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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95화 (9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95화

보고 있자니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저건 지금까지 일어난 타임라인의 오류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거든.

단순히 시간이 꼬인 정도가 아니라 사건 자체가 역전되어 발생한 경우.

이유가 뭘까.

혹여 나비효과에서 오는 부작용이 시작되는 건가.

“오중근 국방부 장관이 저를 좀 보자고 하는데, 혹시 시간 되시면 같이 가시겠습니까?”

한참 생각이 깊어질 무렵 김영기 부사장이 넌지시 제안을 해왔다.

어차피 김 부사장이야 국방부의 외부정책자문관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지만 나는 왜.

의아한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저쪽에서 정작 필요로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게다가 각하께서도 넌지시 회장님의 참여를 원하시는 듯한 말을 하시기도 했고요.”

피식.

무심코 튀어나온 웃음을 뒤로하고 수트를 챙겼다.

한참 후 도착한 청와대에는 이미 합참의장을 비롯한 해군 제독들이 회의장을 가득 메운 상황.

의외인 것은 내가 참석한 것에 대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는 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아니 오히려 몇몇 안면이 있는 제독들은 애써 자리를 내어 주기까지.

“일본 측은 우리의 해경 순시선 파견에 대응하여 구축함을 보낼 예정이라고 합니다.”

브리핑에 나선 장관은 말을 뱉어내곤 나를 향해 힐끗 눈인사를 했다.

역시나 김 부사장의 주장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던 거지.

아니나 다를까, 장관은 향후 군의 대처에 대한 설명을 잇더니 불현듯 나를 향해 물었다.

“정부는 이번에 우리가 물러서면 향후 독도에 대한 지배력이 약해질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 기회에 좀 더 확실한 메시지를 던져주길 원하는데, 전에 진 회장이 주장했던 것은 어떨까 해서 불렀습니다.”

난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석에 앉아있던 대통령을 쳐다봤다.

좀처럼 표정의 변화가 없는 상태.

다시 좌중의 눈치를 살피곤 슬쩍 마이크를 당겼다.

“제 주장이라면, 혹시 울릉공항 건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그게 가능하다면 메시지 수준을 넘어서 확실한 대처가 될 수 있겠죠. 또한, 동해를 대상으로 한 우리 전투기들의 부족한 작전시간에 대해 임시적인 해결방안도 될 것이고.”

순간 회의장 전체가 웅성댔다.

대부분은 그 경우 사태가 더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는 말들.

잠시 그들을 돌아보곤 말을 이었다.

“어차피 저들은 절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건 2006년의 사례를 빗대어 한 말이었다.

당시의 분위기도 지금처럼 일촉즉발로 치달았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거든.

그건 저들이 우리보다 전쟁에 대한 부담감이 더 크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지만, 결정적으로는 미국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자신들의 가장 강력한 아시아의 두 우방이 치고받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겠습니까.”

“…….”

회의장은 그 말에 다시 안정을 찾았다.

다시 좌중을 둘러보곤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왕 문제가 일어난 마당이니 그 기회를 이용하는 것은 좋을 듯 합니다.”

장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혹시나 싶어 힐끗 다시 쳐다본 대통령의 얼굴엔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다.

“저도 찬성입니다. 차후 울릉공항 건설 문제가 대두되면 분명 일본에선 또 난리를 칠 텐데, 이 기회에 터트려 버리는 편이 낫죠. 그에 더해서…….”

그때, 이동욱 합참의장이 손을 들며 내 주장에 동조했다.

의아한 것은 흐려진 말끝과 함께 나를 쳐다보는 그의 눈빛.

순간 나를 부른 진정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결국엔 그거였군.

울릉도 역시 백령도처럼 요새화해버리는 것.

안 그래도 나 역시 그 폭탄을 한번 던져보려는 참이다.

“공항도 공항이지만, 기왕이면 울릉도 해안에도 해상형 스마트 포탄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고려해보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되면 변화무쌍한 독도의 해상상황에서도 일본의 접근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

사람들은 그 말에 다시 침묵했다.

역시나 그 말을 기다렸던 듯 합참의장을 비롯하여 국방부 장관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고,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대통령도 그 순간만큼은 내 주장에 힘을 실었다.

“괜찮은 생각이군요. 그게 설치되면 차후 일본은 독도 인근으로 접근조차도 못할 테니까.”

“그랬다간 일본을 더 자극할 수도 있어요. 고작 해류의 흐름을 조사하는 문제 가지고 왜 굳이 불필요하게 일을 키우시려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반발했다.

정부 관료 중 하나로 보이는 인물.

나로선 처음 보는 얼굴이었던 터라 고개를 갸웃하려는 차, 대통령이 그를 질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금 ‘고작’이라고 했습니까? 해양 조사를 남의 나라 수역에서 한다는 마당에?”

“…….”

“김수용 대사의 말은 그럼 우리보고 영토 주권행사도 하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립니다만.”

“…….”

사내는 그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간 든 생각은 이 자리에 참여할 만한 대사라면 주일 대사 외에는 딱히 어울리는 인물은 없다는 것.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우리 정부가 항의의 표시로 주일 대사를 소환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쯧, 일본에 있는 동안 극우들에게 어지간히도 받아 처먹은 모양이군. 하긴, 정권이 바뀌면 교체될 운명이니 뭐…….’

“추진하세요. 책임은 내가 지고 갈 테니까.”

정리가 끝났다고 느낀 듯 대통령은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핏 나와 눈이 마주친 예의 그 주일 대사의 표정에선 호의적이지 않은 듯한 눈빛이 스쳤다.

‘쓰벌 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

[우리 정부는 독도를 대상으로 한 일본의 영토 주장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방침입니다. 그로 인한 대처로 울릉도에 공항을 건설할 계획을 밝혔으며…….]

며칠 후, 우리 정부는 역대급의 조치를 발표했다.

내가 놀랐던 점은 발표의 논조였는데, 그나마 일본을 덜 자극할 방법에 대한 고려 따위는 생각조차도 없다는 듯 아예 군의 작전 편의가 목적임을 대 놓고 드러냈다는 거다.

[일본 정부는 오늘…….]

물론 일본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독도 인근 수역으로의 연이은 해경 순시선 배치는 물론 우리 해경을 위협하기까지.

이건 마치 2020년의 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되새겨보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정부는 오늘 오전 울릉도에 해상형 스마트 포탄 시스템을 구축할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에 맞선 우리 측의 대응은 울릉도를 아예 백령도처럼 요새화하겠다는 추가적인 발표였다.

그게 현실화되면 향후 독도 인근에 접근하는 것이 어려워질 상황.

예상대로 일본은 상황을 더 일촉즉발로 몰고 갔고, 그 결과 독도엔 일본 측 이지스함이 2대나 모습을 드러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만약 총성이 한발이라도 울리는 날엔 당장…….]

앵커의 말처럼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 갔다.

양측 모두 한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로 위협 사격까지 허락한다는 명령을 받은 상태.

언제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시점에서 미국이 등장해야 정상인데.’

미국은 아직까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혹여 역사가 달라지는 걸까, 싶은 마음에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내 그걸 떨쳐냈다.

‘미국이 미치지 않고서야 당장 한 일간의 전쟁을 두고 볼 리가…….’

[미합중국은 아시아의 두 우방이 반목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음을 밝힙니다.]

며칠 후, 결국 미 국무장관의 성명이 발표됐다.

뭣 때문에 시간을 끈 것인지는 몰라도 결국 사태의 심각성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거지.

후문에 의하면 일본의 지나친 대처에 열 받은 부시가 일본 대사를 초치 하여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퍼부었다는데, 그 정도가 외교적으로 결례가 될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 부분은 대략 역사와 일치하는 건가?’

뭐 그건 그렇고, 난 이 사건을 통해 한 가지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일본의 우경화가 빨라진 이유.

그건 필시 우리의 경제발전과 군사력 증강 속도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사실.

쉽게 말해서, 저들은 지금 불안감을 느끼는 중이라는 소리며, 미리 싹을 자르겠다는 의중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일본 이지스함은 미국의 성명과 동시에 철수했으며…….]

일본의 철수는 지체 없이 이루어졌다.

의아한 것은 미국이 우리의 울릉도 공항 건설 문제와 해상형 스마트 포탄 시스템 구축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건데, 뭔가 우리 정부와 뒷거래가 오고 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따르릉!

독도 사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 얼마 후.

정확히는 2002년 12월 23일경 대통령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목적은 전에 약속했던 대권 주자. 아니, 이제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존재와 만남의 자리를 위해서.

난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약속 장소로 향했고, 도착한 종로의 한 음식점에선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진풍경을 보았다.

“반갑습니다.”

당선인은 특유의 미소로 내게 악수를 권해왔다.

이후 한동안 우린 국방계획을 비롯하여 여러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이어갔고, 술이 얼큰하게 올라왔을 무렵엔 한 10년쯤은 알고 지내왔던 관계처럼 대화가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사실 각하로부터 진 회장에 대해선 귀가 닳도록 이야기들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남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군요.”

“저 역시 당선인께서 왠지 남 같지는 않습니다.”

그 말에 당선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뭐 따지고 보면 내 입장에선 그가 남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니끼.

회귀 전. 한때는 매번 TV만 틀면 보던 얼굴이 친숙하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게 딱히 듣기 싫은 이야기는 아니었던 듯 당선인은 표정을 밝히며 말을 이었다.

“난 현 정권의 국방 분야 정책을 지지하는 편입니다. 하니 재우 역시 앞으로도 꾸준히 지금처럼만 해 주세요.”

“…….”

나야 그게 가능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사실 정권이 바뀌면 제일 걱정인 것이 바로 국방정책의 변화거든.

이건 뭐 고무줄도 아니고 늘렸다가 줄였다가.

사실 이번에도 정작 뚜껑을 열어봐야 저 말의 진위여부를 알겠지만, 그의 스타일상 아주 허언은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든다.

“저야 늘 최선을 다하는 편입니다.”

짧은 대답 끝에 웃으며 술병을 집어 들었다.

뭣 때문일까, 잠시 그걸 가로막은 당선인은 나를 향해 한껏 몸을 숙인 채 속삭이듯 말한다.

“우리 꿈을 한번 같이 꿔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

의미를 알 길이 없어 침묵했다.

그러자 히죽 웃어 보인 당선인은 잠시 주변을 한번 둘러보곤 귓가에 다시 속삭인다.

“내가 그동안 진 회장에 대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우린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듯해서 하는 말입니다.”

“…….”

“하니, 그걸 같이 이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당최 알아먹을 수가 없네.

아니 그러니까, 그 꿈이라는 것이 대체 뭐냐고.

***

[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2003년.

당선인은 정식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사이 대한민국의 인터넷망이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으로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그 영향으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정통부 장관이 사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는 진 회장이 했지요.”

이젠 민간인 신분이 된 전임 대통령은 한결 후련한 표정이었다.

하긴, 그 자리가 어디 그리 쉬운 자리일까.

잘해도 욕을 먹고 못 하면 더 욕먹고.

나라면 거저 준다 해도 거부할 거다.

“그나저나 진 회장은 대체 언제쯤에나 가정을 꾸릴 생각입니까?”

이젠 대화의 패턴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제껏 그가 내 사생활 문제에 대해서 언급했던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

뭐 주제가 조금 껄끄럽기는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다.

“갈 때가 되면 가겠죠. 혹시라도 중신을 서시겠다는 말씀은 마십시오.”

그 말에 뭔가를 우물대던 그의 입이 즉시 다물어졌다.

곧 호탕한 웃음을 뱉어낸 그는 내 등을 툭 건드리며 말한다.

“그나저나 참 다행이죠. 진 회장과 마음이 맞는 사람이 국방부 장관에 올랐으니.”

그건 이동욱 합참의장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뭐 군 서열상 그가 장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해도 나로선 그나마 안도감이 든달까.

그러고 보니 김태익 육군 참모총장도 이번에 합참의장으로 영전을 했으니 든든함은 더하다.

“한국형 이지스함과 3000톤급 잠수함의 건조는 어찌 되어 가고 있습니까.”

퇴임은 했어도 그 점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보고가 아닐까.

왠지 기분이 좀 이상하다.

“한국형 이지스함의 경우는 레이더를 비롯한 통합 전투체계를 구축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잠수함은 설계단계를 모두 끝마쳤고요.”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빠르군요. 내가 죽기 전에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는 말끝에 자조적인 웃음을 뱉어냈다.

딱히 할 말이 없어 그의 집 뒷산에 있던 나무들을 향해 시선을 주려는 차,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뱉어냈다.

따르릉!

“진 회장은 여전히 바쁘군요.”

그는 자신과는 달리 여전히 일에 치이고 있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뭐 팔자가 그런 걸 어쩔 수 있나.

미처 번호도 확인하지 못하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저편에서 이동욱 국방부 장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 회장. 혹시 지금 청와대로 와 줄 수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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