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66화 (66/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66화

[재우그룹, 배터리 분야로 사업 진출 시사.]

한 달 후, 뉴스에선 재우의 배터리 분야 진출을 기사로 다뤘다.

투자금액은 총 3천억 원.

아직은 언론에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언급은 일절 배제했는데, 그건 불필요한 경계심을 미리 심어줄 이유가 없다는 취지에서였다.

안 그래도 국내 업체는 물론 일본의 배터리 업체들이 우리의 시장 진출 소식 하나만으로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판국에 애써 그들을 더 자극할 필요는 없으니까.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는 전고체 배터리에 대한 사실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칠 예정이다.

“아마 당장은 우리도 리튬이온과 리튬 폴리머 시장을 먼저 공략해야 할 거야.”

내내 신문 기사를 살피던 현철이 넌지시 청사진을 제시했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선 나 역시 같은 생각.

제대로 된 전고체 전지의 생산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선 최소 5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사이 부서를 지탱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선 필요한 선택이다.

“물론입니다. 그리고 우린 그사이 IT 분야에서도 충분히 사용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해야겠죠.”

“자동차 시장은 어쩔 생각이야?”

“완벽한 전기자동차를 세상에 내 놓는 것 역시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기능적인 부분이야 문제 될 건 없지만 제반 사항들을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하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그나저나 현우 자동차에서 우리 말을 들어주기는 할까?”

현철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간 문득 그 부분에서 우려를 표했다.

무리도 아닌 것이, 당장 내연기관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그들에게 자동차 시장의 페러다임을 바꾸자며 협업을 제안하면 미친놈 소리만 듣게 될 테니까.

나도 그게 걱정스러운 부분이긴 하다.

“저도 그래서 아예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고 싶지만, 당장은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부에서 새로운 자동차 회사의 설립을 허가할 이유가 없거든요.”

“하긴 있던 회사도 부도가 나서 팔려가고 흡수되고 난리인 판국에 새로운 자동차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하면 좋아하지는 않겠지.”

“그렇죠. 당장 기어 자동차가 현우에 흡수되는 문제만으로도 온 나라와 경영계가 난리가 아니었으니까요. 게다가 정부 관료들은 이해도 못 할 전기차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면 아무리 강력한 입김을 불어 넣는다 해도 사업 승인은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제 어쩔 생각이야?”

“일단 그 문제는 사우디 출장부터 다녀와서 논의하죠. 당장 급한 것은 K9의 수출 문제를 마무리 짓는 것이니까.”

얼핏 본 시간은 어느새 오후 2시에 가까웠다.

늦지 않으려면 당장 공항으로 출발을 해야 할 상황.

슬며시 몸을 일으키자 현철이 뜬금없이 손을 내밀었다.

“조심히 다녀와라. 너 없다고 회사가 당장 망하는 건 아니니 여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아! 혹시나 해서 말인데, 혹여 아랍계 여자에게 홀딱 빠져서 손잡고 들어오는 건 곤란하다.”

피식.

********

[음료 한잔 드릴까요?]

아래로 지나치는 구름을 감상하고 있을 무렵 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자 생긋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는 카트에 있던 물과 음료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말한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주문해 주십시오.]

[아! 주스 한잔 부탁드립니다.]

말을 뱉어냄과 동시에 다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가지런한 치아.

좀처럼 볼 수 없는 미인이었던 터라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이 갔다.

“쯧.”

순간 진현철의 말이 떠올라 헛웃음이 뱉어졌다.

사실 저 정도 미인이면 관심을 두지 않을 사내가 몇이나 있을까.

그의 말이 영 농담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뒤따르려는 차, 갑자기 그녀가 음료와 함께 종이 한 장을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

의아한 마음에 쳐다본 종이에는 번호가 적혀 있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쳐다봤지만 이미 그녀는 저편으로 카트를 몰고 간 후다.

‘쯧, 아랍 여인들이라고 해서 자유분방함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었군.’

웃으며 종이를 구겼다.

당장 나를 노리는 존재들이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삶을 사는 주제에 자유분방한 연애는 무슨.

그런데 그 순간,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경호실장이 갑자기 헛기침을 뱉어냈다.

“흠흠.”

봤네.

하긴, 내 경호가 목적인 저들이 그걸 놓쳤을 리가 없지.

젠장, 그나마 종이를 구겨 버렸기에 다행이지, 혹시라도 그걸 챙기기라도 했다면 체면을 왕창 구길 뻔했네.

“심심하실까 싶어 잡지 몇 권 가지고 왔습니다.”

무료함에 연신 하품을 하던 와중 경호실장이 어디선가 두꺼운 잡지 몇 권을 들고 왔다.

항공사에서 고객들을 향해 비치해둔 것인 듯한, 미국 IT기업들의 동향을 주로 다루는 잡지.

출처를 묻자 일등석 앞쪽에 비치되어 있던 거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제자리로 향한다.

“흠…….”

거의 무의식적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어차피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벌려놓은 사업에 관한 것들뿐이었던 마당에 잡지의 내용이 눈에 들어올 리가 있나.

“응?”

그런데 그때, 너무도 익숙한 인물 사진이 눈에 띄었고,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온통 백지상태가 되었다.

“일론 머스크?”

기사의 내용은 당시 일론 머스크가 보유 중인 X-닷컴에서 일어난 쿠데타에 관한 내용이었다.

콘피니티와의 합병 이후 일론 머스크의 독선적인 경영에 지친 X-닷컴의 직원들이 그를 회사의 대표직에서 몰아내려 했던 사건.

하지만 내가 정작 놀란 이유는 그게 아니다.

일론 머스크 하면 자연히 떠오르는 것은 테슬라.

그 테슬라의 최초 창립자이자 엔지니어인 에버 하드라는 존재가 뇌리를 확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사실 전기자동차의 선구자는 일론 머스크가 아니라 에버 하드라고 봐야 옳지.’

단지 일론 머스크는 그들이 만든 회사의 가치를 알아보고 투자를 했을 뿐.

물론 그의 뛰어난 경영과 창의력이 테슬라를 키우는 것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 에버 하드와 그의 동업자인 마크 타페닝이 없었다면 테슬라라는 회사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러고 보니 에버 하드가 테슬라를 창립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3년 후쯤이었지, 아마? 그렇다면 지금은 창업준비를 하고 있거나 개인적으로 연구를 진행 중인 단계에 있다는 소린데…… 그럼 차라리 내가 그를 영입해 버려? 아니지. 그냥 내가 회사를 미국에다가 설립해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무리한 생각은 아니었다.

사실 이 시대에 한국에서 전기차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많은 무리수가 따를 터.

차라리 시장규모도 크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에 너그러운 미국이 나로서는 더 조건이 좋을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당장은 투자금도 그리 많이 들어가지는 않을 거다.

어차피 일론 머스크가 초기에 테슬라에게 투자했던 금액도 1억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거든.

'양산이 가능한 차체가 나오려면 향후 수년의 시간이 걸릴 테고, 거기에 전고체 전지를 탑재하려면 또 시간은 지체될 테니 사실상 당분간 큰 금액의 투자금은 필요하지 않겠지.'

아니, 설사 예상을 빗나간다 해도 상관은 없다.

어차피 그때쯤이면 삼정과 연구소를 통해 들어오는 자금의 규모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수준.

돈이 부족해서 영향을 받는 일은 없을 거다.

‘나쁘지 않겠군. 배터리 공장만 한국에 두면 핵심기술유출의 우려는 없게 되는 거고…….’

생각은 순식간에 가지를 뻗어갔다.

곧 떠오른 것은 지금쯤 미국에서 정치인들을 상대로 열심히 세월을 죽이고 있을 라이언.

아마 그라면 사람 하나 수소문하는 것쯤은 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승객 여러분…….]

얼마나 골몰했던 건지 벌써 사우디 도착 직전이었다.

무료할 줄만 알았던 출장길이었건만, 갑자기 바닥났던 에너지가 확 차오르는 기분이다.

‘에버 하드라…….’

**********

[어서 오십시오, 미스터 진.]

도착한 공항엔 사우디 정부 측 인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친절하게도 하사드는 군 병력을 동원하여 우리를 에스코트했고, 행렬은 한참의 시간 끝에 왕궁 근처에 있는 하사드의 저택으로 들어섰다.

[내리시죠.]

도착한 저택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하긴, 석유 부국의 왕세제가 거하는 곳이니 이 정도 규모는 무리도 아니겠지.

특이한 건 온 사방에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있다는 건데, 우리를 위해 연회라도 준비 중인 모양이었다.

[환영합니다.]

가장 처음 우리를 맞은 것은 역시나 하사드 왕세제였다.

불과 두 번째 만남.

하지만 마치 오랜 친우를 대하듯 살가운 태도인 그는 덥석 내 손을 붙잡으며 안으로 이끌었고, 우린 미처 여독을 풀기도 전에 연회부터 참석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국에서 보낸 테스트용 K9은 이미 시험장으로 이동을 끝마친 상태입니다. 우려와는 달리 사막 지형에도 기동에 전혀 문제가 없더군요.]

K9을 향한 하사드의 관심은 여전했다.

특히나 사막에서도 전혀 기동력에 문제가 없는 점에 대해선 대만족을 한 듯한 느낌.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선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주행 테스트상에서 문제는 없었던 모양이다.

[내일은 실사격 장면을 직접 구경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나도 기대가 큽니다. 특히나 스마트 포탄의 경우는 이미 뉴스를 통해서 내 눈으로도 확인했던 것이라 더더욱.]

그도 연평도 포격 사건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미 매체들을 통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던 사건이었던 만큼 무리도 아닌 상황.

사실 우리로선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터라 옅은 미소로 응수하고 넘어가려는 차에 그가 이번엔 대뜸 UAE와 맺었던 대공미사일 공급 사업을 거론했다.

[UAE에 대공미사일을 공급한다죠?]

[…….]

[우리 국방부에 의하면 그 성능이 대단할 거라고 예상하던데, 혹여 우리에게도 납품이 가능합니까?]

순간, 당황스러움이 몰려들었다.

물건을 사준다는 데야 싫어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하지만 사우디의 대공방어 미사일 사업 분야나 전투기 분야는 지금껏 미국이 장악하던 시장이라는 것.

작디작은 UAE와는 달리 자칫 미국과의 충돌로 이어질 수가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건 저희로서도 조금 고려를 해봐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사실 자주포의 수출이 가능한 것도 그런 틈새 때문이었다.

자주포 시장은 미국으로서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분야였기에.

만약 미국이 그 부분까지 욕심을 부렸다면 사실 이번 계약도 쉽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가요?]

하사드는 다행히 내가 주저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그럼에도 끝내 개운치 않아 하는 표정.

왠지 앞으로가 조금은 걱정스럽다.

전통적으로 사우디라는 나라가 무기도입에 있어서 미국의 눈치를 보는 곳은 아니었으니까.

[뭐, 그 점은 차차 연구해봅시다.]

[…….]

*****

쿠구궁!

다음날, K9이 현장에서 그 성능을 선보였다.

특기인 TOT 사격부터 시작해서 사격 후 기동.

그리고 기존 자주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연사 능력까지.

향후 자동화 시스템의 개선과 운영체제의 교체만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면 성능개선은 더 확실하게 이루어질 터.

그땐 정말로 PZH2000을 넘어섰다 해도 무리는 아닐 거다.

[대단하군요. 특히나 스마트 포탄의 위력은 정말 생각했던 것 이상입니다. 세상에! 이동 중인 차량을 포탄으로 격파하는 걸 내 눈으로 보게 될 줄이야.]

하사드의 입에서는 연신 탄성이 뱉어졌다.

이로써 계약은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나 다를까, 그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납품에 관한 세세한 일정들을 거론했다.

[1차로 100대 정도를 내년 말까지 납품 가능합니다.]

[좀 더 서두를 수는 없겠습니까?]

[그나마도 최근 라인을 증설 중이기에 가능한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운용에 관한 교육도 이루어져야 하기에 물건만 납품한다 해서 당장 현장 배치가 가능한 것도 아니니 조급하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그 생각을 미처 못했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1차분은 내년 말까지 납품을 받는 것으로 하죠. 그런데 교육은 당연히 한국에서 하는 거겠죠?]

[그 부분은 군과 협의를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능적인 교육이야 재우가 담당한다지만, 전술 교육은 군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말을 내뱉는 와중 자꾸만 시선이 그의 뒤편으로 갔다.

얼핏 15세 전후로 보이는 듯한 소년.

하사드의 집무실을 드나들 정도면 보통의 인물은 아닌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이런 중요한 자리에 아이가 있다는 사실도 왠지 이상하다.

[그런데 저분은 누굽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제야 힐끗 시선을 돌린 하사드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 사촌인 빈 할만 왕자요. 어린 나이에 유독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내가 참관을 허락했습니다.]

[…….]

순간, 난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빈 할만.

그가 바로 차후 하사드를 몰아내고 사우디의 왕세제로 거듭나는 존재거든.

씨익.

눈이 마주친 할만 왕자는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후 대담하게 우릴 향해 걸어온 그는 대뜸 하사드를 향해 말한다.

[형님께서 저의 의견을 존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이 나라에 꼭 재우 그룹의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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