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03화
조총련은 일본에 거주하는 친북한계 재일동포 단체를 뜻한다.
한때 세상은 그들을 북한의 전위대로 보기도 했는데, 사실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포지션이 그런 평가를 받기에는 충분했다.
“원래 조총련 자금이 김씨 집안의 쌈짓돈 역할을 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뭐가 새삼스럽다고요.”
“문제는 그 자금의 규모와 출처죠. 지금껏 넘어간 돈이 무려 1조 원에 달한다는데, 이제껏 조총련이 그만한 규모의 돈을 북으로 보낸 적은 없습니다.”
“1조 원이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혹시나 해서 임 전무를 쳐다보자 그의 고개가 가만히 끄덕여진다.
“네, 모사드 국장의 전언에 의하면 일본 극우들이 운영하는 각종 사업체들의 자금이 해외에서 수없이 많은 세탁을 거쳐 넘어갔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대체 왜 북에 돈을 준다는 말입니까?”
“저도 지금 그게 이해가 안 간다는 겁니다.”
임 전무는 다시 머리를 긁적였다.
뭐 이유야 둘째 치고 이건 또 하나의 역사적 변침점.
그로 인해 방향이 달라진 배가 향할 곳이 어디인지가 무척이나 궁금하다.
‘아무래도 나라는 존재가 너무 큰 역사의 변수가 되어 버린 모양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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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국방부 장관 메이어 호간입니다.]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의 첫인상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170에 불과한 키와 서글서글한 눈매.
이건 한마디로 꼭 중동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저씨 같달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늘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역시나 사람은 겉모습만 봐선 모른다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까 싶다.
솔직히 저런 온화한 얼굴이 늘 전쟁을 생활화하는 이스라엘군의 최고 책임자라는 것이 어디 어울리기나 하냐고.
[소식은 들었습니다. 올해 생산 예정 분량을 양키들이 전부 침을 발라 놨다고요.]
한데 예상과는 달리 그의 말투는 상당히 호전적이었다.
저들로서는 최우방인 미국을 상대로 저렇듯 거침없는 표현을 뱉어낸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
놀란 것은 나만은 아닌 듯, 우리 측 인원 대부분의 얼굴엔 당황한 표정이 지어져 있었고, 그 표정을 본 메이어는 뒤늦게 헛기침을 뱉어냈다.
[흠흠, 미안합니다. 최근 제가 미국에 쌓인 불만이 좀 많은 편이라서…… 아무튼, 상황이 이러면 언제쯤에나 주문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겁니까.]
[아마 6개월 후면 여유가 생길 듯합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 추가 라인증설 작업이 한창이거든요.]
불만 가득한 눈초리였던 메이어 장관은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후 한참 생산 중인 폴라베어를 꿀 떨어지는 눈으로 쳐다보던 그는 여전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다.
[어차피 이스라엘의 경우엔 운용 검증을 거쳐야 도입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럼 굳이 시간에 연연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난 조급해하는 그의 태도가 의아하여 슬며시 물었다.
솔직히 이스라엘이 사우디처럼 왕실의 결정만으로 무기도입이 가능한 국가도 아니고.
의회의 예산통과 이후 자체 테스트는 물론 운용 검증 기간만 거의 1년 이상 걸릴 텐데.
뭐 사실 1년도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고, 대부분은 수년 이상이 소요될 수도 있는 것이 보통국가들의 무기도입과정임을 감안하면, 조급해하는 그의 태도는 영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운용 검증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 같으니 하는 말입니다.]
그때, 메이어가 의외의 말을 뱉어냈다.
왠지 의미심장한 말이다, 싶어 쳐다보자 그가 다시 조립 중인 폴라베어를 향해 시선을 주며 말한다.
[솔직히 아프가니스탄이나 우리나라나 환경적으로는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상황인데, 더 이상의 검증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게다가 미국 같은 까다로운 나라가 무려 10만 대가 넘는 도입 수량을 그렇듯 단번에 결정할 정도면 신뢰성도 이미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
[특히나 우린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구출 작전에서 폴라베어가 활약하는 것을 가장 관심있게 지켜봤습니다. 그 결과 이젠 오히려 의회에서 도입을 요구할 정도죠.]
[그렇다 해도…….]
[네, 그렇다 해도 절차를 완전히 생략할 수는 없으니 대략 6개월 정도는 형식적이나마 운용 검증 기간을 거칠 겁니다. 하지만 이미 도입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1년 후면 물건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나로서야 춤을 출 일이었다.
엄밀히 따진다면 도입을 검토하는 것과 확정 지은 것은 다르니까.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이스라엘의 경우 해외에서 도입한 무기들을 연구하여 매번 그 이상의 성능을 지닌 물건을 만들어 내는 기술 강국이라는 점인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도 괜한 걱정이지 싶다.
‘그거야 어느 정도 기술 수준이 비슷할 때의 이야기이지.’
폴라베어의 핵심인 복합소재기술의 경우엔 당장은 그 어느 나라도 복제를 해내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니까.
시도할 만한 것이 있다면 서스펜션이나 엔진의 전자제어 부분 정도?
뭐 사실 그 정도야 굳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어느 나라건 개발이 가능한 부분이기에 굳이 문제 될 것은 없다.
[총 도입 수량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는 겁니까.]
잠시 들었던 생각을 뒤로하고 슬며시 물었다.
요구 수량을 알아야 정확한 납품 기일을 예측할 수 있을 테니까.
여전히 생산라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나를 다시 쳐다봤고, 곧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 보였다.
[5백 대 정도면 말씀하셨던 7월쯤엔 충분히 납품이 가능할 겁니다.]
난 웃으며 말하곤 그를 사무실로 안내하려 했다.
하지만 꿈적도 하지 않는 그의 몸.
뭔가 싶어 쳐다보자 그가 헛웃음을 내비치고 있었다.
[누가 5백 대라고 했습니까?]
[…….]
[우리가 필요한 수량은 5천 대입니다.]
[5천 대요?]
난 멍한 얼굴로 메이어를 쳐다봤다.
막말로 저 작은 나라에서 무려 5천 대를 주문하겠다는 마당에 안 놀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예상했던 반응이었던 듯 그가 히죽 웃으며 말한다.
[그 표정 이해합니다. 상비군의 수가 16만 명 밖에는 되지 않는 우리 군으로서는 확실히 적은 수량은 아니죠.]
[…….]
[하지만 우린 지금 건국 이후 최대의 군 전력 재편을 예정 중입니다. 그에 따라 육군의 기동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려 계획하고 있죠.]
[…….]
나로선 뿌듯한 일이었다.
저 말은 결국 폴라베어를 이스라엘군 전력 재편의 핵심으로 삼겠다는 거니까.
내가 만든 물건이 한 나라 군 전력의 핵심이 된다?
무기를 만드는 자로서 이보다 더한 자랑거리는 없을 거다.
[참, 한 가지 알려드려야 할 사실이 더 있는데, 최근 우리 군은 의회에 단거리 대공방어 시스템을 HVP로 구축하자는 제안도 해둔 상태입니다.]
그때 메이어가 미처 예상치 못했던 화두를 하나 더 던졌다.
초반 구매 의사를 밝힌 이후 내내 조용하기에 물 건너갔나 싶었더니 이건 또 무슨.
묵묵히 쳐다보자 그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아시다시피 HVP는 우리도 진즉부터 도입을 고려했었습니다. 아마 그때가 연평도 사건 때였던 것 같은데,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그 때문에 카탈로그도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막상 도입 의사를 밝힌 것은 우리였음에도 연락을 안 한 것은 확실히 우리 잘못이니까요. 변명 같지만, 당시 라파엘사가 단거리 대공 방어시스템을 탐색개발 할 때였는데, 그게 문제가 됐습니다.]
[…….]
[나라가 워낙 하루가 멀다시피 시끄럽다 보니 의회가 안정적인 지원과 부품조달 문제로 자체개발에 힘을 실어 준 거죠. 하지만 의회도 이젠 현실을 깨달은 모양인지 이번 기회에 방향전환을 주장하더군요.]
[…….]
[따지고 보면 북한이 보유한 수천 문의 장사정포의 위협에 있는 한국이 우리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지 않습니까. 한데 그 와중에도 완벽하게 북을 억제하고 있는 상황에 우리 의회가 마음을 돌린 거죠. 게다가 정작 우리가 개발하고 있던 것은 HVP 만큼 가격대비 효율성이 좋은 편도 아닙니다. 그 상황에서 선택의 길은 하나뿐이지 않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말만큼은 이해가 갔다.
라파엘사가 개발을 주도했다는 단거리 대공 방어시스템이라면 필시 그건 아이언돔을 뜻할 터.
그건 아무리 생산 단가를 낮춘다 해도 결국엔 수천만 원에 달하는 미사일인데, 그걸로 고작 발당 백만 원도 안 하는 싸구려 까삼 로켓을 방어하는 건 효율성이 극악이지 않던가.
[아무튼, 그 탓에 그동안 우리가 연구 중이던 자체 단거리 대공방어 시스템은 폐지됐습니다.]
그나마 로켓이라면 다행인 일이다.
저들을 주로 괴롭히는 것은 십 중 팔, 구는 박격포탄.
때문에, 그걸 수천만 원짜리 미사일로 방어한다는 건 그야말로 극악의 가성비를 보이는 건데.
그럴 바에야 차라리 비용이 덜 드는 HVP를 구축하는 편이 최고의 선택일 거다.
그나저나 일이 이렇게 되면 이제 아이언돔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건가.
다른 건 몰라도 그 이름만큼은 참 탐이 났었는데.
[혹시 재우가 만든 HVP 시스템의 별칭은 뭡니까?]
그때, 메이어가 뜬금없는 질문을 해왔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개발한 HVP는 KC-RAM이라는 정식 제식 명 외엔 따로 이름조차도 없었던 것이 현실.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는 차, 그가 툭 하고 다시 말을 뱉어냈다.
[아직 별칭이 없다면 우리가 개발 중이었던 것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괜찮을 듯싶은데. 어때요, 생각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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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오늘 오전 산디아고에 정박 중인 에이브러햄 링컨 함에서 종전을 선언했습니다.]
2003년 5월 1일.
드디어 부시가 이라크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비록 사담 후세인을 체포하는 것엔 실패했지만, 그의 핵심 전력이었던 공화국수비대는 괴멸에 이른 상태.
결국, 그의 정권은 붕괴되었고, 이라크는 이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바쁘다.
[우리 정부는 내일 이라크의 안정화를 위한 전투병력과 공병부대를…….]
우리 의회는 오랜 진통 끝에 결국 전투병력의 파병을 결정지었다.
의회의 결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어차피 전쟁은 끝났으니 큰 피해를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
하지만 지루하게 이어질 반군세력들과의 대치가 정작 이 전쟁의 숙제임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솔직히 쉽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오전 정부는 국방개혁안을 발표했습니다. 주된 골자는 68만의 현역군인의 수를 2020년까지 50만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이며, 군의 첨단화를 통한 병력 감축의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그로부터 며칠 후, 정부는 대대적인 군 재편에 시동을 걸었다.
역사적으로도 현 대통령이 국방 개혁을 주장하고 실행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시기가 이때쯤이었는지는 기억이 확실치 않은 상태.
난 멍하니 TV를 보며 지난 청와대에서의 술자리를 떠올렸다.
‘느닷없이 우리 군에 당장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묻더니, 이게 이유였던 모양이군.’
[정부의 개혁안에 따라 공군은 미뤄두었던 조기 경보기 획득사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획득수단은 해외 도입보다는 자체개발 쪽으로 무게를 두고 있으며 만약 확정될 경우 개발 기간은 총 4년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뒤이어 나온 소식은 군 전력 재편 안에 따른 1차 조치로 조기경보기를 자체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총 개발 기간은 4년.
그리고 한해 6천억의 예산 투입.
분위기로 봐선 지상 전술 통제기의 도입 검토는 그 이후 사업을 진행할 모양인데, 그래도 족히 10년 이상은 논의가 빠른 편인 거다.
뭐 우리 군의 형편상 그게 정상이기도 하고.
“이스라엘로부터 HVP 3개 포대에 대한 정식 발주서가 도착했습니다.”
생각에 젖어있을 무렵 김 비서가 이스라엘로부터 HVP. 아니, 아이언돔의 정식 구매발주서가 날아들었음을 알려왔다.
우스운 일이지.
우리가 개발한 HVP가 아이언돔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것이.
이럴 때 보면 또 역사의 변화에 따른 쏠쏠한 재미도 있다.
‘그나저나 발주금액만 15억 달러라……한동안은 또 탈레스가 정신없이 바빠지겠군.’
“참, 한 달 전 보냈던 다섯대의 폴라베어는 순조롭게 운용 검증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요구사항을 완벽하게 맞춰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한다고 합니다.”
그 부분만 생각하면 사실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무슨 놈의 요구사항이 그리 많은지 원.
그나마도 다행이었던 것은 대부분이 자잘한 외부장착 옵션들이었다는 건데, 대체 차량에 바이크 거치대는 왜 설치를 해달라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다행이군요. 시간이 촉박하니 출발합시다.”
난 즉시 서류에 사인한 후 수트를 챙겼다.
흥분에 젖은 내 표정 때문일까, 김 비서 역시 그동안 과는 달리 잔뜩 상기된 얼굴로 뒤를 따른다.
“드디어 시제기의 동체 조립이 시작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