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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75화 (75/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5화

이후 이어진 만찬장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진 회장님은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되시오.]

2박 3일의 일정을 예정하고 왔다는 그는 생뚱맞게도 내게 다음 날의 일정에까지 참여하기를 원했고, 난 잠시간 비서실장과의 대화 끝에 그의 제안에 동의했다.

스윽.

잠시 쳐다본 만찬장의 한 곳에서 알렉세이와 나타샤가 대화 중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알렉세이는 국정원과의 교류를 목적으로. 그리고 나타샤는 푸틴의 경호원 자격으로 방문했다고 하는데, 그녀가 왜 갑자기 정보부처에서 경호처로 자리를 옮긴 것인지는 조금 의문이다.

[이제야 인사를 나눌 시간이 찾아오는군요. 오랜만입니다, 진 회장님,]

눈이 마주친 알렉세이가 먼저 다가오며 아는 체를 했다.

그동안 쌓인 관계가 있어서일까, 악수를 나누는 우리 사이에선 어색함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살이 조금 찌신 것도 같고, 요즘 국장님께선 건강 관리에는 영 신경을 안 쓰시는 모양이군요.]

[하하, 그래 보입니까? 하긴, 정신상태가 좀 안일해진 것은 사실이죠. 그동안에는 푸틴 각하를 어떻게든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았지만 이젠 그 원대한 꿈을 이뤘으니까.]

웃으며 건넨 농담에 알렉세이가 제법 뼈 있는 대꾸를 했다.

저 말을 다시 해석하자면 스스로가 푸틴의 핵심 심복임을 드러내는 것.

그 순간 잠시 뇌리를 스친 것은 역사적으로도 정말 그랬던가, 하는 의문이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푸틴의 곁에 끝까지 남아 있던 유명한 인물 중에 알렉세이라는 이름은 없었거든.

내가 러시아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죄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니만큼 그건 시간이 지나 봐야 답이 나올 문제일 거다.

[그나저나 진 회장님에게 말씀드리기엔 조금 민망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말에 즉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 그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곤 속삭이듯 말한다.

[얼마 전, 수호이 개발국에서 사건이 하나 벌어졌습니다.]

[…….]

순간 최인배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한때 개발국이 시끄러운 적이 있었다는.

딱히 아는 체를 하기도 그렇고 해서 가만히 그의 입만을 주시했다.

[수호이 개발국 직원 중에 중국 선양항공제작공사에 포섭당한 연구원이 한 명 있다는 것을 우리 정보국에서 밝혀냈습니다. 그 때문에 몇 달 전, 나타샤가 움직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왠지 그런 문제일 것 같기는 했다.

의외인 것은 이번엔 일본이 아니라 중국 측에서 벌인 일이라는 것.

하긴, 일본이 러시아의 기술탈취를 목적으로 첩보전을 벌일 이유는 없겠지.

당시 내 사건도 러시아가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목적이었고.

게다가 이때쯤 중국이 전투기 개발 기술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무렵이었으니 중국이 그런 일을 벌였다 해서 딱히 이상할 것은 없는 상황이다.

‘그나저나 누군지는 몰라도 불쌍하네.’

나타샤가 움직였다면 결과야 뭐…….

[그런데 나타샤는 왜 갑자기 정보국을 떠나 경호처로 이동을 한 겁니까?]

문득 그게 궁금하여 물었다.

곧 자연스레 시선이 그녀를 향했고, 마침 푸틴의 근처에 있던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도 그건 좀 아쉽습니다. 해외정보국 최고의 요원이 고작 경호처로 자리를 옮기다니.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각하의 뜻이 그런 것을.]

[푸틴 대통령께서 직접 그녀를 경호 인력으로 불러들였다고요?]

[그렇습니다. 애초 그녀를 해외정보국으로 발탁한 것도 각하였거든요. 워낙 눈치가 빠르고 상황 판단력이 좋은 친구라서 주변에 두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왠지 이해가 갈 듯도 했다.

당시 나도 같은 인상을 받았으니까.

솔직히 내 주변에서 본 어느 남자들도 그녀처럼 강단 있고 판단력이 빠른 존재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저나 내일 푸틴 각하께서 한국의 산업 공단들을 시찰하실 예정인 것 같습니다. 진 회장께서도 바쁘지 않으시면 함께 하시죠.]

[안 그래도 그럴 예정입니다.]

푸틴의 산업현장 방문은 러시아 경제가 본격적인 태동을 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동안 극도로 불안정하던 정치 상황이 그의 집권으로 급격하게 안정되어 가고 있는 상태.

이후 한동안 지속할 저들의 성장은 가히 폭발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데, 그걸 감안하면 사실 지금 푸틴과의 친분을 좀 더 쌓아두는 것도 필요하긴 하다.

[그거 아십니까? 세계은행이 한때 우리 러시아의 지하자원 규모를 300조 달러에 달할 거라는 보고서를 내놨다는 것.]

생각이 깊어질 무렵, 알렉세이가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자 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잇는다.

[실은 이번에 푸틴 각하께서 한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지하자원 개발에 대한 협력을 구축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겁니다.]

[…….]

순간, 머리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달라진 내 눈빛을 의식한 걸까, 알렉세이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내비쳐진다.

[난 진 회장님께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싶군요.]

[그럼 내일 산업현장 시찰에 제가 동행하길 원하시는 이유가…….]

[내 추측에 의하면 그걸 은밀히 논의하고 싶으신 걸 수도 있습니다. 아! 참고로 석유와 천연가스마저 공동 개발하자는 것은 아니니 그 점은 염두에 두시고요.]

나로서도 석유와 천연가스 같은 주요 자원의 공동 개발 가능성은 기대조차도 하지 않는다.

러시아로서도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그것을 내어줄 이유는 없으니까.

그럼 분명 여타 광물 자원의 개발을 논하자는 것일 텐데, 그것만으로도 전략적 가치는 어마어마하기에 주저할 이유는 없다.

아니, 오히려 또 하나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 해야겠지.

‘문제는 저 차르가 향후 돌아이 기질을 발휘한다는 것인데…….’

한 가지 염려되는 것은 2014년 벌어질 크림반도 사태였다.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병합해 버린 사건.

그로 인해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게 되는데, 차후 복잡하게 돌아갈 국제정세 속에서 안정된 자원 투자가 가능할지는 사실 미지수다.

‘하긴 유럽 측도 그 제재라는 것을 차후엔 흐지부지 해버렸으니 뭐…….’

문득 그 점이 뇌리를 스쳤다.

처음엔 각종 국제단체에서 러시아를 축출해가며 제재에 강력하게 동참했던 유럽.

하지만 몇 년 후 슬그머니 그걸 회복시키더니 다시 러시아를 국제사회로 끌어들이려 노력한 것이 그들의 태도였다는 것.

뭐 말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반발심이 큰 역할을 했을 거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만이 이유일까?

난 그보다는 러시아가 가진 자원이 더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크림반도 사태를 굳이 염려할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에 나오는 광물 자원 중 러시아 땅에 묻혀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지. 더군다나 푸틴과의 친분까지 이렇듯 돈독한 상황에서 그런 기회를 그냥 넘겨 버리면 바보나 다름없지 않을까?’

******

[한국의 경제 성장은 정말로 놀라울 따름이군요.]

다음 날, 주요 산업단지를 시찰한 푸틴은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이것으로 벌써 다섯 곳째.

그럼에도 지치기는커녕 또 다른 곳을 시찰하고 싶다며 나서는 그를 보며 정부 측 인사들은 거의 울상이 되어갔다.

[진 회장은 안 피곤하시오?]

생각 없이 그의 뒤를 따르던 차에 불현듯 질문이 날아왔다.

나라고 피곤하지 않으면 그게 사람일까.

하지만 당장 손님인 그가 저렇듯 팔팔한 마당에 지친 기색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참고 있는 중이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예정된 곳들은 이미 다 둘러보신 것 같은데요?]

[한 곳만 더 둘러보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안 되겠습니까?]

그 말에 우리 정부 부처 직원들이 난감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원활한 시찰을 위해선 미리 방문 일정을 잡아놔야 하는데, 그걸 무시하고 들이닥치기는 부담스러웠던 거지.

나를 향하는 공무원들의 눈빛이 간절하다 못해 처절할 지경이었다.

[어딜 그렇듯 가고 싶으신 겁니까.]

슬며시 운을 떼봤다.

그러자 그는 생뚱맞게도 자동차 공장을 언급했다.

[현우 자동차 제조공장을 가보고 싶소.]

“죄송하지만 지금 현우 자동차는 노사분규로 인해서 상황이 조금…….”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정부 측 인사가 끼어들며 다시 난색을 표했다.

순간 문득 떠오른 것은 우리가 이번에 인수한 쌍웅 자동차 공장.

어차피 자동차 공장이야 다 거기서 거기인 마당에 굳이 현우를 고집할 이유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럼 차라리 평택으로 모시고 가죠.”

“평택이라면…….”

“맞습니다, 쌍웅자동차 공장이 평택에 있죠.”

정부 측 인사는 그 말에 화색을 띄었다.

이내 푸틴을 향해 사실을 말하자 그가 한껏 눈을 빛내며 나를 쳐다본다.

[재우에서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다고요?]

******

“방문을 환영합니다.”

이후 푸틴의 방문을 맞은 쌍웅 자동차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VIP의 방문이야 뭐가 문제가 될까만은 그로 인한 조업 차질은 공장장으로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터.

그나마도 공장장의 표정이 그리 어둡지 않았던 것은 회장인 내가 직접 주도한 시찰이라는 사실 때문일 거다.

[공장 규모가 어마어마하군요.]

한참 공장 곳곳을 둘러본 푸틴은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국과는 비교조차도 되지 않는 선진화된 시스템이 욕심난 듯.

이젠 나라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그로서는 당연한 감정이었을 거다.

[우린 그냥 한 차로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소.]

시찰을 끝내고 차로 향하던 차에 푸틴이 나를 쳐다보며 불쑥 말을 뱉어냈다.

왠지 전과 같지 않아 보이는 심각한 표정.

난 잠시 정부 인사들과의 짧은 대화 끝에 결국 그에게 배정되었던 차량에 함께 올라탔다.

[저 공장을 보고 있자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재우 그룹과 우리 러시아의 협력이 꼭 군수 분야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은…….]

[…….]

불현듯 알렉세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러시아의 지하자원 개발.

혹여 지금 그걸 거론하고자 하는 걸까?

하지만 막상 뱉어진 다음 말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혹시 재우도 우리 러시아에 자동차 공장을 지으면 어떻겠습니까?]

[…….]

[그렇게 되면 바닥을 기고 있는 러시아의 산업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도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 그건 좀 곤란할 것 같군요. 쌍웅은 한국에서도 아직 정상화 단계에 돌입하고 있지 못한 상태거든요.]

[그렇다 해도 진 회장의 능력이면 곧 정상화가 가능할 것 아니겠소? 그리고 차후 동유럽 시장에 진출할 의향이 있다면 러시아에 공장을 하나쯤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텐데요?]

동유럽 시장의 교두보로 삼기엔 러시아가 적당하기는 하다.

오죽했으면 역사적으로도 현우 자동차 또한 러시아에 공장을 설립했을 정도니까.

그나저나 저렇듯 거듭 강조하는 것을 보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거 상황이 조금 난감하다.

[만약 재우가 러시아에 자동차 공장을 설립해 준다면 나도 선물을 하나 드리죠.]

[…….]

[지금 러시아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광물자원개발에 재우가 정식으로 참여할 기회를…….]

[공장 위치는 어디가 좋겠습니까.]

[…….]

그의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태세전환을 시도했다.

당황스러웠던 걸까, 푸틴은 헛웃음을 뱉어내곤 다시 말한다.

[조만간 러시아에서 다시 봅시다. 아! 이번엔 시간을 좀 넉넉히 잡고 오면 좋겠소. 자고로 연어낚시는 시간에 쫓기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서.]

[최대한 빨리 스케줄을 잡도록 하죠.]

푸틴은 그 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큰 선물을 받아버린 상황.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차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참, 어제 이야기했던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개발 사업 말입니다. 그걸 굳이 연말이 되어서야 시작하는 건 괜한 시간 낭비일 것 같은데, 진 회장 생각은 어떻습니까?]

[…….]

[솔직히 재우와 우리가 사업을 함께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소. 하니 굳이 불필요한 과정은 치우고 곧바로 시작하자는 말이오.]

일을 서두르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지금 러시아의 해군력은 미국에 비한다면 극히 열세인 상태.

당장 비대칭 무기만이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감안하면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흠…….]

하지만 우리에겐 예산확보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저 거물이 그걸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닐 테고, 왠지 자력개발을 유도하는 듯한 분위기다.

뭐 결국엔 그런 거지.

어차피 우리 대통령까지 승인을 한 마당이면 예산 통과는 문제가 없을 일이니 차라리 자력으로 개발을 하고 후에 돈을 받아내라는 것.

하긴, 극초음속 무기의 경우는 전략자산의 범주에 포함되기에 예산안 통과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터.

더군다나 국방위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여당임을 감안하면 통과 가능성은 거의 100퍼센트에 달하는데, 고작 천억 원 수준의 개발 비용쯤 미리 감당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제가 한동안은 또 바빠지겠군요.]

푸틴은 그 말에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연이었을까, 막상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제법 그럴듯한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쳐 갔다.

‘그러지 말고 이 기회에 아예 탈레스에 미사일 개발 전문 센터를 만들어 버려? 어차피 전투기 개발을 시작하면 무장도 준비해야 하는데, 그때를 위해서 미리 꾸려 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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