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63화
며칠 후, 일정을 모두 끝마친 하사드 왕자는 성남공항에 주기 되어 있던 전용기를 타고 다시 사우디로 돌아갔다.
애초 방문 목적 자체가 재우와의 거래가 주였던 터라 당연히 나는 물론 그룹의 주요 간부들이 환송식에 참석했고, 정부를 대신해선 총리와 경제부처 요인들. 그리고 이번 계약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국정원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좋은 거래였소. 또한, 앞으로도 좋은 거래 관계가 되기를 희망하오.]
하사드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몇 번이고 인연이 계속되기를 희망했다.
사실 그거야 내가 더 바라던 점.
강한 힘으로 그의 손을 마주 잡자 그 역시 손에 힘을 주며 말한다.
[그러고 보니 사우디에서 현지 테스트를 진행할 때쯤엔 진 회장을 다시 볼 수 있겠군요.]
[당연히 제가 참관을 해야죠.]
[그땐 우리 허심탄회하게 대화나 좀 나눕시다.]
그는 거듭 미소를 지어 보이곤 비행기에 올랐다.
이내 그의 전용기가 하늘로 떠오른 것을 지켜본 후에야 우리 일행은 계속되던 긴장을 내던졌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군. 40억 달러라니.”
가장 먼저 말을 뱉어낸 것은 진현철이었다.
그에 뒤질세라 임 차장. 아니 임 전무 역시도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함박웃음을 내짓고.
그 분위기는 즉시 정부 측 요인들에게까지 옮아 곧 총리의 입에서 축하인사가 전해져왔다.
“축하합니다, 진 회장님.”
“감사합니다.”
슬쩍 내밀어진 그의 손을 붙잡으며 대꾸했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그는 아직도 사실이 채 믿기지 않는 듯 연신 계약금액을 입에 올렸다.
“대공방어 시스템과 스마트 포탄만으로도 수출금액이 40억 달러라…… 이것 참. 그럼 K9의 수출이 완전히 확정되면 대체 금액이 어느 정도까지 커진다는 말입니까.”
“지원 차량과 여타 부품들을 포함하면 추가로 20억 달러 정도가 더 증가할 겁니다.”
“허어…….”
총리는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하긴, 그 정도 금액이면 단일 무기수출 규모로는 최대인 터.
실은 나도 이 상황이 현실로 체감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거 진 회장님에게 뭐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사실 정부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쉽지 않았을 거래였죠.”
총리는 그 말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최근 새로 취임을 한 터라 그다지 정보가 없던 인물.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학자 출신이라고는 하는데, 그래서인지 정통적인 관료 출신들과는 뭔가 느낌이 다르다.
“정부에 공이 있다면 그건 국정원에게 돌아가야겠죠. 진 회장님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국정원장께서 이번 일을 위해 무던히도 애쓰셨습니다.”
그 말에 슬쩍 국정원장을 쳐다봤다.
내 시선이 어색했던 듯 그가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친다.
“제가 한 일이 뭐가 있다고요. 그나저나 소문에 의하면 곧 IMF에 남은 채무를 갚는다고 하던데, 이거 우리끼리라도 먼저 축하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 말은 또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우리가 최종적으로 IMF와의 채무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은 내년쯤.
그동안 아득바득 빚을 갚기 위해 온 나라가 노력한 결과가 드디어 결실을 맺는 모양이다.
“그게 다 여러분들이 노력을 해주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아마 이번 달 말쯤이면 남은 4억 불을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총리는 말끝에 나를 쳐다봤다.
어색한 마음에 슬쩍 눈을 피하자 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돌아선다.
“그나저나 하사드 왕자와의 관계는 어떻게든 지속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가 왕위에 올랐을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말입니다.”
막 공항을 빠져나왔을 무렵, 국정원장이 넌지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뭐 원칙대로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내가 불안한 건 그가 정말로 왕위에 오를 수 있느냐다.
역사적으로 보면 차후 그의 조카에 의해서 축출되는 것이 그의 운명이거든.
하지만 지금껏 많은 역사가 뒤틀렸고, 또 시간표도 달라진 것이 현실. 당분간 그와의 교류를 지속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공항을 벗어난 나와 재우 그룹의 일행들이 향한 곳은 에어로스페이스였다.
최근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공격헬기 개발에 있어서 큰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데, 기왕 시간이 난 김에 확인을 해두자는 의도였다.
“이게 방탄 소재입니까?”
도착한 연구소 한편에는 이번에 개발이 끝난 복합소재들이 주룩 테이블 위를 장식하고 있었다.
KA-50의 특징 중 하나가 어지간한 기관총 세례에는 끄떡없을 정도로 강력한 방탄능력.
특히나 조종석과 연료통을 둘러싼 장갑의 경우는 3겹의 특수 소재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20밀리를 난사해도 그저 흔적만 남을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기존에 러시아에서 넘어온 소재기술에 회장님의 연구소가 개발한 복합소재를 적층하는 방식으로 개량을 했습니다. 그 결과, 최고 20퍼센트 정도 강도가 증가한 상태죠.”
설명을 덧붙인 이는 윤 대표였다.
자신이 부임한 이후 보여줄 만한 결실이 있어서였을까,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는 그의 얼굴은 옅은 흥분감에 젖어 있었다.
“참, 탈레스의 전언에 의하면 30밀리 기관포의 개량도 진척이 있다고 하더군요.”
설명을 잇던 그는 슬쩍 명승은 교수에게 이후의 진행을 토스했다.
어차피 무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탈레스.
그 탓에 명 교수도 자리에 불려 온 모양이다.
“흠흠, 그 부분에 있어선 제가 설명을 계속하겠습니다.”
시선을 받은 명 교수는 잠시 헛기침을 뱉어내곤 나를 쳐다봤다.
대중들 앞에서 나를 대하는 것이 어색했던 거지.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가 옅은 웃음을 마주 보이며 설명을 잇는다.
“원래 KA-50의 30밀리 기관포는 BMP의 것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그 탓에 고정식으로밖에는 활용할 수 없어 대응에 취약한 편이었죠. 탈레스는 이번에 그걸 회전식으로 개량하는 작업에 성공했습니다.”
사실 기관포의 고정식과 회전식은 분명한 장단점이 존재한다.
회전식 터렛은 안정성이 떨어지는 관계로 대공전에서 취약한 편.
반대로 고정식 터렛은 지상 목표물에 대한 공격능력에서 회전식보다 뒤처진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건 대 전차전을 상정한 작전능력이었기에 회전식이 더 유리하다.
아니, 꼭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애초 공격헬기가 투입되는 상황은 대부분 제공권확보가 끝난 후인데, 그건 곧 헬기가 공대공 작전을 펼칠 상황은 거의 없다는 것을 뜻하거든.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시커 개선 작업은 얼마나 진행이 된 겁니까?”
묵묵히 설명을 듣고 있던 난 문득 떠오른 생각에 희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불시에 뱉어진 질문에 당황했을까, 놈은 퍼뜩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시커의 개량은 이미 끝난 상태입니다. HMD와의 연동작업 역시 95퍼센트쯤 마쳤고요. 한 가지 더 전해드릴 소식이 있다면 공격헬기 용으로 개량이 진행 중인 AESA 역시 연말쯤이면 작업을 마칠 예정이라는 겁니다.”
“연구소도 수고가 많군요.”
희원은 그 말에 평소 나를 대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곧 아차 싶었는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본 그는 곧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참, 명 소장님께 한 가지 건의 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명 교수는 한껏 긴장된 얼굴로 대꾸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건의’라는 말은 곧 일거리를 주겠다는 것과도 같은 표현임을 알고 있는 듯.
아마 이 자리가 공적인 곳이 아니었다면 불평이 날아와도 몇 번은 날아왔을 거다.
“이 기회에 탈레스에 보병 무기 연구단지를 세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보병 무기개발 연구소를요?”
명 교수는 역시나 싶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이내 눈을 뒤룩뒤룩 굴리던 그는 자못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한다.
“개발을 시도하는 건 상관없지만 막상 결과물을 군에서 채택 안 하게 되면 어쩌려고…… 요?”
“그땐 수출로 시장을 개척해야죠. 성능이 좋으면 어디건 팔 곳은 있습니다. 당장 K9이 그걸 증명하지 않습니까.”
명 교수는 그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반박은 하고 싶은데, 이미 이루어진 계약이 있으니 입을 열지 못하겠는 거지.
사실 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래를 위해선 보병 무기 개선 작업은 사전에 발을 걸쳐둘 필요는 있다.
“탈레스의 제2공장 옆에 있는 부지에 따로 연구소를 설립하도록 하죠. 필요하다면 기존 회사를 인수하는 방안도 검토할 예정인데, 그건 제가 맡을 테니 연구소만큼은 교수님께서 책임져주셔야 할 겁니다.”
“내가? 아, 아니 제가요?”
명 교수는 낙담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최근 일에 치여 그 좋아하는 술도 못 마시는 나날들의 연속이었을 터.
그 마당에 또 일거리를 던져주니 표정이 아예 썩어간다.
쯧, 그래도 그편이 나을 겁니다.
계속해서 술독에 빠져 사시다간 조만간 정말로 요단강 건너시게 될 테니까.
스윽.
정리를 마치고 다시 나서는 길에 문득 뒤를 돌아봤다.
무려 20만 평에 달하는 부지.
저 드넓은 공간이 죄다 전투기 부품 생산과 공격헬기 조립공장으로 꽉 들어차는 날을 잠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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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입니다.”
바삐 넘어간 달력은 어느새 7월을 맞고 있었다.
남북 간의 긴장 국면은 여전히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고, TV에선 연신 추락하고 있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증시상황을 심각한 논조로 토론 중이었다.
‘희한하다는 말이지. 툭하면 역사가 뒤틀리는 와중에도 저건 정확히 시간을 맞췄으니.’
2000년 3월에 시작된 미국의 IT버블 붕괴는 정확히 역사를 따랐다.
그날이 유독 내게 뼈가 아픈 이유는 당시 모아두었던 쌈짓돈을 남들 따라서 주식에 때려 박았다가 홀랑 날려 버린 기억이 있거든.
그 지경에도 ‘존버’는 진리라는 말을 듣고 묻어뒀던 내 주식은 결국 상장폐지 되는 불운을 맞았다.
“흠…….”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당장은 하루가 다르게 추락하지만 차후 승승장구하는 것들을 알고 있으니까.
애플이나 구글, 또는 아마존 같은.
미래엔 훨훨 날아다니는 그곳들만을 택해서 투자하면 그만인 상황이니 내게도 확실히 기회는 찾아온 것이 아닌가.
‘사실 기회라면 버블이 형성될 시기에도 있었지.’
단지 그때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는 것을 핑계로 지나쳤었을 뿐.
그건 그렇고, 정말로 투자할 생각이 있다면 치고 들어가야 할 타이밍이 언제인가 하는 것이 문제인데, 그게 좀 애매하다.
‘버블이 완전히 꺼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략 2002년쯤에 바닥을 쳤던가?’
내 기억엔 분명 그랬다.
당시 퀄컴이 최종적으로 무려 85퍼센트의 가치가 날아가 버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거든.
아마 그걸 기준으로 삼으면 타이밍을 놓칠 일은 없을 거다.
‘그래, 괜히 거품이 채 꺼지기도 전에 발을 담갔다가 불필요한 자금 낭비를 할 필요는 없지. 그럼 남은 문제는 어느 회사에 투자하느냐는 점인데, 생각해보니 퀄컴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한데?’
퀄컴도 퀄컴이지만 ARM도 놓치면 곤란하다.
반도체 아키텍처와 통신 기술은 향후 군사를 비롯한 여타 민간 분야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이익을 가져다주며 국제적인 분쟁을 회피할 수단이 될 테니까.
하면 결론은 내려진 건가.
원천기술의 중심에 있는 업체들. 그리고 차후 대박을 칠 몇몇 기업들 위주로의 투자.
‘참, ARM은 영국 시장에 상장된 회사였지?'
순간 그 점이 떠올랐다.
하지만 딱히 문제 될 것이 없는 것은 어차피 영국도 버블 붕괴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는 것.
잠시 들었던 불안감을 곧장 떨쳐냈다.
‘정작 문제는 자본인데……쯧, 그사이 착실하게 자본축적이나 해둬야겠군.’
똑똑!
“회장님, 진현철 대표님 오셨습니다.”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무렵 김 비서가 현철의 방문 소식을 알려 왔다.
행여 우영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싶었지만 표정이 밝은 것으로 봐선 그건 아닌 듯 보였다.
“주말에 퇴근은 안 하시고 여긴 왜 오신 겁니까.”
“왜긴 왜야. 너를 일 지옥의 늪에서 건져주려고 왔지. 가자, 마침 의논할 것도 좀 있으니 간만에 형제끼리 술이나 한잔하자고.”
“의논이라니, 뭐에 대해서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러자 현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소파에 엉덩이를 걸친다.
“아무튼, 성격 급하기는. 이번에 자리를 내려놓은 김영기 국방부 장관 말이야. 우리가 끌고 오면 어떻겠어?”
순간 제법 그럴듯하다는 생각이라는 뇌리를 스쳤다.
내가 겪었던 그 누구보다 강직했던 인물.
그라면 재우에 커다란 힘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소문에 의하면 LS에서도 그 양반에게 지금 삼고초려 중이라는 말이 있던데, 가능하면 우리가 끌고 오면 좋을 듯해서 하는 말이다.”
“LS에선 어떤 자리를 제안했답니까?”
“대외업무담당 전무직을 제안한 모양이다.”
대외업무담당 전무직을 제안했다는 것은 군에 남아 있는 그의 힘을 빌리겠다는 뜻이었다.
그 말인 즉, 자칫 그를 놓쳤다간 재우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더는 생각하고 지사고 할 문제가 아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가시죠, 술은 제가 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