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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62화 (62/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62화

“TV 좀 틀어봅시다.”

당장 점심이 문제가 아닌 터라 다급히 근처 사무실로 뛰어들어갔다.

이미 사무실 직원들도 우리가 이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온 실무단인 것을 다 알고 있었던 상태.

직원 중 한 명이 어벙한 얼굴로 벽 저편을 향해 손가락질했고, 현철과 나는 즉시 TV가 있던 방향으로 달려갔다.

[약 1시간 전, 철원 소재 GP 초소에서 우리 군과 북한군과의 교전이 벌어졌습니다. 교전 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소식이 들어오고 있지 않아 파악하기가 쉽지 않지만, 우리 군의 반격으로 북한군 경비초소가 파괴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서…….]

앵커의 맨트를 듣는 순간 잠시 넋이 나갔다.

철원. 그리고 GP에서의 교전.

분명 90년도 후반쯤 그런 일이 벌어졌던 기억이 있기는 하거든.

특이한 것은 당시엔 사건 자체가 큰 이슈가 되지 못한 채 묻혀버렸다는 것.

하지만 발 없는 말이 어디를 못 갈까.

알음알음 소문을 탄 그 사건은 결국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었고,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세월이 흘러버린 터라 큰 관심은 받지 못했다.

그나저나 그건 분명 90년대에 일어났던 사건인데.

그럼 시간대가 또 뒤틀린 건가.

“잠시만요.”

난 잠시 현철에게 양해를 구하곤 다시 복도로 나왔다.

이내 한적한 곳을 찾아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다행히 국방장관과의 통화는 즉시 연결되었다.

언론 브리핑을 준비 중이었던 듯 소란스러움이 수화기 너머에서 전해져 온다.

“북측에서 유탄이 먼저 날아왔소. 그에 대응하여 우리 측에서 기관총 사격을 가하자 82밀리가 다시 날아왔고, 우리 역시 57밀리 무반동총으로 대응을 했지만 역부족이었소.”

“그 후에는요? 혹시 스마트 포탄이라도 사용한 겁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초소가 통째로 날아갔다는 거죠?”

“말 그대로 관측초소가 날아간 거요. 벙커가 아니라. 그리고 그걸 날려 버린 것은 40밀리 유도미사일이었고.”

“…….”

사실이라면 양측 다 명백한 정전협정위반이었다.

우려스러운 마음에 넌지시 그 말을 입에 담자 코웃음을 치는 소리가 날아든다.

“어차피 북이나 우리나 애초부터 협정에 반하는 화기들을 GP 내에 보유 중이었소. 북은 RPG와 82밀리를. 그리고 우린 57밀리를. 단지 그동안 암묵적으로 넘어가고 있었던 것뿐이오.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난 지금 언론을 상대해야 하니까.”

국방장관은 다급히 전화를 끊으려 했다.

하지만 내가 정작 듣고 싶었던 대답은 아직 못 들은 상황.

서둘러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질문을 뱉어냈다.

“혹시 이번 도발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까?”

“…….”

그 말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곧 긴 한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자조적인 투의 말이 들려온다.

“그렇소.”

“어떻게요?”

“군 내부에 간첩을 심는 것은 북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그럼 우리 측 대응도 사전에 계획에 있었던 거라는 뜻이군요”

“내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요.”

그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한 채 결국 통화를 끝냈다.

하지만 이미 대답은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

뛰는 가슴에 절로 팔에 힘이 빠졌다.

젠장, 이러면 이번 대응에 대한 최종 명령권자가 대통령이었다는 말인데.

대체 뭘 어쩌려고 이러는 거지?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이 시점에 대체 왜?

******

“임 전무님 좀 내 방으로 와달라고 하세요.”

다급히 회사에 복귀한 나는 즉시 임 차장을 불러들였다.

호출을 예상했던 걸까, 그는 불과 5분 만에 달려왔고,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말을 쏟아냈다.

“북한이 보름 전쯤에 진행 중이던 남북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답니다. 해서 국정원장님께서 직접 북한으로 가서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는군요. 그 이후, 우리 군이 북에 심어놓은 휴민트를 통해서 철원지역의 도발징후를 알고 있었다는데, 오늘 기어이 이 사달이 난 것 같습니다.

“북한이 왜 갑자기 회담을 파기한 거죠?”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연평도 도발로 인한 피해로 잔뜩 끓어오른 군부를 다독이려는 의도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사실상 말이 좀……."

“그럼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겁니까?”

“솔직히 그 점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은 6개월 전부터 김씨 일가의 주변 인물들의 해외계좌로 어마어마한 돈이 입금되고 있었다더군요.”

“돈을 보낸 세력이 어디인지는 모르고요?”

“워낙 많은 계좌가 연루되어 있어서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이 안 된 모양입니다.”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단편적인 사실들 만으로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힘들 다는 것.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다.

[북의 선제 적인 정전협정 위반으로 우리 군은…….]

마침 틀어놓은 TV에선 국방부 장관이 언론을 상대로 한 브리핑이 진행되고 있었다.

다행히 양측의 자제로 더 이상의 확전은 없는 상황.

그렇다 해도 아마 한동안 세상은 떠들썩할 것이다.

‘대체 역사가 어떻게 바뀌려고 이렇듯 용트림을 하는 거지?’

******

[우리 정부는 또다시 이어진 북의 도발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아쉬운 것은 북의 반응이 아직은 뚜렷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며 한때 조선중앙TV를 통해서는 오히려 우리의 대응을 성토하기도 했습니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이번 사태를 심각한 도발로 간주하여 당분간 비상태세를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괌에 배치되어 있는 B52 폭격기의 한반도 임시 배치를 추진 중이며 그로 인한 북한의 반발은 더 거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상처럼 한동안은 휴전선에서 벌어진 사태가 주요 뉴스를 장식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두 번에 걸친 도발에서 연속하여 망신만 당한 북이 이제 어떤 식으로 상황을 타개할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는 점.

아마 한동안 우리 군의 긴장 상태는 계속될 것이며 덕분에 전방지역 병사들의 피로도는 더해질 거다.

[다음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어제저녁 사우디의 하사드 왕자가 우리나라를 찾았습니다. 방문 목적은 특별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일각에선 중동지역의 불안한 정세를 대비하여 우리와의 군사 협력을 다지기 위함일 거라는 짐작을 내놓고 있습니다.]

뉴스는 어느새 어제 우리나라를 방문한 하사드 왕자에 대한 소식으로 넘어가 있었다.

슬쩍 쳐다본 시계는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던 상태.

이젠 나도 슬슬 움직여야 할 시간이었다.

“난 약속이 있어서 나갈 테니 김 비서도 이만 퇴근하세요.”

“어딜 가시는데요?”

난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다.

여전히 밝게 웃는 얼굴로 우리의 정부 요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하사드 왕자의 모습.

순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초대받으셨어요?”

“네, 어쩌다 보니.”

사실 그 점은 나도 의외였다.

늦은 밤 갑작스레 걸려온 국정원장의 전화.

이유는 딱히 밝히지 않은 채 단지 오늘 열리는 저녁 만찬에 참석해 달라고만 했지만, 사실 대충은 의중을 짐작하고 있는 터다.

HVP.

이미 UAE에 수출된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사우디가 아니지.

의외인 것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조용하다는 건데.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제일 먼저 달려들었던 그들의 태도를 생각하면 조금은 의외의 결과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도착한 호텔에선 이미 연회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테이블엔 온갖 향신료 냄새를 풍기는 할랄 음식들이 즐비했고, 저들의 정서를 고려하여 술은 그 흔한 와인 한 병조차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그렇게 늦은 건 아닙니다. 우리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가장 먼저 나를 맞은 것은 역시나 국정원장이었다.

무슨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까, 나를 은밀한 곳으로 끌고 가는 그의 표정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초소 도발 사건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난 그의 말이 나오기에 앞서 돌아가는 현 상황에 대해 물었다.

잠시 걸음을 멈칫 한 그는 난처한 표정과 함께 말을 뱉어냈다.

“임 차장. 아니 임 전무에게 전해 들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까?”

“대충 듣기는 했는데,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요.”

“미안하지만 나 역시 그 이상은 말해줄 수가 없습니다. 이번 사태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서요.”

“…….”

눈치로 봐선 확실히 내 예상보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저토록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마당에 답을 얻을 수는 없을 터.

그가 대답해 줄 수 있을 최소한의 범주를 건드려봤다.

“하면 회담은 정말 날아가 버린 겁니까?”

“이 상황에서 회담이 가능하겠습니까. 당분간은 아마 긴장 상태가 이대로 유지 될 듯합니다. 참, 그리고. 조만간 국방장관께서 물러나실 겁니다.”

결국엔 일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려나 보다.

상황이 이러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로 들어가는 셈.

이로써 남북관계에서만큼은 내가 아는 역사는 의미가 없어졌다.

“그나저나 저는 오늘 왜 부르신 겁니까?”

골치 아픈 문제는 잠시 내려놓자는 의도에서 말을 돌렸다.

이심전심이었던 듯 그의 얼굴에 잠시 미소가 스치며 재빨리 다가와 속삭인다.

“뭐긴 뭐겠소. 하사드 왕자가 진 회장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하니 초대를 한 거죠.”

“혹시 HVP 때문입니까?”

“그것도 그거지만 이번에 개량된 K9에도 관심을 보이더군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실은 내가 먼저 찾아가서 구매를 설득해야 할 일이었건만.

이러면 굳이 그 수고를 덜 수 있는 상황 아닌가.

뛰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되물었다.

“도입 수량은요?”

“글쎄요,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최소 백 대는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나 많이요?”

“나도 놀랐습니다. 지금 그들이 사용 중인 자주포도 아직 쌩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튼, 또 사우디의 무기수집 열의가 도진 것 외엔 답이 없습니다.”

사우디의 잡탕식 무기도입 정책은 나도 동의한다.

성능이 보장된 것이라면 그게 어느 나라의 것이건 주저하지 않는.

오죽했으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전투기마저 추가금을 주고 개조해서 도입해 버리는 집단.

내가 가장 먼저 K9의 수출국으로 사우디를 염두에 뒀던 것도 실은 그런 이유가 한몫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영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하사드 왕자님. 이분이 바로 재우 그룹의 진현승 회장님입니다.]

국정원장은 한참 귀빈들과 대화를 나누던 하사드에게 나를 이끌었다.

40대의 나이라기엔 한참 더 들어 보이는 외모.

하지만 온화한 인상만큼은 매력적인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껏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진 회장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경영인이라기보다는 학자에 가깝다고 들었는데, 직접 보니 또 그 말이 틀린 것 같군요.]

칭찬인지 뭔지 모를 그의 말에 웃음으로 대꾸했다.

곧 내 이름과 직함을 다시 한번 밝히며 고개를 숙여 보이자 그가 눈을 번뜩이며 한걸음 내게 다가왔다.

[실례인 건 알지만 한 가지만 먼저 물읍시다. 현재 재우에서 수출 가능한 HVP의 물량이 얼마나 됩니까.]

[……우리 군이 추가 도입할 물량을 제외하면 레이더는 대략 6대 정도. 그리고 발사대와 투사체는 얼마든 주문 가능합니다.]

[혹시 그게 이미 주인이 정해진 상태입니까?]

[아직은 아닙니다. 물론 의사를 밝힌 곳은 많지만, 무기도입이 그렇게 쉽나요. 어느 나라건 새로운 무기를 도입하려면 국민적인 합의도 필요하고 의회의 승인도 필요한 법이니까요.]

[대부분은 그렇죠. 하지만 우린 아닙니다.]

[…….]

그래, 그렇기는 하지.

애초 사우디라는 나라가 여러 면에서 특이한 건 사실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지금 재고분을 포함하여 추가로 5개의 포대를 더 구축하려면 대략 얼마나 필요합니까?]

역시나 오일머니는 정말 위대하다.

6개 포대도 모자라서 추가로 주문을 하겠다니.

주체못할 흥분을 잠시 가라앉힌 채 잠시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돌려봤다.

[그거야 투사체의 수량을 얼마나 확보하실지에 따라 달라지겠죠. 포대당 1천 발 정도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총 30억 불가량이 소요될 겁니다.]

[흠…… 그럼 만약 우리가 K9을 함께 도입한다면,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있습니까?]

[그건 힘들 듯싶습니다. 자주포와 HVP는 엄연히 별개의 문제라서.]

하사드는 그 말에 미간을 좁혔다.

이럴 땐 현실을 깨우쳐 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

K9의 최대 장점을 그에게 어필했다.

[동일한 조건을 가진 PZH2000의 가격은 정확히 K9의 두 배에 달합니다. 그 점을 생각하셔야죠.]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실은 그래서 K9을 점찍은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무려 200대에 이르는 물량을 도입하는 마당이면 우리도 가격에 민감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200대요?]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 100대만 수량이 올라가도 단가하락의 이유로는 충분하니까.

더군다나 자주포는 홀로 수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탄약 공급 차량의 수만도 최소 100대 이상은 함께 수출될 터.

최소 10퍼센트 이상의 가격하락 발생 요인이 생기는 셈이다.

스윽.

난 즉시 하사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인 그는 나를 향해 음료가 담겨 있는 잔을 내밀었다.

[그럼 일단 자체 테스트용 차체를 몇 대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하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곤 국정원장을 쳐다봤다.

눈치가 백 단인 그가 무슨 이야기가 오간 것인지 모를 리는 없을 터.

역시나 그도 슬쩍 입매를 뒤틀어 보인 순간, 갑자기 하사드의 입에서 다시 말이 이어졌다.

[참, 한 가지 궁금한 것이 더 있는데, 우리가 K9을 도입하게 되면 스마트 포탄도 함께 구매가 가능한 거요?]

[……물론입니다. 얼마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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