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4화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2001년 1월 29일, 내겐 푸틴보다 앞서 반가운 손님이 본사를 찾아왔다.
수호이 설계국에 파견근무를 갔던 최인배가 드디어 복귀한 것.
예정된 기간보다 몇 개월이나 귀국이 늦어지고 있었기에 내심 애를 태우고 있던 터였다.
“얼굴이 많이 탔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전 눈에 반사된 햇빛에도 얼굴이 탈 수 있다는 건 또 처음 알았습니다.”
그는 제법 까무잡잡해졌다는 것 외엔 별다른 변화는 없어 보였다.
예정보다 수개월이나 복귀가 지체된 이유를 묻자 그가 반짝 눈을 빛낸다.
“기왕이면 최대한 뽑아먹을 건 뽑아먹고 와야겠다는 생각에서 늦었습니다.”
“그래서, 성과는 좀 있었습니까?”
“없는 편은 아니지요. 한 3개월 전쯤부터는 오히려 저들이 제가 구성한 알고리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정도니까요.”
그의 실력을 이미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는 나로선 그 말이 단순한 허풍이 아님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터에 그의 복귀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도 같은 상황.
난 이날을 위해서 준비한 것을 꺼내기 위해 책상으로 향했고, 그는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그게 뭡니까?”
최인배는 내가 책상 서랍에서 꺼낸 하드디스크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말없이 그걸 데스크탑에 연결하곤 그를 향해 손짓하자 그가 어정쩡한 몸짓으로 다가왔다.
“한번 살펴보세요.”
그 말에 최인배가 파일을 열었다.
연결프로그램의 구동과 함께 주룩 화면을 수놓은 것은 어마어마한 양의 소스코드들.
놀란 그는 한참을 작업줄 곳곳을 살펴봤고, 곧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이건…….”
그가 보고 있는 것은 KFX의 무장제어, 그리고 미션컴퓨터의 일부 소스코드였다.
한때 미국이 그렇게나 이전을 거부했었던.
하지만 끝내 우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전투체계들.
난 그것과 러시아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융합하여 전보다 확장된 우리 플렛폼의 전투체계를 다시 잡아나갈 예정이고, 그러기 위해선 최인배에게 이걸 공개할 때가 찾아온 거다.
“아무리 봐도 미국 전투기들의 소스코드 알고리즘과 흡사한 방식 같은데, 대체 어디에서 나신 겁니까?”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애초 KAI가 FA-50 개발과정에서 얻은 노하우를 기초로 개발을 했다는 것이 정론이기는 한데.
단지 그것만을 기초로 했다기엔 지나치게 개발 속도가 빨랐거든.
한때는 그 경악스러운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에 놀라 몇 번이고 정부 관계자에게 질문해본 적도 있었지만 늘 시원한 대답은 듣지 못했던 상태였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로서도 해 줄 수가 없군요.”
그나마 나름대로 해답을 얻은 것은 KFX가 배치2 개발이 들어섰을 무렵이었다.
정확히는 미국에서 스파이 활동 혐의를 받아 3년 넘게 복역한 어느 한국인 사업가가 형기를 채우고 석방되었다는 뉴스를 본 날.
당시 TV 화면에 비친, 익숙한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난 그가 바로 비약적이었던 KFX 소프트웨어 개발 속도의 단서였음을 확신했었다.
‘이름이 김신호였던가?’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2010년 무렵이었다.
당시 ADD 소장과 함께 KAI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그를 소개받았고, 한동안은 교류도 지속했었지.
그때 들은 바에 의하면 한때 그가 미국 노키드 사에서 10년 넘게 근무를 했던 베테랑 소프트웨어 개발자였다고 하는데, 당시 그가 담당했었던 것이 F22 전투기 개발사업이었다는 것이 내 호기심을 끌었었다.
‘물론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당시 정황들이 너무 확실했단 말이지.’
그게 아니라면 멀쩡히 드론 사업에 몰두하던 그가 갑자기 미국에서 스파이 혐의를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물론 스파이 치고는 꽤 형량이 낮기는 했지만, 그건 사법적 뒷거래의 결과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형기를 낮추는. 뭐 그런 거.
당시 그 문제가 불거지며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졌던 적이 있었고, 이후 정부 간 모종의 거래가 오고 갔다는 소문도 있었으니 내 생각이 영 틀린 것만은 아닐 거다.
“아무튼, 이걸 참고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최선을 다해보죠.”
최인배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하드디스크를 챙겨 들었다.
돌아서는 그를 따라나서는 보안요원들의 수는 3명.
그의 안전을 보장하고자 새로 조직된 경호업체의 보안요원 일부를 배정한 결과인데, 다행히 그도 큰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았다.
“참, 그사이 나타샤를 불러야 할 만한 일은 없었겠죠?”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그를 향해 말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꾸한다.
“직접 불러야 할 일은 없었지만, 나타샤라는 여인의 얼굴을 본 적은 있습니다.”
“그녀를 만났다고요?”
“네, 당시 그녀가 왜 설계국에 방문한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설계국 전체가 좀 소란스럽기는 했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뭔가 내가 모르는 일이 벌어졌었던 모양이었다.
예를 들면 어디에서 또 간자를 보냈다거나.
그럼에도 러시아 당국이 내게 사실을 알려오지 않았다는 건 둘 중 하나의 경우일 거다.
내가 굳이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수준의 문제였거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것이거나.
‘후자 쪽일 가능성이 크겠군.’
******
빰빠바바밤!
2월 18일.
대통령에 취임한 푸틴이 드디어 한국 땅을 찾았다.
향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러시아를 지배할 인물.
마치 그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비행기에서 내리는 그의 걸음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척척!
가장 먼저 그를 마중 나간 것은 대통령과 영부인이었다.
서로를 향해 한껏 웃어 보인 두 정상은 손을 마주 잡은 채 잠시간 대화를 이어갔고, 이후 의전 차량에 올라 청와대로 향했다.
“우리도 이만 출발하죠.”
푸틴의 요구로 첫날부터 행사에 참석한 나는 국정원장의 차량을 타고 행렬을 뒤좇았다.
이후 도착한 곳은 청와대 영빈관.
또 한 번의 의전 행사를 치른 두 정상은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 속에서 잠시간의 환담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후 사전회담을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만찬장에 미리 가 있어도 될 것 같군요.”
돌아가는 분위기로 봐선 내가 굳이 회담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없을 듯하여 물었다.
같은 생각을 한 듯 국정원장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즉시 만찬이 예정되어 있는 곳으로 향하려는 차에 갑자기 비서실장이 헐레벌떡 달려오며 나를 향해 손짓했다.
“진현승 회장님. 잠시 안으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요?”
의아한 마음에 되물었다.
지금 저 안에선 정부 주요 관료들과 대통령이 러시아 대표단과 합동 회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
나를 부를 이유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어서 와요, 진 회장.”
들어선 회의장의 분위기는 내 예상과 달랐다.
그 많던 각료들은 죄다 어딜 가고 대통령과 푸틴. 그리고 통역과 경호 인력만이 자리하고 있던 상태.
뭔가 은밀한 대화들이 오고 간 듯한 느낌이다.
[오랜만이오, 진 회장.]
나를 발견한 푸틴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벌린다.
누가 보면 꼭 반가운 친우를 다시 만나기라도 한 듯한 그의 태도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동그랗게 떠진다.
그런 눈으로 볼 것 없어 이 사람들아.
나와 그는 연어낚시 한번 같이 한 것밖에는 없다고.
하긴, 그가 연어낚시를 제안했던 사람이 몇 안 된다는 소문이 있기는 하다만.
[앉으시오. 실은 진 회장과 협의를 할 일이 있어서 대통령님께 양해를 좀 구했습니다.]
그 말에 슬쩍 대통령을 향해 눈길을 줬다.
무슨 대화가 오고 갔던 걸까, 대통령의 얼굴빛이 자못 흥분된 상태임이 느껴진다.
[저와 따로 협의할 것이라면…….]
[조금 전, 난 대통령님께 러시아와 재우 그룹이 초음속 대함 미사일을 공동개발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
순간 당황스러웠다.
역사적으로 러시아가 초음속 대함미사일을 공동개발하는 국가는 우리가 아니라 인도여야 하거든.
일명, 야혼트.
또는 브라모스라고 불리는 물건.
2002년쯤 실전배치가 되는 것이 역사이니 지금쯤은 이미 개발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있을 상황이었을 것이건만.
왜 갑자기 그걸 우리에게 제안하겠다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재우를 지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푸틴은 그 질문에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마치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한 의미의.
이내 눈앞에 있던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켠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실은 우린 이미 인도와 초음속 대함미사일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오. 하지만 변수가 하나 생겨났고, 결국 인도와의 공동 개발은 잠시 보류해둔 상태요.]
[…….]
변수가 무엇인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질문하지 않아도 곧 튀어나올 분위기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말을 잇는다.
[혹시 우리가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을 개발 중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저들이 원자 스핀 자이로를 얻기 위해서 죽자고 달려들었을 때부터.
그런데 갑자기 이 자리에서 그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지?
아무리 공공연한 비밀이라곤 해도 그걸 이런 자리에서 막 까발려도 되는 건가?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만…….]
[하긴, 정황들이 워낙 확실했으니까. 아무튼, 난 그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 기술을 대함미사일에 적용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 봤소.]
[대함 미사일을 말입니까? 하지만 극초음속의 경우는 초음속 미사일과는 달리 제어가 쉽지 않습니다.]
난 즉시 극초음속 순항 미사일의 단점을 지적했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인해서 정밀한 컨트롤이 불가능하다는 점.
그런데 내가 뭔가를 실수한 걸까, 푸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꼭 개발에 참여해본 사람 처럼 말하는군요.]
개발에 참여해 본 것은 사실이다.
한때 우리가 러시아의 기술을 이전받아 자체개발을 시작했을 무렵.
하지만 결국 난 끝을 보지 못한 채 회귀를 했고, 그 탓에 극초음속 기술은 극히 일부만을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미사일의 제어능력은 속도와 반비례한다는 것이 상식 아니겠습니까.]
어물쩍 대꾸하곤 그의 눈치를 살폈다.
제법 그럴법하다는 생각을 한 듯 그는 헛웃음을 뱉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진 회장 말처럼 제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오. 특히나 종말 단계에서 시스키밍이 가능하기 위해서 극복할 난관이 한두 개가 아니지. 해서 재우와 공동 개발을 제안하는 것 아니겠소?]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눈앞이 막막했다.
극초음속 미사일로 종말 단계에서 시스키밍을 구사해야 한다니.
결국 활공체 방식이 아닌, 스크램제트 방식을 고집하는 것 같은데.
저 양반은 재우가 외계인이라도 고문하고 있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극초음속으로 시스키밍을 구사하는 것은 힘듭니다. 정밀 제어가 불가능함은 둘째 치고, 그 정도 속도로 바다 위를 저공비행 했다간 수면에 반사되어 돌아오는 공기의 마찰열이 어마어마할 테니까요.]
[그래서 재우의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오.]
난 우격다짐하듯 재촉하는 그의 태도에 차마 할 말이 없어 침묵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은 굳이 안 될 것도 없지 않을까 싶은 무모한 도전정신.
다른 건 몰라도 미사일의 내열 기술이야 우리가 개발 중인 소재들로 커버가 가능할 것도 같았거든.
[흠…….]
아니 막상 생각해 보니 우리가 가진 것들이 꽤 많기는 하다.
일단 내장될 AESA의 성능도 그렇고. 지형대조 센서 기술과 정밀제어기술은 이미 2025년도에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았던 것들.
뭐 여타 다른 문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거야 미사일 강국인 러시아와 협력만 제대로 된다면 해결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 보였다.
[해군력이 부실한 대한민국으로서는 그게 개발되면 큰 힘이 될 텐데요?]
그는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말을 뱉어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나도 그 점은 동의한다.
사실 극초음속 대함미사일 같은 무기는 당장 해군력이 부실한 우리로서는 꼭 필요한 무장이기는 하거든.
그게 아니면 이지스 함정을 몇 척이나 보유 중인 일본이나 향후 극적으로 해군력을 발전시키는 중국을 억제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데 항공모함도 격침이 가능 할 정도로 강력한 비대칭 무기를 우리가 확보한다?
그럼 우리로서는 천군만마를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스윽.
난 다시 대통령을 쳐다봤다.
단지 눈빛으로 이루어진 대화였지만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가능한 상태.
그의 고개가 끄덕여짐과 동시에 대답을 뱉어냈다.
[하죠. 까짓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