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99화
[미스터 진의 얼굴은 언제 봐도 반갑군요.]
마이클과 얼굴을 마주한 곳은 합참 본부였다.
유독 주한미군사령부를 애착하던 평소 그의 태도와는 다른 발걸음.
그런데 둘 사이에 그간 무슨 대화가 오고 갔던 건지 김태익 합참의장의 표정이 한껏 굳어져 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마이클과의 짧은 악수를 뒤로하고 합참의장을 향해 물었다.
내내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던 그는 긴 한숨과 함께 말을 뱉어냈다.
“마이클 대장이 말하길 미국에서 조만간 이라크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할 예정이라는군요.”
순간 시선이 간 것은 책상 위에 있던 달력이었다.
어느덧 3월 5일.
즉, 이라크 전쟁을 불과 보름 정도 남겨두고 있는 상태.
역사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사실 그 소식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고, 단지 이 전쟁만큼은 타임라인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 뿐이었다.
“어차피 미국이 이라크를 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 정부도 예견하고 있었던 사안이었지 않습니까.”
별스럽지 않다는 듯 말하곤 자리에 앉았다.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었던 건가.
합참의장은 잠시 나를 향했던 시선을 다시 마이클에게 돌리곤 툭 말을 던졌다.
[정말로 우리 정부에 전투병력 파병을 요구할 예정인 겁니까?]
마이클은 그 질문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귀에 꽂힌 전투병력이라는 단어.
당황스러운 마음에 휙 하고 마이클을 쳐다보자 그가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조만간 백악관에서 청와대로 정식 요청을 할 겁니다. 전 기왕 합참을 방문한 김에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었고요.]
[우리 보고 참전을…… ]
무심코 말을 뱉어내다간 멈칫했다.
막상 생각을 해보니 역사적으로도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우리 정부에 전투병력 파병을 요구한 적이 있었거든.
내 기억으로는 그때 사회적으로 꽤 많은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국 전투병 대신 공병과 의료지원단을 보내는 것으로 결론지어졌었다.
“흠…….”
김태익 합참의장은 연신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말이 전투병력 파병이지 그게 어디 그리 쉬운 문제일까.
여, 야의 합의는 둘째 치고 국민적 여론도 극명하게 갈릴 텐데.
이미 역사를 알고 있는 나와는 달리 그의 머리는 지금 온갖 고민으로 가득 들어찼을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전투병력을 파병한다는 것이 어디 그리 쉽겠습니까. 아마 미국도 내심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을 겁니다.”
난 자신 있게 말을 뱉어내곤 마이클을 쳐다봤다.
순간 뇌리를 파고든 것은 최근 일어났던 몇몇 역사적 오류.
예를 들면 독도사건에서 우리가 아닌 일본이 먼저 해양조사를 시작했었던.
막상 그 생각이 떠오르자 조금은 불안감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건 미스터 진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미 정치권에서도 한국의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니까.]
마이클은 대화의 흐름을 대충은 알아들은 듯 대꾸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역시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는 점.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솔직히 미국이 이라크를 밀어버리는 것에 다른 나라의 도움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마 전투병력 파병 요청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지세력의 규합일 테고, 이미 그걸 알고 있는 한국정부로서는 적절한 대응에 나서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합참의장이 조금은 안도의 빛을 내비쳤다.
[그나저나…….]
곧 이어진 마이클의 말.
또 무슨 폭탄을 터트리려나 싶은 생각에 긴장감이 찾아올 무렵, 그가 뜬금없이 곁에 두었던 서류봉투 하나를 내게 들이민다.
[이게 뭡니까?]
슬쩍 살펴본 봉투에는 아무런 글씨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다시 마주친 그의 눈빛은 어서 그걸 열어보라는 듯한 느낌.
재빨리 내용물을 꺼내자 그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던져주는 산타와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축하합니다, 진 회장.]
[…….]
미처 서류를 살필 겨를도 없이 뱉어진 말에 다시 마이클을 쳐다봤다.
어깨를 으쓱 해 보인 그는 다시 서류를 향해 눈짓한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국방부는 육군과 해병대의 합동 전술 차량으로 폴라베어를 정식 채택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기는 했어도 기분이 들뜨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들의 오랜 무기도입 관행상. 특히나 전술 차량의 경우는 안전을 담보로 하는 것이기에 쉽게 결론이 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어쩌면 코앞에 닥친 전쟁이 원인인 듯한데. 실은 내가 이 시기에 맞춰 폴라베어를 세상에 드러낸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막말로 미군의 까다로운 규정대로라면 자국에서도 경쟁 차량을 제작하게 하고 온갖 테스트를 하며 시간을 죽인 후에야 결론이 날 텐데, 그걸 어떻게 기다리겠는가.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암요, 반가운 소식이겠죠. 특히나 이번엔 전량 해외구매를 진행할 예정이거든요.]
마이클은 마치 선심을 쓰듯 말을 덧붙였다.
쯧, 그게 실은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모를까.
정작 라이선스 형식으로 했다간 공장 건설과 라인구축에만도 한세월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뭐가 됐든, 나로선 환영할 만한 상황이기에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 그럼 이제 가격 협상을 좀 해볼까요?]
그는 꼭 전투에 임하는 장수 같은 표정으로 말하곤 나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이내 제 앞에 있던 커피잔을 들어 올리는 순간, 난 기습적으로 말을 뱉어냈다.
[단가는 무장을 제외하고 대당 84만 달러. 거기에서 한 푼도 깎을 수가 없습니다.]
꿈틀!
순간 마이클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할 말은 많지만, 어느 것부터 꺼내야 할지 곤란한 표정.
이내 반짝 눈을 빛낸 그는 타 업체의 의견을 던지는 것으로 협상의 물꼬를 트려 했다.
[미안하지만 오시코시사의 전언에 따르면 대당 45만 달러 내외면 제작이 가능할 거라고 하던데요.]
[그거야 오시코시의 기준이죠. 참고 삼아 말하자면 우리가 사용한 방탄소재의 경우 세라믹 판에 균질압연강판을 덧댄 수준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
[뭐 자세한 사항들을 언급해봐야 괜한 소리가 될 테고, 복합재를 만드는 것에 소모되는 비용만 해도 대당 30만 달러에 육박한다는 것만 염두에 두시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고작 45만 달러로 차량제작이 가능하겠습니까?]
[방탄소재의 가격만 30만 달러라고요? 무슨 티타늄으로 떡칠이라도 한 겁니까?]
[물론 티타늄도 주요 소재 중 하나이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소재들을 합금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율 하락이 만만치 않습니다.]
[…….]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그나마 지금 정도로 수율을 끌어 올린 것도 우리 연구소의 기술이 있기에 가능했었던 겁니다. 쉽게 말해서 만약 오시코시가 처음부터 그걸 개발한다면 아마 그 가격의 두 배 이상은 더 비용이 소모될 거라는 소리죠.]
마이클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마치 ‘우린 미국이다’를 외치고 싶기라도 한 듯한 표정 같달까.
난 그 생각의 뿌리를 뽑기 위해 다시 말했다.
[못 믿으시겠다면 복합재를 구성하고 있는 소재들과 그 비율을 오시코시에게 공개해 드리죠. 그리고 만약 우리와 같은 가격에 똑같은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그땐 오시코시에서 납품을 받으셔도 좋습니다.]
그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 특수 복합소재가 단지 소재들의 구성비율만 안다고 해서 합성이 가능한 것은 아니거든.
마치 우리가 초내열 합금 기술의 전반적인 이해도가 있는 상황에서도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그걸 구현하는 것에 성공하지 못한 것처럼.
더군다나 시간적인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아마 마이클도 그건 그냥 던진 말에 불과하다는 것쯤은 이미 눈치채고 있을 거다.
[흠…….]
예상대로 그는 한참을 눈을 뒤룩거리며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사이 뇌리를 스친 것은 대체 오시코시가 주장한 50만 불은 무얼 근거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
테스트 과정에서 폴라베어의 방탄소재를 직접 경험했을 그들이 오판을 했을 리는 없고, 어쩌면 마이클이 단지 나를 떠보기 위해 던진 말일 가능성이 컸다.
[미안하지만 총 도입 수량이 얼마인지는 알고 하시는 말입니까?]
마이클은 한껏 진중한 얼굴로 내게 되물었다.
즉시 확인한 도입 수량은 2003년 도입분만 무려 1만 대.
흠칫하는 몸의 반응을 억누르려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씨익.
[보시면 알겠지만 그건 올해 도입분만을 명기한 겁니다. 향후 5년에 걸쳐 총 12만 5천 대까지 도입을 계획하고 있죠. 그 정도 수량이라면 가격하락 요인으로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마이클은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숙일 수는 없지.
난 다시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12만 대가 아니라 120만대라도 단가는 하락하지 않습니다. 말했듯 이건 소재 자체의 생산 수율의 문제라서…… 그 상황에서 미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맞추면 이익률이 2퍼센트도 채 되지 않는데, 난 고작 그 정도 이윤을 보자고 물건을 팔 생각은 없습니다]
[…….]
그 말에 마이클이 당황했다.
쐐기를 박기 위해 기어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더군다나 지금은 시장 원리가 작동하는 상황인데, 제가 굳이 가격을 하락시킬 이유가 있을까요?]
[시장 원리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말입니다. 그 경우 아무리 주문량이 많아도 단가는 하락하지 않게 되죠.]
이어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마이클의 눈이 동그래졌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합참의장 역시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고.
난 다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서 폴라베어를 원하는 곳이 미국만은 아니라는 소립니다. 사우디는 물론 UAE와 유럽. 아니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저의 비서를 통해서 들은 소식에 의하면 이스라엘에서도 구매 의사를 타진했다고 하더군요.]
[…….]
순간 마이클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마치 그게 사실이냐는 듯.
그럼 내가 없는 말을 했을까?
안 그래도 며칠 전부터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의 대부분은 각국 군 관련자들의 것이었고, 그중 이스라엘의 경우는 아예 다음 주에 회사를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던 터였다.
[이 시점에서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재우의 생산력으로 앞으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원하는 수량을 제때 맞추는 것이 가능할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즉, 미군의 경우 초기발주 수량 이후 자칫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는 소리죠.]
그 말에 마이클이 거친 호흡을 뱉어냈다.
모르긴 해도 지금 그의 머릿속에선 예전 철갑탄을 수입해가던 때를 떠올릴지도.
따지고 보면 그때와 똑같은 경우가 발생한 거거든.
“흠…….”
때마침 내 시선이 꽂힌 것은 책상 위에 두었던 서류였다.
올해 발주 수량이 1만 대라면 대체 1차 주문 수량은 얼마나 되는 걸까 싶은 생각에 손을 뻗는 순간.
탁!
갑자기 마이클의 손이 그걸 재빨리 낚아채 가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미안한데, 잠시만 시간 좀 주시죠.]
붉어진 얼굴로 서류를 챙겨 방을 빠져나간 그는 한참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얼핏 들려오는 소리로 봐선 누군가와 통화를 시도하는 듯한 느낌.
이후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땐 잔뜩 피로가 쌓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습니다, 대당 84만 달러에 합의하죠. 단 올해 도입분이 모두 납품될 때까지는 우리가 라인을 독점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건 당분간 다른 곳에서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저들이 다급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고.
나야 목돈이 한 번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찌푸려져 있던 그의 미간이 비로소 풀린다.
[아무튼, 진 회장도 참 독한 사람이군요.]
[이런 부분에 있어선 저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처지에선 최대한의 이익을 내야 직원들을 먹여 살릴 수가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라인 계약이면 발주금액 전체를 선입금해야 할 텐데, 의회에서 그 엄청난 지출을 허락하겠습니까?]
문득 그 점이 궁금해서 물었다.
1만 대.
무려 84억 달러에 달하는 돈을 한 번에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치고는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았거든.
그때, 마이클이 웃으며 말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의회에 집행예산이 요구될 겁니다. 수천억 달러가 될지 모를 규모임을 생각하면 84억 달러쯤은 일도 아니죠. 더군다나 이건 미군의 목숨을 살리는 문제이니 의회가 거부할 일은 없습니다.]
[…….]
차마 할 말이 없어서 침묵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 듯 너털웃음을 터트린 그는 갑자기 내게서 빼앗아갔던 서류 한 면을 찍 하고 펜으로 그어 버리곤 다시 그걸 내게 건넸다.
[일단 납품일부터 확인해 주시죠. 거기 적혀 있는 날까지 1차분을 납품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살펴본 서류에는 1차분 납품 기일이 4월 중순까지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 계약 수량인 총 1만 대 중 1차분의 요구 수량은 고작 5백 대.
아마도 그건 우리 생산라인의 사정을 고려한 조치인듯한데, 사실 그건 괜한 기우다.
[1,300대 정도는 당장 납품이 가능하고, 나머지 8천7백 대는 8월 중순까지 공장을 풀가동 해서라도 납품해 드리죠.]
[잠, 잠깐만…… 1300대나 되는 수량을 당장 납품하는 것이 가능하다고요? 어떻게요?]
[그야 이미 생산라인을 가동 중이었으니까요.]
[…….]
[말했잖습니까. 폴라베어를 원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라고. 어차피 만들어두면 팔려나갈 물건인 마당에 미리 만들어둔다 해서 문제 될 것이 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