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100화
일주일 후, 미 본토에서 폴라베어를 수송하기 위해 C-5 갤럭시 한 대 날아왔다.
적재량이 무려 127톤에 달하는 괴물 중의 괴물.
납품을 예정하고 있던 폴라베어들 중 일부를 우선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수십여 대의 차량을 집어삼키듯 빨아들이는 장면에선 그야말로 경외감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쯧,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도 수송기의 도입이 필요해.’
그건 벌써 몇 번이니 느꼈던 점이었다.
어디 수송기뿐일까, 공중조기경보통제기를 비롯하여 조인트 스타즈 같은 합동 이동표적 감시통제기 도 필요하지.
이럴 때면 참 갈 길이 멀다는 생각뿐이다.
“지난번에 왔던 수송기는 저거에 비하면 꼬맹이 수준인데요?”
갤럭시의 크기에 놀란 김 비서는 연신 탄성을 발하며 눈을 떼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속이 쓰려오는 터라 돌아서자 그녀가 재빨리 따라붙는다.
“어디 가시게요?”
“대유 공장으로 갑니다.”
“네, 바로 차량 대기시키겠습니다.”
이유를 묻는 질문 따위는 날아들지 않았다.
어차피 오전에 있었던 회의 결과로 인해 그녀 또한 폴라베어의 생산라인 증설 문제에 대해선 인지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라인구축이 완성된 것이 불과 수개월.
그 마당에 또 라인을 증설하는 상황이 올 줄은 나도 미처 예상치 못했다.
끼익!
“어서 오십시오.”
도착한 대유 공장은 모든 라인들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얼핏 보면 저곳이 과연 한때 부도가 났던 업체가 맞나 싶을 정도.
격세지감이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어울릴까 싶다.
“라인증설은 전처럼 기존 조립라인을 개수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무래도 조립동을 새로 건설하려면 시간적인 여유가 없을 것 같아서…….”
담당 대표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다만 염려스러운 것은 그 경우 상용 차량의 생산 능력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점.
하지만 난 결국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하죠. 어차피 대유 트럭의 시장점유율이 바닥을 친 것은 이미 오래니까. 차라리 상용 부분이 1년 정도 더 기다리는 편이 나을 겁니다. 그나저나 인력 충원 문제는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내가 신경 쓰이는 건 오히려 그 부분이었다.
폴라베어의 경우 상용 차량과는 달리 사람의 손을 타는 작업과정이 많은 물건이라서 지금 있는 인력 수준으로는 막상 공장을 증설한다 해도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크거든.
더군다나 일이 손에 익으려면 한동안은 교육이 필요한데, 그걸 증설 기간 안에 끝마치려면 당장에라도 충원을 시작해야만 한다.
“그 부분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IMF 때 실직한 자동차 공장 인력들이 꽤 많은 편이라서 금세 해결이 될 테니까요. 안 그래도 정부 부처를 통해서 운영이 중단된 자동차 공장들의 인력들과의 연결을 부탁해 놨습니다.”
대표는 자신하듯 말했다.
하긴, 당시 워낙 많은 실직자들이 발생했어야지.
어쩐지 오전에 경제부처 장관과 관료들이 느닷없이 전화해선 재우 그룹을 향한 온갖 미사여구를 뱉어내더니 그게 이유인 듯싶다.
“아무튼, 최대한 증설에 서둘러 주세요. 아무리 늦어도 연말부터는 가동을 시작해야 할 테니까.”
“네?”
대표는 그 말에 죽을상을 했다.
기한을 맞추려면 뼈를 갈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지.
미안한 마음을 뒤로한 채 돌아서려는데, 마침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진동한다.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나 잭입니다.
발신자는 노키드의 CEO인 잭 커슨이었다.
안 그래도 조만간에 내가 먼저 전화를 하려던 차였건만.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네자 그가 곧바로 본론을 끄집어냈다.
-소식은 들으셨죠?
[물론입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결론이 난 겁니까.]
-실은 국방부가 F22의 본격적인 양산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 탓에 당장 F16 개수작업을 진행할 라인 확보에 비상이 걸렸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사실 그게 아니면 노키드 같은 거대 업체가 라인 부족을 겪을 이유가 없거든.
문제는 왜 갑자기 그런 변수가 등장했냐는 점인데, 잭 역시 그 점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는 듯했다.
-어쨌건 그런 이유로 진 회장의 도움이 좀 필요합니다.
[우리야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마당에 거절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미군 소속 기체들이면 이송이 꽤 까다로운 텐데요.]
-당분간 이송문제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개수가 예정된 100대 중 60대는 주한 미군에 배속된 것들이니까요. 그게 끝나면 차후 나머지 40대는 공중급유를 통해서 순차 적으로 건너가게 될 겁니다.
[…….]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아는 주한미군의 F16 보유 수량은 총 60대.
아니 그걸 죄다 손을 대 버리면 대체 전력 공백은 어떻게 하려고?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다시 물었지만, 그의 대답은 똑같았다.
-실은 나도 좀 의외이긴 한데, 국방부에선 분명 그렇게 오더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한 번에 최소 20대가량은 동시 개수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로 인한 전력 공백은 어쩌려고요?]
-그건 우리 국방부에서 이미 대책을 세워놨습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미 공군 소속 최신 F16 기체들을 임시 배치한다더군요.
[미 공군 기체들을 전용한다고요?]
이유가 뭐건 우리로선 다행인 일이었다.
아무래도 최신 기체들이 배속되면 그만큼 작전능력은 향상되니까.
확실히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고부터는 이런 문제에 있어선 한국의 편의를 잘 봐주는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주한미군 기체들의 경우는 엔진 개수도 함께 이루어질 겁니다.
잭과의 통화는 마지막까지 희소식이었다.
엔진 교체가 이루어지면 개수비용은 그야말로 수직으로 상승하는 상황.
거기에 우리의 레이더를 장착하는 것이 조건이니 잘하면 개수사업에서 정작 꿀을 빠는 것은 우리가 될 듯싶다.
‘거 참, 불안할 정도로 일이 잘 풀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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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후세인을 상대로 48시간 안에 이라크를 떠날 것을 최후통첩했습니다. 서방 언론들은 이를 명백한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있으며…….]
며칠 후, 미국은 기어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대외적인 명목은 이라크가 보유 중인 대량살상무기의 제거를 위해서.
그게 핑계에 불과했다는 논쟁이야 차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대두될 일이고, 당장 세상은 또 한 번의 전쟁 소식에 혼란이 찾아왔다.
[미 공군에 의한 폭격이…….]
늘 그렇듯 첫 시작은 항공기를 이용한 폭격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이 보유 중인 어마어마한 폭탄의 재고가 모두 소진되었을 정도.
오죽했으면 이 전쟁은 군산 복합체에 의해 계획된 전쟁이라는 음모론마저 등장했을 정도다.
[후세인의 축출은 또 다른 지옥의 문을 여는 것이며…….]
서방 세계의 중동 전문가들 대부분은 거의 매일 부시의 독단적인 태도를 비방했다.
하지만 그게 먹힐 턱이 있나.
네오콘의 영향을 받는 언론들의 논조에 슬슬 전쟁은 합리화 되어갔고, 결국 전쟁에 참여한 국가는 영국을 포함하여, 오스트레일리아와 폴란드까지 총 4개 국가. 병력도 어림잡아 30만여 명에 달하게 됐다.
“우방의 참전 요구를 끝내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가 우리나라도 중동의 테러집단의 표적이 되면 어쩔 생각입니까.”
TV에선 연신 토론이 이어졌다.
물론 그 주된 내용은 한국군의 참전 여부에 대한 논쟁.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나로선 그 부분이야 별 관심이 없고, 이 전쟁이 얼마나 역사대로 진행되느냐가 궁금할 뿐이다.
빌어먹을, 요즘 역사가 하도 뒤죽박죽이어서 안심이 되어야 말이지.
똑똑!
“회장님, 진현철 대표님 오셨습니다.”
한참 뉴스에 심취해 있을 무렵 김 비서가 진현철의 방문을 알려왔다.
최근 한참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그는 부쩍 살이 오른 상태.
저 모습을 좋아 보인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가 않는다.
“온 나라가 또 전쟁 때문에 난리구나.”
그는 막 전원을 꺼 버린 TV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손가락에도 살이 찐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혹여 한쪽뿐인 신장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혹시 신장에 문제 생긴 건 아니죠?”
“갑자기 그건 무슨 소리야?”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부은 느낌이라서요.”
“아, 이거…… 부은 것이 아니라 살이 찐 거야.”
“……형수님께 그만 좀 거둬 먹이라고 하세요. 그러다 돼지 사육한다는 말 나오겠습니다.”
현철은 그 말에 웃음을 뱉어내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불룩하게 나오기 시작한 배가 스스로도 마음에 걸렸던 듯 벨트를 잔뜩 조인 그는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집사람이 너 언제쯤 우리 집에 올 거냐고 물어보라더라. 명색이 동생이 돼서 형 집들이에도 못 온다는 게 말이 되냐?”
그 부분은 차마 할 말이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도 사실 하루 이틀이지. 아무래도 조만 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시간을 내기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매번 나만 보면 그놈의 결혼 소리를 해대는 터라 그게 껄끄럽다.
“참, 너 혹시 여자 소개받아보지 않을래?”
저거 봐.
무슨 바이러스에 전염된 것도 아니고, 이젠 부부가 아주 쌍으로 저런다니까.
“사양하겠습니다.”
“그러다 대체 언제 결혼하려고? 세월 가는 거 순식간이다. 그러다 아버지 건강이 다시 안 좋아지시기라도 하면 어쩔 건데.”
“아버진 90세까지 사실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것도 이젠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알던 역사는 점점 그 길에서 벗어나고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 회장의 건강이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는 건데, 무슨 노인네가 그 험하다는 내설악산 등반을 밥 먹듯 하는 중이다.
“너 혹시 김 비서와 뭐가 있는 건 아니지?”
불현듯 뱉어진 그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괜한 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넌지시 말을 이었다.
“김 비서가 시집갈 생각은 안 하고 주구장창 네 옆에만 붙어 있는 것이 수상해서 그런다. 넌 여태 그런 거 못 느꼈어?”
“짧고 굵게 살고 싶답니다.”
이전 러시아에서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대꾸했다.
순간 동그래지는 현철의 눈.
탁 하고 보고 있던 서류를 덮곤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지금 김 비서 연봉이 1억이 넘어요. 그 마당에 회사를 그만두겠습니까?”
“비서 월급이 1억이 넘는다고?”
“그만한 능력이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본사까지 오신 겁니까?”
현철은 그 질문에 아차 싶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곧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내게 건넨 그는 다시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배터리 사업부에서 이번에 동유럽 국가 중 한 곳에 공장 증설을 계획 중인데, 네 생각은 어떤가 싶어서.”
“벌써 증설을 고려해야 할 상황입니까?”
1년 전부터 리튬 이온 배터리와 폴리머를 생산하기 시작한 재우 화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타는 중이었다.
특히나 독자적인 음극재 개발과 분리막의 국산화로 기존 제품들보다 전력 효율을 10퍼센트 이상 끌어올린 상태.
당연히 수요는 폭발하기 시작했고, 이젠 주문량을 못 맞추는 지경에 까지 이른 모양이다.
“물건이 좋으면 수요는 당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는 법이잖아. 특히 노트북을 주로 생산하는 업체들로부터의 수요가 폭발해서 지금 난리도 아니야.”
“그건 듣기 좋은 소식이군요. 알겠으니 어느 나라에 공장을 세울지는 형님께서 알아서 정하시죠.”
어차피 화학 분야야 애초부터 현철에게 맡겨 두었던 점이니 판단은 그가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뭐 사실 그만큼 판단력과 도전정신이 뛰어난 인물도 없는 편이고.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걸까, 그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걸 내게 맡기겠다고?”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어차피 형님께서 책임자인 마당에.”
“…….”
그는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순간 떠오른 것은 전에 우리끼리 했었던 약속.
즉, 사업이 본궤도 오를 때까지만 그가 화학 분야를 떠맡는다는.
난 삐져나오는 웃음과 함께 말을 내뱉었다.
“지금 제 처지를 알고도 그걸 제게 넘기고 싶으십니까?”
“얌마, 그럼 나보고 대체 언제까지 그걸 책임지고 있으라는 건데. 솔직히 점점 부담된다고.”
“부담 되도 참으세요. 앞으로 한 10년 정도는 맡아 주셔야 할 테니까.”
“…….”
현철은 황당하다는 투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보기에도 내 처지가 딱해 보였는지 더는 불평을 토하지 않은 채 무언가를 중얼거린다.
“비 맞은 땡중마냥 뭐라고 그러시는 겁니까.”
“뭐긴 뭐야. 아버지 원망하는 중이지.”
“…….”
“기왕 밖에서 자식들 거둬들이실 거였으면 차라리 셋이었으면 더 좋았잖아. 그럼 이렇게 우리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까.”
피식.
그 말에 헛웃음을 뱉어내곤 곧 있을 회의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것은 전고체 전지의 개발 현황.
혹시나 해서 묻자 그가 아! 하는 표정과 함께 머리를 긁적인다.
“연구소 김희원 박사의 말에 의하면 내년 말쯤으로 보고 있더군.”
“흠, 대충 예상했던 시기군요. 아무튼, 가시죠. 이러다 회의 늦겠습니다.”
벌컥!
“회장님!”
문을 열자 김 비서가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이내 현철을 의식한 듯 머뭇거리던 상관없다는 내 눈빛에 다시 입을 연다.
“조금 전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뭐라고요?”
“혹시 지금 시간 되시면 식사나 같이 하실 수 있겠냐고……아니, 중히 상의할 것이 있으니 되도록 꼭 참석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