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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61화 (61/372)

#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61화

[삼정 테크윈, 재우 유통과 기업교환 합의.]

[우영 중공업, 재우 그룹과의 합병 가능성 증가.]

1999년도의 마지막 날, 뉴스에선 재우와 관련된 소식이 들려왔다.

평소 같았다면 꽤 심도 있는 토론이 오갔으련만, 하필 밀레니엄을 앞둔 날이었던 터라 사안을 전달하는 시간은 불과 몇 분에 불과했다.

‘쯧, 새천년이 뭐 별거라고.’

[이 시각 종각은 수많은 인파로 가득합니다.]

곧 바뀐 화면에서 종각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근처를 장악한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과거엔 나도 저 때 종각에서 밤을 지새웠는데,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어 헛웃음이 나오려는 차, 갑자기 카메라 앵글에 잡힌 사람들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하나 발견했다.

“김희원?”

처음엔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시 보이는 놈의 얼굴.

이번엔 새천년을 맞는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놈이 당당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이로써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무사히 넘겼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죠.]

“…….”

미친놈. 저 상황에서 저게 무슨…….

그나저나 저 자식은 언제 또 종각까지 간 거지?

[혹시 지인이나 가족분들에게 새해 덕담 같은 것을 전할 분이 있다면 하셔도 됩니다.]

기자는 놈과의 인터뷰를 끝맺으려는 듯한 뉘앙스의 멘트를 날렸다.

누굴 떠올리는 걸까, 잠시 놈의 눈동자가 위로 향하는가 싶더니 곧 내 이름이 튀어나왔다.

진현승이 아닌, 김준의 이름이.

[김준!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비록 다시 볼 수는 없지만, 현승이와 난 언제나 널 기억하마.]

순간 가슴 한편이 뭉클했다.

내일은 납골당에라도 가봐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스칠 무렵, 화면 속 놈의 곁에 서 있던 여인의 모습이 확 눈에 들어왔다.

송미주.

회귀 전, 희원이 놈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였던 존재.

새천년을 맞아 종각에서 운명처럼 만났었다던.

“넌 기어이 미주 씨를 만났구나…….”

결국, 너와 미주 씨는 끝내 만날 운명이었던 거구나.

******

“어서 와!”

다음날 이른 아침 본가로 향했다.

그래도 새해라고 떡국 한 그릇은 해야 한다는 김 여사의 재촉 때문이었는데, 막상 차려진 밥상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이용문 회장과는 어제 통화했다. 안 될 줄 알았더니 그 어려운 사안을 어떻게 이사회를 통과시켰는지 모르겠더군.”

진 회장은 점차 건강을 회복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도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것은 무리.

최근엔 주로 김 여사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주된 근황이었다.

“저 왔습니다!”

진현철은 전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는 물론, 김 여사를 대하는 태도까지.

비록 우리가 남들처럼 정상적인 가족 구성원은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한 끈끈함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절절하게 느껴졌다.

“내일 시간 되시면 저와 잠시 진지한 대화 좀 하시죠, 형님.”

“응, 응?”

무심히 대꾸했던 진현철이 뒤늦게 고개를 갸웃했다.

‘진지한’이라는 단어에 긴장이 됐던 거지.

상관하지 않은 채 준비해 온 서류를 슬그머니 그의 앞에 밀어 넣었다.

“곧 합병할 우영을 형님이 좀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순간, 식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향했다.

얼굴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들이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나보고 중공업을 맡으라고?”

“이대로 취미에도 없는 건설에 파묻혀 사실 생각은 없으시잖아요. 하니 이젠 복귀를 하셔야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전 거의 그로기 상태입니다. 하니 형님께서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순간 듣고 있던 진 회장의 고개가 가만히 끄덕여지고, 곧 진현철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내가 경영을 맡는 것은 좋은데. 내 무모함을 믿을 수 있겠어?”

“지금은 그 무모함이 필요한 때입니다.”

“…….”

현철의 눈이 그 말에 흔들렸다.

옅은 미소가 입가에 지어지는가 싶더니 그가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농담을 뱉어낸다.

“짜식, 파일 지운 것이 어지간히도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군.”

********

새천년을 맞은 것도 어느덧 6개월이 훌쩍 지났다.

에어로스페이스에서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최근 공격헬기는 엔진 부품들의 전반적인 내구도 테스트를 모두 끝마친 상태.

올해 말쯤이면 첫 엔진조립과 구동 테스트를 시도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고 한다.

-블레이드 주조작업이 곧 시작됩니다.

전투기 엔진 분야의 부품 개발도 순조로운 편이었다.

특히나 초내열합금기술을 적용한 블레이드의 경우는 애초 기초적인 용융기술 정도는 확보가 되어 있었던 터.

기술 습득 과정이 워낙 순조롭다 보니, 앞으로 두어 달 정도면 테스트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개발속도가 빨랐다.

-러시아 측에서 기체 이송을 시작한답니다.

수호이 설계국에서 들여오기로 했던 실물기체 반입은 모레쯤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 기체를 하늘에 띄우는 것은 사업이 공식화된 이후일 터.

아마 한동안은 역설계에만 주력하게 될 거다.

드드드드!

6월 3일.

나와 연구소 직원들. 그리고 특별 참관인으로 초대한 이용문 회장과 군 관계자들은 테크윈을 방문했다.

목적은 그사이 개량작업을 진행했던 K9의 성능확인을 위해.

사실 개량이라고 해봐야 당장 운영시스템을 교체하는 것은 무리였기에 포신의 개량만 이루어진 상태였는데, 그렇다 해도 전술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물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1차 개선안은 포신의 개량과 새로운 둔감 장약을 적용했습니다. 덕분에 K9의 연사속도는 독일 Pzh2000의 수준에 근접한다고 자부합니다.”

사실 K9이 Pzh2000 에 비해 부족한 점은 속사 능력을 제외하면 크게 없는 편이었다.

완전 자동화된 시스템은 물론 기동력과 방호력 등은 사실상 별 차이가 없던 상태니까.

그런데 그 부족한 속사 능력을 끌어올린 지금.

가성비면에선 확실히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밟은 셈이다.

“물건이 개량되는 상황이면 납품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합참의장을 비롯한 육군의 관계자들은 우려를 표했다.

아직 채 군에 납품이 완료되기도 전에 개량형이 등장한 상황.

저들로서도 대처가 애매해져 버린 거다.

“1차분 납품 물량은 차후 개선을 진행해도 상관없습니다. 이후 2차분부터 개선된 버전을 받는 것을 권해드리죠.”

“문제는 증가할 예산이 걱정스러운 거죠. 의회를 비롯한 관련 부처를 설득하는 것도 그렇고.”

나도 실은 그 점이 염려스럽기는 했다.

기능개선이 이루어지면 단가는 자연적으로 올라가는 법.

군의 입장에선 그런 변수에 대처하는 것이 익숙지 않거든.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시다시피 양산 물량이 많아지면 단가가 하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단가가 하락하면 군으로서는 굳이 예산의 증액 없이도 개선된 버전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죠.”

“그 말은, 도입 대수를 더 늘리라는 뜻입니까?”

“2차분 도입 대수야 이미 정해진 물량이 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그럼 무슨 수로…….”

“일단, 그 점은 제게 맡겨 주시죠. 제가 어떻게든 2차분 도입 전까지는 단가를 하락시킬 방법을 모색해 보겠습니다. 만약 그래도 힘들 것 같다면 그땐 의회에 다시 재심의를 요청해야겠죠.”

합참의장은 모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상황 자체가 탐탁지 않은 거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장 세계를 상대로 수출 가능한 제품이 나올 판국에 우리 군의 눈치를 보느라 개선작업을 안 할 수도 없고.

“그건 그렇고, 운용 적합성 검증 여부를 위해 재우에서 보급한 40밀리 휴대용 미사일은 일단 철원에 있는 3사단 예하 18연대 일부 대대와 GP 초소에 공급했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아무래도 지형이 험악한 곳에서 운용검증을 해봐야 정확한 결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골치 아픈 문제는 잠시 떨쳐내고 싶었던 듯 합참의장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40밀리 휴대용 미사일의 운용검증이 시작된 시기.

전과는 달리 진행 중인 사업에 일일이 관여하는 것이 힘든 위치다 보니 그 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나저나, 일선 부대는 그렇다 쳐도 GP에는 왜?

하긴, 그거야 군이 알아서 할 일이니 나야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운용검증 기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일단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각종 테스트는 재우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끝마쳤으니 사실상 요식 행위라고 봐야겠죠. 그래도 3개월쯤은 더 현장 운용과 전술 훈련을 통한 검증 기간을 거치게 될 겁니다. 물론 양산 결정은 그 후에야 논의하게 되겠죠.”

말에 힘이 들어가는 것으로 봐선 성능 면에선 만족한 듯싶었다.

하긴, 전차를 제외하곤 어지간한 기동차량들은 죄다 일격에 파괴가 가능한 물건을 보병이 휴대하고 다니는 상황이니까.

더군다나 전술 훈련을 운운하는 것을 보면 이미 그 물건을 통한 보병 전술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 영향은 결국, 전체적인 육군의 전술에도 변화를 주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하나를 해결하니 또 하나가 문제로군요.”

다시 개량형 K9을 쳐다본 합참의장은 끝내 표정을 풀지 못하고 돌아갔다.

힘 빠진 그들이 안쓰러웠던 걸까, 내내 지켜보고 있던 이용문 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다.

“군도 골치가 아프기는 하겠어.”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런데 단가하락을 유도하려면 자네 말대로 당장은 수출 외엔 방법이 없는데, 딱히 생각해 둔 곳이라도 있나?”

“일단 UAE에 먼저 타진해 볼 생각입니다.”

“그 조그만 나라에서 자주포를 수입해봐야 몇 대나 한다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들의 군 규모를 생각하면 아무리 많은 수량을 도입한다 해도 고작 수십 대 정도.

사실 그것만으로 가격하락을 유도하기는 힘들다.

“알고 있습니다. 해서 저 역시 따로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는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나저나 전 이제 우영 중공업으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회장님께서는 어쩌시겠습니까?”

“점심도 안 먹고?”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몸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상황이라서.”

“쩝,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점심은 다음에 하는 걸로 하세나.”

돌아서는 이용문 회장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여기서 우영 본사까지는 대략 차로 3시간.

가는 내내 검토할 서류들이 많아서인지 내겐 그 3시간이 마치 30분처럼만 느껴졌다.

********

“왔어?”

도착한 우영 본사엔 진현철이 먼저 와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은행 실사단인 듯 보이는 사내들을 비롯하여 정부 관련 부처의 인물들까지.

한참 그들과 대화를 하고 있던 진현철이 나를 보자 재빨리 다가와 속삭인다.

“관련 부처에서 합병승인이 떨어졌다.”

“많이 늦었군요.”

“그러게 말이다. 그나마도 아버지와 한명호 회장님이 직접 나서셨으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더 골치가 아플 뻔했어. 은행권에 얽힌 문제가 어디 한두 곳이라야 말이지. 아무튼, 조만간 성공적인 합병 사실을 언론에 발표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다행이네요, 형님께서 수고가 많았습니다.”

“수고는 무슨, 그나저나 발전용 터빈 개발 예정 소식은 언제 발표할 생각이야?”

“인수작업이 끝나는 즉시 해야죠.”

“문제는 성공 가능성을 확실하게 어필해야 한다는 건데, 그러려면 초내열합금기술의 확보 사실도 알려야 하지 않을까?”

“그거야 당연합니다. 다만, 우리가 자체개발을 한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건 미국을 배려한 조치였다.

타국에 일절 기술이전을 해주는 법이 없는 미국이 그걸 우리에게 내주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좋을 일은 별로 없으니까.

즉, 나와의 거래로 미국으로서는 일종의 선례를 남긴 셈인데, 그걸 내가 애써 들춰내 곤란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야 당연하지. 아무튼, 우리가 발전용 터빈을 자체 제작이 가능하다고 하면 파급력이 어마어마할 거다.”

현철은 시간이 갈수록 일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덕분에 나로서도 한숨은 돌릴 수 있게 된 상태.

이제야 조금은 사람답게 살 수 있을 희망이 보인다.

빌어먹을, 아무리 내가 시작한 일들이라지만 이렇게 일하다 과로로 죽어 버리면 곤란하잖아.

가만, 그러고 보니 내가 또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번엔 그냥 영면에 들어가는 건가.

아니면 또 다른 시대로 회귀라도 하는 건가.

“보아하니 실사 작업도 거의 끝난 것 같은데, 어디 가서 끼니나 때우죠.”

문득 들었던 쓸데없는 생각을 부르르 털어내며 말했다.

“아! 잠시만.”

현철은 그 말에 즉시 몸을 돌려 실사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이내 그들을 향해 양해를 구하고 돌아와선 대뜸 길잡이를 자처했다.

“가시죠, 회장님. 오늘은 내가 근사한 점심을 대접해줄 테니.”

피식.

헛웃음과 함께 현철을 뒤따랐다.

“이봐! 난리 났어. 빨리 들어와서 뉴스 좀 봐봐.”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막 엘리베이터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복도 여기저기가 어수선해진다 싶더니 주변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지?”

현철과 나는 의아한 마음에 서로를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울려대는 내 휴대폰.

발신자는 다름 아닌 김 비서였다.

“무슨 일입니까, 김 비서.”

-회장님! 뉴스 아직 안 보셨죠. 지금 철원 3사단 예하 GP 초소 중 몇 곳이 북한군의 산발적인 기관총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

절로 턱이 떨어져 내렸다.

아니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잔뜩 기가 죽어 있던 놈들이 무슨 도발을 또.

그것도 당황스럽지만, 지금이 남북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 내 뇌를 거의 정지상태로 만들었다.

대체 저쪽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지?

“그래서요? 우리 군은 어떻게 했답니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 지금 뉴스에서 군이 대응 사격을 했다는…… 회장님! 아무래도 직접 뉴스를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앵커의 말에 의하면 우리 군의 대응으로 적 초소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답니다.

“…….”

초소가  통째로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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