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도 만들어 드릴까요? 60화
“왜 이렇게 늦은 거야?”
이용문 회장과의 만남이 있은 지 며칠 후, 이번엔 한명호 회장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목적은 우영 중공업의 인수를 위한 사전 작업.
원칙적이라면 기업 인수 문제는 관련 부처들과 은행권 인사들을 상대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우영의 경우는 좀 특수한 상황에 있던 기업이다 보니 발생한 결과였다.
우영의 핵심 자산들에 대한 최대 채권자는 바로 한 회장.
결국, 그를 설득하지 않는 한은 인수 자체가 불가능하거든.
“죄송합니다, 강남은 하루가 다르게 차가 많아지는군요.”
“쯧, 그거야 예상했던 일 아닌가. 아마 몇 년 더 후에 비하면 지금은 또 아무것도 아닐 걸세. 참, 지난번에 내가 말했던 건물은 어떻게 됐나.”
“그건 진즉에 낙찰을 받아둔 상태입니다.”
“다행이군. 난 혹시나 자네가 그냥 지나치나 싶었거든. 한 5년만 푹 묵혀두게. 그럼 지금보다 최소한 2배 이상은 폭등할 자리니까.”
향후 부동산 성장 추세를 예측하는 그의 선견지명은 날카로웠다.
하긴, 그 정도 되는 인물이니 오늘날의 위치까지 올라선 거겠지.
잠시 옅은 미소를 내비치곤 넌지시 운을 띄웠다.
“실은 건의 드릴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나한테?”
그는 별스럽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제가 우영 중공업을 합병하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
한 회장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도 잠시, 저편에서 우릴 쳐다보고 있던 희진. 즉, 그의 딸을 향해 대뜸 손을 흔들었다.
“가서 우영 중공업 장부들 좀 가져와.”
“네, 아버지.”
장부를 살펴보겠다는 것은 넘길 의향을 내비친 것과도 같았다.
하긴, 그로서는 골치 아팠던 사안이었을 테니까.
실은 나도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그리 푸는 것이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었다.
“전부 가져갈까요?”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희진의 손에는 무려 10권이나 되는 노트들이 들려 있었다.
“저게 다 우영과의 채무 관계를 기록한 장부입니까?”
“너무 겁먹을 것 없어. 그동안의 거래 내역을 빠짐없이 적다 보니 저렇듯 양이 많아진 것뿐이니까.”
한 회장은 웃으며 장부를 받아들었다.
이내 꽤 오랜 시간을 꼼꼼하게 살피던 그는 탁하고 노트를 내려놓은 채 나를 쳐다봤다.
“우영이 내게 진 채무가 총 2천 5백억 원이 조금 넘는군. 물론 그동안에 쌓인 이자까지 포함해서.”
“설마 그걸 다 받으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리가 있나. 자네라면 특별히 이자의 절반 정도는 차감해주지. 어디 보자, 그럼 대략 2천억 정도만 내게 건너오면 될 것 같군.”
별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정작 거래를 제안하고 침묵하고 있는 내가 의아했던 듯, 한 회장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다.
“많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요, 사채 이자치고는. 그리고 그동안 일체의 변제가 없었던 것치고는 많은 편은 아니죠. 단지 회장님께 제안 드릴 것이 한 가지 더 있어서 그렇습니다.”
“무슨 제안?”
순간 가뜩이나 째진 그의 눈이 더 가늘어졌다.
내 입에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리라는 것을 눈치챈 거지.
어차피 그나, 나나 이런 쪽으론 서로 도가 튼 상황이기에 말을 빙빙 돌려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절반 정도는 제가 변제를 하고 나머지는 그냥 떠맡고 계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
“쉽게 말해서 우영의 주주가 되시라는 거죠.”
"나보고 우영에 아예 투자를 하라고?”
그는 호기심 돋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습니다. 향후 제가 우영을 통해서 뭔가 일을 좀 꾸미려고 계획 중인데, 만약 회장님께서 채권을 행사하실 생각이 없다면 제법 큰 이익을 거두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장 무덤에 들어가기 직전인 기업을 자네가 무슨 수로 살리겠다는 거야?”
“중공업 기업이 되살아날 방법이야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하면 기술력을 보여주면 되는 거죠. 다행히 제겐 우영을 살릴 만한 기술이 있습니다.”
한 회장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봤다.
그러면서도 끝내 헛소리 취급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내 연구소가 가진 잠재력을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뭔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있는 모양이군.”
“어차피 회장님께서는 알고 계셔야 할 문제 같으니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죠. 사실 전 우영을 통해 향후 다양한 가스터빈을 생산할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로는 최고 수준의 발전용 가스터빈을 계획 중이죠.”
“…….”
다행히 한 회장은 의미를 이해한 눈치였다.
우영을 통해 중공업 분야를 오랫동안 겪어왔던 탓이겠지.
예상처럼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질문들이 뱉어졌다.
“미국 독일 일본. 그리고 이탈리아 외에는 만들어내지 못하는 물건을 우영에서 생산한다고?”
“그렇습니다. 바로 그런 기술적 난제로 인해서 수십조 원에 이르는 시장규모를 그들이 독식하는 상황이죠.”
“하지만 어떻게?”
굳이 그 이유를 묻는다면 초내열합금기술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을 거다.
가스터빈의 핵심 역시 터빈의 블레이드가 어느 정도의 온도까지 버텨주느냐는 점.
그런데 내겐 이번에 미국과의 협상으로 얻은 1600도의 초내열 기술이 있고, 또 2020년 우영이 개발한 터빈제작 기술은 이미 보유 중이니 만약 그것과 시너지를 이룬다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국가들 수준의 가스터빈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
“하아…… 아무튼 자넨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는 여전하군. 좋아, 그건 그렇다 치고. 우영을 먹으려는 목적이 단지 그거 하나뿐인 거야?”
“물론 그게 다는 아닙니다. 사실 이 부분이야 차차 상황을 봐야겠지만, 우영을 통해서 전차를 비롯한 자주포의 엔진도 자체개발할 생각입니다.”
“그걸 개발해서 어디에 써먹…….”
한참 말을 뱉어내던 한 회장은 어느 순간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궁금한 마음에 쳐다보자 그가 허탈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이용문이가 테크윈을 자네에게 넘긴다는 말을 하더니, 거기서 생산하는 자주포에 탑재할 엔진을 만들겠다는 거군.”
어느새 그와 이용문 회장과는 통화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차피 그가 사실을 알고 있다면 대화는 더 편해지는 상황.
난 즉시 두 회사가 협력하여 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를 강조했고, 그의 눈은 점점 빛을 발했다.
“좋아, 다 좋은데, 한 가지만 묻자고. 혹시 자네 돈이 부족해서 이러는 거야?”
“부족하다기보다는 최대한 지출을 줄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사실 돈이라면 우영을 통째로 살 수 있을 정도쯤은 여유가 있지만, 그랬다간 제 향후 계획에 차질이 좀 생길 것 같아서 말이죠.”
“그 말인즉, 무언가 또 자네가 손댈 곳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군.”
역시 한 회장은 예리한 인물이었다.
굳이 부정할 이유는 없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가 긴 한숨과 함께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그렇다 해도 관련 부서는 어떻게 설득할 건데?”
“그 점은 제 아버지를 통해서 해결할 생각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실 정부로서도 우영의 뒤처리는 골칫거리인 만큼 거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면 되죠.”
“그럼 은행은 어쩌고 자네 생각보다 은행권에 얽힌 문제가 꽤 복잡할 텐데?”
“그게 문제인데, 회장님께서 나서주신다면 쉽게 해결될 것 같습니다만.”
한 회장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피식 하고 웃는 폼이 거부의 의미는 아닌 듯하다.
“그럼 내가 가져가는 지분율이 대충 얼마나 되는 거야?”
“대략 10퍼센트가 조금 넘을 것 같습니다. 3대 주주 자리는 확실하게 차지하는 셈이죠.”
“3대 주주라…….”
“참고로 원하신다면 3년 후쯤엔 제가 그 지분을 인수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땐 원금의 두 배는 가져가실 테니 불리한 조건은 아닐 겁니다.”
“쯧, 그런 식의 투자는 영 취미에 안 맞는 일이긴 한데…….”
그는 여전히 고심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내 한참을 장부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부엌에 있던 희진을 향해 소리친다.
“이 서방에게 전화해서 내일 당장 우영과 관련된 은행장들과 면담 약속 좀 잡으라고 전해.”
씨익.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로써 일차적인 확장 계획은 어느 정도 기초를 다진 상황.
이제 남은 것은 K9의 성능개선 작업. 그리고 발전용 터빈의 개발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수 있느냐는 점뿐이었다.
“그나저나 세월 참 빨리 가는군. 어느새 1999년도 고작 보름 밖에는 남지 않았으니.”
지나가듯 뱉어진 한 회장의 말에 문득 달력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을까.
밀레니엄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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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윈과 우영의 인수작업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대략 몇 개월간은 실사를 비롯한 구체적인 인수과정이 진행될 터.
그사이 난 연말을 맞아 재우가 군으로부터 시행을 따낸 사업 중 지지부진했던 항목들의 정리에 나섰다.
“이건 뭐죠?”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육군의 소대 지원 화기 추가도입 사업이었다.
M60과 유탄만으로는 부족한 소대의 화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새로운 지원 화기의 도입.
의아한 것은 애초 이 시기에 이런 사업이 존재했었는지가 내 기억에 없다는 거다.
“새로운 소대 지원 화기 개발사업은 4년 전에 재우 디펜스가 수주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 군의 요구사항이 까다로워서 개발 자체가 답보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에 다시 사업내용을 살폈다.
엄폐물에 숨은 적을 효율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기능.
또한, 차량을 이용하여 진군하는 적 기동세력을 저지할 수 있어야 할 것.
‘대체 이 양반들 뭘 만들어 달라는 거야?’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문득 떠오른 것은 회귀 전에도 이와 비슷한 소요제기가 있었다는 사실.
그 결과 ADD에서 40밀리 휴대용 미사일을 개발했었던 사건이었다.
벌떡!
난 즉시 의아해하는 김 비서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내 데이터 칩에 로그인 후, 재빨리 폴더들을 살피자 역시나 40밀리 휴대용 미사일에 대한 자료들이 존재했다.
경량화한 레이저 유도시스템.
그로 인해 소총에도 발사기를 장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제품.
부가적인 설명에 의하면 한때 특수전 사령부 소속의 장병들에게 시범적으로 채택되었다고 하는데, 덕분에 엄청난 화력증가를 이루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합참의장님?”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난 즉시 합참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의향을 물었다.
애초 개념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었던 듯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엔 의구심이 가득했다.
-그렇게 작은 미사일을 만드는 것이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어차피 센서 및 시커의 소형화는 스마트 포탄을 통해 현실화되었으니까요. 더군다나 이건 레이저 유도방식만을 사용하기에 구조도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단가인데, 아무리 가격을 다운시켜도 발당 수백만 원은 생각하셔야 할 겁니다.”
-그 정도면 딱히 문제 될 수준은 아닙니다. 한데, 시제품은 언제쯤 볼 수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그 사업이 워낙 시간을 오래 끌고 있었던 터라서…….
“당장 시작한다면 6개월 안에는 운용 적합성 여부를 가리기 위한 배치 물량 정도는 보급 가능합니다.”
-그럼 당장 시작하시죠. 합참회의는 내가 곧 주관하겠습니다.
합참의장은 잔뜩 들뜬 태도였다.
하긴, 몇 년을 끌어오던 문제가 곧 해결되는 상황이니 그로서도 반가운 일이었겠지.
그나저나 40밀리 휴대용 미사일이 정말로 정식 소대 지원 화기로 채택되면 보병 전술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찾아올 텐데, 이거 슬슬 그 분야로의 연속적인 개발도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다.
‘사실 그쪽이야 개선할 점이 널리고 널렸지.’
그동안 굳이 관여하지 않았을 뿐.
예를 들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야시경을 비롯하여 문제가 많은 분대 지원 화기들.
어디 그것뿐일까, 당장 야전 지휘 차량은 물론 수십 년을 조이고 칠하며 사용 중인 수송 차량도 개혁의 대상이지.
군의 근간이 결국엔 사람인 것을 생각하면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손을 대야 할 문제긴 하다.
‘문제는 역시 돈이지.’
그 부분에 대해선 사실 큰 걱정은 없었다.
삼정과 재우로 인한 막대한 외화의 유입은 IMF 체제를 보다 빨리 벗어날 수 있을 원동력이 될 터.
이후 빠른 안정세를 찾아간다면 우리 군의 예산도 점차 다시 증가할 테니까.
‘뭐 정 안 되면 이젠 내가 먼저 개발을 해도 상관은 없지. 어차피 자금 여유는 충분하고, 성능만 뛰어나면 물건을 팔 곳은 넘치고 넘쳤으니…… 응?’
한참 생각이 깊어지던 와중, 창밖으로 눈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내가 이 세계로 회귀한 이후 두 번째 맞는 겨울.
그리고 곧 밀레니엄.
아마 이 겨울이 지나면 앞으로 또 내가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무대가 펼쳐질 거다.