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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72화 (7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2화

“오랜만이네요, 회장님.”

한지연 기자의 명랑함은 여전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제법 기자다운 티가 난다는 것.

사실 그 기자다움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사람을 대함에 있어 능수능란해졌다는 것을 뜻하는데,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사실 판단하기 어렵다.

“뭐로 주문을 해 드릴까요. 오늘은 특별히 비싼 걸 드셔도 상관없습니다.”

“어머, 이거 갑자기 겁이 나려고 하는데요? 회장님께서 갑자기 먼저 만나자고 하신 것도 좀 이상하고.”

그녀는 슬쩍 경계의 눈빛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무려 10만 원에 달하는 코스요리를 주문하는 대담함을 보면 이젠 정말로 햇병아리 시절은 벗어난 느낌이다.

“이거 진짜 맛있네요.”

한동안은 그녀가 배를 채우길 기다렸다.

걸신이라도 들린 듯 정신없이 젓가락질을 하길 30분째.

그녀의 손이 슬그머니 물잔을 향해 갈 무렵에 본론을 끄집어냈다.

“우리 기사 하나만 터트립시다.”

“무슨…….”

그녀는 대뜸 치고 들어오는 내 태도에 잠시 당황했다.

상관하지 않은 채 서류봉투를 건네자 의아하다는 표정과 함께 그걸 살핀다.

휙!

한참 집중하던 그녀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표정으로 봐선 적지 않게 놀란 듯.

막상 뱉어내는 말도 문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다.

“시민 단체로 이 많은 돈이…….아니, 왜 이렇게 많은 돈이 한꺼번에 시민 단체에 입금된 거죠?”

“액수도 액수지만 계좌들이 전부 세탁과정을 거치기 위해 동원된 것들이라는 것이 더 문제죠. 조사결과 돈을 보낸 단체들이 대부분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곳들이었습니다.”

난 짧은 설명과 함께 한동안 중국과 어용 시민 단체들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물론 그들의 목적을 포함해서.

설명을 들은 한지연의 얼굴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하필이면 이럴 때…….”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데스크에서 이걸 방송에 허용할지가 걱정이라서요. 안 그래도 최근 저희가 시민 단체 한 곳을 건드렸다가 호되게 당한 적이 있거든요.”

그 사건은 나도 기억한다.

TBS의 추적 보도팀이 최근 시민 단체 한 곳의 사업 현황을 문제 삼았다가 벌떼처럼 들고 일어선 다른 단체들에 의해 방송국을 점령당했던 사건.

하지만 그거야 방송국 측의 오보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건 상황이 전혀 다르지 않던가.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이게 없는 사실을 전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와는 달리 지금 시위단체들의 성향도 사실상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기자님께서 더 잘 아실 텐데요?”

“네, 안 그래도 그 부분은 저희도 조금은 수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방송국 일이라는 것이 또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죠.”

“…….”

“당시 사건이 터졌을 때 시민 단체들이 우리에게 광고를 주는 업체들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전개하겠다는 협박을 했었거든요. 그 마당에 시민 단체를 또 건드려 놓으면 정말로 광고수익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으니 데스크로서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 데스크가 결정을 내리기 쉽게 만들어주면 되는 겁니까?”

“…….”

“그럼 전하세요. 만약 기사가 나가지 않으면 저들의 불매운동에 의한 광고수익 하락은 애교 수준일 정도로 당장 광고가 끊어질 거라고.”

한지연은 그 말에 나를 빤히 쳐다봤다.

불쾌하다는 표정은 아니었고, 좀 흥미롭다는 듯한 눈빛이다.

“재우야 어차피 우리 방송국에 광고를 주는 것도 별로 없잖아요.”

그녀는 곧 핵심을 찔렀다.

틀린 말은 아니지.

방위산업체가 방송에 광고를 줄 일이 뭐가 있다고.

그나마 건설에서 조금씩 광고를 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데스크를 위협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우린 그렇다 쳐도 삼정이라면 문제가 달라지죠.”

하지만 삼정의 경우는 다르다.

미래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삼정의 광고는 방송국을 거의 먹여 살리다시피 하는 정도.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국정원장이 이미 이용문 회장에게 도움을 청해둔 터였다.

“이런…….”

한지연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털었다.

이내 한참을 다시 서류를 살피던 그녀는 휙 하고 다시 나를 쳐다본다.

“대체 왜 이런 일에까지 관여를 하시는 건지 물어도 될까요?”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 정확한 답은 없었다.

공항을 건설한다고 해서 내가 그 공사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지, 생각해보니 재우 건설이 참여할 수도 있겠구나.

뭐 설사 그렇다 해도 명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쥐뿔도 없었던 애국심이 조금이나마 생겼다고 해두죠. 아니 그보다는 자존심 좀 챙기고 싶다고 해야 옳겠군요.”

“…….”

“내가 한때 주변으로부터 자존심 상하는 일을 하도 많이 겪어놔서 이젠 안 당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

한지연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로선 그게 가장 정확한 이유다.

시발.

솔직히 자존심 상하잖아.

회귀까지 한 마당에 이 나라가 또 내정간섭이나 당하는 걸 지켜보는 것은.

그리고 아직도 이 나라를 자신들의 식민지쯤으로 여기는 놈들의 코를 쥐어박지 못 한다면.

******

[TBS 탐사 보도입니다.]

다음 날, 한지연은 결국 데스크를 설득하여 백령도 공항에 얽힌 시민 단체들에게 유입된 불법 자금을 기사화했다.

처음엔 계좌 추적을 문제 삼아 맞서던 어용시민단체들은 점점 악화되는 여론에 결국 대응을 포기했고, 그 이튿날엔 검찰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충격이네요. 이게 나라를 팔아먹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이 기회에 시민 단체로 위장한 어용단체들을 발본색원해야 합니다.]

어용단체들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더 끓어올랐다.

그 탓에 제대로 된 시민 단체들마저 피해를 본 것은 안타까운 부작용.

하지만 건전한 시민 단체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걸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우린 한국의 내정에 간섭할 생각이 없으며…….]

들고 일어서는 반중 물결에 뜨끔한 중국은 다급히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덕분에 백령도 공항 건설 문제를 항의한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상황.

더군다나 이번엔 미국마저 나서서 우리의 편을 들어주는 터라 비공식적인 항의조차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하긴, 미국으로서도 서해상에 불침 항모가 생기면 나쁠 것은 없겠지.

[다사다난했던 2000년이 어느새 과거가 되었습니다.]

신년을 맞은 앵커의 멘트처럼 지난 2000년은 꽤 다사다난했다.

다른 걸 떠나서 이 나라가 북의 도발에 몇 번이고 시달렸으니까.

그나마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IMF 체제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과 내년도 예산이 대폭 증액되었다는 건데, 사실 그 점만을 본다면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았던 한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생각을 바꿔야겠군.’

역사적으로 큰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내 추론은 고쳐먹기로 했다.

남북평화 회담.

그건 앞으로도 열릴 가능성이 없어 보이거든.

엄밀히 따진다면 그것 역시 역사적인 사건이었는데, 그 이벤트가 끝내 발생하지 않는 상황이면 내 추론이 틀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또 모르지. 이러다가 어느 순간 또 평화무드가 조성될지. 그럼 아직 내 추론이 틀린 건지 맞는 건지 판단하기엔 이른 건가?’

“도착했습니다, 회장님.”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양 비서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주차장엔 이미 많은 군과 정부 관계자들이 도착해 있던 상태.

얼핏 내가 늦은 건가 싶어 시계를 쳐다봤지만, 정작 나 역시 약속 보다 무려 30분이나 먼저 도착한 상황이었다.

“왜들 이렇게 일찍 오셨습니까.”

“왜긴 왜겠습니까. 기대감에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잔 터라 차라리 서두르자는 심산이었죠”

왠지 미안한 마음에 뱉어낸 말에 이동욱 합참의장이 대꾸했다.

막상 그 말에 생각해보니 나 역시 수면시간은 불과 3시간 정도.

그만큼 기대감이 컸기 때문일 거다.

“정식 명칭을 천궁이라고 지었다죠?”

오늘 회동의 목적은 그동안 탈레스와 러시아가 공동 개발을 진행하던 1차 대공 방어 미사일개발의 결과를 테스트하기 위함이었다.

작년 말, 이미 S-350의 테스트에 성공한 러시아에 비한다면 조금은 늦은 상황.

하지만 그거야 우리가 결과물을 다시 우리 입맛에 맞게 개량을 거듭했기 때문이고, 그 결과 성능 면에선 S-350보다는 한참 우위에 있는 물건이 탄생했다.

[표적기 발사했습니다.]

다들 발사대를 주시하고 있던 와중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대략 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비행을 시작한 표적기는 아직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

하지만 레이더는 이미 그걸 포착했고, 곧 준비 중이던 발사대에서 콜드런치 된 미사일이 퐁 하고 튀어 오른다.

치직!

허공으로 솟아오른 미사일은 곧바로 측 추력기의 도움을 받아 급격히 각도를 꺾었다.

이내 엄청난 연무를 뿜으며 목표를 향해 날아간 그것은 어느새 시야를 벗어나 버렸고, 요격에 성공한 것을 알게 된 것은 저 멀리 허공의 한 지점에서 폭발이 일어난 후였다.

“오오!”

합참의장을 비롯한 군 관계자들은 연신 박수를 치며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으로써 대공 방어 체계에 첫걸음을 내디딘 상황.

비록 지금은 항공기와 순항 미사일 등을 상정한 것에 불과한 물건이지만.

그리고 저고도 방어에 쓰일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이걸 시작으로 우리는 사드와 SM3 같은, 탄도 미사일 방어와 고고도 방어가 가능할 물건을 만들어 낼 거다.

“러시아 애들 기술력이 확실히 좋긴 좋군요.”

합참의장의 말에 속으로 헛웃음을 뱉어냈다.

따지고 보면 이번 공동 개발에 있어선 러시아가 우릴 도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히려 러시아에게 도움을 준 셈이거든.

어차피 천궁의 기술은 블록 2까지 내게 있던 상태.

그 마당에 러시아의 힘을 빌릴 부분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오히려 우리의 전자부품 기술이 더 저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앞으로가 중요하죠.”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바뀔 거다.

진정한 탄도 미사일 요격 시스템의 개발에 있어선 러시아의 추진체 기술이 엄청난 도움이 될 테니까.

“아무튼, 성공을 축하합니다, 진 회장님. 뭐 당장이야 양산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좀 안타깝지만 그래도 일단 기술력을 확보했다는 것이 어딥니까.”

천궁의 본격적인 양산은 내 후년으로 계획됐다.

러시아와 본격적으로 S-500의 개발을 마무리 지은 후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일단 가장 큰 부분이 예산을 확보하는 문제와 미리 미국을 자극하지 말자는 것에서 온 결과다.

‘사실 그편이 우리로선 부담이 덜한 편이지. 처음 천궁을 개발할 당시에도 미국은 신경질적인 반응이었으니까.’

당시 그걸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설득에 애를 먹은 것은 관련자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자자, 그래도 우리끼리 축하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제가 쏠 테니 어디 가서 식사들이나 하시죠.”

이동욱 합참의장은 주머니에서 꺼낸 카드 한 장을 흔들며 말했다.

뭣 때문일까, 잠시 아 하는 외침과 함께 나를 쳐다본 그는 예상치 못한 말을 꺼냈다.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푸틴 대통령이 내달에 정식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다는군요.”

“…….”

생각해보니 그걸 잊고 있었다.

2001년 2월, 푸틴이 이 나라를 방문한다는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게 뭐 대수로운 일일까만은 나로선 신경이 쓰일 수밖엔 없다.

“그때 진 회장님과 따로 회동을 했으면 한다는 전문을 전해왔다더군요.”

저거 봐.

내가 저러니까 긴장을 안 할 수가 없다니까.

그나저나 이번엔 또 뭣 때문에 따로 회동을 원한다는 거지?

*******

“거 좀 서두르라. 이러다 날 새갔어야.”

조선 인민군 소속 684정의 정장 김진석 소좌는 아침부터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에 마음이 조급했다.

전통문의 내용은 NLL 남방 1.5킬로미터까지의 남하.

의아한 것이 있다면 이번에도 발포를 허가했다는 것인데, 이전 충돌에서의 피해로 독이 바짝 올라있을 적을 또 건드리라는 명령 하달이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주 우껍뚜루하구만 기래. 저 아새끼들이래 당한 것이 있어서 갈구리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판에 이게 뭔 짓이가.”

“기래도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갔습니까?”

중사 이인호가 그 말에 대꾸했다.

누가 그걸 몰라서 투덜대는 걸까, 하지만 오늘따라 느낌이 좋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 관측된 백령도에서의 수상한 움직임들.

그리고 이어진 도발 명령.

이건 꼭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조치만 같지 않던가.

“날래 배타기나 하시라요.”

이인호의 재촉에 그가 서둘러 684정에 올랐다.

지난 전공에 의한 진급으로 며칠 후면 이 함대와는 안녕을 고할 상황.

잠시 들었던 불안감이 스르륵 날아가 버리는 것이 느껴졌다.

“기런데 오늘은 또 왜 설레발을 치라는 겁네까?”

막 함대가 NLL 이남으로 진입했을 무렵 이인호 중사의 질문이 뱉어졌다.

막상 면박을 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그걸 되묻고 있는 이 중사의 태도에 김진석은 버럭 소리를 쳤다.

“내가 그걸 어캐 알간?”

이 중사는 찔끔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내 한참을 주변을 주시하던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김진석을 쳐다봤다.

“저 아새끼들 오늘 왜 저럽니까? 앵겨붙어도 진즉에 앵겨붙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진석은 그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차단 기동이니 뭐니 하며 달려들었을 적의 함정들.

그런데 오늘은 간격을 벌리곤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꼭 뭔가를 기다리는 듯한 본새다.

[즉시 회항하라. 경고한다, 회항하지 않으면 발포한다.]

더군다나 경고방송도 전과는 달랐다.

첫 경고부터 발포를 언급했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

불길함이 더 엄습해왔지만, 이번에도 애써 그걸 무시했다.

“지랄하고 있구만 기레.”

결국, 김진석은 이인호 중사를 향해 속도를 줄일 것을 명령했다.

곧 적을 향하는 그들의 85밀리 전차포.

쿵!

이내 포신이 불을 뿜자 적 함대들이 부산스레 회피기동을 실시했다.

“더 가까이 붙으라!”

김진석은 전처럼 일격에 명중시킨다는 생각으로 함대 전체에 적과의 거리를 좁힐 것을 명령했다.

사실 이대로라면 언제 대응 사격이 날아올지 모를 상황.

하지만 적 함정들은 그저 계속해서 남하만 할 뿐, 이렇다 할 대응이 없었다.

“뭐이가?”

콰과곽!

그때, 어디선가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려왔다.

퍼엉!

곧 무언가에 의한 충격을 받고 순식간에 폭발해 버리는 아군 함정.

“배 물리라!”

당황한 그는 즉시 후퇴를 명령했지만, 이후 근처에 있던 나머지 한 척의 아군 함정이 불길을 뿜으며 사방으로 파편을 비산한다.

“대체 뭐이가!”

김진석은 다급히 684정의 함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적 함정들의 동태를 살피려는 차, 이번엔 그가 막 빠져나온 함교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확 치솟는다.

“……이런 니미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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