며 말을 뱉어냈다.
[투자란 애초 성장 가능성이 큰 것에 하는 법인데, 안타깝게도 난 그들에게서 성장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
[그리고…….]
아쉽게도 뒷말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아직은 세상에 나오지도 않은 플렛폼에 대한 평가를 입에 올릴 수는 없으니까.
그만의 사업적 수완과 감성으로 점차 진화하는 알고리즘.
그로 인한 중독성과 그걸 수익구조로 연결하는 능력.
사실 그건 내가 따라 한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난 애초 거기에 신경을 쓸 여력도 없다.
[……그리고 난 메이드인 USA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태어난 것이 세계로 뻗어 나가기엔 더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
그는 무슨 생뚱맞은 말이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이 시대의 서구사회는 대한민국이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데, 그곳에서 아무리 화제를 일으켜봐야 그게 세상에 퍼질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메이드인 USA는 다르지.
[아무튼, 당분간 개발에 필요한 모든 자금은 내가 감당할 테니 당신은 그저 프로젝트를 완성 시키는 것에만 몰두하세요.]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품에서 수표책을 꺼내 들었다.
당황한 그의 시선이 수표책을 향해 날아들고, 그쯤에서 한마디를 더 보탰다.
[신뢰는 곧 돈에서 나오죠.]
[…….]
말끝에 수표를 찢어 보였다.
정확히 이천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
지켜보고 있던 라이언은 사전에 나와 미리 맞춰두었던 멘트를 던지며 준비해온 계약서를 꺼내 들었다.
[이 중 백만 달러는 개발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하면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제 곧 당신이 설립할 회사의 초기 가치를 우리가 임의로 계산해서 대략 40%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미리 선납하는 것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