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6화
[2박 3일 간의 일정을 마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오늘 오전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정부는 이번 러시아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통해서…….]
다음 날 아침, 푸틴은 다시 러시아로 향했다.
그가 남겨주고 간 숙제로 인해 난 정신 없이 바쁜 상황.
특히나 극초음속 대함 미사일의 공동 개발이 확정됨에 따라 이제는 탈레스의 부서에도 변화를 주어야만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미사일 전문 개발센터를 만드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역시 체계통합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탈레스 내에 아예 연구와 제조를 일원화한 부서를 만들어 공대공 공대지. 그리고 지대공과 지대지를 미사일을 비롯하여 각종 대함미사일까지. 모두 한곳에서 연구와 생산을 담당하게 할 생각입니다.”
김 부사장은 꿀꺽 침을 삼켰다.
말이 부서지.
그 정도 규모면 하나의 회사를 설립하는 것과도 마찬가지인 마당이니 그로서도 꽤 당황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럼 지금의 R&D 규모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요?”
“R&D 비용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그룹회의를 열어서 탈레스의 R&D 규모를 족히 다섯 배까지는 끌어 올릴 생각이니까.”
“다섯 배요?”
김 부사장은 동그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되면 차후 KAI 인수 과정에서 자금 경색이 오지 않겠느냐는 말이 뒤이어졌지만 난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KAI의 가치가 당장 8조 씩이나 한다면 모를까, 그 이하라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 말에 김 부사장은 눈을 끔벅였다.
결국, 그건 우리에게 8조 원 가까운 여유자금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나 다름없으니까.
그것도 쌍웅자동차와 대유 트럭을 인수하고 난 시점에서.
하지만 그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정확히 따진다면 쌍웅과 대유의 인수에선 그리 많은 돈이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것.
사실 그 점은 정부의 부채 탕감. 그리고 채권단에게 우선주를 배당하여 차후 발행가에 우리가 그걸 되산다는 조건을 채권단이 받아들인 것이 큰 몫을 했다.
“또 어딜 가시려고요?”
몸을 일으키는 나를 보며 김 부사장이 의문을 표했다.
사업부를 개설했으면 그걸 이끌어갈 인력의 확충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지 않을까.
슬쩍 말을 내비치자 그가 따라나서기라도 할 듯 수트를 챙긴다.
“부사장님께선 그냥 센터 개설에만 신경 써 주시죠. 인력 확충은 저 혼자로도 충분합니다.”
“…….”
*****
“누굴 찾겠다고? 차성호? 우리 대학 동기인 그 차성호?”
점심마저 거르며 찾아온 보람이 무색할 만큼 희원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하긴, 천재라고는 해도 그렇듯 정신세계가 독특한 친구를 끌어들이는 것이 탐탁지는 않겠지.
하지만 그거야 사고방식 자체가 남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일 뿐, 그게 연구 분야에 있어서 걸림돌이 될 사안은 아니다.
“성호 놈이 비록 4차원 같은 구석이 많기는 했어도 인격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어. 아니, 놈의 그런 독특한 사고방식이 오히려 연구에는 더 도움이 됐지.”
그건 내 개인적인 판단이 아니라 사실이 그랬다.
대학원 졸업 이후 LS에 입사한 놈은 그 독특한 발상의 전환 능력 덕분에 각종 미사일 시커 개발에서 두각을 드러냈고, 결국 차후엔 이 나라 최고의 센서개발자가 되었으니까.
당장 각종 미사일 개발을 앞두고 있는 나로서는 놈의 능력이 꼭 필요했다.
“난 모르겠다.”
희원은 끝내 애매한 반응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윽.
하지만 난 즉시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고, 곧 놈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뭐냐, 설마 나보고 그 자식을 같이 찾아 나서자고?”
“찾아 나설 필요까지는 없어. 이미 LS에서 근무 중인 건 확인한 상태니까.”
“그럼 됐지 나를 왜 끌고 가려는 건데?”
그 말에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옛 기억이 떠오른 걸까, 놈이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난 그놈 만나고 싶은 생각 없어. 시발, 너도 알잖아. 그놈이 나에게 무슨 짓을 했었는지.”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한때 성호 놈으로 인해서 희원이 죽을 고생을 했었던 사건.
당시 유행했었던 피라미드에 빠진 성호 놈은 우리 중 그나마 만만했던 희원을 끌어들였었고, 희원이 역시 그들의 화려한 언변에 빠져 한동안 그 늪을 벗어나지 못했었던.
물론 차후엔 실체를 알고 빠져나오려 했지만 그게 쉬울 리가 있나.
결국,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한 두 바보를 태우기 위해 찾아간 곳은 강릉에 있던 어느 바닷가의 한적한 마을이었고, 당시 현승이와 난 몸무게가 무려 10킬로씩은 빠진 상태로 거리를 서성이는 놈들을 보곤 차마 웃지도 못했었다.
“그걸 성호 혼자만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을까? 어차피 너도 한동안은 그 바보 같은 일에 꽤 열심이었잖아.”
“젠장…….”
희원은 그 말에 꼬리를 내렸다.
그리고 이루어진 동행.
약속 장소에서 성호 놈을 기다리는 내내 희원의 입에선 불평이 끊이질 않았다.
“너 우리가 어떻게 탈출했는지 알고는 있냐?”
“나야 모르지. 그 부분에 대해선 너희가 끝까지 함구했으니까.”
희원은 그 말에 먼 산을 쳐다봤다.
마치 당시의 상황을 되새겨 보기라도 하듯.
이내 긴 한숨을 뱉어낸 그는 툭 말을 던졌다.
“우리……똥 퍼먹었어.”
“……무슨 소리야?”
“성호 그 자식이 그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미친놈이 되는 것뿐이라잖아. 그래서 방바닥에 똥 싸고 그걸…….”
이후 벌어진 뒷이야기는 차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뭐 대충 여차여차해서 결국엔 놈들 손으로 직접 두 또라이들을 쫓아냈다는 것밖에는.
아무튼,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한 놈이나, 또 그대로 따르는 놈이나 참 대단하다 싶다.
“여!”
한참 대화가 이어지던 와중 드디어 성호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과는 달리 제법 체중이 불어나 있던 놈은 막상 희원을 발견하자 멈칫, 하고 경계의 빛을 보인다.
“넌 왜 왔어?”
“시발, 내가 오고 싶어서 왔겠냐? 고용주가 같이 안 가면 짤라 버리겠다고 협박하니까 왔지.”
두 사람은 마치 대학 시절로 돌아가기라도 한 듯 한동안 티격태격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놈들을 지켜보던 나는 잠시 시계를 한번 쳐다보곤 성호를 향해 봉투 하나를 들이 밀었다.
“이건 뭐냐?”
“계약서야.”
“무슨 계약서?”
“너를 우리 회사로 끌고 오기 위한 조건이 담긴 계약서.”
“…….”
그 말에 성호가 힐끗 봉투를 쳐다봤다.
그러곤 예상과는 달리 슬그머니 그걸 다시 내게 밀어 넣고는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지금 회사로도 만족해.”
“왜, 의리 때문에?”
“의리는 개뿔. 거기 친인척이 있는 것도 아닌 마당에 뭔 의리 타령이야. 굳이 옮길 이유를 못 느끼니까 그런 거지.”
“그래도 조건은 보고 결정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슬그머니 봉투를 다시 밀었다.
하지만 놈은 끝내 그걸 열어볼 생각은 안은 채 고개만 가로저었다.
“뭐 보나 마나 연봉 좀 올려준다는 거겠지.”
왠지 토라진 분위기였다.
이유가 뭘까.
한참을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은 지금 놈이 LS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래도 한때는 다시없이 가까웠던 친우사이였음에도 끝내 놈을 탈레스로 끌고 가지 않았던 현승이의 태도.
“미안하지만 그땐 나도 힘이 없었어.”
슬며시 변명을 뱉어냈다.
역시나 그게 문제였던 듯, 놈이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투덜댄다.
“그럼 네가 회사에서 어느 정도 실권을 가졌을 때라도 찾아왔어야지.”
“그건…….”
그 점에 대해선 솔직히 할 말이 없었다.
저 토라진 놈의 마음을 무슨 수로 돌려놓지, 싶은 생각으로 입술을 축일 무렵 이번엔 갑자기 희원이 놈이 버럭 소리를 높였다.
“보고 있자니 가관이네. 야! 현승이가 그동안 해온 일을 좀 봐라. 시간이 남아났겠냐? 그리고 네놈이 뭐라고 이제야 찾아왔다고 뻗대고 지랄이야 지랄이. 너 경고하는데, 당장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으면 너희 회사에 죄다 소문내 버릴 테니 알아서 해.”
“무슨 소문?”
성호는 그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자신의 손에 커다란 무기가 쥐어져 있기라도 한 듯 의기양양한 표정의 희원이 툭 말을 뱉어낸다.
“뭐긴 뭐야, 새끼야. 네 화려한 과거지. 너 옛날에 똥 퍼먹은 거 기억 안 나?”
씨익.
그 순간 성호 놈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싶은 순간 그가 한껏 입매를 뒤틀어 보였다.
“똥은 네가 퍼먹었지. 내가 미쳤냐? 그걸 먹고 앉았게.”
“……무슨 소리야? 그때 네놈 입에 묻은 똥을 내가 분명히 봤는데.”
“븅신아, 입에 묻었다고 다 먹은 거냐?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넌 대체 그걸 왜 처먹은 거야? 그냥 흉내만 내면 되는 것을.”
“…….”
희원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이었다.
곧 잔뜩 붉어진 얼굴로 벌컥 자리에서 일어나선 성호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야 이, 시벌 놈아! 그러고도 네가 친구냐?”
“됐고!”
난 그 시점에 소리쳐 두 사람을 만류했다.
곧 나 스스로 봉투에서 서류를 꺼내 들곤 그걸 성호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
“네게 주어질 직책은 센터장이다. 그리고 연봉은 지금의 딱 4배. 이게 내가 제시할 수 있는 한계야.”
“…….”
성호 놈은 전과 달리 심각한 내 표정을 보곤 눈을 끔뻑였다.
그리고 한참을 ‘센터장’이라는 단어를 거듭하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펜을 끄집어냈다.
“최소 한 달 정도는 시간 줘야 해.”
“물론.”
그 말에 즉시 대꾸했다.
힐끗 쳐다본 희원이 놈은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던 상태.
눈빛으로 놈을 다독이려던 차에 성호의 말이 다시 날아들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나 외에 다른 인력들을 빼내오는 건 불가능해.”
“나도 그건 바라지 않아.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어차피 내가 들고 있는 설계안들이라면 우리가 보유 중인 연구인력들로도 현실화하는 것이 충분하거든.
그럼에도 성호가 필요한 이유를 굳이 대라면 그 설계안이 죄다 성호 저놈의 작품이기 때문이랄까.
쉽게 말해서 난 지금 내가 보유 중인 기술들의 원 개발자를 손에 넣고 싶은 거다.
그래야 앞으로도 개발에 속도가 붙을 테니까.
“아! 조건이 하나 더 있다.”
막 사인을 마친 성호는 불현듯 고개를 들며 말했다.
또 무슨 엉뚱한 말이 나올까 싶어 쳐다보자 그가 희원이 놈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곤 갑자기 진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 번쯤은 좀 친구 놈들끼리 이런 자리 좀 만들면 안 되겠냐?”
“…….”
그 말을 듣는 순간 잔뜩 찌푸려져 있던 희원의 표정이 금세 풀어졌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놈이 기어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실은 얼마 전에 준이놈 납골당에 다녀왔다. 놈의 뼛가루를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인생이 뭐라고 대체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은.”
“…….”
******
“회장님 친구분 성격이 꽤 독특하더군요.”
며칠 후, 성호와의 면담을 끝낸 김 부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4차원이 어딜 갈까.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선을 넘어서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는데, 그 점에선 김 부사장도 후한 점수를 준 듯한 모양새다.
“생각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예의가 없거나 개념이 없는 친구는 절대 아닙니다. 아니, 진면목을 안다면 오히려 떨쳐내기 힘든 타입이죠.”
“뭐 그거야 겪어보면 알겠죠. 아무튼, 미사일 개발 센터는 이것으로 전체적인 레이아웃이 잡힌 것 같으니 곧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탄조끼는 벌써 시제품이 나온 겁니까?”
김 부사장이 앉아있던 소파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방탄조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대체 집무실인지 연구실인지 원.
일에 열중하는 것까지는 좋다만, 왠지 보고 있는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시제품은 이미 3개월 전에 나왔습니다. 어차피 금속 해면체 기술이 확보된 상황이라서요. 참! 안 그래도 보고를 드리려던 참이었는데, 보름 전쯤 약 200벌의 시제품을 미 육군에 보냈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조끼를 손에 쥐고 다가온 김 부사장은 그걸 손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혹시나 해서 마이클 중장에게 접촉을 해봤습니다. 안 그래도 미군 역시 신형 방탄복을 개발할 예정에 있다는 소문이 있어서요. 그랬더니 샘플을 좀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무심히 대꾸하곤 조끼를 받아들었다.
소프트 아머에 플레이트를 삽입했음에도 무게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상태.
게다가 세라믹 플레이트와는 달리 쉽게 구부러지는 탓에 활동성 하나만큼은 보장된 물건이지 싶었다.
“피탄 테스트는 해보셨습니까?”
“물론이죠. 일반 소총탄은 물론 철갑탄 방호능력도 확인했습니다.”
그 정도라면 승산은 있었다.
아니, 인적 피해를 극도로 꺼리는 미군으로서는 병사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물건이 나온 마당이면 눈이 뒤집힐 수도 있을 상황.
발 빠른 김 부사장의 행보가 그저 대단할 따름이다.
“조만간 마이클 중장과 통화를 해봐야겠군요.”
“통화는 제가 할 테니 회장님은 그 부분까지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럼 저야 고맙죠. 아! 그리고 저는 며칠 자리를 비울 겁니다.”
“어디 출장이라도 가십니까?”
“HVP 최종 납품 건으로 UAE를 방문할 예정이거든요. 그 길에 겸사겸사 사우디도 좀 들러볼 생각입니다.”
짧은 대꾸를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작스러운 내 사우디 방문 소식에 당황한 듯 김 부사장이 서둘러 되묻는다.
“사우디에는 왜 가신다는 겁니까?”
스윽.
난 다시 그를 쳐다봤다.
이내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돈 좀 뜯어내러 갑니다. 아니 그보다는 안정된 우군을 확보하러 간다고 해야겠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