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92화
-미스터 진! 오랜만입니다.
발신자는 예상 밖으로 마이클이었다.
난 행여 우리가 개발한 JLTV의 랠리 우승 소식을 듣고 라이언이 축하 전화라도 한 건가 싶었건만.
[오랜만이군요.]
뭐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다.
만약 그가 폴라베어의 개발 사실을 전해 들었다면. 그리고 랠리 우승 사실을 알고 전화한 것이라면 앞으로의 일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을 테니까.
-이번 림팩에 참가한 한국의 잠수함 활약상에 대한 소식을 혹시 들었나 해서 전화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헛물을 켠 건가 싶은 마음에 헛웃음이 뱉어지려는 차. 문득 얼마 전 있었던 국방부 장관과의 통화가 떠올랐다.
[림팩이요?]
그래, 그때 분명 장관이 말했었지.
이번에 프로펠러의 개수작업을 진행했던 나대용 함이 림팩에 참가했다고.
[나대용 함이 꽤 좋은 성적을 낸 모양이군요.]
-좋은 성적 정도가 아니라 지금 국방부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
-그 작은 잠수함 하나로 인해서 우리 미 해군 대잠전략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거든요.]
그건 역사와 맞지 않았다.
물론 나대용 함 역시 이전 참가했던 장보고급들처럼 활약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엔 통신전파 추적에 걸려서 피격되는 것이 운명이거든.
[자세히 설명 좀 해보시죠.]
-이번에 나대용 함이 격침한 함정들의 수가 어마어마하다고 하더군요. 아! 물론 격침이라고 해서 실제로 격침을 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쯤은 잘 아시죠?
이게 누굴 바보로 아나.
[그야 당연하죠. 잠망경을 통해 가상 적군의 함정을 촬영한 것을 격침으로 간주하죠. 덕분에 탐지 위험도 큰 편이라서 실제 상황과는 괴리가 있기도 하고.]
-그렇다 해도 실전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닙니다. 아무튼, 나대용 함은 총 35척에 달하는 가상의 적을 격침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중에 미 해군 소속 항공모함이 포함되어 있다는 건데, 무려 10차례나 중어뢰를 명중시켰다는 판정을 받았더군요.
[…….]
중어뢰를 그 정도로 두드려 맞았다면 아무리 항모라도 침몰 수준의 타격을 받은 거다.
고작 1200톤급의 잠수함 하나가 그런 성과를 올리다니.
황당한 마음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와중 마이클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결정적으로 전략수정요구가 올라온 이유가 뭔지 압니까? 이후 미 해군이 항복 의사를 밝히자 나대용 함이 항모와 불과 8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유유히 부상했다는 겁니다. 덕분에 담당 제독이 사색이 되어 국방부를 발칵 뒤집어 놨죠.
마이클은 연신 흥분한 채 떠들어댔다.
누가 보면 미군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군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도 그걸 느꼈는지 잠시 헛기침을 한 그는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훈련에 참가했던 우리 측 음탐관에 의하면 나대용 함의 소음 수준이 도무지 찾기 힘들 정도였다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항모와 그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었던 것을 탐지하지 못했다는 건 대단한 일 아닙니까?
그건 아마도 프로펠러의 영향이 컸지 싶었다.
왠지 뿌듯한 마음에 입매가 뒤틀리려는 차, 갑자기 마이클이 본론이라 짐작되는 말을 끄집어냈다.
-덕분에 지금 우리 해군에서는 난리도 아닙니다. 미 해군의 잠수함에도 적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런데 듣자 하니……그게 재우의 작품이라죠?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그동안의 경험상 저들은 필요한 것을 단순히 수입하는 수준에서 만족하지는 않았거든.
즉, 기술 이전을 요구할 것임은 거의 확실한데, 문제는 그게 어마어마한 전략 기술에 속한다는 거다.
고작 돈 몇 푼 받고 팔아먹기엔 지나치게 파급력이 큰.
[우리가 대유를 인수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글쎄요. 제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관여를 하는 것은 아닌지라…….]
난 어물쩍 대답을 회피하는 편을 택했다.
의외의 반응이었던 듯 수화기 저편에선 부쩍 당황한 투의 말이 들려왔다.
-모르셨던 일이라고요?
[말했다시피 제가 신경 써야 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요. 일단은 저도 어떻게 된 것인지 한번 알아는 보죠.]
-…….
그는 한동안 침묵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긴 한숨을 내쉰 그가 예상치 못한 말을 뱉어냈다.
-아무튼, 상황파악이 끝나시거든 전화 좀 주십시오.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 직접 보고 이야기합시다. 안 그래도 며칠 후 신임 주한미군 사령관과 협의할 것이 있어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니까.
“주한미군에는 뭣 때문에요?”
-그 문제를 전화상으로 말하기는 좀…….
이번엔 그가 대답을 얼버무렸다.
분위기상 끝까지 대답을 요구하기는 어려울듯한 느낌에 그대로 통화를 끝맺었고, 이후 한동안은 여운이 남았던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리를 맴돌았다.
‘대체 뭔데 전화상으로는 말을 못 한다는 거지?’
******
똑똑!
며칠 후, 예정대로 한국을 방문한 마이클은 곧장 회사로 찾아왔다.
[오! 미스터 진.]
가장 먼저 눈에 뜨인 것은 그의 어깨에 붙어 있는 4개의 별.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끔벅이자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다가온다.
[하하, 두 달 전쯤 진급했습니다.]
[축하드려야 할 일이군요. 그런데 이런 경사가 있었으면 진즉에 말씀을 하셨어야죠.]
[그래 봐야 내 자랑하는 것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나저나 미스터 진도 전보다는 얼굴색이 좋아졌습니다.]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로 덕담을 건네곤 소파에 자리했다.
무려 4성 장군.
왠지 적응하기가 힘들어 계속해서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 역시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게 쳐다볼 것 없습니다. 뭐 직위는 올라갔어도 직책은 그대로인 셈이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진급을 했는데 직책의 변화가 없다니요?]
[당황스러운 일이기는 한데, 나 혼자만 그런 것도 아니니 이해해야죠. 실은 이번에 국방부의 직급체계에 대대적인 수술이 있었거든요. 그 탓에 직위는 그대로인 상황에서 직급만 올라간 장성들이 꽤 많습니다.]
사실 그 문제야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단지 내게 중요한 것은 마이클이 왜 주한미군을 방문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것.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그런데 갑자기 주한미군에는 왜…….]
[아! 그게…….]
그는 한동안 말을 주저했다.
이내 한동안 고민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 그는 쯧 하고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어차피 곧 한국 언론에도 발표가 될 문제니 못할 것도 없겠군요. 실은 주한 미군에 용무가 있는 것은 합참의장이십니다. 전 겸사겸사 그분과 함께 입국한 것이고.]
[…….]
합참의장이 왔다는 건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의미였다.
문제는 이 시기에 한반도에서 벌어진 큰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미간을 찌푸리자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 내일 부시 대통령이 북한의 이라크 무기 제공에 대한 의혹을 제기할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뇌리에 뭔가 떠올랐다.
맞아, 부시가 한때 그런 의혹을 제기했었지.
더불어서 이라크와 북한. 그리고 이란을 싸잡아 악의 축으로 규정하기도 했고.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그 탓에 주한미군의 편제와 북의 도발에 대한 비상 메뉴얼도 돌았었는데, 아마 합참의장의 방문 목적은 그 때문인 듯싶었다.
가만, 그런데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지금보다 한참 이전에 있었어야 하는 사건 아니었던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악의 축 발언이 나온다는 것은 미국이 슬슬 이라크를 건드리기 위해 시동을 걸고 있다는 건데, 이거 나도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럼 저에게는 무슨 볼일이 있어서 찾아오신 겁니까.]
마이클은 그 말에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마치 이유쯤은 다 알고 있으면서 왜 시치미를 떼느냐는 듯한 눈빛.
하지만 끝내 모른 척을 하자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쯧, 미스터 진도 이젠 너구리가 다 되셨군요. 좋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우린 이번에 재우가 개발한 복합소재 증착 방식의 프로펠러 제작기술이 필요합니다.]
태도만 보면 어지간히도 똥줄이 타는 모양새였다.
하긴, 미 해군 잠수함들의 작전 능력을 대폭 상승시킬 수 있는 길이 생긴 마당이면 저렇듯 안달이 날 만도 하지.
[아! 그걸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가 아니라 정부에게 협조를 구하셔야 할 겁니다.]
[…….]
하지만 난 쉽게 내줄 생각은 없다.
그게 한나라의 군사적 우위를 좌우하는 전략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팔아봐야 큰돈이 될 것은 아니거든.
아무리 값을 제대로 쳐준다고 해봐야 통상적인 수준보다 조금 높은 정도일 텐데, 그럴 바엔 차라리 달리 이익을 보장받는 방편을 택하는 것이 옳다.
[실은 소재는 물론 제작방식까지 이미 전략품목으로 지정이 되어 버렸거든요.]
때문에, 내가 생각한 것은 수출제한품목의 조기지정이었다.
그걸 통해 기술의 보호와 함께 정부로부터 대가를 받아낼 계획을 세웠고, 다행히 그에 동조한 정부는 합당한 보상을 약속한 터다.
아니, 합당한 것이 아니라 넘칠 정도라고 해야겠지.
솔직히 20만 벌에 가까운 방탄조끼 도입사업의 추진 정도면 프로펠러 기술수출에서 얻어지는 이익에 비할 바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건 재우가 자력으로 개발한…….]
예상처럼 마이클은 부쩍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이 상황에선 기술 이전은커녕 완제품 수출에도 제한이 걸리는 터라 당황스러울 수밖에는 없겠지.
더군다나 이젠 업체가 아니라 정부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
아마 돈으로 그걸 얻는 것은 불가능할 거고, 양국 간 외교적인 부분에서 발생한 트러블. 또는 여타 협상 중인 중대한 문제에서 한발 양보를 해야 해결이 가능할 거다.
[하아…… 이거 골치 아프게 됐군요.]
같은 생각을 한 듯 마이클은 깊은 한숨을 뱉어냈다.
의아한 것은 그의 표정이었는데, 상황의 심각성치고는 표정이 그렇게까지 썩어 있지는 않다는 거였다.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내가 따로 윗선과 협의를 해보죠.]
순간 난 어쩌면 그가 이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게 아니고선 저렇게까지 침착할 수는 없으니까.
잠시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봤지만 좀처럼 생각이 나는 것은 없다.
[그건 그렇고, 내가 미스터 진을 찾아온 목적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한참 저들이 가진 패가 뭘까를 생각하던 차에 마이클의 말이 다시 들려왔다.
퍼뜩 생각을 깨고 쳐다보자 그가 반짝 눈을 빛내며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어 보인다.
[이게…… 뭐죠?]
사진에 찍힌 것은 반파된 채 불타고 있는 험비의 모습이었다.
배경은 중동 지역 어딘가로 짐작이 가능한 상태.
왠지 의도를 알 것 같아 즉시 그를 쳐다보자 그가 여전히 빛나는 눈을 하며 말한다.
[예전 소말리아 내전에서 반미 군벌 세력들에 의해 당한 우리 특수부대원들의 차량입니다. 그 사건을 통해 군 내부에선 험비의 부족한 방호력이 본격적으로 대두되었죠.]
[그래서요?]
그는 되묻는 나를 향해 또 한 장의 사진을 꺼내놨다.
장갑으로 떡칠을 한 트럭들의 모습.
기억이 맞는다면 그건 분명 남아공에서 보유 중인 MRAP의 사진이었다.
[그 탓에 국방부 내에선 지속적으로 이런 MRAP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었습니다. 아니 단지 강조만 된 것이 아니라 조만간 미국 내 군수산업체들에게 사업제안을 할 예정이었죠. 그러다…….]
[그러다, 우리가 개발한 물건을 보신 거군요.]
난 그의 마지막 말을 대신해줬다.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예상처럼 랠리에서 사막을 횡단 중인 폴라베어의 사진을 꺼내 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방부에서 이 사진을 보고 한동안 엄청난 분석을 했었습니다. 워낙 개수작업을 많이 거친 터라 처음엔 확신이 서지 않았거든요.]
[…….]
[하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이건 단순한 보병 전술 차량이 아니라 방호력을 극대화한, 일종의 MRAP 같은 물건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특히나 여기 이 복합재 장갑 부분에서 그런 확신을 얻었죠.]
난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서랍에서 폴라베어의 스펙이 담긴 서류와 함께 방호력 테스트 결과가 담긴 보고서를 꺼내어 그를 향해 내밀었다.
[그건 MRAP 과는 다릅니다, 정확히는 경량 합동 전술 차량이라고 하죠.]
그는 귀를 쫑긋 해운 채 한참 동안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방호력 테스트의 결과를 끝까지 확인한 그는 장탄식과 함께 말을 뱉어냈다.
[그거 압니까? 난 가끔 미스터 진이 미래를 보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