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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79화 (79/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9화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착한 김포공항엔 김영기 부사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점심조차도 편하게 먹을 수 없을 만큼 바쁘다던 양반이 여긴 왜.

의아한 마음에 빤히 쳐다보자 그가 신문 하나를 내게 건네며 바짝 다가선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여길 좀 보시죠.”

그가 가리킨 곳은 국제면의 한구석이었다.

미국 부시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단신으로 올라온 기사.

잠시 멈춰 서선 살펴보려는 차에 김 부사장의 말이 다시 날아든다.

“어제 모가디슈에서 미군 델타부대가 인질구출 작전을 한 모양입니다.”

“인질이라면, 혹시 공화당의 크리스 상원의원을 말하는 겁니까?”

전날 호텔에서 보았던 뉴스를 떠올리며 물었다.

기억에 의하면 부시 대통령이 분명 그 이름을 언급했었거든.

그때는 딱히 관심이 없어서 지나치고 말았는데, 그게 내 생각보다는 큰 사건이었던 모양이다.

“맞습니다. 일단 상원의원이라는 직책을 떠나서 공화당 내의 주요 정책 자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보니 미국으로서는 그가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 꽤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요?”

“그 때문에 처음엔 해군 특수부대원들을 구출 작전에 투입했다가 희생이 컸던 모양입니다.”

“쯧, 모가디슈 전투의 재연이군요.”

순간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작전이었다.

미국이 해외에서 비밀리에 시행한 작전 중 가장 희생이 컸었던.

그 마당에 또 같은 일이 벌어졌으니 미 정부로서는 아마 속이 뒤집어졌을 거다.

‘가만, 그런데 요점은 왠지 그게 아닌 것 같은데?’

문득 드는 생각에 김 부사장을 쳐다봤다.

착각한 걸까, 그의 얼굴에서 얼핏 미소를 엿본 기분이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인 건데 부사장님께서 이렇듯 공항까지 마중 나와서 알려주시는 겁니까?”

“그게 실은…… 이후 다시 작전에 투입된 델타부대원들이 우리가 개발한 방탄복을 착용했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수출한 적도 없는 방탄복이 어떻게…….”

말을 뱉어내던 순간 김 부사장이 미 국방부에 보냈다던 샘플이 떠올랐다.

맞아 그게 있었지.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현지 운용 적합성 여부도 검증하지 않은 것을…… 아무튼, 그래서요?”

“투입된 델타 부대원 중 사망자의 수는 단 한 명뿐이었다고 합니다.”

“…….”

“하필 노출된 얼굴 부분에 총을 맞은 것 같은데, 그 한 명을 제외하곤 대부분 중대한 피해는 없었던 모양이더군요. 그 때문에 내일 마이클 중장이 날아온다고 합니다.”

“…….”

그가 방문한다는 건 이유가 있어서일 거다.

단순히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 오는 것은 아니라는 거지.

그럼 필시 미 육군으로의 수출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걸음 일터.

이거 생각지도 못했었던 곳에서 용돈이 생길 듯한 느낌이다.

“혹시 단가 책정은 끝난 겁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금속 해면체의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수십만 원대에 불과하던 기존 방탄조끼와는 가격 차이가 크거든요.”

그도 그럴 법하다.

아무리 나노 구조화하여 무게가 가볍다고는 해도 주 소재가 티타늄.

소프트 아머를 제외한 플레이트의 가격만도 300만 원을 훌쩍 넘어갈 거다.

“만약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까지 낮출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해도 조끼 하나만도 300만 원은 상회 할 겁니다. 이번에 미군에 보냈던 풀 세트의 경우엔 최소 600만 원 이상은 가격 책정을 해야 할 테고요.”

김 부사장은 부정적인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난 왜 그게 비싼 느낌이 들지 않지?

물론 그게 우리 군에 보급하기엔 선뜻 결정하기가 어려운 금액이겠지만, 미군의 경우는 다르지 않을까.

“돌아가는 대로 생산량에 따른 정확한 가격을 산출하라고 하세요.”

흥분된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잘만 하면 철갑탄 못지않은 규모의 수출금액을 달성할 수도 있을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아니, 김 부사장이 보낸 샘플의 경우는 하의에 장착이 가능한 보조 아머도 포함되었던 만큼 수출금액은 족히 철갑탄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거다.

‘게다가 미국이 그걸 수용하면 영국을 비롯한 우방들 역시 채택할 가능성이 크지. 이거 잘하면 단순히 용돈 수준이 아니겠는데?’

******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진.]

다음 날, 예고했던 대로 마이클이 한국에 도착했다.

여전히 그가 대화의 장소로 택한 곳은 주한미군기지.

덕분에 험머 대장과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눌 수가 있었다.

[안 그래도 귀국 전에 진 회장을 만날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이군요.]

험머는 첫인사부터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왔다.

임기를 마치고 이제 곧 귀국한다는.

하긴, 한국에서만 무려 4년 이상을 지냈으니 떠날 때가 되기는 했다.

[퇴역하시는 겁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험머를 향해 물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폼이 내 예상이 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이도 나이고, 이젠 좀 쉴 때가 된 것은 사실이죠.]

[앞으로의 계획은요? 제가 아는 험머 사령관님의 성격이라면 그냥 집에서 시간을 죽이실 분이 아닌 듯해서 묻는 말입니다.]

[글쎄요, 안 그래도 공화당 측에서 정치할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 들어오기는 했는데, 정치판은 또 영 정이 안가서…….]

그 말을 듣자 왠지 욕심이 났다.

특유의 뚝심은 논외로 하고서도 그의 장점은 차고 넘칠 지경이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를 한국에 묶어둘 마땅한 핑곗거리는 없는 상태고, 조만간 고민을 좀 해봐야 할 듯싶었다.

[그나저나 소식은 나도 들었습니다. 이번에 재우가 개발한 방탄복이 큰 역할을 해주었다고요?]

말을 뱉어낸 험머의 시선은 곧장 마이클에게로 향했다.

쓸데없이 이어지는 자신의 거취문제를 화두로 삼는 것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것처럼.

의미를 이해한 듯 마이클이 즉시 입을 열었다.

[본론을 말하기 전에 미스터 진에게는 사과의 말을 먼저 전하고 싶군요.]

[뭘 말입니까?]

[샘플로 보내준 물건을 허락도 없이 실전에 투입한 사실 말입니다.]

[아, 그거야…… 제 허락은 둘째 치고, 무슨 용기로 그런 결심을 하신 건지가 궁금하군요.]

[실은 샘플 테스트는 진즉에 끝났던 상태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성능은 뛰어나다 못해 경악스러울 지경이었죠. 그런데 마침 씰 대원들이 적의 총탄에 희생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이후의 해명은 굳이 들을 것도 없었다.

눈앞에 그 해결책이 있는 마당이면 나도 그런 결정을 내렸겠지.

의아한 것은 씰 대원들이 착용했던 세라믹 방탄판 역시 소총탄을 막아내기엔 충분했을 텐데, 왜 그토록 희생이 컸느냐는 점이다.

[그건…… 모가디슈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무기암시장. 때문에, 미군을 상대할 철갑탄쯤은 길거리에 널리고 널린 상태였죠.]

되물은 나를 향해 마이클이 대답했다.

비로소 상황파악이 끝난 나는 안타까움의 말을 전했고, 그는 쓴웃음으로 응수했다.

[아무튼, 덕분에 작전은 비교적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는데, 그 이후 작전에서 복귀한 델타 부대원들이 상부에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지급 받았던 방탄복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서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게 곧장 받아들여졌다는 말입니까?]

[물론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상황을 보고받은 부시 대통령께서 직접 추진을 요청하셨습니다.]

[…….]

그렇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와는 달리 미국 대통령의 권한은 꽤 막강한 편이니까.

뭐가 됐든 나로서는 환영할 만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아직 문제가 남아 있구나.

[미리 말씀드리지만 라이선스 생산은 곤란합니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쐐기를 박았다.

역시나 그 말을 꺼내려 했던 듯 움찔하는 마이클의 어깨.

그런데 이번엔 단단히 준비하고 온 걸까, 뒤이어 나오는 말들이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재우의 생산 능력으로는 단기간에 공급이 어려울 텐데요?]

[…….]

[우리가 필요한 수량은 족히 100만 벌에 가깝습니다. 연방군은 물론 주 방위군. 하다못해 예비군에까지 보급해야 하니까. 그 많은 수량을 고작 수개월 만에 제작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왜 그렇게 많은 수량을……아니 왜 그렇게 촉박하게 확보하려는 겁니까.]

의아한 마음에 되물었다.

하지만 마이클은 끝내 그 부분에 대해선 함구했고, 난 인상을 구긴 채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실 우리가 우격다짐으로 나설 마음이었다면 굳이 재우의 것을 수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셔야 할 겁니다.]

순간 마이클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무슨 뜻이죠?]

고개를 갸웃해 보이자 그가 슬슬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잇는다.

[쉽게 말하면 우리도 마음만 먹으면 그걸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

[사실 재우가 개발한 방탄복의 핵심은 금속 해면체 기술인데, 그 기술은 이미 우리에게 제공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스마트 포탄의 기술을 이전했던 당시 우린 분명 충격흡수체를 제작하기 위한 해면체 가공기술을 제공했었지.

어차피 이번에 개발한 플레이트의 제작 기술이 그것에서 비롯된 것임을 감안하면 미국이 자체적으로 방탄복을 제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쯧…….”

하지만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나노기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디테일에 민감한지.

온도는 물론 성형방식의 차이. 그리고 삽출 방식의 미세한 차이가 얼마나 성능에서 큰 영향을 미치는지.

[반도체가 겉모양이 같다고 해서 성능이 똑같은 것은 아니죠.]

난 턱도 없다는 듯 코웃음 쳤다.

그런데 여전히 의기양양한 저 표정은 뭐지?

나를 쳐다보는 눈빛도 왠지 심상치가 않다.

[물론 그렇죠. 하지만 우린 미국입니다. 우리 측 방산 업체의 전언에 의하면 1년 안에는 재우가 개발한 수준의 물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더군요.]

[…….]

근거 없이 하는 말은 아닌 듯 보였다.

젠장, 내가 이래서 미국에 기술이전을 해주기가 싫었던 거라니까.

짜증스러운 마음에 와락 인상을 찌푸리는 순간, 마이클이 넌지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라이선스 생산을 허락한다면 우린 개발을 포기하겠습니다.]

[…….]

[사실 우린 자체적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그걸 필요로 하는 것이지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게다가 재우와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협력하는 관계인데, 고작 방탄복 하나 때문에 연을 끊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은 좀 우습지 않겠습니까.]

얼르고 달래는 기술이 제법이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인물인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다 해도, 왠지 내가 손해인 느낌을 거둘 수 없어 표정을 굳히자 그가 슬슬 내 눈치를 보며 무언가를 슬그머니 들이민다.

[이건…….]

그가 건넨 것은 사진이었다.

정확히는 우리가 최근 개발한 40밀리 유도미사일의 사진.

의도가 뭘까 싶어 쳐다보자 그가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 보인다.

[국방부에서 최근 재우가 개발한 그 40밀리 유도미사일을 정식 채용할 것을 검토 중입니다.]

[미군에서 이걸 왜 필요로 한다는 거죠?]

[우리니까 필요한 겁니다. 솔직히 제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분대화기로 고려하기도 했지만, 그랬다간 벽 뒤에 있는 적을 잡는 것에도 마구 사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한 발에 무려 12만 달러씩이나 하는 것을요. 그럴 바에야 수천 달러에 불과한 40밀리 유도미사일이 운용 편의성과 휴대성.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더 낫지 않을까요? 아! 물론 칼 구스타프도 도입을 검토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운용 편의성 면에선 40밀리를 못 따라가죠.]

사실이라면 예상치 못한 또 하나의 수익 모델이 발생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드는 생각은 그래 봐야 저것도 라이선스를 원할 것이라는 사실.

그런데 다음 순간 마이클의 입에서 뱉어진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났다.

[참고로 40밀리 유도미사일의 경우는 전처럼 해외구매 프로그램으로 진행을 할 예정입니다.]

[…….]

[그것마저 라이선스를 바라면 재우에서 차라리 그만두자고 할 것 같아서요.]

그는 마치 내 속을 들여다본 듯 말했다.

헛웃음을 지어 보이자 그가 단순히 농담만은 아님을 표하려는 듯 진중한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대신 40밀리의 경우도 5개월 안에 최소 5만 발을 제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년 초순까지 총 15만 발을 납품해야 하고요.]

[그건 문제 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 군 납품을 위해 미리 라인을 확장해둔 상태니까.]

[그 말씀은, 방탄복의 라이선스를 허락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겁니까?]

넌지시 이어지는 그의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익이 보존되는 것을 넘어서 그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줄 판국에 거부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니, 미군이 직접 우리 물건을 전장에서 사용함으로써 얻어지는 전시효과. 그리고 저들이 개발을 포기한다는 조건을 생각하면 이 계약은 안 하는 것이 오히려 바보다.

‘흠…….’

그런데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방탄복의 라이선스 생산을 요구하면서 40밀리 유도미사일은 해외 구매 프로그램을 진행하겠다?

솔직히 '내가 계약을 거절할 것이 두려워서.'라는 것은 이유가 충분하지 않고.

난 왠지 저들이 방탄복을 라이선스 하겠다는 것이 시간에 쫓기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말해서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납품 기일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같다는 말이지.

'그러고 보니 40밀리의 경우는 생산 시설이 복잡해서 저들이 처음부터 갖추는 것보다는 우리를 활용하는 편이 더 빠르고.'

그럼 정말로 시간이 문제였던 것 같은데……이유가 뭐지?

저들이 저토록 시간에 쫓기는 이유.

그렇다고 당장 전쟁을 할 상황도 아닌…….

‘……!'

그때, 앞으로 일어날 전쟁이 하나 떠올랐다.

911 사태로 시작될 중동 전쟁.

순간 온 몸의 털이 확 치솟으며 등골이 서늘해졌다.

'에이, 설마……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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