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7화
빰빠빠바밤.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환영행사가 펼쳐져 있었다.
누가 보면 꼭 국빈이라도 방문한 듯한 모습이랄까.
더 당황스러운 점은 모하메드 왕자의 모습이었는데, 그는 어울리지 않게 직접 꽃다발을 손에 들고 있던 상황이었다.
[방문을 환영하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우린 짧은 인사 끝에 차에 올랐다.
이후 한동안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향한 곳은 버즈 알 아랍 호텔.
불과 1년 전에 개장한, 당시에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7성급 호텔이었다.
[여길…….]
처음 돛을 형상화한 호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을 때는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극진한 대접을 약속했다지만 우리가 묵을 곳이 저곳일까 싶은.
하지만 차량은 끝내 호텔로 들어섰고, 이후 우린 대기 중이던 UAE 정부 측 인사의 안내를 받아 로비로 들어섰다.
“괜히 7성급 호텔이 아니군.”
호텔 내부는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2025년도에서 회귀한 나조차도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대적인 설계방식.
대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모하메드 왕자가 또 한 번 놀랄 만한 말을 뱉어냈다.
[안전을 위해서 특실 층 전체를 비워뒀으니 일행분들께서도 그리 불편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자, 그럼 일단 여장부터 푸시고 1시간쯤 후에 다시 보는 것으로 하죠.]
[…….]
우린 멍한 얼굴로 안내를 따라 올라갔다.
말이 특실이지.
거의 운동장이라고 해도 될 만큼 드넓은 룸의 규모를 본 순간 일행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을 내뱉었고, 특히나 김 비서의 경우는 황홀하다 못해 천국에라도 온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돈이 좋긴 좋네요.”
피식.
그 말에 헛웃음을 뱉어내곤 짐을 풀었다.
오랜 비행으로 주름진 수트의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상태.
눈치 빠른 김 비서는 즉시 자리를 피한다.
“준비되셨으면 내려가시죠, 회장님.”
한참 창밖의 경치를 즐기던 차에 김 비서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려는 순간, 불현듯 창밖 저편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호텔 방향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의아한 마음에 지켜봤지만, 정체를 알아내는 것은 무리였다.
호텔의 구조상 입구 쪽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벗어나 버렸거든.
뒤늦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일까, 싶은 생각과 함께 몸을 돌리려는데, 밖에서 다급한 김 비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사우디의 하사드 왕세제께서 조금 전 호텔에 도착하셨다는데요?”
“누구?”
당황스러운 마음에 즉시 방을 나섰다.
눈에 보인 것은 김 비서와 함께 서 있는 UAE 정부 측 인사.
다급히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온 건지 숨을 헐떡이던 그는 어눌한 영어로 내게 소식을 전했다.
[하사드 왕세제께서 모하메드 왕자님과 함께 로비에서 진 회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
이건 미처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
아니, 사우디 왕세제가 갑자기 여긴 왜.
아무리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이라지만, 무슨 옆 동네 마실 나온 것도 아니고…….
******
[오! 진 회장님을 여기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군요.]
도착한 로비엔 정말로 하사드가 와 있었다.
얼핏 본 모하메드 왕자의 표정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은 상황.
순간 난 내 기억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사우디와 UAE는 가깝고도 먼 이웃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비록 동맹 관계로 맺어졌다고는 하지만 때론 영토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한 것이 바로 두 나라의 관계거든.
그런데 이렇듯 제집 앞마당 드나들듯 발걸음을 감행한 하사드의 태도도 이해가 가지 않고, 그걸 또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모하메드 왕자의 속내도 도무지 모르겠다.
[하하, 많이 놀라신 모양이군요. 이해합니다. 이틀 후면 곧 만나게 될 내가 갑자기 여기까지 들이닥쳤으니.]
그 말에 슬쩍 모하메드 왕자를 다시 쳐다봤다.
여전히 당황한 기색이 없는 그의 표정.
뭔가 둘 사이엔 사전협의가 있었던 듯한 분위기다.
[실은 며칠 전, 여기 계신 하사드 왕세제께서 양해를 구해오셨습니다. 진 회장께서 굳이 사우디까지 방문하는 수고를 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UAE로 넘어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딱히 불편할 이유는 없기에 동의한 상태였습니다.]
눈이 마주친 모하메드는 내게 상황을 설명했다.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은 하사드의 영리함.
그는 지금 자신이 가져갈 파이를 최대한 지키기 위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즉, UAE가 자신보다 많은 투자를 할 것을 우려하여 나선 발걸음이라는 거지.
[저를 그렇게 염려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군요.]
의아한 것은 UAE 측의 대처였다.
당장 나조차도 눈치를 챈 마당에 모하메드가 하사드의 그런 생각을 몰랐을 리는 없을 터.
그럼에도 선뜻 하사드의 방문을 허락한 것이 조금 의외다.
‘하긴, 그렇다고 코앞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끼리 매몰차게 거절한다는 것도 좀 그렇기는 하지.’
[자, 일단 식사부터 하시고 담소들 나누시죠.]
우린 모하메드의 안내를 따라 곧장 식당으로 향했다.
이내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찻잔이 테이블에 올라왔을 무렵, 하사드가 넌지시 운을 뗐다.
[제 나름대로 조사를 좀 해봤는데, 이번에 진 회장께서 재우 홀딩스 산하로 흡수한 연구소가 어마어마한 소재 특허들을 보유하고 있더군요.]
연구소가 언급될 것쯤은 예상했었다.
자고로 투자자가 투자 대상을 조사하는 것은 기본이니까.
묵묵히 주스 잔을 들어 올리자 하사드가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기술제공만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수십억 달러가 넘는 연구소는 전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아니, 돈을 떠나서 그 정도 특허보유량이면 소재 부분에서는 재우를 피해갈 기업은 그리 많지 않겠죠. 난 진 회장의 그 선견지명에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난 솔직히 재우 그룹에 대한 투자를 이미 확정한 상태입니다.]
꽤 직설적인 선언이었다.
그리고 모하메드에게는 자칫 불쾌감을 줄 수도 있을 말이기도 했고.
막말로 그 역시 재우를 향한 투자 의중을 전부터 내비쳤었던 마당인데, 자신은 쏙 빼고 투자 이야기가 오가면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
하지만 정작 눈이 마주친 모하메드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하기만 했다.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은 어쩌면 저 둘 사이에는 모종의 사전 대화가 오간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
‘이것 봐라?’
아니나 다를까, 곧 두 사람 사이에 눈빛이 오간다 싶더니 하사드가 넌지시 말을 뱉어냈다.
[실은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어느 정도 사전협의를 마쳤습니다. ]
[어떤…….]
[두 나라가 정확히 같은 비율로 투자를 하겠다는 거죠. 누구 하나 서운할 상황을 만들 필요 없이.]
그제야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뭐 한마디로 그런 거지.
어차피 두 나라 모두 재우에 투자를 결심한 마당이면 누군가 서운할 상황을 만들지 말고 공평하게 가자는.
하긴, 그편이 저들로서도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을 최고의 방법이기도 했고, 나로서도 부담감을 덜 수 있기는 하다.
한마디로 내가 해야 할 일을 저 둘이 이미 해결해 버린 상태라는 거지.
[저로서야 반대할 이유가 없겠죠.]
[이해해주신다니 고맙군요. 자, 그럼 이제 투자 규모에 대해서 한번 논의를 해 봅시다. 참고로 우린 진 회장님의 경영권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확실한 우군이 될 것을 약속하며 최대한 많은 지분을 확보할 용의가 있는 상태입니다.]
하사드는 눈을 빛내며 되물었다.
내 근본적인 목적과는 흐름이 비껴가는 듯한 느낌에 난 즉시 그들의 생각을 고쳐주었다.
[이런 말을 드리기엔 좀 죄송하지만, 두 분 모두에게 각각 10퍼센트 이상의 지분은 넘겨드릴 수가 없습니다.]
[…….]
두 사람은 그 말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렇지 않을까.
어차피 홀딩스의 지분은 내가 거의 독식하고 있으니 그 이상을 내주어도 상관은 없을 상황인데.
[아니 왜 고작…….]
하지만 그건 내 근본적인 목적을 모르기에 나온 반응이다.
그리고 이젠 그걸 설명할 차례고.
스윽.
난 여전히 눈만 끔뻑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서류뭉치를 건넸다.
향후 재우가 군수 분야를 넘어서 어떤 미래를 그려갈지에 대한 자세한 플랜이 기록되어 있는 것.
그중엔 전고체 전지를 활용한 에너지 분야에 대한 설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예상처럼 두 사람은 그 부분에서 휙 하고 나를 쳐다봤다.
[이게 무슨…… 재우가 지금 석유산업을 위축시킬 분야를 연구 중이라는 겁니까? 그 마당에 우리 보고 투자를 하라고요?]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하사드 왕세제였다.
역시나 상황파악이 빠른 인물.
즉시 그를 향해 첨언 했다.
[네, 그게 현실화되면 석유업계가 어느 정도 위축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생각하시는 것처럼 위험한 수준은 아님을 미리 밝혀두겠습니다. 자고로 석유라는 것이 단순히 에너지 분야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 해도 파이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 아니오. 이건 우리 스스로 명을 단축하라는 이야기밖에 더 됩니까.]
[명을 단축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거죠.]
[…….]
순간, 두 사람의 눈동자가 동시에 흔들렸다.
[미래를 준비한다?]
[그렇습니다. 그동안에는 석유를 근간으로 영화를 누렸다면 이젠 미래 먹거리에 투자해서 그 영화를 지속하라는 거죠. 설마, 두 분은 석유산업이 두 나라를 영원히 먹여 살릴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두 사람은 그 말에 서로를 쳐다봤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음을 깨달은 거지.
특히나 UAE의 경우는 바로 그 석유산업 위축시대 이후를 준비하기 위해 두바이를 개발 중인 상황이니만큼 오히려 솔깃한 충고였을 거다.
[흠…….]
예상대로 모하메드는 급격히 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파악이 부족한 듯 하사드는 미간을 잔뜩 일그러트리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재우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오랜 침묵 끝에 모하메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투자금이 클수록 수익도 큰 법이고 수익이 클수록 미래에 대한 준비가 확실해지는 거니까.
하지만 난 지금 재우에게만 미래를 걸라는 의도에서 저들에게 충고를 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길의 시작을 재우와 함께 내딛자는 것뿐이지.
[죄송하지만 그 정도로 충분할 겁니다.]
[…….]
[재우의 미래가치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텐데, 10퍼센트도 솔직히 많은 거죠. 그리고 주지하셔야 할 점은 전 지금 돈이 부족해서 투자를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건 또 무슨……돈이 목적이 아니면 대체 투자는 왜 받겠다는 겁니까.]
듣고 있던 하사드가 이해를 못 하겠다는 투로 끼어들었다.
그와는 달리 한껏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하메드 왕자.
그의 입에선 곧 내 의도를 정확히 꿰뚫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제야 알겠군요.]
불현듯 뱉어진 모하메드의 말에 하사드의 시선이 돌아갔다.
곧 그의 고개가 갸우뚱해지려는 찰나, 모하메드가 다시 말을 잇는다.
[쉽게 말해서 진회장은 지금 우리와 동맹을 구축하자는 겁니다.]
[동맹구축?]
하사드는 그게 웬 뜬금없는 말이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짧은 한숨이 모하메드의 입에서 뱉어진다.
[막말로 재우가 에너지 저장 분야에서 판을 뒤집으면 피해를 보는 것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특히나 유대계 세력들의 경우는 우리보다 피해가 커지죠. 전 세계 메이저 정유사들은 죄다 그들의 손아귀에 있으니까.]
[…….]
[그러니, 우리와 투자를 통한 동맹을 맺어서 그들로부터 재우를 지키겠다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