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83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노력했지만, 다음 순간 뱉어진 하사드의 말에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100억 달러. 그리고 3년간의 운용성과에 따라 추가 투자를 확정할 예정인데, 그 규모가 최대 200억 달러까지 확대될 수도 있습니다.
“…….”
100억 달러면 지금 환율로 무려 13조가 넘는 돈이다.
단일 투자금액으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물론 회귀 전, 사우디가 소프트방크에 투자했던 금액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시대와는 물가지수가 전혀 다른 미래의 일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
[정말입니까?]
더군다나 하사드는 지금 추가 투자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말이 성과에 따른 추가 투자지.
지금 재우의 성장 속도와 앞으로 내가 주워 모을 나락들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하면 그건 이미 확정된 투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참, UAE 투자청에서도 곧 연락이 갈 겁니다.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좀 조건이 까다로운 곳인 터라 시간이 걸린 모양인데, 얼마 전 50억 달러가량의 투자금액은 확정했다고 하더군요.
하사드는 또 하나의 희소식을 더 전해왔다.
눈앞에 있었다면 입이라도 맞춰주고 싶었을 정도로…….
아니, 그건 취소.
미치지 않고서야 그 털복숭이에게 키스를 할 수는 없지.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몇 전이고 고마움의 인사를 전한 끝에 전화를 끊었다.
이게 뉴스로 나가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벌써 찾아오는 흥분감에 떨리는 손이 좀처럼 제어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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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우 그룹이 사우디를 비롯한 UAE와 총 150억 달러 규모의 투자금액 유치했습니다. 이에 재우는 자기자본 50억 달러를 더하여 총 200억불에 달하는 펀드를 조성할 예정입니다.]
며칠 후, 뉴스는 온통 그 소식으로 난리가 났다.
어디 국내 뉴스뿐일까, 워낙 유례가 없던 규모의 금액이다 보니 외신에서도 한동안은 재우와 두 중동국가의 연합펀드 조성 문제를 화제로 삼았다.
[재우는 아직 펀드 투자의 첫 대상을 지정하지는 않은 상태입니다.]
언론들의 말처럼 난 투자 대상을 지정하는 것을 굳이 서두르지는 않았다.
시기상으로 IT 거품이 완전히 꺼지지도 않았던 상황이기도 했고, 또 구체적인 투자 대상의 목록을 확정 지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 때문인지 세간엔 내 의도와는 상관없는 투자처들이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그 탓에 엄한 종목들이 소문에 휘말려 주가가 오르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곤 했다.
[최근 재우 그룹의 모든 계열사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습니다.]
우습게도 재우라는 이름이 들어간 주가 종목은 죄다 점프하듯 치솟았다.
운용에 관한 전권이 오로지 내게 있는 상황이니만큼 재우 계열사를 향한 투자 가능성을 염두에 둔 거지.
덕분에 재계 순위도 단숨에 뛰어올라 어느덧 6위를 마크하게 됐다.
“미국에 벤처투자 지사를 설립하신다고요?”
뉴스를 함께 지켜보던 김 비서의 어깨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뭐 무리도 아니지.
그녀도 이젠 10대 그룹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곳의 비서실장이니까.
최근 친구들로부터 받는 시선도 꽤 달라졌다는데, 그 때문인지 표정에서도 간혹 전에 보지 못했던 도도함이 엿보이곤 한다.
쯧, 김 비서가 왜 이럴까.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미국이 주워 먹을 것이 많으니까요.”
그녀는 짧은 내 대꾸에 고개를 갸웃했다.
상관하지 않은 채 몸을 일으키자 그녀가 대뜸 자신의 수첩을 확인하곤 되묻는다.
“대유 조선 시찰은 내일로 예정되어 있는데, 어디 따로 가실 곳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대유 트럭 공장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곧장 차량 준비시키겠습니다.”
딱히 이유를 묻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의도를 알고 있는 듯했다.
하긴, 그녀도 최근 대유 트럭의 일부 라인이 군용 차량 전용으로 변경 중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웃으며 수트를 챙기려는데 문득 그녀가 당황스러운 소식을 하나 전해왔다.
“참, 오전에 진현철 대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는데, 곧 회장님께 형수님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을 끔뻑였다.
표정을 이해 한다는 듯 긴 한숨을 내쉰 김 비서는 보다 정확한 사실 전달을 하려는 듯 제 수첩을 다시 뒤적였다.
“두 달쯤 후에 양가 상견례가 있을 예정이라네요. 그러니 미리 시간 비워 두시라고…….”
“그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립니까? 내내 혼자 지냈던 사람이 갑자기 웬 결혼을…….”
“그걸 저에게 물으셔도 답해드릴 수는 없을 것 같은데요.”
“…….”
******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몇 시간 후 난 한참 라인변경이 진행 중인 대유 트럭을 찾았다.
진행률은 70퍼센트 정도.
대량생산을 기준으로 맞춘 것이다 보니 규모가 내 예상보다는 컸고, 그 탓에 비용 또한 만만치가 않게 소모되고 있던 터였다.
“JLTV의 개발 진행 속도는 어떻습니까?”
“하부에 방탄 소재를 적용한 피폭 테스트는 이미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엔진 역시 성능 테스트를 이미 거쳤고요. 문제는 미션인데, 회장님께서 제시하신 기한에 맞춰 개발을 끝내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미션 문제는 여기서도 발목을 잡았다.
상용 차량이라면야 사실 내가 보유 중인 것들로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만 이건 지옥 같은 전장의 환경에서도 버텨줘야 할 물건.
아무래도 당장은 또 독일의 힘을 빌려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일단 개발은 지속하세요. 그리고 올해 말에 생산할 1차 생산분은 독일 업체의 것을 수입해서 장착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것도 설계에 맞추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 미리 주문을 넣으셔야 할 겁니다.”
당장 방법은 그것밖에 없지 싶어 내린 결단이었다.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면야 더없이 좋겠지만 안 되는 것이 있는 것을 어떻게 할까.
이럴 때면 부실한 우리의 기초공학 분야가 늘 안타까울 따름이다.
‘뭐…… 고작 수십 년에 불과한 산업화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로 100년을 훌쩍 넘는 저들을 단숨에 따라잡는다는 것이 무리긴 하지.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우린 2025년도에도 제대로 된 미션 하나를 못 만들어 낸 거…….’
따르릉!
텁텁한 마음에 속으로 불평을 쏟아내던 차에 전화기가 울렸다.
발신자는 김영기 부사장.
의아함에 갸웃하곤 통화 버튼을 누르자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혹시 김 비서에게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이요?”
-우리가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인 다산기공 말입니다. 거기 인력 중 몇 명이 갑자기 퇴사했답니다.
“…….”
-오전에 그쪽 대표와 최종 계약서에 사인하려고 만났는데, 그제야 사실을 알려오지 뭡니까.
다산은 우리가 최근 인수를 진행하고 있는 총기부품 제조회사였다.
일부 금속 가공과 열처리 기술 면에서는 독일을 능가하는 수준을 가진.
사실 연구원 몇이 퇴사하는 것쯤 무슨 상관이 있을까만은, 다산의 경우엔 그 연구인력이 바로 기업의 핵심이기에 문제의 소지가 된다.
“합병 직전에 인력이 빠져나간다? 이것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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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겁니까?”
김 부사장과 합류한 곳은 다산 기공 본사가 있는 전북 완주였다.
미리 소식을 들은 듯 입구엔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이 마중 나와 있던 상태.
그들과의 짧은 인사 끝에 곧장 회의실로 들어섰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좀 뭣하지만 제 불찰입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대표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었다.
아무리 내가 곧 회사를 인수할 입장이라고는 하나 저토록 나이든 양반이 계속해서 고개를 조아리는 것은 못 봐줄 상황.
서둘러 손사래를 치며 그를 자리에 앉힌 후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했다.
“최근 회사 매각 방침을 직원들에게 알렸던 터였습니다. 물론 전원 고용 승계조건이라는 것도 밝힌 상태였고요. 그런데 열처리 분야를 담당하던 연구원 둘이 합병 전에 장기휴가를 좀 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요?”
“아무래도 큰 회사와 합병을 하면 차후 휴가를 찾아 먹기 힘들겠다 싶어서 저 역시 동의하고 휴가를 주었습니다만……이후 우편으로 갑자기 사직서가 날아왔습니다.”
“대면 제출을 한 것도 아니고 우편으로 사직서를 보냈다고요?”
사실 퇴직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여기가 무슨 공산주의 국가는 아니니까.
하지만 저들은 한 기업의 핵심 연구 분야를 다루던 자들.
동종업계로의 이직을 통한 기밀의 유출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다.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이런 무책임한 경우가 다 있나.
동네 편의점도 면전에서 퇴직 통보를 하는 것이 예의인 법이거늘.
“네, 그래서 제가 직접 찾아가 봤지만 하나 같이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면담을 거절한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니고, 2명 모두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촉이 왔다.
이건 단순히 건강이나 일신상의 이유로 퇴직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같은 생각을 한 듯 김 부사장의 눈 역시 한껏 가늘어져 있었고, 이내 그는 내가 굳이 말을 하기도 전에 바삐 손을 움직여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임 전무. 나 부사장일세. 지금 즉시 뒷조사가 필요한 사람이 몇 명 있는데, 가능하겠나?”
김 부사장은 역시나 동작이 빨랐다.
그나마 수고를 더는구나 싶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인 채 다시 다산의 대표를 쳐다보자 그가 머뭇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또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죠.”
“그게 실은……저도 상황이 좀 이상하다 싶어서 사람을 사서 그들에게 붙여봤는데, 최근 그들의 씀씀이가 무척이나 헤퍼졌다고 합니다.”
“…….”
“타고 다니던 차가 달라진 것도 그렇고, 매번 백화점 명품관을 돌아다니며 쇼핑을 하는 것도 그렇고…….”
“그들이 회사에 나오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됐다고요?”
“휴가 기간까지 포함하면 족히 한 달 가까이 됐습니다.”
순간 난, 저들이 이미 기술을 유출했음을 직감했다.
한마디로 그런 거지.
만약 동종업계로 이직을 하게 되면 문제 발생의 요지가 다분하니만큼 차라리 돈이나 두둑하게 받고 기술을 팔고 편하게 살겠다는.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저들에게 접촉했던 배경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저들이 개입했던 기술을 당장 특허 출원하죠.”
“네? 그렇게 되면 기술 자체를 공개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어차피 기술은 이미 유출되었습니다. 그러니 특허를 통해 당분간 보호라도 받아야 할 것 아닙니까.”
대표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끝내 아쉬움이 남는 걸까, 그는 넌지시 집 나간 토끼들을 되돌려 놓는 것을 건의했다.
“죄송하지만 며칠 말미를 주시면 제가 어떻게든 저들을 설득해서…….”
“아니,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네?”
“이미 기술을 유출했다면 역적이나 다름없는 마당에 그들을 받을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설사 아직 기술을 유출하지 않았다 해도 난 한번 등에 칼을 꽂았던 자들을 다시 받아줄 만큼 아량이 넓지 않습니다.”
대표는 그 말에 고개를 숙였다.
쯧, 이렇게 냉철하지 못해서야 어디…….
아무래도 그를 책임자로 승계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일단 또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 남아 있는 연구인력들은 전부 탈레스로 발령조치 하겠습니다. 즉, 이제부터 이곳은 생산 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죠.”
“…….”
“그리고 아쉽지만, 대표님을 계속해서 책임자로 앉히는 문제는 없었던 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표는 그 말에 딱히 반발하지 못했다.
하긴 합병 과정에 하자를 만든 것은 그였으니까.
아마 그도 자신의 퇴임이 문제를 봉합하는 단서임을 인지하고는 있었을 거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집 나간 토끼를 어떤 식으로 처리하느냐가 문제인데……'
그 부분에 있어선 조금 과한 조치가 필요할 듯싶다.
******
“다행히 국내에서 다산의 열처리 기술과 관련된 특허를 출원한 곳은 없었습니다. PCT 가입국 전체를 상대로 조사해 봤지만 관련 기술로 특허출원된 것은 없는 상태입니다.”
며칠 후,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행여 기술을 빼돌린 곳에서 먼저 특허를 출원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하긴, 그것도 쉽지는 않았을 거다.
만약 먼저 특허출원을 하게 되면 배후가 드러나게 되는 거고, 그건 곧 우리의 보복을 감당해야 할 테니까.
게다가 말이 특허지 그건 기술 공개를 의미하는데, 설마 우리가 그렇게까지 할까 싶은 마음도 한목 했을 가능성이 크다.
"쯧."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선 속이 쓰리다.
내 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과 소재들이야 조만간 세상에 곧 등장을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특허가 필요했지만 다산의 열처리 기술은 아니거든.
오죽했으면 2020년도까지도 독일이 그걸 미처 따라오지 못해서 다산의 총기를 수입했을까.
쓰린 속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배후는 꼭 찾아낼 생각이다.
“혹시 가능하다면 국제특허출원도 동시 진행하라고 하세요.”
“네, 안 그래도 그 부분은 변리사를 통해 조치했습니다.”
“수고했어요, 김 비서. 참!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있는데, 나가는 길에 재우 시큐리티의 정 대표를 좀 불러 주세요.”
재우 시큐리티는 얼마 전 설립한 보안 업체의 이름이었다.
대표의 이름은 정해용.
국정원 출신이자 임 차장. 아니 임 전무의 밑에서 해외정보를 다루던 그는 한때 특수전사령부에서도 꽤 이름을 날리던 지휘관 출신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정 대표님께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난 그에게 이번에 다산을 퇴사한 두 명의 연구원들을 만날 것을 지시했다.
물론 설득이 목적은 아니고, 그들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
내내 설명을 듣던 정 대표는 점점 눈이 커지더니 되묻는다.
“정말로 그렇게 전하라는 말입니까?”
“네, 꼭 그렇게 전하세요. 보아하니 이미 어딘가에서 돈을 받은 모양인데, 그 돈으로 장사나 사업 같은 것을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돈이 얼마가 들건 철저하게 망하게 해줄 테니까."
“…….”
"아! 혹여 경비원 자리조차도 취직은 불가능 할 거라고 전하세요. 그리고 설사 몰래 이민을 간다 해도 내가 끝까지 찾아낼 거라고도 전해 주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