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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64화 (64/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64화

쪼르르.

“마셔, 주말인데 오늘만큼은 너도 여유를 좀 즐겨야지.”

진현철에 의해 끌려 온 곳은 회사 근처에 있는 실내포장마차였다.

곧 그가 주문한 것은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

쳐다보는 내 눈빛의 의미를 이해 한듯 그가 너스레를 떨며 변명한다.

“이젠 신장이 하나뿐이라서 조심해야 한다더군. 난 맥주 한 병이면 족해.”

그 말에 옅은 헛웃음을 뱉어내곤 술잔을 기울였다.

허심탄회한 대화들이 오고 가기를 수 시간.

뒤늦게 오늘 술자리의 목적이 떠오른 듯 그가 다시 김영기 장관의 거취 문제를 입에 올렸다.

“어때, 김영기 장관 문제는 생각 좀 해봤어?”

“끌고 오는 편이 우리에게도 이득이겠죠. 만약 그가 LS로 가버리면 두고두고 걸림돌이 될 수도 있으니까.”

“내 말이 그거야. 그 양반이 군 내에서 워낙 신망이 두터워서 나서서 안 되는 문제가 별로 없을 거라는 말이지. 그런 양반을 경쟁사에 빼앗기게 되면 골치가 아플 것은 뻔하다고. 더군다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에 대한 신망은 더 두터워졌다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이번 GP도발 사태에 대한 그의 책임소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누를 수 있었던 상황.

하지만 굳이 자신을 희생하는 그의 태도로 인해서 군은 더더욱 그를 신뢰할 거다.

“며칠 후에 제가 직접 찾아가 보겠습니다.”

“며칠씩이나 기다린다고? 그사이에 다른 곳에서 덥석 물어가면 어쩌려고?”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뭘 근거로?”

“LS 같은 곳에서 삼고초려를 하는 상황에서도 버티고 있는 마당에 다른 곳이 눈에 들어오겠습니까? 혹시 또 모르죠. 우리가 손을 뻗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우리가 손을 내밀기를 기다리는 거라고?”

“제 생각이 그렇다는 거고, 자세한 것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죠. 아무튼,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오늘은 술이나 마시죠. 일 지옥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더니 결국엔 또 일 이야기로 술자리를 채울 생각입니까?”

현철은 그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비워낸 소주만도 벌써 2병째.

하지만 희한하게도 오늘따라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김영기 장관을 끌고 온다…… 하긴, 그만한 인물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

******

딩동!

며칠 후 내가 찾은 곳은 잠원동에 위치한 김영기 장관의 자택이었다.

전직 장관이라는 직책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아파트.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나마도 대출이 절반에 달한다고 하던데, 평생 군에 몸담았던 인물치고는 의외의 결과였다.

“누구세요?”

마중 나온 인물은 그의 아들이었다.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안 한 아들이 한 명 있다더니, 여전히 부모의 그늘에 둥지를 틀고 있는 모양이다.

“어떻게 오셨죠?”

머릿속을 자리 잡던 편견과는 달리 막상 마주한 사내의 첫인상은 좋은 편이었다.

김 장관의 아들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선이 얇은 스타일.

쓰고 있는 안경이 꽤 두꺼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또 맹한 얼굴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혹시 김영기 장관님 계십니까?”

“네, 계십니다만…….”

그는 잔뜩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자주 들락거렸을 LS의 영향이겠지.

슬쩍 명함을 한 장 꺼내어 건네자 갑자기 눈빛이 확 달라진다.

“들어오시죠.”

난 대번에 경계심을 버리는 그의 태도에서 내가 가졌던 짐작에 무게를 실었다.

김영기 장관.

그는 정말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진 회장님이 내 집엔 어쩐 일입니까.”

나를 맞는 김 장관의 표정에선 환한 미소가 맺혀있었다.

단지 그만이 아니라 차를 내어 오는 그의 부인 역시도 지나치게 과한 친절을 보이는 중.

내 예상은 점점 더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퇴임 소식을 듣고서도 이제야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요즘 진 회장님처럼 바쁜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된다고요. 자, 일단 앉으시죠.”

확신을 더 해주는 부분은 또 있었다.

이전과는 달리 나를 대하는 말투가 많이 달라져 있다는 점.

전엔 어쩔 수 없이 존칭을 써주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지극히도 자연스럽다.

스윽.

난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며 순간적으로 그의 집을 스캔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역시 그의 청렴함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

특히나 오래된 가구들이 그걸 증명했는데, 식탁이며 소파며 온전한 곳이 없을 정도로 오래된 것들뿐이었다.

‘자고로 사람이란 돈이 있으면 어떻게든 티가 나는 법인데 어디 한구석 돈 들인 흔적이 없다는 건 그의 성품을 대변하는 거지.’

물론 내 판단이 틀린 걸 수도 있다.

지나치게 용의주도한 사람인 경우, 환경마저 작위적으로 꾸며서 스스로를 숨길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 가능성을 배제한 것은 임 차장 때문.

그가 가져다준 정보에 의하면 아무리 먼지를 털어봤어도 김 장관의 재산은 이 집 한 채와 약간의 예금. 그리고 나라에서 지급되고 있는 연금이 전부라고 했다.

“아드님이 공대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전공이 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아마 가시가 될 수 있을 말이었을 거다.

놀고 있는 자식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하지만 대뜸 그걸 건드린 이유는 아들을 발판삼아 대화의 물꼬를 터보려는 의도에서였다.

놀고 있는 식구에게 대그룹의 회장이 관심을 보인다는 건 일종의 신호를 주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이 내게 오면, 아들 역시 책임을 질 수도 있다는.

“기계공학을 전공 했습니다. 한때는 전기계통으로도 공부했고요.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친구들이랑 뭉쳐서 모터를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모터요?”

“대출력 모터 말입니다. 저놈 말에 의하면 차후 언젠가는 전기자동차의 시대가 올 거라면서 준비 중이라는데, 나 참, 다들 대체 무슨 공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

순간 놀란 마음에 그의 아들을 쳐다봤다.

뭣 때문인지 연신 내 쪽을 주시하며 주방 한편에 앉아있던 그는 눈이 마주치자 퍼뜩 시선을 돌린다.

‘이것 봐라?’

의외의 자리에서 선구자를 만난 느낌이었다.

이 시대에 전기자동차 시장을 상상하는 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아니, 상상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걸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장관도 장관이지만 갑자기 사내에 대한 욕심이 샘솟았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아드님을 제 회사에서 스카우트하면 어떻겠습니까.”

즉시 김 장관을 향해 고개를 돌리곤 넌지시 말했다.

“…….”

갑작스러운 내 제안에 당황한 듯 김 장관의 눈이 커다래 지며 아들과 나를 번갈아 쳐다본다.

“그건 또 무슨…….”

“전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보아하니 아드님께서 딱 그런 인물인 듯싶어서 하는 말입니다. 아! 생각해보니 일단 아드님 의견을 먼저 들어봐야 하겠…….”

“가겠습니다.”

말이 채 끝맺어지기도 전에 사내의 입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다시 말을 잇는다.

“저도 진현승 회장님처럼 창의적인 분과 일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

“그동안 재우가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이 회장님을 통해서 현실화되었다는 것은 저도 아버지를 통해 들어서 잘 알고 있거든요.”

머쓱한 마음에 헛웃음을 뱉어냈다.

스스로도 무안했던 듯 사내 역시 머리를 긁적이며 서 있다.

“미안하지만 이름이 어떻게 되죠?”

난 눈빛으로 김 장관에게 양해를 구한 후 그의 아들을 향해 물었다.

자식 문제에 있어서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건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분위기 가운데서도 김 장관은 오히려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언제부터 전기자동차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이니 물어도 되겠습니까?”

“대학 시절 때부터 내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만약 전기추진 방식이 상용화되면 환경문제는 물론 여러 가지 문제들이 해결 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나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더더욱 가야 할 방향이죠.”

“…….”

난 한참 동안이나 그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도랑도 치고 가재도 잡는 형국 같거든.

“조만간 내 개인 연구소에 자리를 마련하죠.”

지훈은 확 표정을 밝혔다.

하지만 이내 다시 굳어지는 폼이 뭔가 걱정거리라도 있는 모양새다.

“죄송하지만 제 친구들도 함께 합류하면 안 되겠습니까?”

“당연히 가능합니다. 연구라는 것이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내가 누구보다 잘 알죠. 몇 명이 됐든 상관없습니다.”

그는 다시 표정을 밝히며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동기들에게도 한시라도 빨리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듯.

재빨리 방으로 향하는 그를 뒤로하고 이번엔 김 장관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그나저나 장관님께서도 이젠 거취를 정하셔야죠.”

“…….”

무심히 뱉어낸 말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표정.

의아한 것은 순간적으로 고민의 흔적 같은 것이 그의 얼굴에 스쳐 갔다는 거다.

“LS에서 장관 님을 모셔 가려 한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그곳 외에 달리 제안받으신 자리라도 있으신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각하께서 공기업 사장 자리를 제안하셨소.”

내내 들었던 일말의 불안감은 이게 원인이었던 듯싶었다.

하긴, 대통령으로서도 그의 퇴임은 부담스러웠겠지.

자칫 정권을 향해 날아올 화살을 그가 온몸으로 감당하고 물러나는 형국인 마당에 대책도 없이 쫓아내는 것은 군의 불만을 자초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아까 내가 느꼈던 것은 대체 뭐지?

분명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던 눈치였는데.

“일단 이걸 좀 봐주시겠습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준비해온 서류들을 꺼내놨다.

차후 재우가 가야 할 길.

그리고 우리 군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자세한 구상들이 빼곡하게 적어 놓은 서류를.

한참 그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김 장관은 어느 순간 파르르 하고 손을 떨었고, 난 그 시점에 내가 그에게 제안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를 입에 올렸다.

“그것들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장관님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전 이번 기회에 장관님을 탈레스의 부사장으로 추대하고 싶습니다.”

툭!

그는 턱을 떨어트린 채 나를 쳐다봤다.

이내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몇 번이고 눈을 끔뻑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어낸다.

“방, 방금 탈레스의 부사장이라고 했습니까?”

“물론 공기업 사장 직위에 비한다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장관님의 남은 꿈을 이루시기엔 충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재우 그룹의 핵심이자 모태인 곳이나 마찬가지인데…….”

“모태가 된 곳은 맞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재우는 지주회사 체제로 전향될 예정이라서 그렇게까지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 우리가 인수한 우영을 비롯한 테크윈의 사업부서들을 통폐합할 예정인데, 그 작업에 장관님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

그는 한동안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내내 고심하는 표정을 짓고 있던 그가 넌지시 말을 뱉어낸다.

“시간 되시면 오늘 나랑 술 한잔 어떻습니까.”

“……그거 좋지요.”

***

“하하하!”

김영기 장관과의 술자리는 늦은 밤까지 지속됐다.

기어이 2차를 제안하는 그를 만류하고 집에 도착한 시간은 어느새 저녁 12시.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던 하루였다.

‘쯧, 괜히 시작해서는…….’

왠지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홀로 잔을 더 채웠다.

무엇 때문일까.

평소 내 주량을 훌쩍 넘긴 상태였음에도 여전히 정신은 말짱했고, 그 탓에 더 술을 마신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한한 일이군.’

막상 침대에 누웠어도 잠은 오지 않았다.

차라리 이대로 밤을 새우자는 생각에 읽을거리를 찾던 중, 불현듯 낮에 김지훈이 했던 이야기가 뇌리를 맴돌았다.

전기자동차의 시대.

앞으로 그런 시대를 맞이하게 될 거라던.

‘그래, 결국 세상은 그렇게 가고 있었지. 젠장, 그러고 보니 난 왜 여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순간 손목에 있는 칩에 눈이 갔다.

혹여 저 안에 대출력 모터에 관한 기술이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서.

ADD에서 한때 그 부분을 연구 중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슥.

즉시 암호를 입력하곤 데이터 칩에 접속해봤다.

이내 폴더들을 밀어내는 동작의 연속.

“어?”

그런데 어느 순간, 특이하게도 아예 폴더명이 없는 폴더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다.

‘뭐지?’

즉시 폴더를 클릭하자 이번엔 하위 폴더 하나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폴더명은 ‘미완.’

뜻을 있는 그대로 떠올리자면 완성되지 않은 것임을 뜻하는 것 같은데, 나로선 금시초문인 상황이었다.

‘…….’

궁금한 마음에 즉시 손을 댔다.

짧은 사이 들었던 생각은 관리자였던 나조차도 저런 항목이 있었는지는 몰랐다는 사실.

하긴, 수천 가지의 폴더들을 죄다 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만큼 그게 딱히 이상할 정도의 일은 아닐 터다.

(2025년 현재 완전한 상용화에 이르지 않은 기술 분류.)

이후 열린 폴더의 맨 상단에 적혀 있는 문구는 역시나 내 예상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완전한 상용화에 이르지 않았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개발엔 성공했지만, 미처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

아니면 과도한 자본의 소모로 인해서 상용화까지는 힘들었다는?

[Solid state battery.]

이후 스크롤을 내리던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걸 그대로 해석하자면 바로 전고체 배터리.

사실 확인을 위해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확인해 봤지만 분명 첨부된 파일에 있는 내용은 전고체 배터리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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