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96화
“어서 오세요.”
도착한 청와대에는 분위기가 심각했다.
정권이 계승되었기 때문일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국정원장은 나를 회의실로 안내하며 부른 목적을 설명했다.
“진 회장의 미 국방부 인맥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슨…….”
걸음을 멈칫한 채 그를 쳐다봤다.
솔직히 미국을 상대로 한 인맥이라면 나보다야 국정원장이 더 넓은 편 아닌가?
표정을 이해한 듯 그가 다시 설명을 잇는다.
“나와는 달리 진 회장은 인간적인 교류가 있지 않습니까. 특히나 군부 쪽으로는 더더욱.”
“대체 무슨 일이기에요?”
“그건 들어가 보면 압니다.”
그 말에 국정원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도착한 곳은 청와대 대 회의실.
문을 연 순간 눈에 보인 것은 숫한 군 장성들과 신임 정부관료들이 가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이리 앉으시죠.”
신임 대통령은 나를 향해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얼핏 눈에 뜨인 회의장의 스크린엔 웬 지도와 함께 우리 군이 파병한 의료지원단원들의 사진들이 가득 들어찬 상태.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혹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의료지원단에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그렇습니다.”
대답은 대통령으로부터 들려왔다.
이후 다시 자리를 권하는 그의 눈빛에 슬그머니 착석하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어제 새벽. 924의료지원단 소속 의료진들이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되었습니다.”
“…….”
그것 역시 역사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아니 중동에서 우리 국민의 납치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했었던 사건.
그것도 향후 몇 년 후에나 벌어져야 정상인 상황이다.
“현재 그 문제로 미 국방부와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 중인데, 진 회장의 도움을 좀 받았으면 싶군요.”
“제가 뭘 해야 하는 거죠?”
퍼뜩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그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우리 정부는 사태의 해결을 위해 곧 특전사령관과 함께 병력 일부를 파견할 예정입니다.”
“…….”
“문제는 아무리 미 정부에서 협조를 약속했다고는 해도 현장에서 그게 과연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는 거죠. 다행인 것은 현장 책임자인 에머슨 대장이 미 국방부 마이클 대장과 막역한 사이라더군요. 그리고 그 마이클 대장은 진 회장과도 막역한 사이이기도 하고.”
“아…….”
그제야 나를 부른 이유가 이해됐다.
사안의 중요성으로 인해 미 정부에서도 협조는 하겠지만, 그렇다 해도 현장 책임자의 성향에 따라 그 정도는 달라지는 법.
정부는 지금 구출 작전에서 혹여 우리의 의견이 무시될 것을 우려하여 최대한 인맥을 동원하려는 거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협조를 당부해보도록 하죠.”
짧은 대답을 내뱉곤 자세한 상황파악을 위해 스크린을 쳐다봤다.
“진 회장님?”
순간 나를 부르는 대통령.
또 뭔가 싶어 고개를 트는 순간 그가 당황스러운 말을 뱉어낸다.
“미안하지만 고생하시는 김에 끝까지 수고 좀 더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미 국방부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지 상황을 전달 중입니다.”
이틀 후, 난 다시 청와대로 불려갔다.
민간인의 신분인 터라 청와대 내의 지휘통제실에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
나를 비롯하여 몇몇 외부 자문위원들은 회의실 한편에 마련되어 있던 임시 대책반에서 스크린을 통해 통제실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미 국방부의 통신위성을 통해 현장과 연결되어있는 상태니 하실 말씀이 있으면 이 버튼을 누르시고 하시면 됩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스크린을 주목했다.
이미 현장에 도착한 건지 특수전 사령관과 통제실 사이에서 통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상태.
다행히 대화의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 온 터라 대강 돌아가는 상황파악은 가능했다.
-현장 지휘통제실의 출입 권한이 없어서 작전 진행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사령관은 첫날부터 닥친 애로점들에 대해 토로했다.
예상대로 미 정부는 최대한의 협조를 약속했지만, 현장에선 사안이 그리 녹록지가 않은 현실.
뭐 무리도 아닌 것이 SCIF의 경우엔 미군이 중동지역에서 운용 중인 무인기의 활동 상황부터 시작해서 온갖 주요 정보들이 오가는 곳인데, 그 비밀스러운 공간에 외부인의 출입을 허락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거다.
[마이클 대장님.]
난 지체하지 않고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내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지만, 그 역시 난색을 표했다.
-그렇다고 SCIF의 출입은 좀…….
[우리 군이 현장까지 간 상황에서 손도 쓰지 못하고 희생자가 발생하면 이쪽 여론이 극도로 안 좋아질 겁니다. 그 경우 미국과의 관계에 대한 전면적인 의심의 여론이 형성될 수도 있을 텐데, 그땐 상황이 더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난 온갖 핑계를 대며 그를 설득했다.
미국의 태도에 대한 여론 악화라는 말에 신경이 쓰였던 걸까, 마이클은 시간을 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더니 이후 1시간 만에 긍정의 대답을 뱉어냈다.
-다행히 윗선에서 인가했습니다. 현장 책임자에게 연락해 두었으니 즉시 통제실에 합류하라고 하세요.
[고맙습니다. 혹시 한국에 오시게 되면 제가 밥 한 끼 거하게 쏘죠.]
-우리 사이에 별말씀을 다 하시는군요.
그의 입에서 뱉어진 ‘우리 사이’라는 단어가 왠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이래서 인맥이 그렇듯 중요하다고 하는 거구나 싶은 마음에 절로 헛웃음이 뱉어지려는 차, 그가 의외의 소식 하나를 더 알려왔다.
-참, 우리 국방부에서는 기왕 일이 이렇게 된 마당이면 이번 구출 작전의 지휘 권한을 한국군 특수전 사령관에게 이양했으면 싶어 하던데, 그 부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내가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 탓에 대통령에게 사실을 알리자 그가 다시 특수전 사령관에게 의견을 물었고, 이후 지원만 확실하다면 그편이 낫겠다는 대답이 떨어졌다.
[좋습니다, 우리 군이 작전 지휘 권한을 행사하는 것으로 하죠.]
난 즉시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을 알렸다.
한껏 밝아진 목소리로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겠고 장담하던 그는 뭐가 생각난 건지 조금 후 아! 하는 짧은 탄성을 내뱉는다.
-생각해보니 그쪽에 폴라베어가 현장 운용검증을 위해 투입되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군요. 구출 작전에 그걸 이용하면 어떻습니까.
[……폴라베어가 그 현장에 있다고요?]
나로선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비록 저항군이라고는 해도 무장상태가 정규군 못지않은 상태,
그럼 일반 험비보다는 그걸 이용하는 편이 우리 병사들의 안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지 않던가.
흔쾌히 대답하곤 협조를 당부하자 마이클이 너털웃음을 뱉어낸다.
-이거 상황이 이런 식으로 돌아갈 줄은 몰랐군요. 아무튼, 그 부분 역시 현장 책임자에게 전달해 둘 테니 걱정은 마십시오.
난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즉시 사실을 대통령에게 알렸다.
“정말입니까?”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표정은 한껏 밝아졌고, 이후 사실을 전해 들은 특전 사령관도 안도의 한숨을 뱉어냈다.
-다행이군요. 솔직히 고작 험비 같은 전술 차량만을 가지고 작전을 수행하려니 눈앞이 캄캄했었는데. 폴라베어 정도의 방호능력을 가진 차량이라면 해볼 만은 합니다.
“죄송하지만 이 시점에서 제가 제안을 한가지 해도 되겠습니까?”
난 폴라베어가 작전에 투입되었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를 몇 가지 전달했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침묵.
행여 통화가 끊어졌나 싶어 수화기를 툭툭 건드리자 그제야 사령관의 말이 들려온다.
-그게 성공한다면 내 귀국하는 즉시 진 회장님의 발에 입이라도 맞춰 드리죠.
“…….”
******
“1조 이상 무!”
“2조 이상 무!”
전인태 특전사령관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출발 대기 중인 병력들을 쳐다봤다.
우리 측에서 투입되는 특수전 병력 들의 수만도 총 50명.
미군에서 지원 나온 병력 들의 수까지 합하면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인원만도 무려 150명에 달한다.
쉽게 말해 그 많은 병력들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린 상황.
그는 몇 번이고 숨을 고르며 작전 상황판을 향해 다가갔다.
“미군 정보국의 보고에 의하면 인질이 된 20명의 의료진들은 2개의 컴파운드(아프가니스탄의 독특한 가옥 형태)에 나뉘어 억류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 역시 작전 인력을 둘로 나누기로 했다.”
“…….”
특수전 병력들은 그 말에 서로를 돌아봤다.
웅성거림의 이유를 이해한 듯 전인태 사령관이 다시 설명을 잇는다.
“효율적인 작전을 위해선 한국군과 미국군으로 나누는 것이 좋지만, 그랬다가 돌발상황에 대한 대처가 어려울 수도 있다. 해서 두 조를 적절한 비율로 섞을 것이며 선두에 서는 조가 우선적으로 폴라베어에 탑승한다.”
통역에 의해 말이 전달 되기 무섭게 미군 측 병사들이 손을 들었다.
한결같이 입으로는 A팀을 외치고 있는 상황.
즉, 서로 선두 조가 되겠다는 건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던 듯 한국군 병사들은 하나같이 눈만 끔벅이고 있다.
“승차!”
오랜 논쟁 끝에 결국 선두조 역시 적절한 비율로 인원 배분이 이루어졌다.
곧 시작된 작전.
가장 선두차량에 타고 있던 김웅평 상사는 작전 지역을 코앞에 두고 슬그머니 운전 중인 미군을 향해 묻는다.
[대체 왜 총알받이나 다름없는 선두조를 못해서들 안달이 난 겁니까?]
피식.
질문을 받은 미군 중사는 그 질문에 헛웃음을 뱉었다.
곧 쥐고 있던 핸들을 툭툭 쳐 보인 그는 예상치 못했던 말을 뱉어낸다.
[살아 돌아갈 가능성이 큰 것에 베팅한 겁니다.]
[…….]
김웅평 상사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또다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미군 중사는 그저 ‘곧 알게 될 겁니다.’라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대체 뭔 소리…….”
쾅!
순간 들려오는 묵직한 충격과 함께 그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와 동시에 쳇! 하고 짧은 불평을 내뱉은 미군 중사는 재빨리 핸들을 양손으로 부여잡았고, 곧 김웅평 상사와 그의 뒤편에 탑승 중이던 병력 들을 향해 소리쳤다.
[숙여!]
쾅!
중사의 경고와 함께 또 한 번 묵직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대물 저격 총?”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김웅평 상사는 재빨리 탄이 날아온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두리번거렸고, 그 타이밍에 어디선가 쌔액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RPG!]
운전 중이던 미군 중사는 말을 토해냄과 동시에 핸들을 틀었다.
콰앙!
곧 들려오는 폭발음.
다행히 직격을 당한 것은 아닌 듯 차량이 한차례 휙 하고 꺾이더니 그대로 바닥을 구른다.
“끄응!”
김웅평 상사는 뒤집힌 폴라베어의 내부를 즉시 살폈다.
비록 후미 일부가 날아가 버리긴 했어도 내부 피해는 크게 없는 듯한 모습.
그걸 증명하듯 뒷좌석에 타고 있던 미군들이 벌컥 문을 열곤 차량 밖으로 튀어나가고 있었다.
[미스터 킴!]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그 역시 재빨리 벨트를 풀었다.
이내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든 생각은 대체 자신이 어떻게 살아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
하지만 채 생각을 지속할 겨를도 없이 이번엔 후미에서 따라오던 2호 폴라베어가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는다.
쾅!
“급조폭발물?”
김웅평 상사는 탄식을 내지르며 연속해서 따라오던 다른 차량들을 향해 손짓하며 위험을 알렸다.
쿵!
순간 허공으로 치솟았던 폴라베어가 다시 땅에 떨어져 내렸고, 큰 피해를 직감한 김웅평 상사는 즉시 동료들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갔다.
부웅!
그때, 떨어져 내렸던 2호 폴라베어가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전속력으로 그가 있던 방향으로 달려왔다.
비록 타이어가 찢기기는 했으나 기동력은 여전한 상태.
‘저런 큰 충격을 받고도 기동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그는 황당한 마음을 뒤로하고 재빨리 엎어져 있던 자신의 차량을 향해 다시 내달렸고, 이후 RPG가 날아왔던 방향을 찾기 위해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두두두두!
앞선 두 차량이 피격되는 것을 본 3호 폴라베어가 기관총으로 응사를 시작했다.
덕분에 생긴 조금의 여유.
그의 팀은 재빨리 엎어진 차량을 방패막이 삼아 응사에 합류했다.
철컥!
김웅평 상사는 즉시 자신의 저격 총을 장전했다.
이내 미리 확인했던 지점을 스코프로 가늠한 순간 저편에서 머리 하나가 슬그머니 들리는 것이 보인다.
쾅!
김 상사는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동시에 휙 하고 머리가 재껴진 RPG 사수.
놀란 놈의 동료가 재빨리 숙이며 도주하려 했지만, 불과 몇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꼬꾸라진다.
쾅!
아군에서 발사한 40밀리 유도미사일이 놈들의 엄폐물을 날려 버렸다.
사방으로 피신하려는 적들을 향해 연속해서 쏴 재끼는 유탄과 40밀리 유도탄.
지옥도도 이런 지옥도가 있을까.
어찌나 화력이 어마어마하던지 이후 저쪽에선 총알 한 발조차도 날아오지 않았다.
[워! 미스터 킴. 저격 실력이 장난이 아니네요.]
분위기가 소강상태에 이르자 운전을 담당했던 미군 중사가 김웅평 상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제야 드는 안도감.
뒤늦게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어 후미 차량들을 확인한 그는 황당함에 턱을 떨어트렸다.
“이런 상황에서 죄다 멀쩡하다고?”
******
부우우웅!
한차례 교전을 치른 작전 팀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지금 김웅평 상사가 타고 있는 차량은 바로 조금 전 RPG의 표적이 되어 땅을 굴렀던 물건.
그럼에도 이렇듯 운행에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 그로서는 쉬이 믿기지가 않는다.
“이제야 미군 애들이 서로 이 차량에 타려고 선두 조를 고집한 이유를 알겠군.”
그는 새어 나오는 헛웃음을 참으며 도리질을 했다.
치직!
순간 들려오는 무전음.
재빨리 응대하자 3호 차량에 타고 있던 김수환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김 상사님. 선두를 저희와 교체합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갑작스러운 선두 교체 요구에 김 상사는 의문을 표했다.
순간 떠오른 것은 작전에 들어가기 전 사령관으로부터 받은 명령.
힐끗 차량의 상태를 다시 점검한 김웅평 상사가 뒤편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한다.
“행운을 빕니다. 아니, 솔직히 행운까지는 필요 없을 듯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