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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89화 (8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89화

‘확실히 험비와는 다른 분위기군.’

첫인상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위압감을 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긴, 복합장갑을 최대한 채용한 상황에서도 무게가 6톤에 달하는 물건이니 뭐.

곁에 서 있는 험비는 그에 비하면 깡통이나 다름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다른 건 몰라도 외양 하나만큼은 마음에 듭니다.”

김 부사장은 탄탄해 보이는 외관에 가장 후한 점수를 줬다.

얼핏 보면 회귀 전 오시코시사가 미군에 제안했던 L-ATV의 외형을 닮은 느낌인데, 그건 아마도 방호력과 기동력을 최대한으로 고려한 디자인을 추구한 결과일 거다.

“임시로 라텔(ratel)이라는 제식 명을 붙여 주었습니다.”

테스트에 앞서 담당 연구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라텔이라면 꿀 먹이 오소리를 말하는 건가.

하도 겁이 없어서 덩치가 저보다 큰 육식 동물들에게도 용맹하게 달려든다는.

“엔진은 재우 연구소에서 이번에 개발한 ‘모탈’ 엔진을 기초로 일부 개량이 이루어졌으며 최대출력 500마력을 마크했습니다만, 3,000rpm에서 350마력으로 최적화하였습니다.”

왠지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에 입매를 뒤틀었다.

만족스러운 내 표정을 본 연구원은 신이 난 듯 설명을 잇는다.

“또한, 디지털화된 제어장치로 출력을 조절. 그 결과 연료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렸기에 최대 항속거리가 500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자기진단기능은 어떻게 됐습니까?”

잠시 그 부분이 궁금하여 되물었다.

열악한 현장 상황에서 고장의 원인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것은 중요한 문제거든.

우려였던 걸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연구원은 즉시 엔진룸의 문을 열어 무언가를 건드렸고, 곧 차 안에 설치되어 있던 디스플레이에 경고표시와 함께 구체적인 오류 사항이 표시된다.

그래 저 정도는 되어야 현장에서 대응이 빨라지지.

“곧 주행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만, 혹시 생각이 있으시다면 회장님께서 직접 승차해보시겠습니까?”

연구원은 불현듯 내게 제안했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겠지.

흔쾌히 응하곤 차량에 오르자 전술차량 답지 않은 안락함이 온 몸에서 느껴졌다.

부우웅!

이후 시작된 주행 테스트는 놀라움을 선사해줬다.

적용된 독립 서스펜션 때문인지 험준한 산악지형에서도 제법 승차감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험지 극복 능력 또한 험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특히나 무려 60도나 되는 등판 각도를 무리 없이 점령하는 그 힘은 절로 감탄사를 발하게 만든다.

“그럼 지금부터…….”

마지막으로 진행될 방호능력 테스트를 위해서 다시 차량에서 내렸다.

이후 우리를 태웠던 차량은 곧바로 강화 콘크리트로 둘러싼 구조물 안으로 들어섰고 잠시 후 안내방송을 통해선 파편에 대비하라는 경고가 들려온다.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혹시 발생할지 모를 비산물에 대비하여 모두 관측실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보고 있자니 꽤 긴장감이 돌았다.

사실 방호능력이야말로 JLTV의 핵심 중 핵심이니까.

같은 생각을 한 듯 김 부사장의 표정도 전보다는 한층 굳어져 있었다.

두두두두!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소화기에 대한 방호능력을 검증하는 거였다.

일반 소총탄은 물론 14.5밀리 대물 저격용 총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20밀리를 맞고서도 멀쩡한 모습.

증착식 복합장갑의 힘이 절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쾅!

이어진 IED(급조폭발물)에 대한 방호력 시험에도 충분히 합격점이었다.

탑승구역을 모듈화하여 차량의 프레임이 받는 충격과는 별도로 폭발력을 추가 분산하는 시스템.

그 때문인지 차량이 한껏 솟아오를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 가운데서도 좌석에 있던 인체 더미(모형)가 꽤 온전해 보였다.

“화재 발생 상황 연출."

이후 연구원들은 차량에 다가가 화재발생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즉각 반응한 자동 소화장치로 인해 불과 수초만에 진압되는 불길.

완전히 불길이 사그라진 것을 지켜보던 연구원 중 하나가 이번엔 또 뭘 하려는 지 대뜸 차량에 오른다.

스르륵.

조금 후 차량은 자력으로 구덩이를 빠져나왔다.

폭발의 영향에도 구동체계가 온전함을 증거하는 장면.

하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의 걸레가 되다시피 한 상태에서도 일정수준 공기압을 유지하고 있는 다중구조의 타이어였다.

짝짝짝!

난 진심을 담아 손뼉을 마주쳤다.

그동안의 고생이 뇌리를 스친 걸까, 연구원들은 하나 같이 울먹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내민 손을 마주 잡는다.

“수고들 많았습니다. 조만간 부사장님께서 여러분들이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은 충분히 보답하실 겁니다.”

“그럼요, 이 정도로 고생을 했다면 당연히 보상이 주어져야죠.”

곁에 있던 김영기 부사장은 그 말에 즉시 화답했다.

여전히 흥분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표정.

아마 그도 이 정도로 완벽한 물건이 탄생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듯싶다.

“저, 죄송하지만 라텔을 랠리에 한 번 참가시키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때, 연구원 중 한 명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랠리?”

의아한 마음에 소리가 난 곳을 향해 시선을 주자 대략 서른 중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예를 들면 사막을 횡단하는 랠리나 험지를 장기간 돌파하는 랠리 말입니다. 거기에 참가해서 실제적인 주행성능을 다시 테스트해보자는 거죠. 그곳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을 경우 우리가 굳이 홍보에 노력하지 않아도 관심을 끌기엔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남 한참 동안 사내의 얼굴을 쳐다봤다.

세상은 넓고 인재는 많다더니.

아무래도 오늘 또 한 명의 인재를 만난 느낌이다.

“미안하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죠?”

“이종진입니다. JLTV 개발부 부팀장으로 근무 중입니다.”

“부팀장이라…… 좋습니다, 이제부터 랠리 참가에 대한 모든 것을 당신에게 일임하죠. 만약 랠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 팀 전체를 승진 조치하겠습니다.”

“…….”

******

그로부터 보름 후, 재우가 개발한 시제 차량은 다카르 랠리에 참석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돌입했다.

참가일까지는 대략 한달 하고 보름 정도가 남은 상황.

그 짧은 사이 한동안은 랠리를 위한 개수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똑똑!

“김영기 부사장님 오셨습니다.”

한참 랠리 준비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던 와중 김영기 부사장이 방으로 들어섰다.

뭐가 그리 보고할 것이 많은지 손엔 한 무더기의 서류철들이 들려 있던 상태.

책상에 가지런히 그걸 내려놓은 그는 쌓인 업무에 찌든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던 듯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러시아에서 조만간 연구진들을 파견하겠답니다.”

아마도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 개발 사업을 공동 진행할 연구원들을 말하는 걸 거다.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사업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진행되려나.

하긴, 아무리 러시아라도 돌아가는 세계정세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었을 터.

내내 숨을 죽이고 있다가 전쟁의 포화가 슬슬 가라앉기 시작하니 움직임을 보이려는 모양이다.

“많이 늦었군요. 일단 그들이 입국하면 숙소는 개별연구단지와 최대한 가까운 곳에 마련해 주세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러시아와 공동 진행하는 개발 사업의 경우는 연구단지를 아예 탈레스와는 먼 곳에 개설한 상황이었다.

처음엔 탈레스 미사일 개발 센터와 통합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그건 내가 반대한 상태.

아무래도 연구소가 통합되면 러시아 연구진들의 출입이 잦아질 텐데, 그럼 기술 유출의 가능성도 크지 않던가.

“이거 생각보다 돈이 좀 많이 들겠는데요?”

그렇다 해도 감당해야 할 몫일 거다.

자고로 보안이란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부족한 법이니까.

당장은 돈이 좀 들더라도 러시아와 얼굴을 붉히는 일을 막기 위해선 그편이 낫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나저나 러시아 연구진들의 안전문제는 재우 시큐리티에서 담당하는 겁니까?”

“우리 측에선 그렇고, 러시아에서도 감시 겸 안전역으로 몇몇 인원을 파견할 생각이랍니다.”

김 부사장은 책상에 있던 보고서 중 하나를 펼치며 말했다.

사진과 함께 이력이 잔뜩 적혀 있는.

찬찬히 넘겨 가던 차에 유독 익숙한 인물 하나를 발견하곤 고개를 들었다.

“나타샤가 온다고요?”

“아시는 사람입니까?”

생각해보니 김 부사장에겐 익숙지 않은 존재였지 싶다.

딱히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껴 다시 서류를 쳐다보자 그녀의 소속이 다시 러시아 대외정보국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사이 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군.”

굳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생각에 서류철을 덮었다.

시간은 어느덧 10시.

거제까지 내려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하지 싶어 즉시 몸을 일으켰다.

“연구소에서 완성된 잠수함용 복합소재 프로펠러를 거제로 보냈다고 하더니, 참관하러 가시는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문제라 직접 참관을 해야 할 것 같더군요. 혹시 시간 되시면 함께 가시던지요.”

“사양하겠습니다.”

김 부사장은 그 말이 덜어지기 무섭게 돌아섰다.

쯧, 의리라고는.

뭐 별수 있나.

또 한 6시간을 허리나 두드려 가면서 혼자 가는 수밖에.

“그럼 쌍웅 자동차나 다녀오시죠. 안 그래도 신차 라인 구축에 들어갔다고 하던데, 이런! 그걸 다 참관하려면 며칠 거기에서 묵으셔야겠는데요?”

“…….”

***

지잉!

209급 잠수함의 제작 도크에서는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어제 도착하여 보관 중이던 복합소재 적층 프로펠러의 장착 현장.

사람 키를 훌쩍 넘어가는 크기의 프로펠러다 보니 결합에는 꽤 시간이 소요됐고, 결국 자리에 안착하는 것에 성공했을 때쯤엔 이미 어둠이 짙어진 밤이었다.

“수고들 많았습니다. 며칠 안정화 작업을 마친 후에 전평단 인수평가대에 연락을 하세요.”

“정말로 별문제가 없을까요?”

담당 전무는 여전히 우려스럽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그로서는 모험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저건 우리의 차기 잠수함사업을 통해 이미 검증이 끝난 물건이기에 우려할 일은 발생하지 않을 거다.

따르릉!

“응?”

귀가를 서두르려 차에 오를 무렵, 갑자기 주머니 속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액정에 뜬 이름은 국정원장.

반가운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저편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랜만입니다, 국정원장님.”

-진 회장 지금 혹시 대유조선에 계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빌어먹을 대체 여긴 왜 이렇게 넓은 거요. 실은 나도 방금 대유조선에 도착한 참입니다.

“원장님께서 여긴 왜…….”

-그건 만나서 이야기합시다. 아! 저기 보이는구려.

툭 끊어진 전화를 뒤로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저편에서 손을 흔드는 국정원장의 모습.

곧 코앞까지 다가온 그는 온몸이 땀에 절어 있었다.

“헉헉! 시찰은 나중에 하고 일단 나랑 좀 갑시다.”

“갑자기 어딜 말입니까.”

“각하께서 지금 옥포 시내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

우린 지체하지 않고 조선소 단지를 빠져나와 옥포 시내로 향했다.

곧 차량이 멈춰 선 곳은 시내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식당.

문을 지키는 경호 인력들을 보고 나서야 정말로 대통령이 저곳에 있음이 실감 났다.

“어서 와요.”

이미 상을 받아 두고 있던 대통령은 도착과 동시에 잔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지금 무슨 일인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각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마침 이 근처에서 중소기업 협동 박람회가 있어서 참석했던 차였습니다. 자자, 거기 서서 그러지 말고 일단 한잔 받고 나서 이야기합니다.”

그 말에 무심코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잔을 들어 올렸다.

거의 넘쳐날 정도로 술을 채운 대통령은 그걸 끝내 목으로 넘기는 것을 지켜보고 나서야 입을 뗐다.

“그 짧은 사이, 209급 잠수함의 프로펠러 문제를 해결했다지요?”

“완벽하게 문제가 해결된 것인지는 운행 테스트를 해봐야 알겠죠. 하지만 딱히 염려는 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내구성이 이미 검증된 소재와 기술로 제작한 물건이니까요. 남은 것이 있다면 얼마나 소음감소를 이루어냈느냐는 점인데, 다행히도 연구소에서 실행한 임시 테스트에서는 충분히 합격점이었습니다.”

대통령은 그 말에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안주를 하나 집어 먹으려는 차, 그가 갑자기 뜬금없는 말들을 내뱉기 시작한다.

“그거 압니까? 진 회장을 만난 것이 내겐 축복이었다는 사실.”

“…….”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진 회장이 아니었다면 이 나라의 군사력이 이렇게까지 왕성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겠습니까? 더군다나 고작 3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저렇듯 사람을 띄워 주는 건지 모르겠다.

긴장된 마음으로 쳐다보자 그가 다시 내 빈 술잔을 채운다.

“한잔 더 하시죠.”

크으.

도수가 높은 전통 소주다 보니 속을 훑어내리는 느낌이었다.

이러다 금세 취하겠다는 생각에 다시 안주 하나를 집어 들려는데, 대통령이 갑자기 자작을 시도했다.

“제가…….”

재빨리 병을 낚아채서 들이밀었다.

웃으며 잔을 받친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한다.

“그래서 말인데, 진 회장에게 받은 것이 그렇듯 많다면 이젠 나도 보상을 하나 좀 해드려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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