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1화
백령도에 127밀리 함포를 설치하는 문제는 곧바로 국회에 긴급상정되었다.
사안의 중요성 탓인지 초당적인 협력하에 승인이 떨어졌음은 물론.
약간의 의견 대립이 있었던 것은 차라리 자주포를 활용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는데, 설치목적 자체가 지상 포격보다는 함정을 상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둔 상태라는 점에서 결국엔 함포방식을 택하기로 했다.
지상형의 경우엔 이중 격벽을 가진 함정을 일격에 격파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화력과 속도. 그리고 사거리면에서도 해상형에는 미치지 못하니까.
[대유 자동차 최종부도.]
그러던 와중 역사적인 사건 하나가 더 터졌다.
11월 8일, 말 많았던 대유 자동차가 결국 최종부도처리 된 것.
정부와 채권단은 99년 대유가 내놓은 자구책을 반려했고, 12개 계열사 전부가 워크아웃에 돌입했었으나 지나친 부채의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권단이 끝내 최종부도를 선언한 거다.
[정부와 채권단은 대유에서 쌍웅 자동차와 트럭 부분을 분리 매각할 방침임을 시사했습니다. 인수업체는 재우그룹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후 보름의 시간이 지난 후엔 재우 그룹의 자동차 시장 진출 소식이 다시 뉴스를 장식했다.
김영기 부사장을 비롯하여 현철과 한명호 회장까지 발 벗고 나선 결과.
인수과정 역시 우려와는 달리 제법 수월하게 진행됐는데, 강경일변도였던 대유 승용차 부분과는 달리 쌍웅자동차 노조 측과의 협상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덕분이었다.
[재우 그룹은 오늘 쌍웅 자동차와 대유 트럭의 근로자 전원을 승계할 것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노조는 조만간 정상 조업에 복귀할 것을 합의했으며, 덕분에 오랜 풍파를 겪었던 쌍웅 자동차는 곧 정상화 단계에 돌입할 것이 예상됩니다.]
“말이 쉽지. 다 망해가던 회사를 정상화하는 것이 뉘 집 애 이름인가.”
뉴스를 지켜보던 현철이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하긴, RV차량 외엔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쌍웅을 다시 정상화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하지만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
이미 발전된 엔진 기술이 확보되어 있음은 물론, 향후 시장에 먹혔던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까지도 이미 내 머리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마케팅 부분인데, 그거야 결국엔 인력과 연관된 것이라서 시간만 지나면 해결이 된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어느덧 2000년의 끝자락.
김영기 부사장과 나 그리고 현철은 종무식을 코앞에 두고 에어로스페이스를 찾았다.
방문 목적은 최근 동체제작에 들어간 공격헬기 사업의 점검과 역설계를 진행 중인 전투기사업부의 개발 진행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서.
공격헬기의 경우 최근엔 우리가 개선한 부품으로 대체한 엔진이 테스트에 성공했다는데, 이대로라면 내년 말쯤 무장을 제외한 시제기를 내놓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형상 변화가 꽤 많은 편이군요.”
마주한 동체의 모습은 처음 내게 제출되었던 것과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리도 아닌 것이 레이더를 비롯한 여타 무장 시스템 자체가 블랙샤크와는 궤를 달리하는 물건.
설계 변화가 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얼핏 보면 하보크를 닮은 것도 같고, 또 얼핏 보면 차라리 아파치의 피를 물려받은 것도 같은 느낌이군요.”
“2인승에 계단식 좌석 형태로 가다 보니 당연히 그런 느낌을 줄 수밖에는 없을 걸세. 그런데 그거 아나? 저 기체 한 대 만들기 위해서 제작된 설계도가 무려 1만 장에 달한다는 것.”
윤 대표는 부쩍 수척해진 얼굴로 대꾸했다.
말이 대표지, 거의 1년 중 절반을 공장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인물.
왠지 안쓰러운 마음에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수고는 무슨. 자 그럼 이제 전투기 사업부서로 가세나.”
그는 마치 좀비처럼 움직이며 우릴 건너편에 있던 공장으로 이끌었다.
문이 열리자 눈에 들어온 것은 아직 온전한 형태로 주기 되어 있는 수호이 기체 한 대와 부품 단위로 분해된 또 한 대의 기체.
막상 코앞에서 보고 있자니 왠지 그 위용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이쪽으로.”
윤 대표가 이후 우리를 이끈 곳은 설계부서였다.
투입된 설계 엔지니어들만 해도 무려 백여 명.
그중 20명은 KAI에서 초음속 훈련기 설계를 담당하던 자들을 끌고 온 상황이었는데, 그나마 대통령의 중재가 있었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엄청난 항의를 받았을 거다.
“저들이 한 달에 꼬박 500장에 가까운 설계도를 뽑아내고 있네.”
“고생들 하는군요.”
“고생 정도가 아니라 아주 죽어 나가고 있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이렇듯 설계를 서두를 필요가 있는 건가? 이러다 자체개발 사업승인이 안 나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거잖아.”
한참 엔지니어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윤 대표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나라고 그 점이 염려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하지만 난 사업 확정이 무산되는 경우를 애초 염두에도 두지 않고 있었다.
대통령의 의지도 그렇지만 이미 이 사업은 여러 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거든.
지금에 와서 해외도입으로 선회를 하기엔 정권이 안고 가야 할 부담이 지나치게 크기도 하고.
비록 해외도입에 대한 의견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해도 정부가 마음을 고쳐먹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점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안 그래도 청와대가 올해 말쯤 발표를 한다는 말이 나왔으니까요. 참, 미국에선 애초부터 우리가 자체개발 쪽으로 가리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우려를 종식 시켜 주려는 듯 김영기 부사장이 말을 보탰다.
뒷말이 의아했던 걸까, 윤 대표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는다.
“……미국에서 예상했었다니, 어떻게요?”
“전에 회장님께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초내열합금 기술을 가져오지 않았습니까. 그게 자체개발 의지라는 걸 모르면 오히려 바보 아니겠습니까.”
“아!”
윤 대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었던 듯, 짧은 텀을 두고 숨을 몰아쉰 김영기 부사장이 다시 말을 잇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청와대가 꽤 힘들었다고 하더군요.”
“…….”
윤 대표는 다시 김 부사장을 쳐다봤다.
나 역시 그 점은 금시초문.
슬쩍 시선을 주자 그가 마치 자신이 겪기라도 한 일이었던 양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솔직히 미국이 어떤 애들인데, 대한민국 같은 안정된 시장에서 그리 쉽게 손을 떼겠습니까? 인정은 했어도 실익은 꼬박 챙겨가더랍니다.”
“실익을 챙기다니, 뭘 말입니까?”
“뭐든 내놓으라고 땡깡을 피운 모양입니다. 그 때문에, 각하께서 미국산 농산물 수입 쿼터를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물밑합의를 봤다고 하더군요.”
“이런, 우리야 다행이라고 해도 그럼 농가들의 피해는 꽤 크겠는데요?”
윤 대표는 힘없는 이 나라의 현실이 불만이라는 듯 혀를 찼다.
이내 작업 중인 엔지니어들을 향해 다시 고개를 돌린 그는 무슨 생각에선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왠지 의미심장했던 그의 표정이 궁금하여 물었다.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다행이네만, 정작 본궤도에 오르면 저들이 죽어 나갈 것이 걱정스러워서 그래. 당장 매달 500장의 도면을 만드는 것도 허덕이는 판국에 일 양이 확 늘어나면 그땐 대책이 없거든.”
그건 나도 우려스러운 부분이었다.
KFX의 경우, 한 달 평균 1700장의 설계도가 제작되었어도 설계를 모두 끝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이 15개월.
그리고 우린 그보다 시간을 단축 해야 되는 입장.
아무리 내게 KFX의 설계가 있다고는 해도 동체의 크기 변화가 있다 보면 사실상 설계는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데, 저들만으로 그걸 감당한다는 건 사실상 무리다.
“사업이 확정되면 당장 KAI 인수문제를 정부와 협의해야겠군요.”
“그럴만한 자금이 있는 거야?”
윤 대표는 자못 걱정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최근 여러 합병과정을 거치며 출혈이 컸던 터.
더군다나 최근엔 통 그룹의 재무상황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슬슬 그게 걱정인 모양이다.
“자금 여유는 아직 충분합니다. 그동안 실적 증가가 꽤 커서 거둬들이는 자금 규모도 윤 대표님이 본사에 계실 때와는 차원이 달라졌거든요. 설사 여유가 없다고 해도 해결책은 있으니 그 점은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그건 연구소의 수익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최근 홀딩스 산하 자회사로 만든. 그리고 미공개 기업이기에 내가 100퍼센트 지분을 보유중인 곳.
최근 그곳에 미국의 HVP 시스템용 군사반도체의 수출로 조단위의 돈이 쌓인 상태인데, 필요할 경우 그걸 동원하는 것도 고려해 볼수 있다.
“우리도 이 기회에 투자를 좀 받으면 어떻습니까?”
불현듯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 부사장이 끼어들었다.
슬쩍 시선을 돌리자 그가 다시 말을 잇는다.
“전에 회장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사드 왕세제가 투자를 제안했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실 전략적 측면에선 투자를 받아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요."
"우호세력의 확보 측면에선 나쁘지 않겠죠. 일단 그 문제는 내세울만한 투자처를 확보해두고 나서 생각해보죠."
뭐 그거야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까.
"그나저나 최근 제가 통 신경을 못 썼는데, 백령도에 설치 중인 127밀리 함포는 어떻게 됐습니까?”
“아! 마침 군에 치장 중인 함포가 있어서 1포대는 이미 설치가 끝났습니다만 2, 3포대는 추가로 주문을 해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나마 한 개 포대라도 설치 되었다니 다행인 일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저들이 차라리 이 시기에 한 번쯤 더 도발을 감행해줬으면 싶은 생각도 들고.
희생이 없었다면 모를까, 우리가 피해를 당한 만큼은. 아니 그 백 배쯤은 되돌려줘야 속이 후련할 것 같거든.
사실 그런 생각을 나만 한 것은 아닌 듯, 군도 함포의 작전 반경을 룡령군에 있는 북의 해안기지들까지 포함해둔 상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한마디로 걸리면 아주 아작을 내버리겠다는 거지.
“그나저나 백령도 공항 건설 문제는 점점 상황이 심각해져 가는 듯싶습니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생겼답니까?”
불현듯 뱉어진 김 부사장의 말에 가던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그는 내내 들고 있던 신문을 슬그머니 들이밀더니 1면을 장식한 기사를 콕 짚어 보였다.
“며칠 전부터 환경단체를 비롯한 여러 시민 단체들의 반발이 점점 격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 말에 신문을 쳐다봤다.
피켓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사진.
그 순간 과거, 아니 회귀 전 있었던 사건 하나가 떠오르며 절로 손이 휴대폰으로 향했다.
“잠시만요.”
난 즉시 국정원장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 끝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선 피곤함이 절로 묻어나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진 회장님.
“방금 김영기 부사장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어서요.”
-무슨…….
“지금 백령도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시민 단체들 말입니다. 은밀히 계좌추적이 가능합니까?”
-…….
국정원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이유를 묻는 그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분명 중국 쪽에서 꽤 큰 금액이 각 시민 단체들의 계좌로 입금되었을 겁니다.
-그걸 진 회장님이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어떻게 확신하기는.
내 경험상 분명 그랬으니까 확신하는 거지.
우리가 접경지역에 공항 건설을 시도했을 당시.
중국은 어용 시민 단체들을 포섭하여 여론전을 주도했거든.
그 결과 공항 건설 문제는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결국 내가 회귀하기 직전까지도 공항 건설은 논란거리가 되었었다.
‘아무튼, 그놈의 돈이 문제지.’
사실 그건 비단 중국만 써먹은 수법은 아니었다.
일본도 극우 자본을 동원하여 매번 우리를 훼방한 것은 마찬가지니까.
이런 상황이 오면 늘 느끼는 것이 있는데, 이 나라는 참 이웃 운이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서해 인근에 공항을 건설하게 되면 가장 반대할 자들이 누구겠습니까. 더군다나 지금 시민 단체들의 주장을 꼼꼼히 따져보면 억지에 불과한 것들이 태반인데, 그게 과연 저들의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니시겠죠?”
-…….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곧 다시 연락이 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고 나서였다.
-하아…… 이거 참, 뭐라고 할 말이 없군요.
국정원장의 긴 한숨은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뜻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10여 개에 달하는 단체들의 계좌에서 각각 수억에 달하는 의심 자금이 해외에서 입금되었음을 알려왔다.
“이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문제는 이걸 밝히는 것도 힘들다는 겁니다. 자칫 국정원이 민간을 사찰한 결과 밖에는 되지 않으니까요.
“그럼 계좌 내역을 제게 주시죠.”
-뭘 어쩌려고요?
“어떻게든 그 사실을 세상이 알게 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