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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91화 (91/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91화

“오늘도 많이 늦으셨네요?”

벌써 며칠째 계속되는 군 장성들과의 밤샘 회의로 인해 요즘은 지각이 거의 생활화 되고 있었다.

어지간하면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건만, 이건 뭐 버텨낼 재간이 있어야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부로 사안들이 모두 정리가 되었다는 건데, 아마 하루만 더 회의가 지속했으면 다들 시체로 발견되는 불상사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김 비서. 미안하지만 커피 한잔 만 부탁하죠.”

대통령은 처음엔 단지 해군참모총장만을 불러들였었다.

이후 사안의 중요성을 감지한 참모총장은 다시 일선 제독을 불러들였고, 그 후 대통령은 다시 합참의장과 국방부 장관까지 소환.

결국, 하루 반나절을 청와대에서 이어진 회의에서 결론을 얻지 못한 우린 다시 자리를 합참본부로 옮겨 마라톤 회의를 지속했다.

“좀 진하게 타드려야겠죠?”

“네, 무리다 싶을 정도로 부탁해요.”

김 비서는 내 상태가 걱정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사이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어제의 밤샘 회의 결과가 적힌 서류들.

뭐 대부분은 관련 부서들의 주장이 담긴 것들이고, 중요한 점은 역시 3000톤급 잠수함 확보의 1차 사업을 연내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3척이라…….”

1차 사업의 획득 수량은 3척으로 결정지어졌다.

군이 예상하는 초도함의 취역 일은 아무리 빨라야 6년 후.

하지만 난 이미 가진 설계안을 바탕으로 3척의 동시건조를 진행할 생각이고, 3년 안에는 1차 사업을 마무리 지을 생각이다.

‘같은 방식으로 간다면 9척을 모두 획득하는 것에 6년이면 충분하지.’

어차피 2차 사업부터는 군의 요구에 따른 추가 설계 외엔 딱히 설계에 소비되는 시간은 없을 테니까.

척당 평균 건조시간이 1년 반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1차 사업과 마찬가지로 동시건조를 추진한다면 6년 안에는 사업을 모두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야 더 바랄 것이 없겠지. 문제는 5천 톤급의 확보가 과연 가능할 것이냐는 점인데…….’

해군 장성들 대부분은 5천 톤급 이상의 잠수함 확보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동조했었다.

하지만 이후 공통적으로 우려했던 점은 행여 있을지 모르는 정책의 변화.

그 사이 2번은 정권이 바뀔 텐데, 과연 정책이 끝까지 지켜질 것이냐는 문제에 있어선 누구도 자신하지 못했다.

‘상황이야 닥쳐봐야 알겠지만, 할 수 있는 것까지는 해 봐야지.’

[대한민국이 꿈에 그리던 16강에 올랐습니다.]

잠시 머리나 식힐 요량으로 틀어 놨던 TV에선 우리의 월드컵 16강 진출 소식을 알려왔다.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은 이때쯤 북이 서북 도서에서 2차 해상 도발을 감행했었다는 사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즉시 임 전무를 호출했다.

“혹시 북한 동향에 대해서 전해 들은 것 없습니까?”

“안 그래도 보고를 드리려던 차였습니다만, 특별히 눈에 뜨이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임 차장은 손에 들고 있던 보고서 몇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주요 내용은 북 해안기지의 보강공사나 부대의 순환배치와 관련된, 주로 일상적인 것들.

왠지 이상하다 싶어 이번엔 국방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는 웬 생뚱맞은 말이냐는 반응이었다.

-지금 백령도에 해상형 스마트 포탄 시스템은 물론 호위함까지 대기 중인 상황인데, 지금 도발을 감행하겠습니까. 자살하고 싶은 것이 아닌 다음에야 그건 미친 짓이죠.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이젠 거의 요새나 다름없는 서북 도서 지역에서 또 도발을 감행한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지.

문제는 여태 벌어질 일은 결국 벌어졌다는 것과 그 사건이 또 어떤 식으로 뒤틀려 발생할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인데, 그 부분은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문제일 듯싶었다.

-아무튼, 북의 동향은 군이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진 회장님도 월드컵이나 좀 즐기세요.

장관은 웃으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괜한 걱정이었지 싶어 웃으며 종료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저편에서 다시 장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 혹시 궁금해하실 것 같아서 알려드리는 건데, 최근 대유조선에서 스크류 개량작업을 마친 나대용 함이 오늘 아침 림팩 참가를 위해서 출항했습니다.

“……이제 막 개수작업을 마친 함정이 그런 중요한 훈련에 참석한다는 겁니까? 그러다 문제라도 발생하면 어쩌시려고요.”

황당한 마음에 되물었다.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 걸까, 주변을 향해 뭐라 지시를 내리던 그는 한참 후에야 내 질문에 다시 대꾸했다.

-어차피 다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서 다른 잠수함들로 림팩에 참석하는 것도 무리였어요. 그렇다고 미국에 이미 편제를 통보한 마당에 잠수함 전력을 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럴 바엔 차라리 개수된 것을 검증이라도 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입니다. 림팩이야 워낙 실전에 가까운 훈련이니 그만한 기회도 또 없지 않습니까.

그 말도 얼핏 일리는 있어 보였다.

하긴, 균열로 인한 기동력 저하를 겪고 있는 잠수함을 투입했다가 훈련에 지장을 주는 것보다야 낫겠지.

상황이 이러면 우리로서는 뜻하지 않게 실전에 가까운 상황에서의 성능 테스트를 하는 셈인데, 내내 별 관심이 없던 림팩이 갑자기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문제로 대두되고 말았다.

‘림팩이라…….이것 참…….’

******

[여러분,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루어냈습니다!]

6월의 어느 날, 뉴스에선 대한민국의 4강 진출 소식을 알려왔다.

분위기가 한껏 오른 이 나라는 거리 곳곳이 축제의 장이었고, 밤이 되면 강남의 주요 도로가 사람들로 가득 들어 차 버린 터라 늘 퇴근을 서둘러야만 했다.

멈칫!

우리 회사도 월드컵의 열기에 취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퇴근 시간만 가까워지면 온통 붉은색의 옷들로 갈아입기 시작하는 직원들.

하다못해 비서실 근무자들까지도 벌써 뿔 달린 머리띠를 손에 쥔 채 내가 조기에 퇴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경기 재미있게 보시고 내일 봅시다.”

문득 옛 기억이 떠올라 웃으며 말하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곧 문이 닫히려는 차, 어디선가 나타난 김영기 부사장이 턱 하고 문을 붙잡는다.

“오늘 같은 날, 그냥 퇴근하시는 겁니까?”

“그래야죠. 시간을 지체했다간 차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지도 못할 겁니다.”

그 말에 김 부사장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뭔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는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려는 순간, 그가 혀를 차며 말한다.

“이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무슨 말입니까?”

“이런 지구촌 축제에도 전혀 동요가 없으신 그 모습 말입니다.”

“…….”

“그러지 말고 오늘은 회장님도 직원들과 함께 좀 즐기시죠. 마침 강당에 직원들이 모여서 오늘 경기를 관전할 예정입니다.”

김 부사장은 그 말과 함께 나를 거의 반강제적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끌어 내렸다.

곧이어 도착한 곳은 회사 강당.

이미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채 자리를 메운 직원들은 내가 나타나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여기…….”

김 비서는 즉시 내게 붉은 티셔츠 하나를 건넸다.

그나마 뿔 달린 머리띠까지 권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지. 하는 마음에 즉시 옷을 갈아입자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이미 경기결과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딱히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마냥 들떠 있는 직원들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그 흥분감이 슬슬 전해지기 시작했고,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손에선 흥건한 땀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오!”

연속된 선방에 직원들이 흥분에 찬 응원을 계속했다.

우습게도 그 순간 파고든 생각은 내가 정말로 살아 있기는 하구나, 하는 현실감.

왠지 오늘만큼은 나 역시 저 틈에 끼어들고 싶다는 생각에 김 비서를 향해 말했다.

“오늘만큼은 사내 음주를 허용할 테니 매점에 연락해서 맥주를 있는 대로 다 가져오라고 하세요.”

“오오!”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힐끗 쳐다본 김영기 부사장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는 상태.

어색한 마음에 헛기침을 하곤 다시 스크린을 주목했다.

“야이! 거기서 똥볼을 날리면 어떡하냐!”

경기의 흐름은 한동안 팽팽했다.

혹여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 상태.

더군다나 이번에도 역시 심판의 판정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고, 결국 후반 33분쯤 발락이 찬 볼을 이운재가 막아냈지만, 이후 다시 발락이 그걸 밀어 넣으며 0-1의 상황이 되었다.

“아…….”

순간 누군가 안타까움의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강당 전체가 침묵으로 물들었다.

타이밍 한번 참 예술이지.

하필 그 순간에 뱉어낸 내 한마디가 온 강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시발, 저 심판 새끼들 또 저 지랄이…….”

“…….”

******

[아침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끝이 없을 줄 알았던 월드컵의 열기는 어느덧 한층 가라앉았다.

어느덧 7월의 중순.

이 나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계속해서 꺼져가는 IT 거품으로 경제계에는 체질 개선의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직원들과의 월드컵 경기 관전 이후 나를 쳐다보는 비서실 직원들의 표정은 한층 밝아져 있었다.

이걸 좋은 결과라고 해야 할지.

뭐 그동안엔 저승사자 쳐다보듯 하던 눈빛들보다야 낫기는 하다.

“회장님!”

출근 30분 만에 모습을 보인 김 비서가 숨을 헐떡이며 방에 들어섰다.

뭔가 다급한 문제라도 터진 건가 싶어 쳐다보자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 한 장을 턱하고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다카르 랠리에 참석했던 대유트럭 팀이 어제 완주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그래요?”

나로선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무려 수십 일을 사막과 같은 험지를 주파해야 하는 극악의 난이도에서 완주했다는 건 차량의 성능이 증명됐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던가.

김 비서가 한껏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말을 잇는다.

“놀라지 마세요, 폴라베어가 우승을 했답니다. 그것도 2등 팀과 무려 반나절 이상의 시간차를 두고서요”

“…….”

잠시 생각이 멈춘 느낌이었다.

아무리 개조를 했다곤 해도 폴라베어는 다른 차량에 비해 불리한 조건이 한두 개가 아닌 상황.

그럼에도 우승을 했다는 것이 나로서는 꿈만 같았다.

“참가인원들의 안전은요?”

사실 그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매해 사고가 끊이지 않아 죽음의 랠리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다카르 랠리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팀에선 이러다 할 사고는 없었고, 옆 나라 미스비시 팀에서 중상자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팀은 언제 복귀한답니까?”

“모레 있을 행사를 모두 끝마치고 돌아올 예정이랍니다. 그런데 지금 서구 언론에서는 난리가 난 모양이던데요? 첫 출전 차량이 우승한 것도 그렇지만 그게 하필 군용을 개수한 것이라서 더 관심이 쏟아지는 모양입니다.”

그게 바로 내가 바라던 바였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홍보 효과.

다른 건 둘째 치고, 지금쯤 일본에서 일어났을 반응이 기대된다.

“돌아오기 전까지 차량은 물론 팀 전원의 안전과 보안에 철저하게 신경 쓰세요. 혹시라도 어딘가에서 접근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네, 안 그래도 재우 시큐리티에서 무려 스무 명에 가까운 보안 요원들을 파견해둔 상태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게다가 이번엔 정 대표님까지 동행하신 터라…….”

혹시나 해서 정 대표를 함께 보낸 것은 신의 한 수였지 싶었다.

적어도 그만큼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뛰어난 자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하긴, 꼭 그게 아니라도 워낙 철저한 보안을 담보로 참가를 결정했던 터라 문제가 발생할 요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거다.

따르릉!

한참 주체못할 기분을 가라앉히려는 차에 휴대폰이 울렸다.

불명확한 패턴의 번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로 인해 절로 입매가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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