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70화
“마음이 편치 않군요.”
병실에서 나오자마자 콜라를 두 캔이나 들이켰다.
하지만 짓눌린 듯한 속은 여전했고, 난 기어이 자판기에서 캔 하나를 더 끄집어냈다.
“그러다 젊은 나이에 당뇨 올 수도 있습니다.”
충고를 뱉어낸 김영기 부사장은 대뜸 자판기로 향했다.
막상 말은 그렇게 했어도 자신 역시 답답함을 느낀 듯.
이내 단숨에 캔을 비워낸 그는 빈 캔을 신경질적으로 휴지통에 던져 넣는다.
“오중근 장관이 실수했어요. 몸을 사릴 때와 사리지 말 때가 있는 법인데…….”
그의 입에선 곧 신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성토가 뱉어졌다.
여태껏 말을 아끼더니 막상 희생자를 만나고 나자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모양이었다.
“하긴, 그게 각하의 뜻이었다면 그로서도 어쩔 도리는 없었겠지만.”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다시 말을 고쳤다.
순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그를 향해 질문 하나를 던졌다.
“연평도 사건과 GP사건 말입니다. 당시에도 최종결정을 대통령께서 내리신 겁니까?”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번에도 오중근 장관님만을 탓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최종결정은 각하께서 하시지만, 그 판단을 유도하는 것은 전적으로 장관의 몫입니다. 쉽게 말해서 오중근 장관이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희생을 줄일 수도 있었다는 거죠.”
“그 말인 즉, 연평도 포격 사건과 GP 사건에서의 강경 대응은 결국 각하가 아닌 부사장님의 판단에 의한 결과였다는 뜻이라고 들리는군요.”
그 말에 김 부사장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의미.
사실 그게 쉽지 않았을 판단이었을 텐데, 새삼 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나저나 각하께선 왜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며칠 전, 김 부사장은 국정원장의 언질로 청와대를 방문했었다.
그럼에도 아직 그 이유를 내게 말하지 않고 있었고.
오늘은 왠지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에 질문을 뱉어냈다.
“제게 자리를 제안하시더군요.”
“무슨 자리요?”
의아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공기업으로 가는 문제는 재우로의 이직을 통해 없던 일이 된 상황.
그에게 달리 제안할 자리가 뭐가 있지?
“이번에 청와대의 직제를 개편한다는군요. 그 탓에 안보실장이라는 새로운 자리가 생겨날 모양입니다. 그 자리를 제게 권유하시더군요.”
“안보실장이요?”
청와대에 그런 직책이 생겨난 것은 지금보다 한참 후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갑자기 직제개편이라니.
당황스러운 마음에 눈만 끔뻑이자 그가 내 표정의 의미를 오해 한 듯 피식 헛웃음을 뱉어낸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중히 거절하고 나왔으니까요. 회장님과 약속한 것이 있는데, 그걸 깰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
난 그 말에 다시 한번 놀랐다.
무려 장관급의 자리를 거절했다는 말도 그렇지만 그게 하필 나 때문이라는 것이 왠지 빈 가슴을 꽉 채워주는 느낌이었거든.
저렇듯 신뢰를 지키는 사람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천운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따랐다.
“조만간 승진을 시켜드려야겠군요.”
농담으로 대꾸를 대신하고 차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는 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국정원장과의 회동을 위한 자리.
윤태환 대위에게는 말했듯 국방부는 사건이 일어난 며칠 후 내게 해결책을 모색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고, 오늘은 그에 대한 답을 전달하기 위한 모임이 예정되어 있던 터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약속장소인 국방부 청사에는 오늘따라 분주한 움직임들이 감지됐다.
특히나 전에 없이 해군 장성들이 부쩍 눈에 띄는 상황.
아무래도 백령도 사건의 영향이지 싶다.
“어서들 오십시오.”
오중근 장관은 우리가 방에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내 나와 짧은 악수를 나눈 그는 즉시 김 부사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곧 면목이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어낸다.
“선배님께는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앞으로 어쩔 생각인가.”
김영기 부사장은 직설적으로 되물었다.
그 카리스마가 어디로 갈까.
이미 민간인의 신분이 된 몸이지만 그를 대하는 오중근 장관의 태도는 극히 조심스러웠다.
“저도 그게 골치가 아픕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우리나라의 안전문제가 화두가 되는 것은 피해야겠고, 그렇다고 저들이 또 도발을 해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번 사태에서 군의 대응이 시원치 않았던 이유가 어느 정도는 해소됐다.
한일 월드컵이라는 대축제.
하지만 세상이 판단하는 이 나라는 아직도 휴전 중인, 불안요소가 가득한 국가였고, 우리 역시 그 점이 부각 되는 것은 막고 싶었을 거다.
즉, 지나친 확전으로 전 세계에 전파를 탈 것이 걱정스러웠을 거라는 말이지.
‘어쩌면 북한이 노린 것도 그것일 가능성도 있겠군. 그나저나 월드컵 때문에 대응을 주저한 건 대체 어느 바보의 생각이야? 어차피 도발이 벌어지면 크든 작든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대응이라도 확실하게 했어야지.’
순간 내 시선은 자연스레 오중근 장관을 향해 돌아갔다.
내내 나를 신경 쓰고 있었던 걸까, 마침 그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흠흠, 진 회장님을 보자고 한 것은 전에 말했다시피 또 발생할 수 있을 도발에 대한 대응책이 없는지를 의논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점은 이미 전화상으로 들어서 알고 있던 바였다.
덕분에 몇 날 며칠을 고민해보기도 했고.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안 그래도 그 점에 대해서…….”
똑똑!
막 말을 뱉어내려는 순간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곧 등장한 인물은 국정원장.
숨이 턱까지 차오른 것을 보면 자리에 늦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서둘렀던 모양이다.
“어떻게 됐습니까?”
오중근 장관은 들어서는 그를 향해 앞뒤 설명도 없는 질문을 뱉어냈다.
“각하께서 승인하셨습니다.”
뒤이어 뱉어진 국정원장의 대답 또한 의미를 유추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의아한 마음에 김영기 부사장과 내 시선이 교차 되었을 무렵 국방장관이 말을 뱉어냈다.
“아, 실은 차후 또 서해상에서 북한이 도발하게 되는 경우 강경 대응을 허락할 것을 미리 각하께 요구했었습니다. 국정원장께서는 지금 그에 대한 답을 가져오신 겁니다.”
“쯧,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군.”
그 말에 김영기 부사장이 반응했다.
내심 뜨끔했던 걸까, 오중근 장관의 얼굴이 한껏 붉어진 얼굴로 말을 돌린다.
“그 점은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가 재우에게 원하는 것은 북한 고속정의 변화에 대한 해결책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번에 북한은 전차포를 고속정에 탑재하여 우리 군을 곤란하게 만들었지 않습니까.”
그 말은 결국 재우에게 참수리의 부족한 화력을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에서 그게 가능할 리가 있나.
애초 참수리급처럼 작은 고속정은 40밀리 이상의 무장 탑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보아하니 신형 고속정의 건조는 논외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모양인데, 아마도 그건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원인일 거다.
함정 건조에 들어가는 시간은 최소 수년.
그사이 또 북의 도발이 없을 것이라는 장담을 못 하는 거지.
“죄송하지만 기존 참수리를 아무리 개조한다 해도 원하시는 수준의 무장장착은 불가능합니다.”
“난들 그걸 모르겠습니까, 그렇다고 가뜩이나 전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PCC들을 내내 서북 도서 지역 방어에만 투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답답해서 그렇죠.”
국방장관은 현실이 갑갑하다는 듯 푸념을 뱉어냈다.
이내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선 결국엔 방법이 아예 없느냐는 듯한 간절한 호소.
결국, 잠시간 겉돌았던 대화의 흐름을 다시 끌어왔다.
“생각을 조금 달리하면 방법이 하나 있긴 합니다.”
그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눈이 마주친 김영기 부사장의 고개가 슬며시 끄덕여지고, 난 짧은 심호흡 끝에 말을 이었다.
“백령도 해안에 127밀리 함포 터렛을 설치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
순간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마치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잠시 책상 위에 있던 지도에서 백령도를 찍어 보이곤 다시 설명을 이었다.
“여기, 그리고 여기에 127밀리 함포를 지상에 고정으로 설치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AESA를 이용하여 정밀 유도를 하면 우리가 미 해군에 수출한, 스마트 포탄을 활용한 함정용 정밀 포격시스템을 지상에서 갖추는 셈이 되는 거죠.”
“……함포를 지상에 설치하자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안 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어차피 함포 개발업체들도 함정에 장착하기 전 지상에서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우린 그걸 테스트 목적이 아니라 영구히 설치하자는 겁니다.”
“…….”
국방장관은 눈을 끔뻑였다.
뭔가 신박한 제안이기는 한데, 그게 가능할까 싶은 표정.
난 다시 지도에서 북한 일부 지역을 점찍으며 설명을 이었다.
“우리가 개발한 127밀리 함포형 스마트 포탄의 경우엔 랩탄을 추가 장착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 경우, 최고 180킬로미터 이상의 사거리가 확보되기에 평양 인근까지 포격이 가능해지죠.”
“…….”
“꼭 그게 아니라도 이게 설치되었을 경우 북은 해상 도발을 꿈도 못 꾸게 되는 겁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 빌어먹을 고속정들은 고사하고 기지까지도 초토화가 가능하니까.”
“……그렇게 되면 중국에서 반발할 가능성도 있을 텐데요? 백령도와 중국 룽청 지역까지는 180킬로미터 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아요. 코앞에 그런 무지막지한 물건이 있는 마당이면 그들도 따지고 들지 않을까요?”
그 말에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미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의 전개에 당황스러웠던 거지.
하지만 난 애초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한 제안이었다.
차라리 지금이 중국의 반발을 누르기엔 더 쉬운 시대거든.
앞으로 경제가 발전하면 할수록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텐데, 그때 가서 과연 코 앞에 장거리 정밀포격 시스템 설치가 가능할까.
솔직히 마음 같아선 차라리 중국의 간섭이 덜한 이때쯤 백령도에 공항이나 건설해 버렸으면 싶다.
“어차피 조만간 중국을 건드리기는 해야 합니다. 그러니 굳이 그걸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한데요?”
생각이 깊어지던 차에 국정원장이 툭 말을 던졌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국방부 장관은 동그란 눈으로 반문했고, 나 역시 의아함에 그의 입술을 주시했다.
“실은 낮에 청와대에서 일부 부처들과 회의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부처 회의라니요. 무얼 주제로 말입니까?”
“백령도에 공항을 건설하자는 거였습니다. 워낙 갑작스레 나온 안건이라서 오늘은 짧은 회의로 마무리 지었지만, 조만간 국방부도 참석하셔야 할 겁니다. 아무튼, 그게 통과된다면 지상형 스마트 포탄 발사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 같은데요.”
난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저건 분명 방금까지 내가 속으로 뱉어냈던 불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었으니까.
아니 갑자기 왜?
백령도 공항 건설 문제는 2016년도나 되어야 건의되는 문제 아니었던가?
“그게 벌써 안건으로 올라갔다는 겁니까?”
국방장관은 사안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한 눈치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변명하듯 말을 잇는다.
“아, 실은 이동욱 합참의장이 전에 그 문제를 제안해서 국방부 내에서 공론화한 적이 있었습니다. 불편한 뱃길로 인해 해병대원들의 이동이 힘들고. 또 관광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명목으로. 뭐 실은 그거야 핑계고, 중국과 북한 견제하겠다는 목적이 우선이었죠.”
이동욱 합참의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합사 부사령관의 직책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제7기동군단장 김태익 중장과 함께 나와 생각이 맞는 몇 안 되는 존재.
그가 합참의장직을 맡게 되면 뭔가 일을 칠 것이라는 상상은 해봤지만, 첫 타석부터 홈런을 때려 버릴 줄은 미처 예상을 못 했다.
“합참의장께서 다른 섬 지역에 공항 건설을 하자는 제안은 안 하셨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국방장관을 향해 되물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마치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흑산도와 울릉도에도 공항 건설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했었습니다만, 그걸 진 회장께서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난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동욱 대장이 뭘 노리는 것인지 단숨에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
불침항모.
그는 지금 향후 벌어질 주변국과의 헤게모니를 대비하기 위해 그걸 기획하고 있는 거다.
“아, 전에 얼핏 그 부분에 대해서 합참의장님과 지나가듯 대화를 했었던 적이 있거든요. 그나저나 국방부는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린 겁니까?”
“일단 백령도 건은 타당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지어졌죠. 그리고 흑산도는 차후 백령도의 진행 상황을 봐가며 재논의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흑산도의 경우는 북한의 핑계를 대기엔 위치가 애매하지 않습니까.”
“그럼 울릉도는…….”
“울릉도 역시 당분간은 힘들 듯싶습니다. 당장 한일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마당에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상 일본의 반발도 지금이 차라리 대응하기엔 좋은 시절이니까.
그래도 실망할 건 없다.
의지가 확인된 이상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기에.
“아무튼, 그게 벌써 각하께 보고 되었다는 건 좀 의외군요. 책임자인 내가 안건을 올리지도 않았는데 대체 누가…… 혹시 합참의장입니까?”
국방장관은 자못 불쾌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자 다시 나선 국정원장은 오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합참의장께서 건의한 것이 아니라 각하께서 직접 꺼내신 안건입니다.”
“…….”
그 말에 사람들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대통령이 안건을 제안했다는 마당에 무슨 할 말이 있을까, 국방장관의 표정도 조금은 누그러들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풀린 느낌은 아니다.
‘이렇게까지 속 좁은 인물이었는지는 미처 생각 못했는데…… 꼴을 보아하니 이 양반도 오래 못 가겠군.’
“아무튼, 그런 이유로 백령도에 지상 거치형 함포의 설치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난 다시 청와대에 보고를 올릴 테니 진 회장님께서도 구체적인 사업계획서를 준비해 주시죠.”
국정원장은 짧은 당부를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고작 몇 개에 불과한 함포 시스템 설치가 무슨 큰돈이 될까.
그럼에도 가슴이 벅찬 이유는 아마도 이 나라가 조금씩이나마 미래를 바꾸기 시작했다는 이유 때문일 거다.
“최대한 빨리 준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