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84화
“확실한 겁니까?”
며칠 후, 임 전무는 이번 사태의 배경을 밝혀내곤 내 앞에 서류를 들이밀었다.
서류에 적혀 있는 인물의 이름은 애꿎게도 문지훈.
즉 S&U의 대표였는데, 이제야 집 나간 토기들이 백수 생활로 시간을 죽인 것이 이해됐다.
뭐 한마디로 그런 거지.
자신의 회사로 이직을 시켰다간 내게서 쏟아질 보복이 두렵고, 차라리 적당한 돈으로 기술만을 사서 꼬리를 자르겠다는.
차후, 시간이 좀 지난 후에 자신들도 기술개발에 성공했다고 나서면 심증은 가도 물증이 없으니 우리가 어쩌지는 못할 거라는.
하지만 그건 이제 소용없는 짓일 거다.
그 빌어먹을 꼴을 보지 않기 위해 특허출원을 해버렸으니까.
“그런데 S&U가 생산하는 총기들이 가진 문제점 중에 총열 불량도 있었습니까?”
문득 드는 생각에 곁에 있던 김 부사장을 향해 물었다.
그 역시 의외의 배후가 당황스러웠던 듯 멍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그런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설계 자체의 오류가 더 컸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흠…….”
난 놈의 의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인 것을 먼저 손봐야 하는 것이 먼저일 터건만, 왜 하필 열처리 기술을 노린 것일까.
하긴, 이유가 뭐건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벌써 몇 번이나 내게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어쩌실 생각입니까?”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김 부사장이 넌지시 물었다.
실은 바로 그 점이 문제.
마음 같아선 S&U쯤 흔들어 놓는 것이 뭐가 어렵겠느냐만, 함께 피해를 볼 다른 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들들일 S&U의 직원들.
막말로 그들은 윗대가리 하나 잘못 만난 죄밖에는 없지 않던가.
“문지훈이라…….”
복잡한 마음에 그 이름을 되뇌었다.
내 표정에서 뭔가를 눈치챈 걸까, 내내 지켜보고 있던 임 전무가 슬그머니 끼어든다.
“저기…… 문지훈은 딱히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되실 듯합니다만.”
“…….”
의아한 마음에 그를 쳐다봤다.
순간 내밀어지는 또 한 장의 보고서.
아니, 얼핏 보면 그건 보고서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스크랩한 것처럼 보였는데, 유독 커다란, ‘방산비리’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이게 뭡니까?”
“오늘 아침, 대한 일보에 실린 기사를 스크랩한 겁니다. 기사의 내용은 S&U의 문지훈 대표가 군에 성능미달의 총기류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뇌물공여의 혐의가 밝혀졌다는 거죠.”
그 말에 다시 보고서를 살폈다.
무려 6년간에 걸친 불량총기 납품 과정에서 일어난 조직적인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
의아한 것은 내가 왜 이런 중대한 기사가 터진 것을 몰랐느냐는 거다.
나 역시 온갖 뉴스들을 달고 사는 판국에.
“혹시 대한 일보에서만 이 기사를 다룬 겁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S&U 측에서 미리 언론에 돈을 좀 뿌린 모양이더군요.”
“저쪽에서 그 정도로 적극적이라면 검찰 조사가 유야무야 될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닙니까?”
임 전무는 차마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뒤늦게 가능성에 무게를 둔 듯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생각해보니 그럴 가능성이 크겠군요.”
사실 그건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군 비리에 관해선 2025년도에도 그 뿌리를 끝까지 파헤친 적이 별로 없던 명제.
이 시기라면 그건 더할 텐데, 아무리 검찰이 움직였다곤 해도 결국 외부의 압력을 이겨내지는 못할 거다.
“흠…….”
그 시점에 잠시 고민을 해봤다.
문지훈을 날려 버리기엔 최적의 판이 이미 깔려 있는 상황.
과연 이걸 그냥 넘어가느냐. 아니면 이 기회를 활용하느냐.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하시는 겁니까?”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이런 큰 판이 이미 벌어졌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 판이 그냥 접히지 않게 만들방법을 찾고 있는 거죠.”
“…….”
“쉽게 말해서 문지훈이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 버릴 생각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무슨 수로요. S&U 정도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것은 불 보듯 뻔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럴 가능성이 크다.
나였어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빠져나가려 하겠지.
전관 변호사를 비롯하여 재판부와 연이 닿는 모든 존재들을 동원해서.
하지만 그것도 확실한 증거 앞에선 한계가 있다.
그리고 난 지금 그 증거를 찾아낼 생각이고.
“이 사건. 아무래도 제보자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임 전무님께서 그 점을 좀 알아보세요.”
“제보자가 있다고요?”
임 전무는 동그란 눈을 하고 되물었다.
“이런 사건이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발생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나 방산비리의 경우는 워낙 커버치는 존재들이 많아서 고름이 먼저 터지기 전까지는 기자들이 먼저 달려드는 경우는 거의 없죠. 그러니 당연히 제보에 의한 사건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참, 기왕이면 이 기사를 쓴 기자를 구슬려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군요.”
“…….”
**********
다음 날, 담당 기자와 면담을 끝낸 임 전무가 다시 내 방에 들어섰다.
표정이 밝은 것으로 봐선 뭔가 건수를 하나 잡기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
아니나 다를까, 소파에 앉은 그는 내가 다그치기도 전에 결과를 술술 풀어놨다.
“회장님 말씀처럼 이 사건은 기자가 제보를 받고 기사를 썼던 것이더군요.”
“그래요? 그럼 제보자는 누굽니까?”
“문지훈의 운전기사였답니다.”
그건 미처 생각지 못한 결과였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쳐다봤지만 임 전무 역시 의외였던 것은 마찬가지라는 표정이었다.
“운전기사가 왜요?”
“원래는 그 운전기사가 전임 대표의 담당이었답니다. 그러다 최근 대표가 바뀌면서 문지훈을 모시게 됐는데, 몇 개월간 폭언과 폭행이 장난이 아니었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게 원인이지 싶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증거가 없으면 검찰이 움직였을 리가 없을 텐데요?”
“그야 당연하죠. 그래서 그 기사가 문지훈이 차량 내 비밀금고에 숨겨두고 다니던 장부를 빼돌려 검찰에 제출한 모양입니다. 다행히 비밀번호는 눈치껏 봐두었던 모양이고요.”
장부가 있다면 빼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곧 떠오른 것은 오늘 아침 실린 기사에선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할 것을 점쳤었다는 점.
아무래도 문지훈의 변호인단 측에서 그 장부가 가진 증거능력을 억누를 무언가를 확보한 모양새다.
“흠…….”
착잡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순간 임 전무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더니 무언가를 꺼내어 들이민다.
“그게 뭡니까?”
“혹시나 해서 운전기사를 찾아갔었는데, 다행히 그가 녹취도 확보해 두었던 모양이더군요. 문지훈이 차 안에서 조달본부의 간부들은 물론 여러 군 장성들에게 뇌물을 건네며 주고받은 대화들이랍니다.”
“그걸 어떻게…….”
놀란 마음에 되물었다.
잠시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인 임 전무는 곧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 기사 양반 대단하더군요. 지금처럼 오히려 자신이 궁지에 몰릴 것을 대비해서 녹취까지 했었던 거죠. 하긴, 그쪽 집안일을 십수 년이나 봐주고 있었던 인물이니만큼 그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거야 그렇다 치고, 이런 중요한 걸 왜 임 전무님에게 준 겁니까? 차라리 담당 기자를 통한다면 더 확실했을 텐데.”
“신문사는 이제 못 믿겠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안 그래도 어제 신문사를 찾아갔었는데, 담당 기자의 태도가 영 이상하더랍니다.”
“…….”
무슨 상황인지는 대충 이해할 것 같았다.
S&U. 그쪽에서 대한일보 사주에게 미리 손을 써 둔 것이겠지.
그 상황이면 기자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는 없었을 거다.
딱히 정의감에 불타오르는 의협심 있는 기자가 아니라면.
“그렇다고 이걸 생면부지의 임 전무님에게 줬다고요?”
“죄송하지만 이건 회장님께 들려드리기 위해 카피를 뜬 거고, 원본은 이미 검찰에 넘어간 상태입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쳐다봤다.
순간 임 전무는 마치 칭찬을 바라기라도 하는 듯한 표정과 함께 말을 이었다.
“실은 그 기사 양반을 대동하고 곧바로 검찰로 찾아갔습니다. 마침 담당 검사장이 저와는 막역한 사이였거든요.”
“……그래서요?”
“사건을 어떻게든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원본을 그 검사장에게 건넸습니다. 아마 지금쯤 검찰 내부에선 문지훈을 구속 수사하는 방향으로 결론 내렸을 겁니다.”
사실이라면 내가 굳이 나설 필요조차도 없을 만큼 확실한 일 처리였다.
그를 영입한 것은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그나저나 이젠 같잖은 파리 한 마리가 앵앵거리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는 건가.
그나마 조금은 얹혔던 속이 뚫리는 기분이다.
“아주…… 수고 많으셨습니다.”
********
[S&U 문지훈 대표, 뇌물 공여 및 업무방해혐의로 구속.]
며칠 후, 임 전무의 장담처럼 결국 문지훈의 구속 수사가 결정되었다.
뭐 최종 결과야 재판이 다 끝나 봐야 알겠지만, 법조계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의하면 워낙 증거가 확실해서 집행유예는 힘들다는 것이 중론.
하지만 이걸로는 뭔가 부족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감히 내 밥상에 손을 얹은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
물론 지금까지의 증거로도 실형은 확실하겠지만, 놈이 빵빵한 변호인 집단을 등에 엎은 이상 그것도 고작 몇 년 형에 불과할 거다.
‘가만!’
그때, 불현듯 놈과의 첫 만남 당시가 떠올랐다.
놈이 오현지의 어장 속 인물이었다는 사실.
내 기억에 의하면 오현지야 말로 문란한 사생활의 대표주자 격이었는데, 그 물에서 노는 인물의 사생활이야 오죽할까 싶은.
“김 비서.”
“네?”
“정 대표에게 지시 하나만 내려주세요. 문지훈 주변 여자관계를 철저히 파보라고.”
“네. 알겠습니다.”
김 비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의도를 이해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를 찾아온 정 대표의 얼굴엔 화색이 만연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찾아낸 모양이군요.”
“네, 원체 사생활이 문란한 놈이어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지금껏 이런 일들이 터지지 않았는지 오히려 의아할 정도입니다.”
“돈으로 무마시켜왔겠죠.”
정 대표는 내 말에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USB 하나를 내밀었다.
“그간 꽤 많은 성범죄를 저질러 왔더군요. 이건 그간 놈에게 성폭행으로 시달린 여성들의 리스트입니다."
“…….”
"참고로 법정에서 증언해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 둔 상태입니다.”
“생각보다 월척이 걸려들었군요. 혹시 모르니 피해자들 신변 보호는 확실하게 하셔야 합니다. 저쪽에서 눈치채면 피해자들을 회유할 지도 모르니까."
“그야 물론이죠."
"혹여 증언에 대한 대가가 필요하다면 차후 충분히 지불 하도록 하시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설사 저쪽에서 회유한다고 해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왜요.”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피해자들의 수만도 열 명이 넘습니다. 게다가 하나 같이 상태가 심각하죠. 저래서야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특히나 가장 큰 피해를 봤던 비서의 경우는 트라우마가 하도 심해서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었던 모양입니다.”
그 정도면 놈이 무슨 회유를 하건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열 명씩이나 되는 피해자들이 죄다 회유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상황이 그러면 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 해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을 거다.
‘특히나 성폭행 문제는 이 나라에선 꽤 심각하게 다루는 주요 범죄니까.’
“회장님.”
생각이 깊어지던 순간 김 비서가 노크와 함께 방에 들어섰다.
표정이 구겨져 있는 것으로 봐선 뭔가 전하기 싫은 말이 있는 모양새.
아니나 다를까, 곧 의외의 소식이 들려왔다.
“S&U의 문지훈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만, 연결하지 말까요?”
“아니 연결하세요.”
놈은 결국 내가 개입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뭐 무리도 아니지.
그렇듯 대놓고 들쑤시고 다닌 것이 벌써 며칠째인 마당에.
사실 놈의 입장에선 전화가 아니라 나를 찾아왔어도 벌써 몇 번을 찾아왔어야 정상이다.
“진현승입니다.”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놈의 목소리는 한껏 풀이 죽어있었다.
침묵으로 일관하자 조급한 투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제가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니 한 번만 물러나 주신다면 다시는 재우에게 피해 주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미 피해는 충분히 끼쳤다는 걸 모릅니까?”
아마 뭘 의미하는지는 놈도 알고 있을 거다.
특허출원으로 인한 기술 공개.
차마 그 점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 듯 놈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실수라는 것은 의도치 않게 벌어진 것을 정의하는 거지 당신처럼 노리고 달려든 경우는 해당 사항이 아니죠.”
-아…… 죄송합니다. 뭐가 됐건 제 잘못이니 용서…….
“경고하는데, 용서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겁니다. 사람을 찔러 놓고 용서해 달라는 인간들을 보면 치가 떨리는 타입이라서.”
놈은 내 선언에 당황한 듯 다시 침묵으로 일관했다.
긴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봐선 절망감에 떨고 있는 느낌.
쐐기를 박기 위해 다시 말했다.
“행여 나를 설득할 생각으로 전화를 한 것이라면 꿈 깨시죠. 그리고 피할 생각도 하지 말고. 만약 꼼수를 부리는 상황이 오면 이번엔 S&U를 통째로 날려 버릴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놨다.
얼핏 통화가 끊어지기 직전 들려온 소리는 ‘제발’이라는 외침.
속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오는 다급함이 여지없이 느껴졌다.
“시발것. 제발은 무슨.”
“…….”
그 말에 김 비서는 물론 정 대표까지 나를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잠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김 비서를 향해 말했다.
“미안한데, 커피 한잔 부탁하죠. 눈깔이 확 돌아가 버릴 정도로 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