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82화
[정부는 재우 에어로스페이스와 한국 항공우주산업의 합병을 승인했습니다. 또한, 약 3개월간의 실사 과정을 거쳐 대유조선해양 역시 재우가 인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듯합니다. 일부에선 이번 정부의 결정을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을 재기 했으며…….]
얼마 후, 실사작업을 거친 KAI는 결국 재우의 품에 안겼다.
김 부사장의 말처럼 언론을 통한 온갖 억측들이 난무했지만, 그것도 불과 며칠.
발 빠른 재우 그룹의 홍보부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대응은 언론 대부분을 장악해 나갔고, 결국, 여론의 논조는 슬슬 뒤바뀌기 시작했다.
[KAI를 정부가 지속해서 끌고 가는 것은 사실상 부담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더군다나 애초 정부가 항공분야의 통합을 시도한 이유를 간과해서는 곤란하고요. 쉽게 말해서 두 업체의 통합은 정부의 기조에도 합당하다는 거죠. 더군다나 기존 대주주들이 동의한다는 마당에 문제가 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우리 측 대변자. 아니 토론자의 마지막 말처럼 KAI의 주요 주주 중 하나였던 삼정은 흔쾌히 지분을 넘기는 것에 동의했다.
뭐 우리와의 관계를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
남은 두 대주주지분이라면 현우와 대유가 보유 중인 것들뿐인데, 어차피 대유의 지분은 그룹의 해체로 인해서 정부가 관리 중이었으니 당연히 인수에는 문제가 없었고, 현우 역시 우리와는 여러 부분이 얽혀있었음은 물론 정부의 압력까지 더해진 상태라 합의를 주저하지 않았다.
[문제는 적자를 어떻게 해소하느냐는 점입니다.]
어느새 토론은 KAI의 만성적인 적자 해소문제로 돌아섰다.
논점을 한 걸음 앞세워서 자연스레 이전의 주제는 기정사실이 되게끔 하는 전략.
물론 그 부작용은 감당해야 하는데, 덕분에 재우 에어로스페이스의 주가가 한때 20퍼센트 가까이 날아가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이후, KAI와 에어로스페이스의 체계 통합 작업은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이루어졌다.
가장 우선한 것은 설계부서의 통합.
덕분에 조만 간엔 한 달 평균 1500장에 가까운 설계도를 뽑아낼 수 있을 예정이었고, 내년 초쯤이면 벌크 헤드 제작에 도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국방 중기 계획이 발표되는 즉시 조만간 군에 비행허가를 받아 둬야 할 듯싶군요.”
그동안 묵혀 두었던 수호이 기체는 조만간 하늘을 날아볼 수 있을 분위기였다.
목적은 우리가 개발할 자체전투기에 장착하기 위해 이미 개발해 두었던 AESA의 성능 테스트.
저게 있으니 이젠 굳이 실 기체를 통한 성능 테스트를 위해 이스라엘로 날아가야 하는 수고를 더할 필요는 없다.
쯧, 이래서 우리가 마음대로 장비 테스트를 위해서 개조가 가능한 기체가 있어야 한다니까.
“난 저게 우리 레이더를 장착하고 하늘을 나는 것이 가장 기대 되는 순간일세.”
윤 대표는 나 못지않게 흥분된 모습이었다.
이젠 에어로스페이스는 물론 KAI마저도 실질적으로 지휘할 인물.
고생이 더해지긴 했어도 그 역시 KAI의 인수가 꽤 반가운 태도였다.
“참! 대유 조선 인수문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겠군.”
“실사작업을 한다고는 해도 사실상 형식적인 수준일 겁니다. 어차피 산업은행을 통한 부채 탕감이 이루어질 테니까요. 그사이 우린 슬슬 현장 점검이나 해둬야죠.”
“한동안은 또 자네가 바빠지겠군.”
“저야 그게 생활이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조립동의 규모가 엄청나군요.”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한참 개발이 진행 중인 초음속 훈련기 조립동이었다.
KAI가 재우로 넘어와 버리는 바람에 함께 떠맡게 된, 또 하나의 숙제.
그러고 보니 노키드 마틴과의 관계도 이젠 슬슬 다시 재정립을 해야 할 때가 왔지 싶었다.
[안녕하십니까.]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즉시 전화를 걸었다.
수신자는 케빈 브라이언.
예전 미국에서 제프리 해군 참모총장을 만났을 때 동석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안 그래도 내일쯤 한국으로 갈 참이었습니다.
전화를 받는 케빈의 목소리는 한껏 흥분되어 있었다.
재우의 KAI 인수 소식이 그들에게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문제였던 거지.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젠 말투에서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거 좋지요. 저도 할 이야기가 꽤 많은 편이거든요.]
******
[오랜만입니다.]
총 13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한 케빈은 곧장 그룹 본사로 찾아왔다.
이젠 적이 아닌, 일정 부분 사업을 공유하는 동지로서의 입장이 되었기 때문일까, 확실히 전보다는 훨씬 표정이 밝아진 느낌이다.
[축하합니다. 요즘 통합전투기사업의 분위기가 다시 노키드 쪽으로 돌아섰다고요?]
최근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미국의 차기 통합 전투기 사업은 다시 노키드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리 개선책을 내놨다지만 보잉의 설계안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극복하지는 못한 거지.
결국 F35는 예정대로 세상에 빛을 볼 모양이다.
[천만다행이지요. 그나저나 요즘 재우를 보면 과연 내가 알던 재우가 맞나 싶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입니다.]
그는 슬쩍 내 눈치를 살피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가 만만치 않은 규모로 성장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상황.
막상 생각을 해보니 나조차도 격세지감을 느낀다.
[실은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노키드와 KAI가 공동개발 중인 고등훈련기 문제를 다루고자 함은 아닙니다.]
케빈은 넌지시 던져진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하긴, 당장 노키드와 우리가 만나야 할 일이라고는 그것뿐인 마당에 주제를 벗어나겠다고 했으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전 그에 앞서 노키드와 재우가 다시 한번 손을 한번 잡아볼 수 있을지를 확인하고 싶군요.]
[다시 손을 잡는다니. 재우가 우리에게 부품 공급사업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럴 리가요.]
[그럼 대체 뭘…….]
케빈은 연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순간 난 서랍에서 F-16 모형을 꺼내 들곤 그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F-16. 전 세계에 걸쳐 수천 대가 팔려나갔을 만큼 노키드의 역작 중 하나죠. 물론 그중 절반 정도는 미 정부가 구매한 물량이긴 하지만, 그렇다 해도 타국에서 발주한 수량도 만만치는 않죠.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그중 개량이 필요치 않은 기체가 몇 대나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실 그동안 난 고민을 좀 해봤습니다. 만약 F-16에 우리 재우가 개발한 AESA를 달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럼 당연히 무장체계에도 변화를 줘야 할 테고, 결과적으로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게 무슨…….]
그건 내가 KAI를 인수하게 되면 가장 먼저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던 부분이었다.
노키드와의 협업을 통한 F-16의 개량작업.
그게 가능하다면 F-16은 4세대 기체들로는 넘볼 수 없는 수준.
즉, 스텔스 성능만을 제외한 4.5세대급의 기체로 재탄생하게 되는데, 그럼 우리의 전력도 단숨에 뛰어오르게 되거든.
어디 그것뿐일까, 막대한 수의 레이더 공급과 개조사업으로 인해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는 KAI의 재정을 흑자로 되돌려 놓을 수도 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케빈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게 딱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곧 넋 나간 얼굴로 중얼대기 시작했다.
[레이더가 교체되면 항전장비도 교체할 수밖엔 없을 테고, 그럼 당연히 성능개선비용이…….]
[내 말이 그겁니다. 더불어서 오래된 기체의 경우는 부품과 엔진의 교체작업도 병행이 될 텐데, 그럼 이 사업의 규모는 어지간한 신형 전투기 판매사업과도 맞먹을 겁니다. 아니, 팔려나간 F-16의 수를 감안하면 어지간한 신형 전투기 판매사업보다 규모가 더 커지죠.]
[…….]
케빈은 이야기를 듣는 내내 흥분된 얼굴이었다.
하긴, 이미 관뚜껑을 닫았다고 판단했던 기체를 되살려 수익을 만들어낼 방법이 생긴 마당에 흥분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런데 순간, 그가 한껏 가늘어진 눈을 하며 나를 쳐다본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레이더의 성능에는 어느 정도의 한계를 두는 겁니까?]
그건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수출 버전을 오리지널로 해줄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그걸 묻는 이유는 자칫 지나친 다운그레이드로 인해 메리트가 떨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을 텐데, 사실 그 부분은 걱정할 것이 전혀 없다.
[아무리 다운그레이드한다 해도 AESA는 AESA입니다. 기존 F-16이 장착 중인 기계식 레이더와는 근 근본부터가 다르다는 것쯤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바보 같은 질문이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제는 내 선에서 답을 해 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시간을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케빈은 한걸음 물러선 태도를 보였다.
단순히 재는 것은 아닐 테고, 아마도 현실화가 되면 워낙 덩치가 커질 사업이다 보니 선뜻 제 선에서 결론 내리기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시간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한 가지 염두에 두실 것은 우리 재우는 이 사업을 통해서 노키드와 보다 돈독한 관계를 이루기 원한다는 거죠. 뭐 비록 과거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기는 했지만, 사업가가 과거에만 연연하는 미련한 짓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
케빈은 그 말에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마치 말의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듯.
곧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민다.
[당신을 보고 있노라면 재우를 끝까지 적으로 돌리지 않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습니다, 내 돌아가는 즉시 윗선에 보고를 올리죠.]
******
[정부는 내년부터 향후 10년간이 걸쳐 진행될 장기국방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사업 내용 중에는 자체전투기 개발은 물론, 한국형 이지스체계구축. 그리고 중형 잠수함확보사업이 주요 골자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대량 확보 역시 포함되어 있음을 밝혔습니다.]
[관계자들은 정부의 이번 전력증강사업의 요지를 일종의 고슴도치 전략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며칠 후, 정부는 예정대로 중기국방계획안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언론이 가장 먼저 떠들어 댄 것은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과한 지출이라는 우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여야를 막론한 전폭적인 지지가 이어졌고, 외려 그 부분을 지적한 언론만 바보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뭔 일이야 대체…….”
사실 이번 국방비증액문제에 있어서 여야의 협치엔 나도 당황했다.
자고로 내가 아는 여당과 야당은 일단 꼬투리만 잡히면 서로 물고 뜯는 것이 습성이었거든.
뭐 사실 ‘무기도입에 쓴다면 성금을 걷는다 해도 환영한다!’라는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도 한몫했겠지만, 그렇다 해도 저렇듯 여야가 단합하는 것을 본 것은 내 생에 최초였다.
‘그나저나 2020년도에나 실행될 독침 전략이 벌써 시행되다니…… 이거 의외인데?’
미사일 전력의 대량 확충은 사실상 회귀 전 우리 군이 시행했던 독침 전략과 일치했다.
한마디로 건드리면 핵에 의한 피해에 버금갈 정도로 쑥대밭을 만들겠다는.
나를 건드리면 최소한 너도 온전하지는 못할 거라는 전략.
그 때문인지 이번엔 우려하는 외신들의 반응도 부쩍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우리의 대규모 전력증강사업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전략 탄도미사일의 대량 배치는 일본을 겨냥한 처사라며…….]
“말은 똑바로 했네.”
사실 미사일 전력확충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일본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고작 북한만을 상대할 요량이었다면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대량 배치할 이유는 없지.
아마 조만간 저쪽에서도 대책을 내놓을 텐데, 그게 뭔지는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자신들 역시도 장거리 타격수단을 보유하는 것.
“쯧쯧…….”
하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그게 가능하기 위해선 헌법개정부터 필요한데, 이 시기의 일본 내 분위기는 아직 그게 가능할 정도로 혐한분위기가 조성된 것도 아니고, 극우들의 정치권 장악력이 완벽한 것도 아니니까.
그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지금 정부의 조치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매 맞는 것도 습관이 되면 차후 감각을 잃어버리듯.
미리 이렇게 툭툭 건드려 놔야 저들에게도 면역이 생길 것 아닌가.
[중국 정부 역시 우리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대량 배치 문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양 국의 경제교류에도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음을 시사했으며…….]
“그래, 차라리 중국과는 지금 교류가 줄어드는 편이 나을 수도 있지. 그래야 너희에게 과도한 투자를 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우를 또 범하지는 않을 테니까.”
난 거의 온종일 주변국들의 반응에 귀를 기울였다.
특이한 것은 아직까지 미국과 러시아가 잠잠하다는 점.
뭐 러시아야 어차피 우리와 발을 걸쳐 놓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기에 그렇다 쳐도, 미국은 좀 의외였다.
대체 뭘까.
우리가 이 정도로 동북아시아 지역을 들쑤셔 놓는 와중에도 침묵을 지키는 이유.
따르릉!
생각이 한참 똬리를 틀어갈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국제 전화인 듯한 번호 패턴.
다급히 통화 버튼을 누르자 하사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오랜만이오, 진 회장.
사실 그리 오랜만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사이 우린 사우디 국부펀드운영위원회를 사이에 두고 수없이 많은 의견교환을 해왔으니까.
최소 한 주에 한 번쯤은 그의 목소리를 들어왔던 터였다.
-방금 사우디 국부펀드가 진 회장이 주도하는 펀드에 투자할 금액을 확정했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