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69화
따르릉!
당황하는 사이 김 부사장과 내 휴대폰이 동시에 울음소리를 뱉어냈다.
슬쩍 확인한 내 전화에 찍힌 수신자는 임 차장, 아니 임 전무.
“네, 전무님.”
즉시 통화 버튼을 누르고 김영기 부사장을 쳐다보자 그가 소리를 죽인 채 나를 향해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국정원장?’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에 다시 전화기를 고쳐잡았다.
저편에서 소리치는 임 차장의 목소리는 거의 숨이 넘어갈 듯한 분위기였다.
-1시간 전에 백령도에서 북한과 우리 해군이 충돌했답니다. 그 영향으로 참수리 고속정 한 대가 침몰했고요.
“지금 나도 속보를 보는 중입니다만, 어떻게 대응을 했기에 침몰까지 한 겁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거기 김영기 부사장님 안 계십니까? 국정원장님께서 그분과 통화를 원하시던데요.
“지금 통화 중이십니다. 알겠으니 제가 다시 전화를 걸도록 하죠.”
다급히 전화를 끊은 채 장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뭐가 그리 심각한 건지 그는 한마디 말도 않은 채 내내 저편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 중이었다.
“후우…….”
드디어 통화가 끝나나 싶었을 무렵 그가 긴 한숨을 뱉어냈다.
뭔가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들은 걸까, 표정 역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북한이 백령도 인근 NLL을 침범했답니다. 근처에 있던 우리 측 참수리 고속정이 대응을 나섰다가 적의 고속정에 설치되어 있던 전차포에 당한 모양입니다.”
북이 고속정에 전차포를 동원한 것은 역사와 동일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게 1차가 아니라 2차 교전에서였다는 사실.
1차 해전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북한이 이를 갈았던 결과인데, 그게 왜 첫 교전에서부터 동원된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가.’
이미 두 번에 걸쳐 망신을 당했으니 어떻게든 그걸 만회하고 싶었을 테니까.
결국, 생각의 흐름은 그쪽으로 흘러간 거겠지.
부실한 참수리의 방호력과 무장을 고려한 공격방식.
“우리 군은요?”
“그게 문제입니다.”
“…….”
“후속 지원이 늦어지는 바람에 피해가 큰 모양입니다.”
대충 상황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두 번에 걸친 강경 대응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김영기 국방부 장관.
신임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자신 역시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후속 지원을 갈등했을 거다.
아니 후속 지원을 보내기는 했겠지.
다만 PCC의 안전을 위해선 적의 스틱스 미사일과 해안포를 먼저 타격해버려야 하는데, 그걸 주저해버리지 않았을까 싶다.
“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주저함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됐다.
북한으로서는 이미 자존심을 챙겼고, 우리 군만 희생을 당한 상황이니까.
어차피 전면전의 가능성은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차라리 김영기 장관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몇 명이나 희생된 겁니까?”
“기함인 358정의 경우는 병사 전원이 사망했고, 나머지 2척의 고속정 역시 피해가 크답니다.”
“…….”
그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이건 교전이 아니라 그냥 학살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
아마 지금쯤이면 국방부는 물론이고 청와대도 발칵 뒤집어졌을 거다.
“그런데 국정원장님께선 왜 부사장님에게 전화하신 거랍니까?”
문득 그 점이 궁금해졌다.
이미 물러난 김영기 장관에게 굳이 그 사실을 알려올 이유가 뭐가 있을까.
하지만 정작 그 점은 김영기 부사장도 이해를 못 하고 있는 처지였다.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조만간 각하께서 만나고 싶다는 말을 전해주기 위해서라는데…….”
“…….”
왠지 낌새가 이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좀처럼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일단 올라가죠. 아무래도 당분간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 것 같은데, 누구라도 붙잡고 좀 더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린 이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에 올랐다.
올라가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은 한 가지 사실 뿐.
비록 시간대가 뒤틀리기는 했어도 역사적으로 일어나야 할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법칙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
“또 시작이군.”
참수리급 357정 정장 윤태환 대위는 NLL을 넘어오는 북한군 고속정을 찌푸린 눈으로 쳐다봤다.
최근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을 꽃게잡이와 동시에 늘어난 북한 경비정들의 남하.
명목상으로는 북한 어민들의 보호가 목적이라곤 해도 벌써 열흘째 지속된 잦은 남하는 도가 지나칠 정도였다.
-교전수칙대로 간다. 우리가 먼저 기동하겠다.
때마침 기함인 358정의 김탄 소령에게서 무전이 날아왔다.
동시에 속력을 높이는 기함 358정과 356정의 모습.
보조를 맞추기 위해 윤태환 대위는 즉시 차단 기동을 실시했고, 3척의 적 함정 중 684정을 목표로 전진 방향 차단에 나섰다.
“응?”
그때, 갑자기 싸한 기운이 그의 등골을 스치고 지나갔다.
왠지 다시는 사랑하는 아내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예감.
하지만 그는 곧 머리를 털어냈고, 다시 적 함정의 기동 차단에만 온 정신을 쏟았다.
“별생각을…….”
따지고 보면 그런 상상을 해 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처음 정장을 맡았을 때, 그리고 자신이 책임을 지고 있는 함정이 최초로 북한 고속정과 NLL을 사이에 두고 대치했었을 때.
하지만 매번 괜한 상상이었던 것으로 결론지어졌고, 이번에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어?”
그런데 오늘은 뭔가 분위가 달랐다.
평소였다면 충돌 기동을 위해 속도를 높였을 적 684정이 갑자기 속력을 줄이기 시작한 것.
스르륵.
이내 그의 눈에 보인 것은 684정에 전에 없던 함포가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고, 하필 그것이 자신이 있는 방향을 향해 돌고 있는 장면이었다.
“빌어먹을! 좌현으로 틀어!”
당황한 그는 즉시 방향을 틀 것을 조타장에게 명령했다.
쿠궁!
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
비록 정확도가 떨어지는 전차포라고 해도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쏜 포탄을 피해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 하다.
퍼벙!
결국, 적의 85밀리 포탄은 야무지게 고속정의 측면을 뚫고 들어왔다.
“사격해!”
윤태환 대위는 충격 속에서도 즉시 대응 사격을 명령했고
동시에 함정에 있던 40밀리 함포가 적을 향해 돌았다.
"젠장!"
하지만 그사이 끼어든 358 함정이 문제였다.
이대로라면 자칫 아군 함정이 맞을 상황.
정확한 사격을 가하기 위해선 다시 방향을 틀어야만 했다.
퍼벅!
주저하는 사이 무언가 함교를 뚫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사방에서 연속해서 뚫고 들어오는 37밀리 포탄들.
이후 이어진 파편의 영향으로 함교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되었다.
“조타장!”
제일 처음 쓰러진 것은 조타장 한영훈 중사였다.
그를 필두로 하여 사방에서 신음하는 부사관들과 수병들.
함은 이제 거의 통제 불능의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저런 개자식들!”
윤태환 대위는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려 무전기를 들었다.
퍼벅!
순간 어딘가에서 날아온 총탄이 그의 복부에 틀어박혔고, 그는 충격으로 인해 무전기를 떨어트렸다.
“큭! 저격수도 있는 건가?”
단순히 운이 나빠서 당한 것이 아님은 분명했다.
날아온 탄환은 단 한 발뿐이었으니까.
왠지 점점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에 그는 최대한 몸을 숙인 채 바깥쪽을 쳐다봤고,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기함 358정이 침몰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혹시나 싶어 쳐다본 356정 역시도 상황이 나쁜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미 함 전체가 거의 걸레가 되어 버린 상태.
356정 역시도 85밀리 포탄에 의한 첫 피격에서 타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었다.
부우웅!
그때, 느닷없이 적 함정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NLL 이남으로 넘어온 거리는 불과 1.1 킬로미터.
순식간에 자신들의 해역으로 넘어 가버린 놈들은 마치 조롱하듯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더니 이후 다시 전속력으로 자신들의 기지를 향해 퇴각했다.
“시발것들…….”
윤태환 대위는 비로소 함정 내부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전혀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수병들과 부사관들의 수만도 4명.
거기에 중상자들로 보이는 자들 역시 부지기수라 뭐라 말조차도 나오지 않는다.
-함대 전원 귀환하라.
눈물이 앞을 가리는 사이 기지에서 무전이 날아왔다.
대체 왜 지원이 없는 것이며 이 지경이 된 상황에서 어떻게 자력으로 귀환을 하라는 말이던가.
그는 울분을 참지 못한 채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
“으악!”
또 그 꿈이었다.
교전 당시의 겪었던 모든 것들이 단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재현되는 꿈.
그걸 막고자 수면 유도제마저 동원했건만, 처음 며칠간을 제외하곤 효과가 거의 없다.
“쿨럭!”
이러면 그에게 휴식의 시간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유일하게 안식을 찾을 수 있는 잠마저 그를 괴롭히고 있으니까.
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막막할 따름이다.
스윽.
윤태환 대위는 간호사가 두고 간 수면 유도제를 휴지통에 처박았다.
그나마 깨어있는 시간에는 애써 생각을 배제하려 노력이나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는데, 사실 그게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그래도 자넨 운이 좋은 거야.
문득 위문을 왔던 부대장이 건넨 말이 떠올랐다.
당시 그 얼굴에 얼마나 침을 뱉고 싶었던지.
아니 그땐 워낙 정신이 몽롱했던 터라 실제 뱉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후 한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시발…….”
똑똑!
한참 불특정 다수를 향한 욕설을 입에 담고 있을 무렵 누군가 그의 병실 문을 두드렸다.
자연스레 문을 향해 돌아간 그의 머리.
이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웬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과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나이든 사내였다.
“헉!”
순간 정신이 번쩍 든 윤태환은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뒤따라온 통증에 다시 무너지는 몸.
그걸 본 60대의 사내가 혀를 차며 그를 만류한다.
“환자가 그렇게 몸을 함부로 움직이면 쓰나. 그냥 누워 있게나.”
“장관님께서 여긴 어떻게…….”
김태환은 당황스러운 마음에 중얼대듯 말을 뱉어냈다.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시선을 받은 60대 사내가 살짝 찌푸린 얼굴로 대꾸한다.
“장관은 무슨. 내가 물러난 것이 언제인데. 지금은 그저 방위산업체의 부사장직을 맡고 있네.”
60대의 사내. 아니 김영기 부사장은 이후 자신의 동행인을 쳐다봤다.
그게 신호였던 듯, 30대의 청년이 한걸음, 윤태환을 향해 다가선다.
“난 재우 그룹을 책임지고 있는 진현승이라고 합니다.”
“…….”
윤태환이라 해서 진현승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단지 그가 의아한 것은 대그룹의 회장이 왜 자신을 찾아왔느냐는 것.
빤히 쳐다만 보자 김 부사장이 헛기침과 함께 이유를 대변한다.
“자네에겐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혹시 당시 상황을 좀 알 수 있을까 싶어서 찾아왔네.”
윤태환 대위는 순간 갈등했다.
말을 해주는 것이야 뭐가 어려울까.
하지만 꿈자리에서도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는 당시의 상황을 다시 입에 올리는 것이 주저됐다.
“그게…….”
하지만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참의 설명 끝에 후속 지원 문제로 그가 흥분했을 무렵, 진현승이 넌지시 말을 뱉어냈다.
“당시 PCC가 북상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지상 기지에서 스틱스 대함 미사일을 조준 중이라는 사실이 탐지되어 접근이 힘들었죠. 더군다나 북한 해안포도 이미 발사준비를 마치고 있었던 터라서 더더욱 대응이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해안포는 물론 스틱스 미사일 기지를 선제타격하는 것도 가능했지 않습니까. 연평도 때 그랬던 것처럼.”
“…….”
진현승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차마 할 말이 없었다.
단지 곁에 서 있던 김영기 부사장을 쳐다보는 것 외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던 듯 김영기 부사장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윤태환을 향해 말했다.
“그 점은 뭐라 할 말이 없네.”
“그걸 장관님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니죠.”
윤태환은 쓴웃음과 함께 대꾸했다.
그게 더 가슴이 아팠던 듯 김영기 부사장은 툭 하고 윤태환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무튼, 증언을 해줘서 고맙네. 자네로서는 힘든 일이었을 텐데. 참, 물론 국가 차원의 보상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재우 그룹에서도 희생자들에게 위로금을 전달할 생각일세. 희생당한 분들에게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만은 그래도 가족들의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까.”
“…….”
윤태환 대위는 그 말에 멍한 표정으로 진현승을 쳐다봤다.
어색했던 걸까, 표정이 살짝 굳어진 진현승이 넌지시 말을 뱉어냈다.
“이번 일로 정신적인 충격이 큰 것은 알고 있습니다. 내 입장에선 뭐라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고.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겁니다. 군의 요구에 따라 우리가 이미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