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04화 (10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04화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도착한 곳은 자체개발 중인 전투기의 첫 시제기 동체 조립식이 거행되는 KAI의 사천공장이었다.

원래는 단지 짧은 언론 인터뷰와 촬영만을 끝으로 넘어갈 예정이었으나 대통령의 요구로 행사 규모가 커져 버린 상황.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인 만큼 투명하고 확실하게 사안을 전달한다는 의도인 모양인데,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아직 VIP들은 도착 전인 모양이군요.”

다행히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외빈들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긴, 행사의 주체인 내가 늦으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일찍 서두르기는 했으니까.

기왕 일찍 온 마당이면 행사에 차질이나 없도록 만들자는 의도에서 한동안은 이것저것을 직접 주도했다.

“대통령님 내외분 도착하셨습니다.”

대통령의 차량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30분쯤 후였다.

경호 차량을 필두로 줄줄이 들어서는 대통령과 VIP들의 차량.

덕분에 안내 요원들의 움직임은 한껏 부산해지기 시작한다.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 진 회장께선 나보다 더 서둘렀던 모양이군요.”

특유의 미소로 손을 내민 대통령은 이내 공장의 전경을 둘러봤다.

거의 끝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한 건물의 모습에 놀란 걸까, 얼핏 탄성에 가까운 신음을 뱉어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 건물 하나 세우는 것만도 한세월은 잡아먹겠군요. 진 회장이 왜 그렇게 KAI를 인수하려고 했었던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이해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 시설들을 밑바닥부터 다져야 했다면 아마 이 시점에 시제기 동체 제작은 꿈도 못 꿨을 겁니다.”

웃으며 대꾸하곤 그를 안내했다.

곧 도착한 곳은 3조각으로 이루어진 동체의 기골이 하나로 합쳐지기 위해 대기 중인 곳.

대통령의 등장에 마침 리프트를 조종 중이던 엔지니어들이 환호를 보냈고, 그들을 대하는 대통령의 얼굴엔 한껏 웃음꽃이 피었다.

[그럼 지금부터 동체 대조립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진행자의 안내에 따라 대통령과 우린 동체를 향해 걸어갔다.

원래 예정에는 없었으나 행사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테이프커팅 식이 준비된 상태.

찰칵!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와 동시에 드디어 대조립이 시작되었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제작이 진행 중인 항공기들은 항상 저렇게 연녹색으로 도색을 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시제기 4개가 온통 연녹색임을 발견한 대통령은 나를 향해 슬쩍 상체를 굽히며 물었다.

하긴 나도 예전엔 그 점이 궁금할 때가 있었지.

이건 무슨 불문율이라도 되는 듯 전 세계 모든 항공기 제작사들이 전부 저 색만 고집하는 것이 왠지 이상했거든.

차후 그 이유를 알곤 허탈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그린 에어 크래프트’ 개념을 적용한 것이죠.”

‘그린 에어 크래프트’란 한마디로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비행기를 지칭하는 용어다.

항공기의 내부 설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음을 뜻하기도 하며 차후 본 도색과정을 두고 있음을 암시하는.

뭐 일종의 항공기제작업체들의 관행이랄까.

설명을 잇자 대통령이 헛웃음을 뱉어낸다.

“거, 별난 관행도 다 있군요. 그나저나 보고서를 통해서도 느낀 거지만 외관이 어디서 많이 보던 것 같은데, 그게 단지 나만 느끼는 겁니까?”

대통령은 이제 막 하나로 합쳐지는 3조각의 동체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저건 분명 F22와도 꽤 흡사한 모양을 하고 있으니까.

다른 것이 있다면 내부공간의 설계와 엔진 노즐이 위치한 후미 부분의 형상인데, 사실 그 부분이 랩터와는 결정적인 차이점이기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걸 거다.

“F-22를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때, 곁에 있던 공군참모총장이 넌지시 대꾸했다.

“맞아요, 그러고 보니 미국이 개발한 F22를 많이 닮았군요.”

뒤늦게 확신을 얻은 듯 대통령은 짝하고 손뼉을 마주쳤고, 난 즉시 설명을 뒷받침하기 위해 주날개와 공기 흡입구 부분을 손가락질했다.

“그렇게 느끼시는 이유는 아마도 랩터의 블랜디드윙 바디 구조를 따랐기 때문일 겁니다. 실은 F-22의 레이더 형상감소 설계가 현 과학 수준에서는 가장 완벽하거든요. 비록 디자인이 비슷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우리로서는 최선의 것을 선택하자는 의지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그 말에 대통령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내 다시 고개를 돌린 그의 시선이 후미 부분을 향한다 싶더니 나를 향해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저 부분은 F-22와는 다르군요. 저기 저 엔진 노즐이 위치하는 부분 말입니다. 그사이 삐죽이 튀어나온 저 마름모꼴 형태의 구조물은 뭡니까.”

난 그의 말이 덜어지기 무섭게 김 비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뭘 요구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던 듯 그녀는 곧 나를 향해 그림 한 장을 건넸고, 난 다시 그걸 대통령에게 넘겨줬다.

“이건 저 전투기의 최종형태를 그린 일종의 가상도입니다. 말씀하신 엔진 노즐 사이의 구조물은 후방감시 센서가 위치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추가적인 연료탑재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실 내게 있어선 그 부분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었다.

엔진 사이의 간격이 랩터처럼 딱 붙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수호이처럼 쌍둥형 설계로 공간을 과하게 할애한 것도 아닌.

얼핏 보면 한때 유럽에서 개발을 천명했던 6세대 전투기인 템페스트의 후미 부분을 닮은 것도 같은 모습.

그건 전적으로 동체 자체의 크기가 커지고 그에 따른 공간 활용의 목적에서 탄생한 것인데, 앞서 말했듯 난 그 부분을 후방감시와 연료탑재 공간으로 활용했다.

“후방에도 센서를 탑재한다고요?”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 그 점에 더 관심을 보였다.

뭐 이 시기의 주류인 4세대 기체들에겐 사실 생소한 일이었을 테니까.

다시 대통령에게 다가간 난 그림 이곳저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이었다.

“5세대 전투기들의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레이더와 센서들을 곳곳에 장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개발 중인 기체야 4.5세대 불과하지만 차후 5세대로의 업그레이드를 염두에 두고 있기에 미리 설계안에 반영한 것이죠.”

“…….”

대통령은 놀랍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와주려는 의도일까, 곁에서 내내 설명을 듣고 있던 공군참모총장이 슬쩍 끼어든다.

“F22도 동체 곳곳에 온갖 센서들을 탑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대통령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해도 뭔가 설명이 부족한 느낌.

난 잠시 행사를 위해 대조립이 멈춰진 기체로 다가가 곳곳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이 기체엔 ‘스마트 스킨’이라는 기술이 적용됩니다. 일부 안테나와 센서들을 최대한 얇게 만들어서 동체 표면에 부착하는 기술이죠. 덕분에 360도 전방위에 대한 상황인식이 가능합니다.”

“…….”

“게다가 설치되는 레이더 또한 한 대가 아닙니다. 레이돔에 위치할 멀티 밴드 AESA를 제외하고도 주익 내부에 따로 2개의 L-밴드 AESA를 장착하여 스텔스기를 탐지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주익에 레이더를 탑재하는 건 아마 배치3. 즉, 완전한 5세대에 이르렀을 때쯤에나 가능할 겁니다.”

그 부분은 SU-57의 방식을 따른 것이었다.

지금은 몰라도 차후엔 스텔스기들의 탐지 가능성이 그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그 부분에 있어선 SU-57이 확실한 대처를 보인 편이었거든.

미래의 발전 방향을 몰랐다면 모를까, 아는 이상은 우리도 대처를 마련해야 할 것 아닌가.

“허허, 이거 무슨 외계인을 상대하는 전투기를 만드는 느낌이군요.”

대통령은 넌지시 농담을 뱉어내곤 동체를 어루만졌다.

무슨 생각을 떠올린 걸까, 또다시 고개를 갸웃해 보인 그가 다시 질문을 뱉어냈다.

“스텔스 능력이 단지 형상 설계로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그 점에 대해선 대처가 있는 겁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애초 스텔스 능력은 RAS라는 레이더파 형상감소 설계와 함께 레이더흡수재료. 즉 RAM 기술도 필요하죠.”

“…….”

“하지만 염려하실 건 없습니다. 재우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유기, 무기. 그리고 금속계 물질을 사용하여 수많은 테스트를 진행했고, 지금은 자성, 도전, 그리고 분극 손실기능을 모두 갖춘 신물질을 개발했으니까요. 더군다나 우리의 RAM기술은 '도포'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소재 자체에 랩핑 형태로 부착합니다. 즉, 관리비용이 어마어마하게 감소한다는 뜻이죠.”

“…….”

“아무튼, 그 결과 S밴드는 물론 C밴드와 X밴드까지, 현재 군에서 사용하는 모든 대역 대의 레이더 전파의 90퍼센트 이상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긴 설명 끝에 돌아본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허허…….”

그 침묵을 깬 것은 역시나 대통령.

그는 또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동체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이번엔 핵심이 될만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기체의 전투행동반경이 얼마나 됩니까.”

“외부 연료탱크를 탑재한 상태에서 전투행동반경은 1600km입니다. 그리고 페리항속거리(보조 탱크를 장착하여 편도로 날아갈 수 있는 최대 거리)는 대략 3500km이고요.”

“F-15 보다는 낮은 편이군요.”

그 말에 공군참모총장이 중얼거렸다.

그렇지. F-15보다는 낮은 수준이지.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뭐 보조탱크를 달고 있다는 점에선 같은 조건이지만, 그래도 이 전투기는 차후를 생각하여 내부 무장창의 공간을 할애하고도 그 정도 항속거리와 전투행동반경을 확보했다는 점.

사실 그건 러시아의 내부설계방안에서 힌트를 얻은 결과인데, 난 무식할 정도로 내부 연료 공간 확보에 집착하는 그들의 설계에 탄복했었다.

그나저나 표정들이 왜 저렇게 미심쩍어 보이지?

당신들은 우리가 그 수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기나 해?

무려 40번에 걸친 설계변경과 그에 따른 전면 수정.

그야말로 엔지니어들을 갈아 넣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지난날들을.

“참고로 외부 하드 포인트는 총 8개입니다. 이 부분 역시 F-15와 같은 수준이죠.”

“그럼 만약 보조 연료탱크가 없다면 그 자리에 폭탄과 미사일을 더 장착할 수가 있겠군요.”

대통령은 짧은 말을 던지곤 다시 동체를 쳐다봤다.

얼핏 몽롱해진다 싶은 그의 시선.

유려하게 뻗은 기체의 모습에 감탄한 모양인데, 사실 내가 봐도 저건 단순히 4.5세대 기체치고는 괘 미래지향적이기는 하다.

엔진 노즐의 형상은 물론 그 가운데 마름모꼴로 튀어나와 있는 연료탑재공간.

아무리 생각해도 저 부분만 보면 템패스트의 꽁무니가 연상 되거든.

지금이야 비록 뼈대에 옷만 입힌 상황이라서 애매한 느낌이지만, 완전한 시제기가 등장하게 되는 내년 말쯤엔 아마 그 이미지는 좀 더 확실하게 다가올 거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우리 기체도 수호이처럼 엔진 노즐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겁니까?”

“쓰러스트 벡터 컨트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렇습니다. 우리 역시 상하로 15도 정도 노즐의 움직임을 통해 기동력을 극대화했죠.”

“소프트웨어는요? 내가 알기로는 갈수록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고 하던데, 그 부분에 대한 대처도 있는 겁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과거의 경우 기체개발에 있어서 소프트웨어의 비중이 고작 30%에 불과했다면 5세대기의 경우는 무려 70%에 육박하죠. 하지만 재우에는 꽤 훌륭한 개발자가 존재하며 그동안 꾸준한 연구도 진행해왔습니다. 덕분에 2007년쯤엔 이 시제기가 완벽한 무장체계를 갖출 수 있을 것이고, 특별한 오류가 없다면 그 후엔…….”

“오오!”

한참 말을 하는 와중 저편에서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2호기가 드디어 하나로 합쳐진 상태.

그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담으려는 듯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행사는 이것으로 끝이 날 모양인데, 식사나 하러 가시죠.”

문득 쳐다본 시간은 어느덧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다들 배꼽시계가 울리고 있었던 듯,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이 우르르 식당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참, 군 개혁 안에 대한 소식은 진 회장도 들어서 알고 있겠죠?”

가는 길에 내내 침묵하던 대통령이 느닷없는 말을 던졌다.

사실 그런 부분에 있어선 나야말로 입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

옅은 미소로 대꾸하곤 침묵하자 그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실은 나도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

“이 자리가 피곤한 자리임은 알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거든요.”

말투로 봐선 내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반발이 심한 모양이었다.

하긴, 군 장성들은 당장 자리가 위협받는 처지이니 반발이 심한 건 당연하겠지.

특히나 군에서 가장 파워가 강한 육군이 주 개혁 대상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왠지 그 무게감이 나에게까지 전달되는 기분이라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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