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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102화 (10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02화

늦은 시각 도착한 청와대 별관 주방에는 간단한 술상이 차려져 있었다.

뭐 술상이라고 해봐야 막걸리 몇 병과 마른안주 조금.

저편에서 대기 중인 경호 인력들만 아니었다면 이곳이 청와대라는 사실조차도 망각할 만한 분위기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국정원장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내 나를 향해 슬쩍 눈인사를 건넨 그는 나와는 달리 이런 상황이 딱히 당황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자리를 잡았다.

“백악관에선 뭐라고 합니까?”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잔에 술을 따르며 넌지시 물었다.

순간 머뭇거리는 국정원장.

아무래도 내 존재를 의식하는 느낌이라 난처한 표정을 짓자 대통령이 다시 말한다.

“어차피 얼마 후면 언론에 발표가 될 사안 아닙니까. 그냥 말씀하셔도 됩니다.”

“뭐 대통령님께서 그러시다면야…… 일단 미국에선 우리가 내걸었던 조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뭔가 대화의 흐름이 조금 이상했다.

미국. 그리고 조건.

슬며시 대통령을 쳐다보자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한다.

“정부는 미국의 지속적인 파병 요청에 일부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을 생각입니다.”

“…….”

“뭐 의회와의 합의가 있어야 결정이 나기는 하겠지만, 야당에서도 전투병 파병에 대해선 긍정적인 입장이니 문제는 없겠죠. 해서, 특전사 병력 200명 정도를 전후 안정화 작전에 투입하는 것이 어떨까 싶군요.”

한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비록 ‘전후 안정화 작전.’ 그러니까 당장 일어나고 있는 전투에는 투입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달리긴 했어도 전투병력 파병은 그 자체가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거든.

이로써 역사는 또 그 길을 벗어나게 된 건데, 이젠 대체 역사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짐작조차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내건 조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이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궁금한 마음에 즉시 되물었다.

들고 있던 막걸리병을 슬쩍 다시 내려놓은 대통령은 긴 한숨과 함께 말을 잇는다.

“미국이 우리에게 전투병력 파병을 요구하는 것은 전력이 부족해서가 아님은 진 회장도 잘 아시겠죠?”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막말로 미국 같은 나라가 이라크 정도의 국가를 밀어 버리는 것에 무슨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까.

저들은 단지 명분이 부족한 전쟁을 홀로 수행하는 부담감을 덜기 위해서.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동맹의 결속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을 거다.

“물론입니다.”

“해서 우린 그 요구를 채워주고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을 생각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난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저 표정을 보니 왠지 그게 뭔지 알 것 같았거든.

당황스러운 마음에 묵묵히 쳐다보자 그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맞아요,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의 묵인. 우리가 내건 조건은 그거였습니다.”

“미국이 그걸 받아들였다고요?”

놀라 되묻는 나를 대통령이 지그시 쳐다봤다.

미간에 슬쩍 주름이 잡힌다 싶더니 이내 그의 입이 다시 열렸다.

“이 시점에 진 회장께서 주지해야 할 것은 '묵인'이라는 단어입니다.”

“…….”

“쉽게 말해서 그걸 개발하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줄 생각도 없다는 소리죠.”

그 말을 듣자 떠오른 것은 회귀 전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었다.

한때 우린 북의 핵전력에 대응하기 위해 핵 추진 잠수함 보유를 주장했고, 미국은 그걸 암묵적으로 승인했었던.

하지만 정작 핵확산 방지조약을 핑계로 핵연료의 판매는 거부하여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사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 사건의 재판인 느낌이다.

“묵인이라고는 해도 그게 실질적으로는 허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아십니까?”

넌지시 그를 향해 물었다.

의외인 것은 그가 내 질문의 의도를 꿰뚫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거다.

“맞아요. 미국이 정작 핵확산금지조약을 핑계로 핵연료를 판매하지 않으면 우리로서는 난감해지겠죠. 어쩌면 그래서 대답을 쉽게 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쯤은 나도 해봤습니다.”

“…….”

“하지만 우리로선 그게 어딥니까. 뭐 연료 문제야 차차 해결방안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차마 대꾸할 말이 없었다.

자칫 무모한 것 같기는 하나, 그게 또 영 가능성이 없어 보이지도 않으니까.

사실 찾으면 길이야 없을까.

미국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로서는 큰 소득은 소득인 셈이다.

“어쨌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도 이제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의 길은 열렸다는 겁니다. 물론 3000톤급 잠수함의 개발이 끝나야 가능할 테니 앞으로 최소 7년 후쯤에야 시도할 수 있겠지만.”

“…….”

대통령은 내가 침묵하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무엇이 떠오른 걸까, 이내 다시 미간에 주름이 잡힌 그의 입에선 파병에 대한 사안들이 거론된다.

“좀 염려스러운 것은 아무리 전후 안정화 작전에서의 투입이라고는 해도 우리 병사들의 희생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라는 점인데, 그게 죄스럽군요.”

사실 나도 그 부분이 염려스럽기는 하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의 희생은 정작 전쟁 자체보다는 재건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발생했으니까.

그나마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방법이라면 무장이라도 완벽하게 해서 보내는 것뿐.

혹시나 해서 묻자 대통령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드리워진다.

“군의 예비비를 총동원해서라도 파병부대의 무장은 완벽하게 갖출 생각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피식 미소를 지으며 남은 잔을 들이켠 대통령은 이번엔 또 무슨 생각이 떠오른 건지 아!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참, 이스라엘 총리가 며칠 후 우리나라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은 혹시 들으셨습니까?”

“…….”

난 순간 멍하니 대통령을 쳐다봤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에 이스라엘 총리가 우리를 방문했었던 사건은 기억에 없거든.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이스라엘 국방부 측에서 느닷없이 폴라베어를 목적으로 재우를 방문하겠다는 소식을 알려오기는 했었는데, 저 소식을 듣고 나니 비로소 상황파악이 쉬워진다.

한마디로 그런 거 아닐까.

총리의 방문을 기회로 삼겠다는.

‘이스라엘이라…….’

******

[미국은 오늘 바그다드를 함락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한 지 불과 이주 만에 후세인 정권은 붕괴됐다.

이제까지 연합군의 사망자 수는 총 164명.

그에 반해 이라크군 사망자 수는 무려 9200명에 달했다.

[미국은 최대한 빠른 전쟁의 종식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마 역사대로라면 저 말이 맞을 거다.

불과 두 달.

내가 아는 이라크 전쟁은 고작 그 짧은 기간 만에 끝이 났으니까.

하지만 그걸 알까.

정작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이후 미국은 이라크에서 발을 빼지 못한 채 지속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며, 그게 미국의 힘을 빼 버린 원인 중 하나가 될 거라는 사실을.

똑똑!

“임 전무님 오셨습니다, 회장님.”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무렵 임 전무가 정기보고를 위해 내방을 찾았다.

국내외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 사고들로 인한 변수들을 파악하느라 가뜩이나 바쁜 부서가 바로 전략 기획실.

그런 와중에 이라크 전쟁까지 발발한 터라 그의 얼굴은 거의 좀비와도 같은 수준이었다.

“며칠 휴가나 좀 다녀오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도 안타까운 마음에 넌지시 휴식을 권했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느낀 걸까, 그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책상에 보고서들을 올려놓는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국정원에 있을 때보다는 천국이니까요.”

“그래도 이젠 나이를 생각하셔야죠. 비서실에 말해 둘 테니 제주도에 있는 연수원에서 가족들과 며칠 휴식 좀 취하세요.”

“그래도 됩니까?”

임 전무의 얼굴은 그제야 환해졌다.

이건 뭐 누가 보면 내가 악덕 기업주라도 되는 줄 알겠네.

하긴, 회장이라는 자가 1년 365일을 거의 일에만 매달리고 사는 마당에 직원들이라고 편했을 턱은 없었을 거다.

“경비는 회사에서 댈 테니 얼마가 됐건 청구하셔도 좋습니다.”

“그렇다면야 저로선 대환영이죠.”

그는 당장에라도 회사를 나설 듯 보고를 서둘렀다.

러시아에서 진행 중인 자동차 공장 건설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과 그에 대한 대처들.

그리고 최근 본격적으로 협의가 진행 중인 러시아와의 자원 공동개발에 앞선 사전 조사결과에 대한 보고까지.

뭐 대부분은 익히 아는 문제들이었기에 내가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없을 듯했다.

“저…….”

한참 보고서에 사인을 하고 있을 무렵 임 전무가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였다.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들자 그가 머리를 긁적이며 한 걸음 다가선다.

“이스라엘 총리가 오늘 아침에 우리나라에 온 것은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그쪽 국방부 장관과 오후에 폴라베어 생산라인을 시찰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게 왜요?”

“그럼 모사드가 국정원에 정보교류 협약을 제안했다는 것도 아십니까?”

“…….”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놨다.

그쪽 방면에 관해선 문외한에 가깝긴 해도 왠지 보통 소식은 아닌 느낌이었거든.

다른 곳도 아니고 모사드라면 특정 부분에 있어선 미국과 러시아의 정보부조차도 한 수 접어줄 수준.

그런 집단이 뭐가 부족해서 국정원과 정보교류협약을 한다는 것인지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만, 그런데 이미 이스라엘과 우리는 오래전부터 일정 부분 정보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내가 착각했나?

“그간에는 이스라엘과 정보교류가 아예 없었던 겁니까?”

“그럴 리가요. 그간에도 어느 정도의 정보교류는 있기는 했지만, 이번엔 그 수준 자체가 다른 겁니다.”

“어떻게요?”

“글쎄요, 이젠 저도 민간인인지라 정확히는…… 뭐 그래도 국정원장님의 목소리 톤이 밝았던 것으로 봐선 대충 미국과 우리나라 사이에 맺었던 정보교류협약에 근접한 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

그 정도면 우리에게 불리한 일은 아닌 듯했다.

아니, 미국으로부터 받는 제한적인 정보에 늘 불만이던 우리로서는 가뭄의 단비와 같았을 수도.

이런 식으로 역사가 길을 벗어나는 것은 왠지 또 긍정적인 느낌이다.

“그나저나 전 왠지 모사드가 그런 요구를 해온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지나가듯 뱉어진 임 차장의 말에 다시 그를 쳐다봤다.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인 그는 마치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가 왔다는 듯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이게 서로 뗄 수 없는 문제임을 감안한 거죠. 그 탓에 북한을 상대로 한 우리의 휴민트 정보가 필요했을 겁니다. 뭐 사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국정원 역시 중동지역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동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으로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이 서로 얽힌 문제라는 설이 실존하기도 했으니까.

아니 설이라기보다는 사실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건 그렇고, 그동안엔 꽤 괜찮았던 이란과의 관계가 걱정인데, 정부가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할지 의문이다.

“이란에서 서운함을 표하겠군요.”

“서운하기는 해도 뭐라 큰소리는 못 칠 겁니다. 솔직히 자기들도 우리와 북한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입장이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헛웃음을 지은 채 쳐다본 시계는 어느덧 오후 1시.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더 하실 말씀 없으면 이만 일어나시죠. 공장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참, 드릴 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막 수트를 챙기려는 순간 그가 서둘러 말을 던졌다.

심각한 표정.

왠지 예사롭지 않은 말이 나올 것 같은 기분에 슬며시 수트를 다시 내려놓았다.

“실은 국정원장님으로부터 좀 이해가 안 가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뭐 아직은 기밀로 지정된 정보까지는 아니니, 회장님께 알려드려도 상관은 없다고 해서…….”

“……뭔데 그럽니까?”

“이번에 총리와 함께 방문한 모사드 국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데, 몇 년 전부터 북한으로 조총련을 통해서 어마어마한 자금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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