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80화
[미군이 어딘가에서 대규모 작전을 벌일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군요.]
지나가듯 말하곤 마이클의 눈치를 살폈다.
의외로 평온한 표정.
하지만 흔들리는 눈동자만큼은 숨길 수가 없다.
스윽.
마이클은 그 시점에 험머 대장을 쳐다봤다.
곧 눈빛이 오고 간다 싶더니 험머가 어깨를 들썩여 보였고, 마이클의 입에선 짧은 한숨이 뱉어졌다.
[대규모 작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혹시나 일어날 수 있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려는 겁니다. 실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부터 지속해서 올라오는 정부 보고서가 하나 있었는데, 이번 정부에서 그걸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
얼핏 들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할 말이었다.
마치 ‘네가 그렇듯 궁금해하니까 말은 해주겠는데, 내 입장에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렇듯 두루뭉술한 것이 최선이야.’ 하는 듯한 태도.
하지만 내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보고서라는 것.
2020년대를 살다 온 내겐 너무도 익숙한 것이었거든.
미국을 향한 테러 가능성과 그 배후에 대해 언급한 문건이라는 사실.
“흠…….”
그게 사실이라면 역사와는 조금 빗나간 느낌이다.
내가 아는 부시 행정부는 911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그 보고서를 무시했고, 그게 음모론자들에게 단초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니까.
미국은 이미 테러 사실을 알고도 방관했다는.
또는 애초 사건 자체가 자작극일 수도 있다는.
그런데 이젠 그 보고서에 주의를 기울이며 대비를 하고 있다?
그건 역사와 다른 것도 다른 거지만, 역시나 음모론은 그저 음모론일 뿐임을 방증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니지. 비상상황을 대비한다면서 전쟁물자를 치장한다는 건 또 뭔가 이상하잖아.’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머리가 다시 복잡해졌다.
빌어먹을, 이건 무슨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뭔지는 몰라도 부디 큰일은 아니었으면 싶군요.]
난 즉시 어지럽던 속을 털어내며 말했다.
어차피 내가 밝혀낼 수도 없는 문제를 두고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궁금한 것은, 저들이 원 역사와 달리 테러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해서 과연 911사태를 막을 수 있느냐는 점인데, 그 부분에 있어서 내 생각은 조금 부정적이다.
‘경험상 벌어져야 할 역사적인 사건은 꼭 벌어지는 것이 여태까지의 법칙이었거든.’
딱 하나, 남북 평화회담만 빼고.
그러고 보면 그건 왜 지워진 역사가 된 거지?
하긴, 그것도 완전히 지워졌다고는 아직 확신하기는 어렵지.
스윽.
한참 생각이 무르익을 무렵, 마이클은 내게 서류 한 장을 더 내놓았다.
이건 또 뭘까 싶은 마음에 빤히 쳐다보자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모가디슈 전투로 국방부가 얻은 교훈이 하나 있는데, 그걸 우리가 함께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어서요.]
[…….]
[델타 대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소말리아 반미 군벌 소속 병사들은 5.56밀리 탄환을 수없이 맞고도 전투를 계속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들이 애용하는 환각 성분의 나무뿌리가 원인이었다고는 해도 따지고 보면 저지력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소립니다.]
[그래서요?]
[그 때문에 국방부는 6.8밀리 구경의 탄자를 채용한 총기를 개발하여 우선 특수부대 위주로 공급할 예정입니다. 더불어서 워리어 플랫폼의 전체적인 개량도 진행할 예정이고.]
[…….]
아직은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없어 침묵했다.
순간 의미심장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지어진다 싶더니 곧 귀를 의심할 만한 말이 들려온다.
[그걸 재우와 우리가 공동으로 개발하면 어떻겠습니까?]
[왜 우리를…….]
내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막말로 저들에게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는다면 단독으로도 병사들을 아이언맨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 아니던가.
그때, 내 표정의 의미를 이해한 듯 마이클이 다시 말을 이었다.
[미스터 진은 정작 재우의 기술력을 너무 얕잡아 보시는군요.]
[…….]
[재우가 이번에 개발한 방탄소재들과 40밀리 유도미사일만 해도 이미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워리어 플랫폼을 절반 정도는 달성한 겁니다. 그런 능력 있는 업체가 동맹국에 있는 상황이면 우리로서는 손을 잡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하긴, 그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동안 이루어 낸 것들이 우습게 볼만한 것들은 아니지.
HVP를 비롯하여 AESA와 철갑탄 및 스마트 포탄.
그리고 해면체 기술을 활용한 방탄소재까지.
저들이 재우의 기술력을 높게 쳐줄 근거들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고 볼 수 있다.
[흠…….]
난 그 시점에 잠시 고민을 해봤다.
그러자 즉시 머리에 떠오른 사실 하나.
우리가 비록 몇몇 분야에서 저들보다 앞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라는 거다.
즉, 손잡아서 이익인 것은 오히려 우리라는 거지.
[공식적인 제안인 겁니까?]
[물론입니다. 이미 구체적인 품목들도 정해놓은 상태죠.]
[그럼 마다할 이유가 없죠.]
난 흔쾌히 손을 내밀었다.
뭣 때문일까, 그가 필요 이상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또 한 번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이제야 좀 마음이 놓이는군요.]
[…….]
[실은 재우가 최근 들어서 러시아에게만 지나치게 힘을 쏟는 것 같아서 걱정했었던 참이었거든요. 뭐 이것으로 재우의 포지션을 확실하게 알았으니 만족합니다.]
[…….]
******
두바이에서 복귀한 것도 벌써 3개월째, 사우디와 UAE는 아직까지 투자 결정을 확정 짓지 못했다.
아니, 이미 결정는 난 것이나 다름 없지만 구체적인 투자금액의 확정과 위원회의 설립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상태.
아마 확실하게 결론이 나려면 수개월은 더 시간이 걸릴 듯한 분위기다.
그사이 그룹은 꽤 많은 변화를 겪었다.
그동안 인수한 기업들의 부서 간 체계 통합을 끝맺었고, 연구소는 재우 시스템이라는 사명을 부여하여 원천기술과 소재 개발의 교두보를 확립.
남은 것은 펀드 조성을 위한 기반 확보 및 벤처투자사의 설립이었는데, 그 부분도 사실상 조만간에 마무리 지어질 예정이다.
“쌍웅은 굳이 사명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하죠.”
쌍웅의 사명은 교체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동안 쌓아온 인지도를 쉽게 버릴 수가 없었기에.
더군다나 차후 테슬라와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는 상황에선 지금 사명을 바꾸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40밀리 유도미사일 양산에 문제가 없는 것은 천만다행이군요.”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간 40밀리 유도미사일의 생산 역시 별다른 문제는 없을 듯했다.
제일 걱정이었던 인력확충 문제가 해결되어 버렸거든.
애초 유도미사일 생산라인의 핵심은 시커 조립이고, 그건 전적으로 사람의 손에 의지해야 하는데, 마침 스마트 포탄 생산이 정체기에 접어든 터라 그 인력들을 돌리는 것이 가능했다.
뭐 한마디로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혔다는 거지.
“전년 이맘때쯤보다 날이 더 더워지는 것 같군요.”
2001년 6월의 초입.
김 부사장의 말처럼 올해는 유독 더위가 빨리 찾아왔다.
과도한 이산화탄소 분출로 인한 기상이변이 원인이라나?
2010년대 이후로도 그 말은 꾸준히 들었었던 것 같은데, 난 사실 기상이변의 원인이 과도한 산업화 때문이라기보다는 태양의 코로나 분출량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에 더 비중을 두는 편이다.
“차량 준비됐으니 가시죠, 회장님.”
김영기 부사장은 각종 서류에 사인을 마친 나를 향해 서두를 것을 재촉했다.
목적지는 에어로스페이스.
공격헬기 시제품 출고 식을 위한 걸음이었는데, 역사적인 날치고는 기분이 제법 담담했다.
하긴, 시제기 출고라고는 해도 아직은 무장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깡통 헬기나 마찬가지니까.
그렇다 해도 예정보다 무려 5개월이나 출고를 앞당기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었을 연구원들과 윤 대표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못해 안쓰러울 지경이다.
“어서 오게.”
“이런…….”
예상처럼 마주친 윤 대표의 얼굴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고작 60에 불과한 존재가 어느덧 70대는 되어 보일 정도로 팍 삭아 버린 모습.
이러다 자칫 큰일을 치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넌지시 직책이동을 제안했지만, 오히려 그가 만류한다.
“껍질만 썩었지 실질적인 건강상태는 더 좋아졌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그리고 이제야 재미가 붙는 마당에 다시 자리를 옮긴다는 건 내가 억울해서 못하겠어.”
“하지만…….”
“됐다니까 그렇네. 의사가 그러는데, 내 혈관 나이가 30대에 가깝다고 하더군. 아무튼,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어서 행사장으로 가세나.”
그는 끝내 자리를 지키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은 채 나를 행사장으로 이끌었다.
당사자가 그렇다는 마당에야 별 수 있나. 텁텁했던 기분을 떨쳐내곤 그의 안내를 뒤따랐다.
“오! 진 회장. 어서 오시오.”
행사장엔 이미 총리를 비롯하여 수없이 많은 내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디 총리뿐일까.
대통령을 비롯하여 각 부처의 장관들과 군 최고 지휘관들까지.
국내 최초의 자체개발 공격헬기라는 타이틀이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합참의장님.”
가장 반가웠던 것은 역시나 이동욱 합참의장이었다.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자 김태익 7기동군단장.
아니 이젠 육군 참모총장으로 승진한 그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굴 보기가 각하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김태익 총장의 호탕함은 여전했다.
아니, 날이 서 있는 듯한 눈빛을 보면 오히려 카리스마가 더 강해졌다는 느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그 말이 딱히 틀린 건 아닌 모양이다.
“각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곧장 나를 대통령에게 안내했다.
명색이 개발업체의 대표다 보니 배정된 내 자리는 대통령의 바로 옆.
아마 한동안은 질문 세례가 이어질 거다.
두두두두두!
행사의 시작과 동시에 기체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무려 1800마력에 달하는 두 개의 막강한 엔진 힘과 안정된 자세제어 소프트웨어 덕분에 조금도 요동치지 않고 튀어 오르는 모습.
의미를 알고 있는 몇몇 관계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뱉어진다.
“기동력이 보통이 아니군요.”
대통령도 그 점은 인식한 듯싶었다.
하긴, 저 어마어마한 덩치가 저렇듯 부드럽게 기동할 수 있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
아쉬운 접은 무장제어 능력을 아직은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인데, 그게 가능할 시기는 대략 내년 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오!”
순간적인 선회기동을 선보이는 모습에 다시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졌다.
그때 애꿎게도 내 뇌리를 스친 것은 회귀 전 우리가 개발했던 수리온의 사고장면.
로터 기어의 결함으로 인한 추락과 그로 인해 우리 군 장병 몇몇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이었다.
‘뭐 그때야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개였나.’
사실 그 사건의 책임 소재에 있어선 논란이 많았다.
자체개발이기는 했어도 핵심 부품은 죄다 수입을 해왔던 상태.
더군다나 사고의 원인이던 로터 기어 역시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했던 터라 누굴 탓해야 할지가 애매했다.
“레이더를 새로 개발한 것으로 장착했다고 하던데, 성능은 어떻습니까?”
불현듯 파고들었던 생각을 깬 것은 대통령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채 준비했던 멘트를 이었다.
“레이더의 운용 테스트는 충분히 합격점이었습니다. 탐지거리만을 따지자면 기존 밀리파가 감히 따라올 수 없을 정도고. 신호 간 간섭 현상도 제로에 가깝기에 공격목표를 지정하는 능력과 속도 또한 아파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죠. 만약 우리가 개발 중인 전투체계까지 완전히 가동되는 경우엔 적 지상군에겐 그야말로 악몽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은 그 말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때마침 시범기동을 마친 헬기가 다시 지상에 착륙하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 속에서 대통령이 무어라 웅얼거렸다.
“조만간 중기국방계획안이 발표될 겁니다.”
“……네?”
워낙 읊조리듯 했던 말이었던 터라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분명 중기국방계획안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시기에 그런 계획안이 있었던가.
사실이라면 역사와는 다른 흐름인 터라 당황스러움이 몰려들었다.
“향후 10년간 80조 원을 투자하여 군의 전력증강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또다시 이어지는 대통령의 말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80조 원.
비록 10년에 걸쳐 투자되는 금액이라곤 해도 한 해 평균 8조 원에 가까운 돈을 추가로 국방비에 쏟아붓겠다는 말인데, 이 시기의 국방 예산 규모를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국회가 승인 하겠습니까?”
“경제 규모에 비하면 오버인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80년대 이후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의 거듭된 위협에 대처한다는 명분도 있고. 뭐 그래도 좀 시끄러워지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한번 추진해 볼 생각입니다.”
대통령의 의지가 그렇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더군다나 그의 말처럼 이 나라는 최근 역대급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현실.
그 기회에 국방비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다.
“진 회장이 미리 알아두셔야 할 점은 이번 중기 전력증강안에 중거리 전략 미사일의 대량 확충과 자체전투기 개발 건이 포함되어 있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자체전투기 개발안을 지금 발표한다고요?”
대통령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상황이 그렇다면 KAI 인수문제를 당장이라도 거론해야 하는 상황.
넌지시 운을 떼자 그가 갑자기 손을 들어 올린다.
“드릴 말씀이…….”
“아! 그 이야기는 행사를 마저 끝내고 합시다. 안 그래도 나 역시 그 문제를 이야기하려던 참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