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90화 (90/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90화

“보상이요?”

살짝 올라오던 취기가 순간 확 달아났다.

단숨에 잔을 들이켠 대통령은 정작 자신이 뱉어냈던 말에 대한 설명은 않은 채 엉뚱한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참, 진 회장도 장보고급 잠수함의 국제무대 활약상에 대해선 잘 알고 계시겠죠?”

“그야 물론입니다만, 갑자기 그 말씀은 또 왜…….”

“이곳에 오니 불현듯 그게 떠올라서요. 고작 1200톤급에 불과한 잠수함들이 림팩훈련에만 참가하면 엄청난 성과를 내는 것이 대견하지 않습니까?”

“…….”

우연치고는 왠지 기분이 서늘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전에 도크를 바라보며 그 점을 떠 올렸었으니까.

수긍의 의미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순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98년도 림팩에 참석했던 이종무 함의 경우는 총 13척에 달하는 함정들을 격침했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도 단 한 번의 고장도 없이 훈련을 소화하여 최우수 정비함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었죠.”

“…….”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2000년에 참석한 박위 함의 경우도 무려 11척의 가상적을 격침했었음은 물론, 끝내 생존하여 미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었죠.”

그가 말한 장보고급 잠수함의 활약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하긴, 2002년 림팩은 아직 열리기 전이니까.

예언을 하나 하자면 올해 열리는 림팩에서도 장보고급의 활약을 두드러질 것이며, 2004년에 열리는 림팩에 참가하는 장보고함의 경우는 무려 30척을 격침하면서도 단 한 번도 탐지조차 되지 않을 거다.

“그래서 말인데, 진 회장에게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속으로 말을 삭이던 와중 대통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느덧 붉어져 있는 그의 얼굴.

하지만 그의 태도나 말투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고, 덕분에 긴장감은 더해졌다.

“말씀하시죠.”

“진 회장은 향후 우리의 잠수함 확보사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몇 년 후에 1800톤급의 건조를 시작한다고는 하지만 그걸로 과연 주변국들과의 균형이 맞을까요?”

“…….”

왠지 분위기가 이상해서 침묵으로 일관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힐끗 국정원장을 쳐다봤지만, 그도 대통령의 의중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표정.

그사이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일본은 지금 만재배수량이 무려 4000톤급에 달하는 잠수함을 건조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그 마당에 우린 기껏 1800톤급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래서야 균형은커녕 또 쫓아가기 바쁠 것 같습니다만.”

그건 필시 소류급 잠수함을 말하는 걸 거다.

일본이 2009년부터 취역을 목표로 개발 중인.

역대 디젤 잠수함 중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는 물건.

그 점을 감안하면 우린 늘 추격자의 입장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대통령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말씀을 듣고 있자니 각하께선 우리도 그에 대적할 수 있는 잠수함을 원하시는 모양인데, 그렇다고 이미 계획을 세운 1800톤급 건조 사업을 돌이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고, 난 현실을 일깨워줬다.

막말로 이미 확정된 SS-Ⅱ 사업이 있는 마당에 그걸 취소하고 사업의 방향을 틀 수는 없지 않던가.

다른 건 둘째 치고, 이미 사업자로 선정된 현우부터가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거다.

“누가 아예 엎자고 했습니까?”

순간 대통령이 단호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뱉어냈다.

멍하니 쳐다보자 그가 비어 있던 내 잔을 다시 채우며 말한다.

“1차 사업으로 확보가 예정된 3척은 그대로 건조를 진행하되, 그걸로 끝을 맺겠다는 말입니다.”

“……1차 사업만으로 끝을 맺자고요?”

딱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모든 무기의 추가도입은 군의 요구가 제기되어야 시작을 하는 거니까.

다시 말해서 사업 지속의 요구가 없을 상황에선 그대로 사업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건데, 대통령은 지금 그 ‘상황’을 만들겠다는 거다.

“그리고 손원일급 사업과는 별개로 3000톤급의 건조를 추가로 진행하자는 겁니다.”

점점 더 당황스러움이 몰려들었다.

1800톤급과 3000톤급을 동시 건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거든.

기술적 문제는 둘째 치고, 예산의 문제가 발생하니까.

그런데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대통령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차피 1800톤급은 전부터 계획되어 사업이었습니다. 그 덕에 수년간에 걸친 정규예산이 이미 편성되어 있죠. 해서 난, 3000톤급의 경우는 이번에 시작되는 중기국방계획안의 예산을 할당할 생각입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것은 해군의 입김이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막대한 전력증강 예산이 발생한 마당에 그들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는.

어쩌면 그게 육군보다는 해, 공군의 발전에 더 비중을 두던 대통령의 의중과 맞아떨어진 건지도 모르겠다는.

사실 그건 중기국방계획안의 초안이 발표되었을 당시에도 얼핏 드러났었는데, 당시 해군력 증강에 편성된 예산의 비중은 거의 육군의 2배에 달했었다.

‘뭐 내가 해군이었어도 예산이 있다면 어설픈 1800톤급보다야 3000톤급을 더 선호했겠지. 그나저나 보상이라는 것이 바로 그걸 의미하는 거였나?’

아마도 틀린 생각은 아닐 거다.

209급의 경우를 봐서도 도입 수량은 9척에 달할 터.

척당 건조비가 무려 1조 원에 가까운 것을 9척이나 건조한다면 9조에 가까운 예산을 내가 당겨오게 되는 상황인데, 그럼 보상이라고 말하기엔 충분하지 않던가.

“각하의 의도는 이해합니다만, 현우가 과연 그걸 손 놓고 보고만 있겠습니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었다.

잠수함 건조 분야에서 뒤처질 것이 두려워 1800톤급의 수주도 어마어마한 적자를 감당하고 따낸 곳이 바로 현우인 마당에 그걸 보고만 있을 리는 없다는 점.

사업의 지속을 당연하게 여겼을 그들로서는 그야말로 날벼락인 소식이 아닌가.

“현우는 이미 수긍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고개를 갸웃해 보인 순간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손원일급의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현우가 일부 장성들에게 뇌물을 공여했더군요. 물론 빌미를 제공한 것은 군 장성들이지만 현우 역시 책임소재를 벗어날 수는 없죠. 그걸 조용히 덮는 것을 전제로 양보를 받아냈습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낙찰을 받아낸 것도 모자라서 뇌물까지 줬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더군요. 어찌 보면 또 이해도 가는 것이, 209급의 경우는 초도함을 제외하곤 대유가 죄다 수주했지 않습니까, 그 상황에서 1800톤급까지 뺏기면 영영 잠수함 건조기술을 습득할 기회는 없는 것이니 무리를 했을 수밖에요.”

듣고 보니 그도 그럴듯했다.

잠수함은 운용의 통일성을 위해 한번 사업자가 정해지면 대체로 동급의 잠수함은 계속해서 같은 사업자가 건조하는 것이 관례.

그 와중에 1800톤급마저 대유가 가져가 버린다면 그들로는 영영 기술습득의 기회가 없어지게 된다.

하니 적자는 물론 뇌물을 감당하면서까지 붙잡고 싶었던 거겠지.

“몇 척이나 예상하고 계시는 겁니까.”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되물었다.

얼핏 대통령의 얼굴에 미소가 맺힌다 싶더니 곧 테이블 위에 숫자 12를 그려 보였다.

“12척으로 갈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전력의 여유를 두자면 그게 적당할 듯싶더군요.”

대통령은 꿈에 부푼 표정이었다.

순간 머릿속을 스친 것은 그가 대체 왜 3000톤급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은 일본과는 달리 우리가 보유할 3000톤급 잠수함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이었다.

“죄송하지만 그렇게까지 3000톤급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우린 일본과는 달리 탄도미사일이나 순항 미사일의 탑재가 가능하기 때문입니까?”

조심스레 뱉어낸 질문에 대통령의 미간이 꿈틀했다.

역시나 그게 이유였던 거지.

하긴, 기왕 주변국들을 견제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편이 확실하기는 하다.

“맞습니다. 난 기왕 잠수함을 건조할 생각이면 전략적으로 확실한 우위를 구축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뭐 비록 탑재 가능한 수직 발사 체계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난 그걸 내 임기가 끝나기 전에 해결할 생각이오.”

그러고 보니 대통령의 임기도 채 1년이 남지 않았다.

어느덧 차기 정권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 시기.

어쩌면 그것 역시 일을 서두르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그래, 같은 정치사상을 가진 존재가 후를 잇는다 해서 군의 사업 내용마저 지속한다는 보장은 없지.’

특히나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교체될 관련 책임자들이 지금처럼 국방력 증강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고.

가능만 하다면 일을 미루지 않고 진행해 버리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거다.

“각하의 생각에는 동의합니다만, 전 9척으로 끝냈으면 합니다.”

작정하고 뱉어낸 말에 대통령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자신은 선물이랍시고 12척을 주장한 마당에 오히려 도입 수량을 깎고 앉아 있으니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미래를 위해선 그편이 옳다.

“왜요?”

“진정한 전략잠수함을 보유하려면 3000톤급으로도 부족합니다. 해서 전 차라리 9척에서 그치고 이후 5000톤급 이상의 개발 가능성을 장기 과제로 남겨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

대통령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5000톤급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이해한 거지.

하지만 차마 그걸 입 밖으로 꺼내긴 힘들었던 듯 끙, 하는 신음소리를 뱉어낼 뿐이었다.

“이제 보니 진 회장은 나보다 꿈이 더 거창하시구려.”

“원래 꿈은 크게 꾸라고 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북이 완전한 핵을 보유하는 경우 그 다음으로 할 일은 장거리 탄도 미사일의 개발과 핵을 탑재한 잠수함 전력을 갖추는 건데, 그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응은 핵 추진 잠수함의 보유뿐입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가야 할 길이죠.”

“누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문제는 우리의 현실이 그리 녹록지가 않다는 거죠.”

“그렇다 해도 일단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게 꼭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고요.”

“…….”

“사실 제가 9척을 주장한 이유는 적당한 수준에서의 전력 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솔직히 3000톤급 9척이라고 해 봐야 주변국에 비비기엔 힘든 수준이죠. 특히나 일본이 수중배수량 4000톤급을 12척이나 계획 중인 상황에선 더더욱. 그럼 당연히 언젠가는 우리도 추가건조에 대한 의견이 제시될 테고, 그땐…….”

대통령은 그제야 내 의도를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자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기존에 보유 중인 배수량 이하의 것을 차기잠수함으로 확정하는 일은 거의 없던 상황.

내 말대로 차후 주변국들과의 전력 차에 의한 추가도입이 거론되었을 때는 5000톤급 이상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디젤 잠수함을 5000톤급 이상으로 만든 다는 것은 여러면에서 의미가 없으니 당연히 핵 추진을 고려할 수밖에.

“허어…….”

더군다나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적인 예로 회귀 전에도 우린 미국으로부터 최소한 핵 추진 잠수함 보유에 대한 합의쯤은 받아내지 않았던가.

“그래요, 세상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진 회장의 생각이 그렇다면 9척으로 추진해 봅시다.”

대통령의 고개가 비로소 끄덕여졌다.

그러다 무엇이 생각난 걸까, 곧 휙 하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군요. 우리가 3000톤급 잠수함을 건조할 기술력은 있는 겁니까?”

“함 자체에 대한 건조능력은 충분합니다. 문제는 AIP. 즉, 연료전지 기반 공기 불요 추진장치를 비롯하여 아직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기술들이 문제인데, 어차피 그 부분은 손원일급의 건조로 독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을 예정이니 그걸 활용하면 될 것이고, 전투체계의 경우는 재우 연구소의 기술력 정도면 충분히 자체 개발이 가능할 겁니다.”

말과는 달리 사실상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3척이 넘는 3000톤급의 건조 경험이 내 손목에 고스란히 있으니까.

AIP는 물론 여타 운용 체계와 전투체계까지. 당시엔 부품들 역시 80%쯤은 국산화율을 달성했었는데, 그 정도면 이 시대에서 재현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요.”

대통령은 눈을 빛내며 다시 잔을 채웠다.

이내 그걸 단숨에 들이켠 그는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지만 오늘 늦더라도 총장께서 청와대에 좀 들어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

총장이라는 단어가 유독 귀에 꽂혔다.

지금까지의 대화의 맥락과 정황상 해군참모총장일 것은 분명하고.

이 늦은 시간에 그를 청와대로 불러들이는 대통령의 의중이 자못 궁금했다.

탁!

짧은 대화를 끝낸 대통령은 다시 나를 쳐다봤다.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싶더니 대뜸 당황스러운 말을 뱉어낸다.

“진 회장도 나하고 같이 헬기 타고 올라갑시다. 굳이 시간 버려가면서 차로 이동하지 말고.”

“전 왜…….”

“가능성을 확인했으니 실행에 옮겨야지요. 해군참모총장과 함께 구체적인 논의를 한번 다시 해봅시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