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94화
[여기가 고고도 대공방어 미사일 개발동입니다.]
나타샤의 안내로 들어선 연구동은 분위기가 한껏 들떠 있었다.
이미 목표는 달성한 상태.
특히나 성공적인 결과를 받아들고 귀국길에 오른다는 사실에 연구원들도 한껏 흥이 오른 모양이었다.
[아무리 봐도 다른 곳으로 샐 만한 사람들은 없는 것 같은데요?]
넌지시 건넨 농담에 나타샤가 웃어 보였다.
뒤이어 그녀가 안내한 곳은 고고도 대공미사일 개발 센터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개발동.
아직 연구가 진행 중인 곳이어서인지 이곳에선 바로 직전에 느껴졌던 여유로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바쁜 움직임들이 대부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의 등장에 놀란 러시아 측 연구원 중 하나가 다급히 다가왔다.
이내 나타샤와 무언가 대화를 주고받던 그는 즉시 우리를 연소실험이 진행 중인 현장으로 안내한다.
[지금 진행 중인 실험은 이중 모드 램제트 엔진의 연소실험입니다.]
이중 모드 램제트 엔진은 램제트와 스크램제트를 일체화시킨 복합 사이클 엔진을 뜻한다.
굳이 그런 구조로 설계를 진행하는 이유는 우리가 개발하려는 극초음속 순항미사일의 경우 두 엔진이 가진 특성이 모두 필요하기 때문.
내가 그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여긴 걸까, 연구원은 한껏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설명을 시작한다.
[극초음속 미사일의 경우 사실상 스크램제트 방식이 아니면 추력을 마하 4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스크램제트의 경우 급격한 방향 전환으로 속도가 조금이라도 떨어지게 되면 엔진의 속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되며 자칫 재가동이 불가능하죠. 그래서…….]
[해서 램제트 엔진의 추진방식이 필요하지만 그건 또 마하 3 이상의 추력을 얻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이고, 그 탓에 연소기를 두 개 장착한 이중모드 복합 사이클 엔진을 개발했다……뭐 이런 말씀이신 거겠죠?]
[…….]
연구원은 치고 들어간 내 말에 눈을 끔벅였다.
[진행속도가 꽤 빠르군요.]
별일 아니라는 듯 웃어 보이곤 슬쩍 화제를 돌리자 그가 퍼뜩 놀란 표정으로 다시 설명을 잇는다.
[이미 10년 전부터 진행해오던 분야니까요. 사실 추진체 분야는 이미 완성 단계라고 보면 됩니다.]
그 말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우리가 맡은 분야의 개발을 서두르라는 의미와도 마찬가지였다.
극초음속에서도 정밀한 유도를 가능하게 하는 구동기와 정밀유도시스템. 그리고 엄청난 마찰열을 버텨줄 소재의 개발.
하지만 그걸 알까.
따지고 보면 그 부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태라는 것.
그럼에도 굳이 그걸 서둘러 세상에 내놓지 않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러시아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위해서다.
킨잘은 물론 아방가르드까지.
푸틴이 내게는 밝히지 않았던, 러시아가 개발 중인 또다른 극초음속 무기들의 기술을 얻어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보죠.]
말과는 달리 그걸 빨리 내어줄 생각은 없다.
실은 바로 그 기술들이 킨잘과 아방가르드에도 적용이 되는 것들이거든.
즉, 푸틴으로서는 이번 개발이 성공하면 그것들을 자체 개발하는 것에 탄력을 받는다는 상황인데, 그렇게 둘 수는 없잖아?
기왕이면 그것들도 우리에게 공동개발을 제안할 상황을 만들어 보기는 해야지.
'아방가르드라…….’
문득 생각을 하다보니 더 욕심이 났다.
탄도미사일의 추진체를 이용하여 성층권과 중간권 영역까지 치솟아 이후 글라이더 형태의 탄두부를 분리.
이후 예측할 수 없는 궤적으로 활공하며 목표를 타격하는 그것은 사실상 막아내는 것이 까다로운 무기거든.
그걸 지금 개발중인 지르콘과 함께 우리의 이지스함에 탑재하면 신의 창이 두개나 생기는 셈인데,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거다.
[혹시 내년 말까지는 가능할까요?]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연구원이 다시 재촉했다.
어색한 웃음으로 대꾸하곤 다시 실험 중인 추진체를 쳐다보자 그가 긴 한숨을 내쉬며 화제를 전향한다.
[그나저나 저게 완성되면 항모를 비롯한 여타 전투함들의 운명은 끝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물론 지상 목표물들도 포함해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솔직히 마하 5 이상. 경우에 따라선 9 이상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막아낼 기술은 회귀 전에도 없었으니까.
만약 저걸 항공기에서, 또는 함정에서 발사하는 순간이면 목표는 이미 끝장난 운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거다.
[푸틴 각하께 조만간 러시아에 방문할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전해주십시오.]
넌지시 웃음을 지으며 나타샤를 향해 말했다.
이유를 오해한 듯 그녀는 대뜸 지하자원 공동개발 문제를 입에 올린다.
[자원개발 사업을 시작하시는 겁니까?]
[아! 생각해보니 그 문제도 있었군요.]
[…….]
******
어느덧 2002년도 불과 한 달 정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대공미사일 공동개발에 참여했던 러시아 연구진들이 귀국한 것도 벌써 수개월 전.
그사이 우린 다시 일부 소프트웨어와 유도시스템을 우리 실정에 맞춰 개수하는 작업을 지속했고, 오늘 그 결과물이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표적 발사했습니다.]
안내방송과 동시에 귓가를 때린 것은 웅 하는 전파 음이었다.
거의 25톤 트럭의 크기에 달하는 레이더가 탐지를 위해 작동을 시작한 결과.
얼핏 보면 한때 우리나라에 설치되었던 사드의 레이더와도 흡사한 형상을 가진 그것은 탐지거리가 무려 1,500킬로에 달하는 괴물이다.
“국방부 장관의 전언에 의하면 탐지거리는 얼마든지 증가시킬 수가 있다고요?”
퇴임을 불과 수개월 남겨둔 대통령은 오늘도 내빈으로 참석한 상태였다.
자신의 임기 내에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낀 듯 표정이 한 것 들떠 있는 상태였다.
“최대 탐지거리는 2,900킬로미터까지 확장이 가능합니다.”
“그 정도면 중국에서 또 한 번 난리를 치겠군요.”
“사실 저 상태로도 자극을 받기엔 충분하죠. 1,500킬로면 중국 일부 내륙지역까지 감시범위에 들어오니까요.”
대통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표정으로 봐선 후폭풍을 걱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그건 북의 핵 개발에 대한 대응이라는 핑곗거리가 있기 때문일 거다.
텅!
대화가 이어지던 차에 사출관의 뚜껑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다중펄스 로켓이 뿜어내는 엄청난 연무와 함께 치솟은 미사일은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실험장 한편에 마련되어 있던 스크린을 향해 돌아갔다.
“최대 사거리가 얼마라고요?”
“현재는 900킬로입니다.”
900킬로미터면 SM3의 block 1a/b급의 사거리와 같은 수치다.
즉, 같은 수준의 외기권 요격체계는 갖춘 것이라는 의미.
하지만 개량은 지속해서 이루어질 것이고, 만약 다중펄스 로켓을 3단으로 구성하게 되면 SM3의 후기형과 같은 2900킬로미터까지 사거리 증가가 가능하다.
“대단하군요. 미사일의 크기가 그리 큰 것 같지도 않은데.”
게다가 대통령의 말처럼 저건 직경이 고작 350밀리에 불과하다.
그건 곧 이지스 함정의 수직발사관에도 탑재 가능하다는 의미이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외기권 요격체계를 갖출 수가 있다는 것.
아마 저 물건으로 인해 탄도미사일 방어 체계는 새로운 페러다임을 맞을 거다.
“참, 표적 미사일은 현무라고요?”
“그렇습니다.”
“현무는 궤적의 변화를 일으켜 요격이 힘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안 그래도 그 문제로 인해서 표적 미사일의 경우엔 비행알고리즘을 손봐둔 상태입니다. 즉, 평범한 탄도미사일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소리죠. 참고로 본격적인 양산이 시작되는 때에 이르면 궤적변화에도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출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대통령은 짧은 탄성을 내뱉곤 다시 스크린을 주목했다.
조금 후 흑백의 스크린에서 표적의 신호가 사라져 버리는 모습이 연출 되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축하합니다, 진 회장.”
당연히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었다.
저게 성공한 이상 우린 그 어떤 탄도미사일에 대해서도 대응력을 확보한 셈이니까.
그런데 그때 대통령이 예상외의 말을 뱉어냈다.
“언론에는 최대한 빨리 개발 성공에 대한 사실을 알릴 생각입니다.”
“…….”
“핑곗거리가 좋지 않습니까. 북한은 핵실험을 준비 중이고, 우린 그에 대처하는 것일 뿐이니까.”
역시나 그걸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다시 표정을 굳히며 말한다.
“아마 5년이 한계일 겁니다. 북의 핵 개발을 저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 말입니다.”
“…….”
“정보에 의하면 북한이 소련 붕괴 시절 러시아의 경수로발전소에서 재처리된 플루토늄을 밀 반입했다더군요. 하지만 그게 순도가 지나치게 낮아서 그동안 방법을 연구했던 모양입니다. 뭐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그래서 난 5년이 마지노선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실 나 역시 북의 핵실험 성공에는 그 정도 시간쯤은 걸릴 것이라 예상한다.
역사에 의하면 1차 실험에서 그들이 얻은 폭발력은 고작 400T(TNT 기준).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최소한의 폭발력이 1만T 정도인 걸 감안하면 농축방법을 더 찾아야 할 것이고, 그건 족히 5년은 걸릴 테니까.
"그건 결국 5년 안에는 어떻게든 처리해버려야 한다는 의미군요."
대통령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왠지 그리 긴 시간 같지는 않은 느낌이다.
******
“공격헬기 역시 조만간 무장체계가 완성된다죠? 그건 언제쯤 결과를 볼 수 있겠습니까.”
테스트 현장을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불현듯 대통령이 공격헬기의 개발 진척도에 관심을 드러냈다.
아마도 그 역시 자신의 임기 내에 결과를 보고 싶은 듯.
안 그래도 그것 역시 다음 달쯤엔 무장체계를 완벽히 갖춘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라 전하자 표정이 한껏 밝아진다.
“참, 자체 전투기 획득 수량이 원래는 120대였던가요?”
막 차에 오르려던 대통령은 다시 돌아서선 말했다.
이미 확정된 사실을 몰라서 그걸 거론한 것은 아닐 테고, 뭔가 다른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였다.
“그렇습니다만.”
“실은 지금 경선 중인 여당 대권 주자 중 한 사람이 그 문제에 꽤 관심이 많더군요. 이건 그의 주장인데, 우리가 개발 중인 전투기의 최종적인 목표가 어차피 5세대라면 차후 도입 수량을 더 늘리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건 내 계획과도 맞아 떨어지는 주장이었다.
당장은 F-15의 부재를 대처한다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차후 도태될 기종들을 생각하면 그 정도 수량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
더군다나 지금 개발 중인 기체는 어디까지나 버전 업을 통해 5세대를 목표로 삼고 있는 물건이기에 사업의 지속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어느 분인지는 몰라도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사실 그 주장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짐작 가능했다.
현 대통령을 뒤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 인물.
그라면 충분히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스타일이기는 하다.
“안 그래도 그쪽에서도 진 회장을 한번 만나봤으면 싶던데, 내가 조만간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볼 테니 만나보겠습니까?”
나로선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뭐 선거가 끝나기도 전에 대권 주자 중 하나를 만난다는 것은 기업인으로서는 큰 부담이긴 하지만 난 이미 결과를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이 기회에 정확한 성향을 미리 파악해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하죠.”
짧은 대답을 끝으로 차량에 올라타는 그를 마중했다.
이내 문을 닫으려는 순간 다가온 비서실장이 다급히 나를 만류하더니 대통령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흠…….”
그의 인상이 한껏 찌푸려졌다.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대 놓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그나마 힌트를 얻은 것은 문이 닫히는 순간 대통령의 입에서 뱉어진 말이었다.
“일단 해경 순시선부터 독도에 파견하세요.”
“…….”
******
[오늘 오후 일본은 독도 인근의 해양 조사를 시작한다는 방침을 통보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그에 맞서 해경 순시선을 독도로 파견할 예정이며…….]
다음 날, 거의 모든 뉴스는 일본의 갑작스러운 독도 인근 해양조사방침을 우려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 역시 역사와는 맞지 않는 사건.
난 한동안 멍한 얼굴로 기억을 더듬어봤다.
‘분명 해양 조사선 파견은 우리가 먼저인데? 그것도 2006년도에…….’
내 기억에 의하면 분명 그랬다.
하지만 이건 정반대의 상황.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길이 없다.
[최근 일본에서는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를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심코 돌렸던 다른 채널에선 일본 사회에서 시작된 혐한에 대해 언급 중이었다.
패널 중 하나의 주장에 의하면 월드컵 이후 급격히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게 사실인지는 판단하기가 애매하고, 뭔가 역사의 조류가 확 바뀐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한국의 해경선 파견을 심각한 도발로 간주할 것임을 밝히고 있으며…….]
일본 언론의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선 연신 아베 신조의 반응을 화제로 삼았다.
이건 마치 2020년도의 아베를 보고 있는 기분.
사실 아베의 경우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저렇듯 대 놓고 극우적인 성향을 드러내지는 않았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더군다나 그가 이 시기에 관방 장관인 것도 놀라운 일이고.
대체 세상이 왜 이렇듯 급격히 바뀐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게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