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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86화 (86/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86화

벅차오르는 감정에 숨을 골랐다.

곧 내밀어진 서류를 쳐다보려는 차에 잭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일부 부품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사업 진행에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도 재우와의 부품공급 계약 해지로 인한 생산 중단의 폐단을 의미하는 것일 터다.

물론 저들도 그동안 새로운 부품공급처를 찾기는 했겠지만 그게 어디 10년 넘게 공급을 해왔던, 재우의 안정된 품질과 생산량을 따올 수나 있었을까.

[글쎄요,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실은 에어로스페이스의 F-16 부품제작 아직 라인이 살아 있거든요.]

하지만 그 걱정은 내려놔도 좋다.

애초 이 상황을 염두에 두었던 난 윤 대표를 통해 부품생산 라인의 유지를 명령했었고, 그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으니까.

당장에라도 노키드와 다시 공급계약을 맺기만 하면 라인을 부활하는 건 문제가 없다.

[라인 살아 있다고요?]

잭의 눈은 화등잔만 해졌다.

놀랄 만도 하지.

이미 절교나 다름없는 상황까지 치달았던 터에 라인을 살려두는 경우는 없으니까.

아마 그로선 쉽게 이해하지 못할 일이었을 거다.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대단하군요.]

[별말씀을. 그나저나 상황이 이러면 이건 쉬는 시간이 아닌 것 같은데요?]

농담으로 응수하곤 다시 빵을 들어 올렸다.

[한 가지만 더…….]

순간 다시 날아오는 잭의 말.

무안한 마음에 다시 빵을 내려놨다.

[재우에게 제안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어떤…….]

말투가 왠지 심상치 않은 느낌이었던 터라 즉시 쳐다봤다.

왠지 의미심장하다 싶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지어지더니 또 한 장의 서류를 쑥 들이민다.

[이게 뭡니까?]

[사실 진 회장님의 전언을 듣고 내내 생각을 해봤는데, 우리 단순히 구버전의 개량만 진행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생산을 예정 중인 기체들에도 적용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향후 생산을 진행할 F-16이라면 Block 50+/52+의 기체들을 의미할 거다.

말이 관뚜껑을 닫은 거지, 정말 지겹도록 우려먹는 수준이랄까.

하긴, 그게 차후 Block 70/72. 즉 V형까지 개량을 지속하는 것을 생각하면 참 노키드도 대단하지 싶다.

[정부 승인이 나겠습니까?]

[그 점은 딱히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미 정부는 이번 개량사업을 재우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상태니까요. 정책이 무슨 고무줄도 아니고, 개수작업 참여는 허가하고 신형 기체 제작에는 참여를 거부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하긴 그것도 일리는 있었다.

말이 개수작업이지 이건 거의 신형 기체를 만들어 내는 것과 다름없는 수준.

그 마당에 신형 기체생산에선 우리의 참여를 배제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일 거다.

더군다나 상대는 노키드다.

정치권에 어마어마한 로비력을 가진.

그나저나 저 말의 의미는 결국 재우를 단순한 부품공급사가 아닌 협력 파트너로 끌어 올리겠다는 건데, 나로선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는 문제다.

아니, 오히려 대환영을 해야 할 상황이지.

스윽.

난 대답 대신 빵을 들어 올렸다.

이내 웃으며 그걸 입에 물려는 순간 잭의 손이 불쑥 내밀어진다.

[역시 말이 통하는 분이군요. 아마 우린 항공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파트너가 될 겁니다.]

쯧, 아무래도 이놈의 빵은 내 입으로 들어갈 운명이 아닌가 보네.

*****

‘새로 제작되는 기체에까지 우리의 레이더를 적용한다…….’

돌아오는 내내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게 성사되면 이익이 얼마나 될지 감히 상상조차도 가지 않을 정도.

더군다나 노키드라는 거대 군사기업을 정식 파트너로 삼는 상황이면 항공업계에서 재우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그야말로 하늘로 승천을 할 거다.

“수고하셨습니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공항엔 김 비서와 김영기 부사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미 전화를 통해 소식을 들어서였을까, 반기는 두 사람이 표정이 꽤 밝은 편이다.

“내일 회사에서 보면 되는데 왜 굳이 여기까지 나오셨습니까.”

미안한 마음에 뱉어낸 타박을 김 부사장이 웃음으로 넘긴다.

꼬르륵!

순간 누군가의 뱃속에서 울리는 천둥소리.

화들짝 놀란 김 비서가 어색한 미소로 변명을 내뱉는다.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다이어트 중이어서…….”

“그러지 말고 어디 가서 식사들이나 하고 가죠.”

*****

도착한 곳은 공항 근처에 있던 24시간 감자탕 집이었다.

막상 상이 차려지자 정신없이 젓가락질을 하는 김 비서의 모습에 헛웃음을 지어 보이려는 차, 김 부사장이 그간 회사에 있었던 일들을 읊어댔다.

“JLTV 생산라인은 90퍼센트 정도 완성된 상태입니다. 아마 연말쯤엔 가동이 가능할 것 같더군요.”

“독일에 주문했던 미션들은 도착을 한 겁니까?”

실한 뼈 하나를 뜯으며 되물었다.

“전량은 아니고, 시제품 일부를 제작할 수량은 도착했습니다.”

“그럼 일단 시제품 제작을 서두르라고 하세요. 일단 시제품이 나와 봐야 문제점들을 수정할 수 있을 테니까.”

김 부사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자 이번엔 한참 국물을 들이켜던 김 비서가 뭔가 떠오른 듯 끼어들었다.

“참, 미국에 설립된 투자회사가 정식으로 오픈했답니다. 사명은 JW Investment. 대표는 임시로 회장님의 지인이신 라이언이 맡기로 했습니다.”

참 정직한 사명이다, 싶었다.

JW Investment. 즉, 재우 투자.

믿을 만한 대표를 찾기가 어려워 라이언에게 임시 대표를 맡겼는데, 놈의 작품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네이밍 센스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 같으니.

“아주머니, 여기 TV 좀 틀어주세요!”

손님 중 누군가가 소리치자 주인장이 득달같이 달려가 리모컨을 집어 든다.

이내 연신 채널을 돌리는가 싶더니 툭 굳어 버린 듯한 모습.

의아한 마음에 쳐다본 순간 TV 화면 속에서 웬 거대한 항공기 한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로 돌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게 뭔 일이랴?”

식당 주인은 즉시 볼륨을 높였다.

쿵!

그와 동시에 들려오는 폭발음.

당황한 마음에 지나치게 볼륨을 키운 탓인지 소리가 식당 안을 쩌렁쩌렁 울렸고, 곧이어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TV 화면에 꽂혔다.

땡그랑!

난 순간 수저를 떨어트린 채 멍하니 TV 옆에 있던 달력을 쳐다봤다.

빌어먹을, 이제 911이라는 이름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는 건가.

정확히 한 달 전인 8월 11일에 저 사건이 터져 버렸으니까.

“저게 대체 뭐죠?”

놀란 김 비서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한참 심각한 표정으로 뉴스를 지켜보던 김 부사장은 어딘가로 전화라도 걸려는 듯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국정원장님?”

이후 밖으로 나선 김 부사장은 한참을 통화한 끝에 다시 돌아왔다.

이제 저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는 충분히 예상되는 상태.

난 즉시 몸을 일으키며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잠자긴 틀린 것 같으니 다들 우리 집으로 가시죠.”

******

“현지시각 오전 8시 45분경 아메리카 항공 소속 기체 한 대가 제1 세계 무역센터에 충돌했습니다. 이후 연달아 유나이티드 소속 기체가 제2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였으며 한동안 화재에 휩싸였던 두 건물은 결국 붕괴되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순간 들려온 뉴스는 무역센터의 붕괴 소식이었다.

패닉에 빠진 일행들의 모습.

특히나 김 부사장의 경우엔 유독 표정이 심각했는데, 아마도 그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일 거다.

본토침략이나 다름없는 일을 당한 미국.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

[미 정부는 즉시 모든 항공기들의 운항을 중지 시켰으며…….]

뉴스 시청을 시작한 것도 어느덧 2시간째, 앵커나 미 정부의 행정조치들을 알려왔다.

순간 휙 하고 나를 쳐다본 김 비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자칫 했으면 못 돌아오실 뻔했는데요?”

“아마도 그랬겠죠.”

짧은 대꾸를 한 후 다시 TV를 주시했다.

이번엔 왜 타임라인이 뒤틀린 걸까.

지금 내 머릿속을 휘젓는 것은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그나저나 저게 테러라면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미국 본토가 공격을 받았으니 부시 대통령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녀는 뒤늦게 이후 벌어질 일들을 예측한 모양이었다.

맞아, 이후 미국은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고,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지.

그 전쟁의 여파로 전 세계가 거의 패닉에 이르기도 했고.

우스운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이익을 본 자가 있다는 건데, 아마 나도 그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내일 출근하는 즉시 라이언에게 전화하세요.”

“…….”

김 비서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마음이 편치는 않다만 그래도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고,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난 지금 곧 추락할 미 증시를 통해서 나락 줍기를 시도할 생각이다.

“아마 당분간은 증시가 곤두박질칠 겁니다.”

“…….”

“그사이 내가 지정해준 종목들을 주시하고 있다가 신호를 보내면 즉시 매입을 시작하라고. 참고로 당분간은 증시가 개장하지 않을 테니 미리 힘 빼지 말라고도 전하시고요.”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김 비서는 졸린 눈을 비비며 대꾸했다.

어느덧 시간은 벌써 새벽 3시.

그녀를 위해 방을 하나 내준 후 거실로 돌아오자 김 부사장이 여전히 뉴스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걱정되십니까?”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영미 전쟁 이후 최초로 본토가 공격을 받은 상황에서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죠. 하지만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저 전쟁,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테니까.”

사실 그건 굳이 역사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문제였다.

고작 아프가니스탄 같은 작은 나라가 버텨봐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역사대로라면 고작 두 달.

설사 그 이상을 버틴다 해도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 일은 아마 없을 거다.

아니, 경제적으로는 영향을 받지.

그래서 이게 바로 기회라는 거고.

******

[주식시장이 패닉에 빠졌습니다.]

다음 날, 코스피는 무려 64.97 포인트나 추락했다.

뭐 최고의 불확실성이 터진 상태니만큼 무리도 아니지.

사람들은 마치 이 나라에서 전쟁이라도 난양 일제히 가진 것들을 내다 던졌고, 투매가 투매를 낳으며 시장은 온통 아우성이었다.

“재우 투자에 연락해서 우리도 당분간은 어느 곳에도 손대지 말라고 하세요.”

아마 한동안은 하락 장이 지속 될 거다.

이게 멈추는 것은 대략 한 달 후?

그럼 매집 타이밍은 그때쯤이 될 텐데, 이후 내년 봄까지 이어지는 상승 기세로 100퍼센트에 달하는 폭등장이 연출될 거다.

‘고맙다, 민승기.’

내가 그걸 확실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한때 ADD 동기였던 한 연구원 때문이었다.

남들과는 달리 911테러가 일어나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진 재산을 주식에 몰빵 했었던 놈.

당시 주변인들은 그를 천하에 바보라고 손가락질했지만, 놈은 끝내 고집을 버리지 않았고.

정확히 하락 장이 들어서기 전인 2002년 봄에 그걸 정리하여 어마어마한 이익을 남겼었다.

이건 뭐, 판단력과 분석력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신의 은총을 받기라도 한 건지.

“라이언에게 향후 2개월간은 내가 지시한 종목들을 대상으로 자본 한도 내에서 무제한 매입하라고 하세요.”

미국 증시의 경우는 지금부터 두 달가량이 최적의 매집 타이밍이지 싶었다.

이후 미국 정부가 금리 인하를 비롯한 온갖 정책을 쏟아냈고, 그 영향이 한국에까지 미쳤었거든.

당시 미국과의 금리 역전을 우려하며 국내 금리정책에 관한 토론이 며칠이나 이어졌던 터라 그건 확실하게 기억한다.

“네, 즉시 전하겠습니다.”

김 비서는 그 말에 바쁘게 움직였다.

이젠 그녀도 힘에 부치는 건가, 최근엔 꽤 넋이 나간 느낌이다.

“수행비서를 따로 채용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실장직책까지 주어진 마당에 김 비서가 그것까지 감당하는 건 아무래도 힘에 부치는 모양인데.”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에 넌지시 제안했다.

그런데 대체 뭘 오해한 건지.

그녀가 갑자기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다.

“왜 그럽니까?”

“제가 많이 부족한가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아니시면 그건 반대합니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뱉어냈다.

뭐 본인이 그렇다는데야.

어깨를 들썩여 보이자 그제야 표정이 밝아진다.

“회장님 같이 매사가 철저 한 분을 모시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걸 감당하는 것은 저 하나로 족해야죠. 암, 그렇고말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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